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무게를 이기는 법
22년 11월 28일,
나를 돌보는 삶
아이의 백일을 전후로 나는 완전히 바뀐 내 일상을 돌아봤다. 부부에서 부모가 된 우리는, 이제야 육아란 전쟁터에서 돌멩이 정도를 짚어 든 것 같다. 흥미롭게도 아이를 보살핀다는 육아는 우리를 돌보는 계기가 되고 있다. 육아를 하며 든 생각을 글로 옮긴 지 3개월, 나는 아내와 '더 나은 삶'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대다수는 당장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들이지만, 삶의 연속성을 고려하면 무시할 수 없는 그런 것이다.
부모도 육아를 하며 아이와 함께 성장한다. 육아는 돌봄을 제공하고 받는 것을 기준으로 주체와 객체로 나뉜다. 그러나 3개월여 육아를 하며 내가 깨달은 것은 우리 부부도 성장했다는 점이다(물론 아이도 많이 컸다!). 아이를 키우면서는 부모님 생각이 가장 먼저 났다. 벌써 30~40여 년 전 일이니 부모님의 육아는 여건을 고려할 때 우리보다 훨씬 힘들었을 것이다. 부모님은 내게 처음부터 엄마, 아빠였기에 그 이전을 그리지 않았다. 미쳐 그려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그랬을 텐데, 조금만 신경 썼다면 이렇게 무심하지 않았을 것 같다. 30년 이상 공무원으로 일하다 퇴직한 아빠, 직업 분류로 주부였지만 여러 파트타임 일을 하며 가정까지 챙긴 엄마! 두 분은 '가족 형성기' 내가 겪은 것보다 더 큰 어려움을 느끼고 살았을 게 분명하다. 그 시절에는 모두 그렇게 살았다고 하고 넘기기엔 긴 세월이고, 사연도 많다. 내 모든 첫 경험(디폴트)을 엄마, 아빠가 정했다는 점에서 나는 부모님으로부터 유전정보 이상을 받고 자랐다.
우리는 '아이 있는 삶'에 진입하며 각자의 성장기를 공유하기 시작했다. 7년 여를 연인, 부부로 지냈더라도 그 이전의 삶을 알기 어려웠다. 그때는 기억이 훼손, 왜곡되더라도 우리가 살아온 역사를 알아야 한다고 봤다. 이유는 우리에게 찾아온 아이를 어떻게 대할지 감이 잡히지 않아서였다. 내게 평생의 탐구 대상인 아내는 말을 아끼는 편이지만, 그에는 솔직한 후기를 전했다. 육아를 하며 함께 돌아본 우리의 성장기는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에 대한 좋은 준거가 됐다.
사실 뾰쪽한 수는 없다.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는 다양한 답이 나올 수 있어서다. 우리도 모든 부모가 바라는 대로, 은수가 몸과 마음이 건강한 아이로 성장하길 바란다. 그런데 부모가 된 지인들과 대화하며 어색하게 들린 점은 그 준거가 달랐다는 것이다. 모두 같은 '이상'을 그렸지만 그를 충족시키는 '현실' 조건은 차이가 났다. 적어도 우리 아이는 이랬으면 좋겠다는 당위적 바람도 더러 있었다.
모든 부모는 아이가 자신의 삶을 살길 바라며 오늘도 지난한 하루를 버틴다. 여기서 가장 모순적 대목은 부모가 부조리한 현실을 버티고 있는 만큼, 아이도 어떤 과정을 참고 이겨내야 한다는 설득이다. 생애주기에서 크고 작은 성취는 아이가 건강하게 성장하는 자양분이 된다. 그러나 이 같은 당위적 설득은 아이의 순수한 도전에 도움이 되지 않을 법하다.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나을지 모르겠다.
부모의 무게가 무겁게 느껴진 데는 말보다 행동이 중요해서다. 이제 겨우 아이가 눈 맞춤을 하며 여러 표정을 만드는 단계지만, 아이가 부모의 모든 것을 스펀지처럼 흡수해 카피한다는 말에는 절감한다. 우리가 매 순간 몸과 마음가짐에 더 조심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아이는 하루하루 부모를 닮아가고 있다. 아이가 자신의 삶을 살길 원한다면, 부모도 끊임없이 자신을 돌보고 각자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
나도 모르게 무섭게 '못난 나'를 닮아버린 아이를 보고 후회하지 않으려고, 오늘도 나는 '나를 돌보는 삶'을 살아갈 결심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