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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시루 Dec 29. 2022

운이 좋아 성공했다는 사람

vs. 잘나서 성공했다는 사람

22년 12월 29일,

운이 좋아 성공했다는 사람  


조직에서 높은 자리에 있는 이들을 만난 적 있다. 자신이 잘나서 그 자리까지 갔다고 했다. 일부는 실제 그럴지 모른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그렇지 않은 경우도 더러 있었다. 한 분야에서 성과를 내서, 또 오랜 기간 잘 버텨 높은 자리에 오르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가운데 몇몇은 운이 좋아 그 자리까지 갔다고 말한다. 끊임없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세상, 또 자신을 잘 포장해 팔아야 하는 세상에서 이들은 유니콘 같은 존재다.


내 주위에도 운이 좋았다는 이들이 몇몇 있다.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적다. 세상 기준으로 한 사람의 성공과 실패는 명함 속 직함, 연봉, 재산, 지위(명예) 등으로 나뉜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그 경계는 모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사회적 성공이 천편일률적으로 외적 요인에 의한 거란 점을 보면 더 그렇다. 한 사람이 얼마나 좋은 삶을 살았는지는 외적 성취로만 평가할 수 없다.


또 외적 성취를 이룬 이들 모두가 내적으로 성숙하지도 않다. 사회생활을 하기 전에는 둘을 구분하지 못했다. 외적으로 성공한 이들이 내적으로도 성숙할 것으로 봤다. 남다른 노력을 하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경험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어서다. 그만큼 어렵고, 그 자체로 평가받을 일이다. 그러나 요즘 드는 생각은 우리가 외적 성장에만 집착해 온 게 아닌가란 생각이 든다. 정치인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여야, 특정 정파와 관계없이 존경할만한 인물을 찾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정치인이 사회적으로 성공한 축에 속한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런데, 현실로는 오히려 이들이 사회에 미치는 해악이 커서 걱정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현실 정치를 설명하기에 이보다 더 적합한 말이 있을까? 아이가 태어나고는 나쁜 정치가 다음 세대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게 됐다. 물론 좋은 정치인도 있다. 앞으로는 우리 아이를 포함한 미래 세대를 위한 좋은 정치인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평가 잣대를 마주한다. 현대 사회는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각 개체를 정규분포에 두고 사회적으로 희소한 재화, 지위 등을 배분해 왔다. 지금도 우리 사회에 만연한 능력주의(meritocracy) 신화는 그 예다. 능력주의가 고도성장기 인적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한데 큰 몫을 한 건 맞다. 그러나 복잡다단해진 세상에서 몇 가지 측정 항목에 기댄 ‘줄 세우기’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능력주의로 최상단에 있던 이들이 만든 세상이 이 모양이다. 정치 얘기는 이 정도로 하자!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이들은 과거부터 쌓아온 트로피를 과시하며 산다. 반면, 운이 좋아 성공했다는 이들은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현재를 산다. 사회에서 통용되는 성공 기준은 대개 임의적이다. 세상이 달라졌고 그 기준도 바뀌었다지만, 능력주의 트로피는 여전히 사람들을 현혹한다. 따라서 소위 '엘리트'는 공부란 능력이 우대받는 세상에 태어나 안락한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해야 맞다.


한국 여자 핸드볼은 세계적 수준이다. 이 선수들이 만약 핸드볼 리그가 축구보다 더 활성화된 북유럽에서 태어났다면 다른 삶을 살았을 것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비인기 종목이란 푸대접을 받고, 올림픽 때만 ‘우생순’으로 잠시 주목받는다. 대회가 끝나면 대중의 관심은 줄고, 선수 생활을 이어가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북유럽에서 태어나 핸드볼 선수가 됐다면, 좋은 대우를 받았을 이들이 말이다. 이는 극단적 예지만, 한 인간의 출생 여건 즉 지극히 '운'이란 요인으로 삶이 극적으로 바뀌는 상상을 가능하게 한다.


내가 만난 '운이 좋아 성공했다는 사람' 학업 성취가 대우받는 세상에 태어난   운이라고 한다.  공부를 잘한다는 이유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평탄하게 살고 있는 점도 모두  덕분이라고 한다. 같은 자질을 갖춘 들 중에 자신이 이룬 바가 '잘나서' 아닌 '운이 좋아서'라고 말하는 이들이 늘면 좋겠다. 그래야  나쁜 이들,  때문에 어쩌면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을지도 모를 이들을 구할  있다. 운이 나쁜 이들을 '노력하지 않아서', '능력이 없어서' 등으로 낙인찍으면  문제를 모르는 척하고 덮는  된다.


앞으로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는 운이 좋아 많은 걸 이뤘다는 이들이 늘면 좋겠다. '운 9기 1' 태어나는 순간, 많은 것들이 정해지는 세상이다. 완전히 평평한 운동장을 바랄 순 없지만, 기회구조 불평등을 잘 해결하려고 한다면 세상은 분명 나아질 거다. 다음 세대인 아이가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살면서 '난 참 운이 좋다'라고 말하면 더할 나위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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