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한 삶이 핵심
22년 12월 9일,
당신의 비혼은 무죄
저출생 문제가 심각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혼인 건수는 19만 3천 건으로 2020년 대비 9.8%p 감소했다. 집계를 시작한 1970년 이래 최저치다. 한국 사회에서 저출생을 결혼과 결부 지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결혼을 통해서만 출산이 용인되기 때문이다. 2018년 국내 혼외 출산율은 2%대로 프랑스 60.4%, 스웨덴 54.5%, 영국 48.5%, 미국 39.6%에 비해 현저히 낮다. 왜 이 나라들과 비교하느냐고 할지 모르겠다. 이들은 OECD 국가다. OECD 국가와 비교한 다른 통계를 문제로 지적하는 예는 본 적이 없다.
지난 주말 연애 리얼리티의 유행을 다룬 한 시사 프로그램을 봤다. 2022년 현재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연애, 결혼에 대한 시각이 담겨 있었다. 그중 연애 예능은 즐겨 보지만 현실 연애는 하지 않는 이들을 탐구한 내용은 흥미로웠다. 연애, 결혼에 대한 가치관이 달라진 탓도 있다. 기성세대가 대개 '연애-결혼-출산-육아'의 생애주기를 그대로 따른 것과 달리, 이들 중에는 연애나 결혼을 필수가 아니라고 보는 이가 많았다. 출산, 육아는 결혼 파생상품이니 고려 대상도 아니다.
이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 <2022년 제1차 저출산 인식조사>에선 성별로 이유가 엇갈렸다. 남성은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71.4%)가 가장 많았다('혼자 사는 것이 좋아서' 39.0%). 반면, 여성은 '혼자 사는 것이 좋아서'(37.5%)가 많았으나 ‘가족이란 제도에 얽매이고 싶지 않아서’(33.8%),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30.9%)도 비슷한 수준이었다. 흥미롭게도 같은 시대를 살고 있음에도 여성만 가부장제에 거부감을 표했다. 결혼을 하면 여성이 포기해야 할 게 많고 ‘시월드’로 인한 숨 막힘은 정도의 차이일 뿐 모두 겪어야 해서 일 테다.
여성 가운데 비혼을 택한 이들이 많은 데는 분명 이유가 있다. 여성이 비혼, 비출산을 결심할 수밖에 없게 하는 가부장적 전통이 바뀌지 않는 한 이 현상은 지속될 것이다. 한편에선 이들을 이기적이라고 비난한다. 그러나 이에는 마땅한 근거가 없다. 우선 사회에서 여성을 출산 도구로 보는 시각부터 바꿔야 한다. 여가부에서 가임기 여성 비율을 지도에 표시해 발표한 게 불과 6년 전 일이다. 그것도 저출산 대책의 일환으로 이를 공개했다니 얼마나 감이 없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아무 목적도, 기대효과도 없는 일로 많은 이들에게 상처만 입혔다.
취업시장 한파로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소위 '3포 세대'란 말이 유행한 때가 10년 전이다 (사실 경제가 좋았던 기억은 거의 없다!). 아내를 만나 연애를 시작한 게 2014년 12월, 3포 세대와 같은 코호트(cohort)인 아내가 나를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다는 데 새삼 감사하다. 비혼주의였던 아내가 나와 가정을 이루고 출산까지 한 점은 당시 시점에서 보면 기적과 같은 일이어서 더 그렇다. 누구도 서로를 바꾸려 한 적은 없다! 함께한 세월이 쌓이면서 자연스레 ‘출산-육아’란 경로로 진입하게 됐다.
되짚어보면 결혼과 출산에 대한 내 생각은 계속 바뀌었다. 서른 중반을 넘기며 '이번 생에는 결혼은 못하나 보다'라고 생각할 때쯤 아내를 만났다. 또 비혼주의 아내를 만나 일단 결혼만 해볼까란 생각에 출산은 고려하지 않고 결혼의 관문을 넘었다. 달콤한 결혼 생활은 둘만의 시간을 더 갖고 싶은 욕심, 아이가 생기면 얼마나 더 좋을까란 기대를 갖게 했다. ‘아이 없는 삶’을 꿈꾸던 때에는 관습적 의례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 공감했다. 한편으론 요즘 시대에도 구조적 차별이 존재한다는 점에 여전히 우려가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키울 수 없는 이유를 먼저 떠올리던 우리가 아이를 잘 키워야 할 이유를 찾게 된 건 새 생명의 탄생이 준 대전환이다. 저출생을 국가 위기 등으로 규정해 비장하게 볼 게 아니라, 지속 가능한 개인의 삶을 보장한다는 차원으로 접근하면 어떨까? 결혼이나 출산을 해도 현재 삶을 지속할 수 있다는 확신을 준다면 달라지지 않을까? 그게 아니라면, 현재 많은 이들이 택한 비혼의 삶은 무죄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