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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루 Apr 10. 2022

내향형 엄마의 그림책 육아, 시작은 꼼수

내게 효율적이고 행복한 방식으로


언니가 책을 많이 읽어줘서 그런가?


아직 귀요미 쪼꼬미인 조카 일을 상담하다가, 동생이 한숨 섞어 물은 적 있다. 오늘 다른 분께 또 비슷한 질문을 받으니 스스로 되묻게 된 마음을 읊조리는 글.




일단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No.
(앞 이야기가 뭐였든)

나는 '책 육아'라는 말을 싫어한다.
덧붙이자면, 강제적이고 맹목적인 책 육아.


그 말속에 전제된, 엄마의 취향과 시간의 희생/ 생활 리듬의 단절에 거부감이 올라온다. 아이의 요구가 있을 땐 '하던 일을 당장 멈추고서라도', '해야 할 일이 있음에도' 책 읽어주기가 최우선이라는 주장에 어찌나 놀랐던지. 설거지하다가도 고무장갑을 벗고 달려가라니!!



그렇다면 왜 책을 읽어주었냐고?


내게 최적이고

+ 가장 효율적이며

+ 오히려 내가 충전되니까!



육아는 어쩔 수 없이 내 에너지가 아이에게로 흐른다.

그럼 내가 에너지가 있어야 하는데... 초보 엄마 시절엔 늘 피곤하고 어딘가 몽롱한 상태였던 것 같다.


놀이매트 밖으로 한 발자국만 나가도 귀신같이 울면서 따라오던 아이. 잠깐 하는 틈을 벌어보려 아이 놀이 공간에서 주방까지 오는 길에 두꺼운 미니 보드북을 '뿌려' 놓았었다. 눈치채지 못하게 듬성듬성. 아이 눈길을 사로잡을 애정 템으로 ㅎㅎ


다행히 아이는 손에 쥐거나 물고 빠는 책부터, 조금씩 커서는 그림책들에 관심을 가져주었고 그제야 덩달아 나도 그림책에 눈을 기 시작했다.



체력도 활기도 완벽 외향형인 남편.

그에 비할바 못 되는 완벽 내향형인 나.


몸 놀이는 아빠 몫으로 넘기고, (나 편하자고) 그림책 읽어주며 잔잔하게 놀이하는 꼼수가 숨겨진 시작이었다.

: 아이를 품에 안고 그림책을 읽어줄 때 우리 둘 다 행복했으니.



아이와 함께 물 한가운데로 풍덩! 뛰어들어, 첨벙대며 놀아줄 타입은 못 되는 내향형 엄마. 둘째가 태어나자마자 타 지방으로 이사 온 후 고립된 느낌은 내 성향이 아이에게 손해가 될까 걱정을 만들기도 했었다.

그러나 아이와 정서적으로 끈끈해질수록 그 불안이 사라졌다. 물가에 서서 아이의 취향과 니즈를 유심히 지켜봐 주고, 나를 필요로 하는 순간을 놓치지 않을 자신이 생겼다. 그것으로 충분하다며 내 가치를 인정하고 토닥여준 것도, 그림책이었다.


이건 순전히, 나를 위한 것.

나는 안에서부터 채워져야 행복한 사람인 거다. 감사하게도 아이들이 화답해 주었고, 덕분에 내게 온 행복을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와르르 쏟아줄 수 있었으니 이보다 더한 선순환은 찾기 힘들 정도지.^^





그러나.

내가 에너지 넘치는 아웃 도어형 인간이라면?


굳이 왜??


아이와 책으로 얻는 행복이, 까르르 웃음 넘치는 액션 활극에 비할 바 못된다면 책 육아에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이미 더 멋진 걸 해내고 있는 것을!!(그 에너지가 그저 부럽다)

산으로 들로 아이와 함께 저 바람을 직접 맞으며 걷을 땐, 책은 '기껏해야' 책일 수도 있다. 우리에게도, 아이에게도 취향과 성향이 있으니 책 육아를 우러러보지 말자.

책에서 만나는 수많은 세계에서 행복한지.
직접 발로 뛰고 만져보는 찐 세상이 행복한지.
아이와 나를 먼저 고려해도 좋을 일이다.
(양쪽이 다 된다면? 그건 더 부러우니, 빼는 걸로!ㅋㅋ)

내게 자연스럽지 않고 버거운 일은 육아에선 과감히 제외하는 편이 낫다. 매 순간 한 손을 내어주고 끝도 모른 채 가야 하는 길, 맞지도 않는 신발을 신고 걷는 게 가능할까? 그것도 아이들과 함께?

엄마 마음에 여유가 없어지면, 아이가 여유 있고 행복할 가능성은 점점 줄어들 가능성이 짙어질 뿐이란 걸 우리는 너무나 잘 아니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내가 좋은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자. 책 말고도 즐거운 게 얼마나 많은데!!





동생아, 네가 줄 수 있는 사랑을 줘.



내 대답이었다.

나는 '내가' 힘들이지 않고 줄 수 있는 최선을 선택했어.

너도 너를 지키면서 행복할 수 있는 테두리 안에서 사랑을 줘. 찾을 수 있을 거야.


다들 옳다 해도 내게 옳은 게 아님을,

아이에겐 오답일 수 있음을,

동생도 알아가길.


응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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