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 세계 도전사의 교훈
22년 12월 5일,
월드컵 16강과 육아
오늘은 월드컵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2022 카타르 월드컵> H조 3차전이 열린 지난 토요일 새벽, 홀로 태블릿에 이어폰을 끼고 축구를 봤다. 하루 종일 아이를 챙기느라 지친 아내는 먼저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시간 조용한 정적은 경기가 주는 긴장감을 극대화했다. 경기는 한국의 극적인 역전승으로 끝났다. 이로써 한국은 2002년, 2010년에 이어 세 번째로 토너먼트에 진출했다. 12년 만이고, 경기 막판 결승골이 들어가 경기 후 흥분과 감동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공놀이를 좋아한 내게 축구는 최애 종목 중 하나다. 축구를 열심히 보기 시작한 건 '94 미국 월드컵 때부터다. 국내에선 최초로 대회가 지상파로 생중계됐던 걸로 기억한다. 스페인, 독일에 맞서 아쉽게 패했던 경기는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이후 한국 축구는 2002년 4강, 2010년 16강을 제외하면 세계무대에서 힘을 쓰지 못했다. 아시아 맹주였던 한국은 월드컵에선 수비 위주 소극적 경기를 하다 역습을 하는 전술을 택했다. 본선 진출국 중 약체로 꼽힌 진단에 따른 처방이었다.
‘결정력 부재, 아쉬운 패배, 경우의 수, 부상 투혼’ 등의 말은 대회 때마다 나왔다. 올해 월드컵은 시작부터 달랐다. 한국의 조별 리그 경기력은 상당했다. 사실 이번 월드컵은 개최국의 유치전 비리 의혹, 노동자 착취 등의 문제로 보이콧해야 하나 고민했다. 그런데 "부상에도 경기에 뛰겠다고 한 손흥민 선수, 짜임새 있는 팀의 경기력" 등으로 한국 경기는 관심 있게 봤다. 격세지감이다! 과거 월드컵에선 제대로 힘 한번 못 써보고 탈락했는데, 이번엔 '우리 경기'를 하고 있다.
한국 축구는 많은 팬들에게 애증의 대상이다. 기대는 높은데, 경기력이 그만큼 나온 적이 적어서다. 이번에도 그럴 줄 알았다. 우승 확률이 0.35%로 개최국 카타르와 공동 20위였다. 예상대로면 조별 예선 탈락이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육아로 다른 일에 관심을 둘 수 없게 된 탓도 있지만 이번에도 과거와 다르지 않을 것으로 봤다. 기억이 희석된 면도 있지만 이렇게 경기력이 좋았던 적이 있나 싶을 정도다. 역대급이다! 이처럼 월드컵 얘기를 길게 한 것은 육아를 하며 느꼈던 좌절감, 죄책감 등이 모두 '과정'이란 생각이 들어서다.
육아를 하며 우리는 어떤 일보다 육아가 어렵고 힘들다는 말에 공감하게 됐다. 정답이 없는 것도 그렇지만, 우리가 잘하고 있는지를 알기 어렵다는 게 핵심이다. 육아가 단계별 특정 기준으로 평가받는 대상이 아니라 더 그렇게 느꼈다. 주변에 사공이 많아 힘든 점도 있다. 육아도, 축구와 같은 방식으로 접근해야 할 것 같다. 당장 눈에 띄는 결과가 없어도, 아이와 함께 우리의 길을 충실히 가는 '과정'이 중요한 듯해서다. 아이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갈지 알 수 없기에, 우리에겐 보너스 같은 '아이 있는 삶'은 흥미진진한 여정이 될 것이다.
보편적 잣대에 맞춰 성과를 내지 않아도 괜찮다! 최초 겨울 월드컵이 열린 올해 태어난 아이가 매 월드컵 때마다 얼마나 성장해 있을지 상상하면 흐뭇하기만 하다. 갓 백일이 지난 아이가 엄마, 아빠를 알아보고 다양한 표정을 짓게 된 것만으로 대견하다. 그 순간 들었던 마음을 잊지 않고, 몸과 마음이 건강한 아이로 성장하도록 돕겠다는 다짐을 다시 해본다! 축구처럼 다른 팀과 경쟁해 좋은 성적을 내야 하는 게 아니란 점은 긴 안목에서 긍정적이다.
세상은 더디지만 그래도 천천히 나아지고 있다. 또 기대보다 변화가 느려도 어쩔 수 없다. 살아내야 한다. 지난 주말 경기가 우리에게 준 교훈은 무의미한 시도일지 모르는 작은 노력이 언젠가는 빛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의 관성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무엇이든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는 것이 중요하단 뜻으로 읽힌다. 백일을 넘기며 성장통을 겪고 있는 아이를 보면 마음이 아프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며 오늘을 버틴다. 세월이 지나면 나무에 나이테가 생기는 것처럼 우리와 아이도 부지불식간에 성장의 흔적을 쌓아갈 것이다.
오늘도 우리는 육아로 고된 하루를 보냈다. 어떻게 24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게 또 하루가 갔지만, 그래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적어도 아이를 키우는 우리 둘은 서로를 믿고, '하루하루 잘하고 있다'라고 최면을 걸어야 할지 모르겠다. 육아는 바로 그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