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시루 Apr 14. 2023

아이의 첫 바이러스 극복기

'감기와의 전쟁'을 치른 아이

23년 4월 14일,

아이의 첫 바이러스 극복기


아이를 돌보는 부모에게 환절기는 큰 도전이다. 고질적 비염으로 면역주사, 항히스타민제를 달고 사는 내게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아이가 나와 같은 고통을 겪지 않는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고 안전하게 겨울을 보내고, 처음 맞는 환절기에 우리는 아이 컨디션에 온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팬데믹으로 몇 년간 마스크를 쓰고 살았기에 감기 등 호흡기 질환 유행이 덜한 점은 우리의 경각심을 낮췄다. 물론 때마다 필요한 예방접종 등은 놓치지 않았다.


벌써 2주가 흘렀다! 아이가 처음 고열로 잠을 못 자고, 온몸이 불떵이처럼 뜨거웠던 일은 며칠간 지속됐다. 수시로 전자 온도계로 체온을 측정해 기록한 아내는 어쩔 줄 몰라 아이를 부둥켜안고 울기도 했다. 몇 차례 예방접종과 가벼운 감기로 병원을 찾은 경험이 있었지만, 아이 상태는 그때와 달리 점점 나빠졌다. 꽃샘추위가 있었지만 날씨가 풀리고, 봄꽃이 피기 시작한 시기부터 나들이를 자주한 탓일까 싶어 괜히 아이에게 미안했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예기치 않은 일로 인해 육아는 긴장을 놓을 수 없는 면이 있다.


아이는 전문가가 아닌 우리가 봐도 컨디션이 매우 나빠보였다. 고열에 재채기를 하고 평소 똘똘한 눈빛도 사라졌다! 증상이 지속되자, 우리는 비상태세에 돌입했다. 계속 아이 체온을 확인하며 그에 맞는 대응법을 찾았다. 일요일 오후여서 급한 마음에 근처 문을 연 가정의학과를 찾았다. 평소 다니던 곳이 아니고, 소아과가 아니라 유의미한 도움을 받지 못했다. 8개월 차 아이에게 너무 많은 약을 처방해 해열제만 먹이고 다음날, 원래 다니던 병원을 다시 찾기로 했다.


병원에 다녀와 약을 먹은 아이의 고열은 잡히는 듯했다. 그런데, 밤 사이 체온은 40도 가까이 오르내렸다. 그나마 40도가 넘지 않으면 우선 해열제로 열을 내린 뒤 병원에 가라는 가이드가 많았다. 또 병원을 찾아도 물수건으로 아이 몸을 닦아 체온을 일시적으로 내리는 것 이외엔 방법이 없다는 경험담도 있었다. 이 일은 아이가 갑자기 열이 나기 시작한 일요일 밤부터 월요일 새벽 사이 일어났다. 주말 밤이라, 일단 체온을 낮추고 다음 대응법을 찾는 게 맞아 보였다. 그러나 이 초유의 사태에 이성적으로 대응할 부모가 얼마나 될까?


앞서 아이가 가벼운 감기를 앓아 병원에서 처방약을 받아 먹인 적이 있었지만, 이 상황은 그와 차원이 달랐다. 또 아이가 조금 컸다고 어른처럼 약을 먹고 잠시 시간을 벌 수 있을지에도 의문이 들었다. 육아를 하면서 부모로서 아이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함을 느끼는 건 꽤 빈번하게 일어난다. 여러 사례 가운데 아이가 아픈 경우가 가장 힘들다. 작고 여린 아이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힘겨워하는 모습을 지켜보자니 마음이 아팠다.


우리는 부모가 더 패닉이 되면 안 된다는 데 공감하고, 병원에서 받은 가이드에 따라 체온을 낮추는데 집중했다. 손수건에 미온수를 적셔 아이의 몸 구석구석을 닦아 열이 날아가도록 하는 일을 반복했다. 그 사이 부쩍 커서 엄마, 아빠를 알아보고 잘 웃는 아이의 몸은 매우 작았다. 첫 돌도 지나지 않은 아이가 작은 게 당연한데, 8개월 성장기를 곁에서 본 부모 머릿속에는 다른 이미지가 있었다. 새삼 아이가 정말 작고 연약하다고 생각하며 물수건으로 아이 몸을 닦자 다행히 체온이 38도대로 떨어졌다.


아이는 고열에 시달려서, 또 고통을 호소하며 울다 지쳐서인지 이내 잠이 들었다. 우리는 잠이 든 아이를 잠자리에 눕히고 겨우 정신을 차렸다. 당장이라도 아이를 응급실에 데려가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아침이 되면 아이 컨디션을 보고 병원에 가기로 했다. 그 새벽, 우리는 복잡한 생각에 편히 잠에 들지 못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아이가 땀을 흘리며 잠을 잤지만 아침에는 체온이 크게 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출근을 해야 했기에 아내가 아이 상태를 어린이집에 알리고, 주로 다니던 병원에 데려가기로 했다.


출근한 나는 아내로부터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다녀왔고 다른 검사에서도 특이점이 없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회사에서도 좌불안석이었는데, 아이가 괜찮다는 메시지는 나를 안도하게 했다. 아이가 고비를 넘겼다는 생각에 더는 큰 걱정을 하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주로 다니던 병원에서 받은 처방은 일요일에 급히 찾은 병원에서 받은 것과 다르지 않았다. 아이가 약을 거부해 증상이 있을 때마다 약을 먹이기 힘들었는데, 처방약의 수가 적어 다행이었다.


이후 1주일 이상 '감기와의 전쟁'을 치른 아이는 처음만큼 크게 앓진 않았다. 열이 잡히자 아이를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도 중심을 잡았다. 1주일이 지날 즈음에도 콧물, 재채기가 잡히지 않아 집 근처 다른 소아전문 병원을 찾았다. 그곳에선 "아이가 거의 다 이겨냈으니 약을 더 쓰지 말자"라고 했다. 전문의는 약 처방을 원하면 해줄 수 있지만 이 정도는 아이가 이겨내게 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우리는 아이가 '감기'라는 바이러스로 인한 첫 위기를 극복하고 있다는 점에 안도했고, 아이가 잘 회복하길 응원하기로 했다.


제 컨디션을 거의 찾은 아이는 생각보다 빠르게 일상으로 복귀했다. 열이 잡힌 뒤로는 어린이집을 다녔기 때문에 평일 일정에도 변화는 없었다. 2주가 될 때까지 약한 콧물이 흐르는 증상이 여전했지만 병원에선 그 정도는 그냥 지켜보는 게 좋겠다고 했다. 의사에 따라 다른 처방을 할 수 있지만, 약에 의존하기보다 스스로 회복해야 나중에 고생을 덜 할 거란 얘기였다.


또 아이가 자라며 얼마나 많은 위기를 겪을지 모르지만, 이번 일을 통해 쉽게 판단하고 큰 걱정을 하는 게 좋진 않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육아'란 장기 레이스에 있을 여러 변수에 부모도 무방비일 수밖에 없어서다. 이번 일을 겪으며 모든 변수에 맞춤형으로 대응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고, 섣부른 처방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부모도 부모가 처음이란 변명으로 대충 넘기자는 말은 아니다. 적어도 부모 역할이 처음이라 서툴 수밖에 없다는 점을 기억해, 자신에게 엄격한 잣대를 대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작가의 이전글 초콜릿 박스와 같은 인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