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있는 삶'만이 줄 수 있는 것
23년 3월 22일,
초콜릿 박스와 같은 인생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은 언제나 즐겁다. 아이와의 외출이 가능해지면서 우리 부부는 시간이 날 때마다 새로운 곳을 찾고 있다. 아이가 걷게 되면, 또 다른 세계가 열릴 것이란 말도 더 잘 이해하게 됐다. 물론 현재는 당장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주말을 지나며 생후 8개월 차가 된 아이는 오늘도 잘 크고 있다. 하루하루 달라지는 아이는 우리 부부를 원더랜드에 머물게 하고 있다. 이는 곁에서 아이를 보며 느끼는 신비로움 덕분이다!
"인생은 초콜릿 박스와 같다."는 말이 있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명대사 "Life is like a box of chocolates, you never know what you're going to get."에 나온 말이다. 인생은 놀라운 것으로 가득 차 있어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는 의미다. 처음 영화를 본 당시에는 그러려니 했다. 지난해 아이를 만나고는 이에 더 공감하게 됐다. 삶이 지난하고 그 자체로 고통이지만, 살아낼 가치가 있다는 뜻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아이 있는 삶'에 진입한 후, 우리는 반복되는 일상에서 예상치 못한 몇몇 순간이 큰 환희가 된다는 점을 깨달았다. 어린이집에 잘 적응하고 있고, 하루하루 달라지고 있는, 또 뭔가를 열심히 탐색하는 아이의 모습은 그에 꼭 맞는 예다. 아이는 어린이집에 등원하며 놀라운 적응력을 보여주고 있다. 어린이집 선생님에 따르면 이 시기 아이들은 보통 낯가림이 심해 울음을 터뜨리는데, 은수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방긋방긋 웃고, 0세 반 친구와도 잘 어울린다고 했다.
아이가 사회성이 좋은 편인 것 같다는 말도 들었다. 우리 부부는 MBTI로 둘 다 'I'로 평소 그런 평을 듣고 자라지 않았다. 사회성이 부족하진 않지만, 사람을 만나 에너지를 얻는 유형은 아니다! 그런데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그런 평가를 받으니 신기하기만 하다. 부모의 성정과 별개로 아이가 태어나며 갖는 기질을 따를 수 있다고 하니, 이런 면을 보는 것도 신세계다. 당연히 알 수 없는 일이고, 성장하며 달라질테니 꾸준히 지켜볼 대목이다.
그럼에도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생애 첫 사회생활'을 잘 해내고 있는 건 신통방통하기만 하다! 부모 걱정을 덜어주는 아이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아이를 일찍 어린이집에 보내며 걱정이 전혀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주변에서 응원을 받고, 아이가 잘할 테니 걱정 말라는 얘길 빈번하게 들었음에도 그렇다. 또 아이를 일찍부터 시설에 맡길 결정을 하고 우리는 서로에게 미안한 마음에 그 말을 믿었던 것 같다. 아니, 믿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사회생활은 복잡하다. 득실이 있지만, 이를 모두 따져가며 하는 건 아니어서다. 나이가 들며 사회생활을 분별 있게 할 수 있게 된 건 좋은 점이다. 만남을 통해 에너지를 얻는 이들을 선별하는데 불편함을 느끼지 않게 됐다는 뜻이다. 복잡다단한 세상에서 어느 면에서건 공통분모를 갖는 사람을 만나는 건 어렵다. 학교, 직장 등으로 묶인 코호트를 함께 만나야 한다는 의무감은 지워낸 지 오래다. 되돌릴 수 없는 시공간의 추억을 공유한 인연은 크지만, 모두와 같은 밀도의 관계를 형성할 순 없어서다.
주중에는 일터, 집, 운동장, 주말엔 도서관 정도가 우리 부부의 동선에 있다. 아이가 태어나고 작은 아이가 조금씩 행동반경을 넓혀 가면서, 요즘은 아이가 좋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곳을 열심히 찾고 있다. 이 노출로 아이의 발달에 어떤 영향이 있길 바라는 건 아니다. 그보다 아이와의 외출은 그 자체로 부모에게 큰 도움이 된다. 아이를 키우는 지인들이 주말에 더 바쁘다고 한 데는 이제 쉽게 공감하게 됐다. 아이가 생후 7개월을 꽉 채운 지난 주말, 박물관에 갔다. 공간이 주는 안락함, 이동과 수유 등이 편한 곳을 찾다 보니 그곳을 택했다.
특정 전시를 보기 위해 간 건 아니었는데, 오전 개관시간을 맞춰 간 박물관은 꽤 붐볐다. 아침 일찍 준비를 하고 나선 덕에 30분 만에 박물관에 도착했다. 마지막 방문이 임신 전이어서 세 가족이 함께 한 이번 외출은 감회가 남달랐다. 당시를 떠올린 우리는 아이를 데리고 셋이 왔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삶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건 분명하다. 아내의 임신, 출산을 겪고 다시 간 박물관에서 이곳저곳을 탐색하느라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의 눈빛을 보는 건 큰 행복이었다.
그렇게 조금씩 커가는 아이를 보며 우리도 부모가 되고 있다. 오늘도, 어제와 다른 하루를 보내고 있을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길 기도한다. 아이의 작고 소소한 변화가 초콜릿 상자를 열 때 느끼는 설렘과 같을 테니, 앞으로 펼쳐질 우리 셋의 여정이 달콤 향긋한 향으로 가득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