육아도 의미 말고 보상
22년 11월 21일,
육아도 노동이다
아이의 백일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여느 때보다 우리는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자신을 집순이, 집돌이로 정의해 온 우리도 지금은 틈만 나면 밖으로 나가려고 한다. 처음엔 아이 하나에 둘이 붙어 뭐든 같이 하려고 했는데, 이젠 한 명이 아이를 맡으면 다른 한 명은 외출하는 식으로 전략을 바꿨다. 아이에게 양육자의 손길이 절대 필요한 시기여서 둘 중 하나는 어떻게든 아이 곁을 지켜야 한다. 그나마 운 좋게도 우리는 추가 비용을 지출해 주 2~3회 도우미의 지원을 받고 있고, 내가 한 달 이상 휴가를 내며 육아를 같이 했다.
엄밀히 따지면, 육아를 둘이서 온전히 분담하고 있는 건 아니다. 또 내 입장에선 휴직을 한 아내가 육아를 더 많이 하고 있어 육아가 힘들지 않아야 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두 개의 심장' 박지성 선수는 한 인터뷰에서 육아가 축구보다 힘들다고 했다. 축구는 경기시간이 제한되어 있지만, 육아는 종료시간이 없어서라고 덧붙였다. 빈번히 회자된 인터뷰라 아이가 생기기 전부터 익히 알던 내용이었다. 주변에서도 육아가 힘들고, 시간이 없으니 그전에 혼자 또는 부부 둘만의 시간을 많이 보내라는 조언을 들었다. 그땐 그저 그런 줄로만 알았다.
도우미분이 오신 어느 날, 우리는 육아에 쉼표를 찍기로 했다. 가까운 석파정으로 나들이를 갔다. 육아도 그 현실에서 멀어져야 본질을 파악할 수 있는 법! 내가 겪어온 과업 대부분은 시작과 끝이 있었는데, 육아는 아니다. 육아는 크고 작은 일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그런 것이다.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시간은 빠르게 갔다. ‘아이 있는 삶’을 제대로 이해해야 아이 낳을 결심을 할 수 있을 것이란 내 생각은 완벽한 오산이었다. '아이 있는 삶'에 진입해도, 그에 대해 알기 어려워서다. 또 임신, 출산, 육아로 이어지는 생활에 얼마나 적극 임하는지는 개인마다 다르다.
우리 부부는 어떤 일이든 의미를 찾는 편이다. 생활을 위해 돈을 버는 게 중요하지만, 그 일에서 어떤 식으로든 의미를 찾았다.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없지만, 각자 일에 대한 의미 부여는 달라졌다. 아이가 태어나고, 일에 대한 내 고민은 더 깊어졌다. 아이가 자신의 삶을 살았으면 하는 바람인데, 정작 내가 그런 삶을 살고 있는지엔 자꾸 물음표가 붙어서다. 물론 10여 년 이상 직장에서 성실하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했다고 자부한다. 또 처음엔 의미 있는 일이란 생각에 보상에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나를 둘러싼 환경도 변했다. 10여 년이 지난 시점에 나는 돈 버는 일 이상의 어떤 것도 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물론 그 이상의 의미를 찾는 게 누군가에겐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또 돈 버는 일이 원래 그런 거고, 먹고살려면 다 그렇다는 것도 어느 면에선 맞는 말이다. 나는 사회생활을 하며 내가 찾던 의미가 '회사라는 곳'에 없을지도 모른다고 판단하게 됐다. 같이 일한 동료가 떠나고 조직이 개편되며, 일의 성격이 달라진 탓도 있다.
일이 다 그런 거지 놀이가 일이 될 수 없다는 말은 너무 클리셰다. 또 돈벌이가 어떤 식으로든 이상과 괴리가 있으니 현실과도 타협해야 했다. 그 사이 다른 길을 찾을 수도 있었지만 운이 따르지 않았고, 그러다 세월이 흘러 '아이 있는 삶'에 진입했다. 아이가 우리를 찾아오고 우리의 삶은 요동치고 있다. 삶, 일, 가치 등을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선 긍정적이다.
아이 있는 삶에서 아이를 돌보는 일, 즉 육아는 어쩌면 '의미'만 가득한 일이다. 통상적 일 개념으로 육아를 보면, 24시간 노동에 대한 보상은 전무하다. 정부에서 각종 수당으로 돌봄 노동을 지원한다 해도, 아이의 시간을 채우는 일은 모두 부모의 몫이다. 일에서 의미를 찾던 내가 의미만 가득한 육아에 어려움을 느낀 이유는 그 정도 보상으론 일상을 유지할 수 없어서다. 여기서 물리적 부담은 논외다. 남녀 육아 분담, 돌봄 노동에 대한 보상이 극적으로 나아지지 않는 한 '아이 있는 삶'을 꿈꾸는 이들은 그 꿈을 접을 수밖에 없다.
육아를 맡는 부모는 소진되는 경험을 하며 하루하루를 버틴다. 육아에 더 나은 보상이 필요하다는 내 생각은 잘못된 것일까? 적어도 휴직 전 받던 급여가 반토막, 또는 그 이상 줄어드는 경우는 없어야 하지 않을까? 저출생, 고령화 등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육아가 다른 일보다 의미 있는 일이란 데 공감한다면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