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하는 부모
22년 11월 24일,
부모의 성적표
삶은 여러 과업을 하나씩 완수하는 과정이다. 모든 과업은 연속성을 갖지만, 우리는 일정하게 나뉜 단계마다 평가를 받는다. 이를테면, 교육과정이 그렇다. 육아는 내가 겪은 것 중 가장 어려운 일이다. 먼저 끝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점에서 보통의 일과 다르다. 또 하나 차별점은 평가 주체와 객체, 즉 돌봄을 받는 아이와 돌봄을 제공하는 부모가 모두 다르다는 점이다.
우리는 과업을 수행하며 평가받는데 익숙하다. 과업의 끝은 내 성과에 대한 평가로 맺어진다. 돌아보면 영유아기부터 어린이집, 유치원 등 시설을 거치든 그렇지 않든 우리는 여러 평가를 받고 자란다. 양육자, 즉 돌봄을 제공하는 이들은 아이를 특정 잣대에 놓고 이렇다, 저렇다고 평가한다. 아이가 이를 이해하고, 그에 맞게 행동하는지는 별개다. 왜냐면 어떤 방식으로든 아이는 세간의 평가에 일정한 반응을 하기 때문이다.
양육자는 양적(+), 부적(-) 보상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특정 행동 패턴을 강화한다. 양육자가 아이의 성장 단계별로 바람직하다고 보는 방향이 존재해서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제외하고도, 육아가 어려운 점은 이 평가에 있다. 우리는 성장하면서 주위의 평가를 접하고 나를 돌아보고,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 주변의 잣대에 대한 옳고 그름을 함께 평가하기 때문에 수동적으로 그에 의존하진 않는다.
하지만, 육아에선 가장 중요한 아이의 평가를 알 수 없다. 아이가 어느 정도 성장한 후엔 가능하겠지만, 이 때는 부모의 양육이 갖는 의미가 달라진다. 부모에게도 매일 지난하게 이어지는 육아에 대한 성적표가 필요하다. 피드백을 통해 더 나은 돌봄을 제공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해서다. 대신, 육아에 대한 ‘현실’ 평가는 부모들끼리 주고받는다. 주변 네트워크를 통해 접하는 정보가 기준이 된다.
올바른 방법일까? 아니다. 왜냐면 주 양육자, 아이가 모두 달라 평가 자체를 비교할 수 없어서다. 척도로 비유하면 타당도, 신뢰도에서 모두 문제다. 윗세대 부모에게 자신의 양육에 대한 평가는 몇 가지로 수렴했다. 아이가 공부를 잘하는지, 어느 대학을 다니는지, 어디에 취업했는지, 어떻게 결혼했는지 등이다. 이는 생애주기에서 중요 목표 가운데 하나 일순 있지만, 누군가가 삶을 잘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전부는 아니다.
그럼, 우리는 앞으로 무엇을 기준으로 육아를 해야 할까? 대부분 삶의 과업에 정답이 없듯이 육아도 마찬가지다. 부모 세대가 답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그대로 따라가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실제 우리도 생애주기에 주어진 과업을 충실히 수행해 왔고, 여태까지 부모의 잣대로 내 삶을 평가한 면이 있다. '아이 있는 삶'이 내게 오면서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더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그간 큰 고민 없이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현재의 삶을 잘 살고 있는지에는 자꾸 의문이 든다.
아이가 우리에게 던지는 삶에 대한 질문은 우리를 더 성숙하게 한다. 바쁜 일상에 치여, 또는 그 탓을 하며 애써 외면하려 했던 타성에 젖은 우리의 삶을 성찰하게 해 줘서다. 육아를 하며 나는 아내와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대화 주제는 다양한데, 요즘은 '삶'에 더 많은 질문을 하고 있다. "좋은 질문은 삶을 더 풍요롭게 한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아이를 통해 더 나은 질문을 하게 됐다. 지금은 질문에 제대로 된 답을 못하고 있지만, 앞으로 우리가 함께 채워갈 답안지에는 좋은 답이 담길 것만 같다.
삶에 대한 만족도는 기대치 대비 성과(satisfaction= performance/expectation)로 정의할 수 있다. 우리는 주위의 높은 기대치는 그대로 두고, 그에 걸맞은 성과를 내려고 했다. 그러나 만족도를 높이는 데는 수식에서 처럼, 기대치를 낮추는 방법도 있다. 성과를 높이는 것보다 훨씬 쉬운 방법이다. 물론 무작정 기대치를 낮추는 것에도 문제는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적당히 만족해야 한다는 말은 적정 기대치를 충족시키는 삶을 산다는 뜻일지 모르겠다.
아이에게는 적어도 주위의 높은 기대치가 기준이 되지 않도록 하고 싶다. 부모의 성적표는, 아이가 원하는 걸 찾고 결과와 관계없이 그를 위해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도왔는지로 채워져야 한다. 우리는 마음가짐, 또 행동으로 아이가 주변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도록 도울 것이다. 부모가 된 우리부터 ‘성공’에 대한 사회적 잣대에서 벗어나 자신에게 관대하고, 편안한 삶을 살아갈 방법을 찾는 게 우선이다.
“은수야. 엄마, 아빠가 은수가 태어나고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어! 앞으로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우리 셋이 발맞춰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