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촌 교육 N 년 관찰 후기
22년 12월 23일,
아이 교육을 포기했다는 아빠
자영업자 B를 만나 육아 얘기를 들었다. 모두 알지만 애써 무시하거나 모른 척할 대목이 있어 흥미로웠다. 40대 중반 B는 20년째 사업을 하고 있다. 5살 남자아이를 키우는 그는 전업주부 아내가 육아를 전담하고 있다. 전통 분업모형으로 남녀가 경제, 육아를 나눠 맡는 외벌이 가정 아빠다. 그는 과거 18년 간 강북 부촌에서 영업을 하다, 2년 전 내가 사는 동네로 사업장을 옮겼다.
그는 내가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 그런지 육아에 대한 속마음을 시원하게 털어놨다. 작년까지 아이를 가정에서 키운 그는 아이가 올해부터 유치원에 다닌다고 했다. 그러면서 결혼이 늦어 아이가 하나지, 일찍 했으면 셋은 키웠을 것 같다고 했다. 자녀에게 공부를 시킬 계획이 없어 여럿 키울 자신이 있다고 했다. 교육열로 전 세계 1위인 한국 부모에게 이런 말을 듣는 건 생경했다.
내 주위엔 아이가 좋은 교육을 받는 게 중요하다고 보는 부모가 많다. 아이가 공부를 좋아한다면 열심히 지원을 하겠단 정도다. 억지로 시키겠단 이들은 한 명도 없다. 다만, 아이가 공부에 흥미를 갖게 유도해야 하는지엔 의견이 나뉘었다. 자유롭게 성장하다가 때가 되면 아이가 알아서 공부할 거란 측, 아이 미래를 위해 부모가 최소한의 학습 환경을 조성해줘야 한다는 측! 그 양극단 사이 어딘가에 위치했다.
내 주변 부모 누구도 양극단을 추구한단 이는 없었다. '자유-통제' 1차원 축 어딘가에서 균형을 잡으려고 애쓰고 있는 셈이다. 운 좋게도 우리 부부는 좋은 교육을 받고 자랐다. 부모님께 감사할 일이다. 아이가 태어나고 모든 일을 부모 입장에서 보게 됐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물론 그전에도 관심이 없진 않았다. 낮은 출생률, 학령인구 감소, 공교육 붕괴 등으로 국내 교육에는 다소 비관적이었다. 의무교육이 아닌 대학 교육에는 더 회의적이었다.
우리가 대학 교육에 물음표를 단 이유는 달랐다. 일단 둘 다 좋은 사람을 만나 그 영향으로 현재 모습으로 성장했다는 데는 공감했다. 그럼에도 나는 '4년+α 시간', '비싼 학비(등록금 등)', '기회비용' 등을 고려하면 대학이 투입 대비 산출 가치가 낮다고 봤다. 나와 달리 아내는 사람 외에도 대학에서만 할 수 있는 활동을 예로 들며, 꽤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했다. 그래선지 아내는 나보다 대학 지인들을 자주 만난다.
다시 자영업자 B 얘기로 가보자! B는 교육비가 아이 양육에 있어 큰 비중을 차지하므로 교육비를 줄이면 아이를 여럿 키울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아이 교육을 포기했다고 했다. '포기'란 단어는 적절하지 않지만 그가 쓴 용어이므로 그대로 쓰겠다. 그 말에는 근거가 있었다. 캐묻지 않았는데, 이유를 술술 댔다. B는 거의 20년 간 부자의 삶을 관찰하고 내린 나름의 결론이라고 했다. 그의 생각은 꽤 설득력이 있었다.
오랜 기간 부촌에서 일한 그는 그곳 아이들의 성장기를 지켜봤다. 부자 부모의 직업과 자녀의 학업성취 등을 낱낱이 접했다. 그는 부자들의 삶도 평범한 이들과 다르지 않다고 했다. 또 그는 대대손손 부자였던 이들만 봐서 그런지 '개천용'은 없고, 앞으로도 없을 거라고 단언했다. 자신처럼 평범한 이들은 어떻게 해도 그들을 따라잡을 수 없다고 봤다. 그는 이 지점이 아이를 사랑하지만 교육은 포기했다고 한 이유라고 밝혔다. 이는 아이가 원치 않는데 억지로 등 떠미는, 즉 가기 싫은 학원에 보내거나 입시 교육을 하지 않겠다는 정도로 들렸다.
그는 부촌 교육에서의 '성공'이 두 가지로 수렴한다고 했다. 전문직(의사)과 가업 승계였다. 단순했다. 교육에 상상이상의 돈, 시간, 에너지를 쏟아붓는 이들은 아이가 공부를 잘하면 서울대 의대를 보내기 위한 교육을 시작한다고 했다. 나머지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일찌감치 국내 입시를 접고, 해외로 유학을 보낸다고 했다.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 묘사된 터라 놀랍지 않다. 다만, 천편일률적으로 모두가 그 경로를 따라간다는 점은 애석했다. 그의 관찰에 오류가 있을 수 있고, 모든 사례를 알지 못할 법하므로 일반화하긴 어렵다.
여기서 하나 더 안타깝게 들린 점은 입시가 수십 년 전과 비교해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가 대학 입시를 할 때도 서울대 의대는 절대 목표였고, 상위 1% 학생들은 전국 의대를 점수에 맞춰 지원했다. 세상이 크게 바뀌었다고 하지만 이런 사례를 접할 때면 정말 그런지 모르겠다. 하루하루 빠르게 바뀌는 것 같지만, 관성을 이겨내기 어려운 셈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는 기회구조의 극적 차이를 만든다. 부자는 그 차이를 만들 수 있는 이들이다. 이들이 자녀 교육에서 같은 경로로 움직인다는 점은 기이했다. 우리 부부도 자녀 교육에 대한 쓰나미급 주변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아직 겪지 않아 잘 모르겠다. 다만, 다행인 점은 우리 둘의 교육관에 공통분모가 크다는 것이다. 아이가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자라길 바라는 부모 마음은 같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교육관에서 어느 쪽에 무게를 둘진 다를 수 있다.
위에 언급한 B 얘기는 후배 C 사례와 겹쳐졌다. C는 30대 후반, 맞벌이 가정 아빠다. 대기업에 다니는 그는 답답한 조직 문화를 견디기 힘들지만 처우와 복지(보육 포함)를 고려해 현실과 타협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다른 이유로 아이 교육에 집착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자신을 부모 계획에 의해 잘 키워진 예로 정의했다. 청소년기 별다른 저항 없이 공부를 열심히 해 좋은 대학에 입학했고, 졸업 후 대기업에 입사해 평탄한 삶을 살고 있다고 했다. 바쁘게 사느라 자신을 돌아볼 기회가 없던 그는 최근에야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는 불쌍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C처럼 자신을 객관화하는 이도 많지 않다. 이제라도 그걸 깨달은 건 다행이다!).
아이가 불행하길 바라는 부모는 없다. 위 사례를 교훈 삼아 아이가 좋아하는 걸 찾도록 기다리고, 불안을 건드리는 상술에 휘둘리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한다. 자신의 삶에 철학을 갖고 사는 사람이 되도록 키우는 게 먼저다. 흔히 교육에서 지덕체가 중요하다고 하는데, 우린 '체덕지'가 맞다고 본다. 건강과 인성이 먼저다. 이 둘을 빼면 삶은 공허할 게 뻔해서다. 막연한 기대로 아이를 고문할 시간에, 부모가 먼저 자신을 돌아보고 더 나은 어른으로 거듭나야 한다. 자녀는 부모를 비추는 거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