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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껏 흔들어봐, 네 세상!

딸에게 쓰는 그림책 편지 : <에르고>

by 시루


붉은 해가 말갛게 올라왔다. 바닷바람을 마주하고 오래 기다리던 사람들이 일제히 휴대전화를 들어 올린다. 새해 첫 일출이었다. 올해는 날이 흐려서 내심 기대하지 않으려던 마음 때문인지, 목도리를 꽁꽁 둘러맨 어른들은 수평선과 분리되어 흐르는 붉은빛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아이들은 이미 짧은 감탄을 끝내고 각자 친구들과 소식을 공유하느라 바쁜 눈치다.

요즘 부쩍 첫째와 내 시선의 차이를 느끼는 순간이 자주 찾아오는데,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또렷한 일출은 평생에 몇 번 없더라.’ 경험에 기댄 엄마의 재촉에도 아이는 이미 마음이 바빠 보였다. 점점 높아지는 해를 등지고 돌아오며 한 번 더 마음먹어 본다. 아직 겪어보지 않은 일을 강요할 순 없다고.

부모 손을 잡지 않고도 훌쩍 웅덩이를 뛰어넘을 수 있는 나이가 되었으니 나 역시 한발 물러설 준비를 해야 한다. 알면서도 내 눈은 자꾸 무언가 해결해주고 싶어서 관찰자 모드로 아이를 살피며 동동거리고 있었나 보다.


요즘 중학교는 자유 학기제 덕분인지 1학년 때부터 스스로 자유 활동을 선택하고, 친구들과 자율 동아리를 꾸릴 수 있는 기회가 많다. 첫째 역시 친구들을 모아 팀을 꾸리고 승인받는 새롭고 어른스러운 과정들을 겪고 있었다. 마냥 설레는 줄만 알았는데, 몇 친구들과 의견 조율에서 삐걱거리기도 하고 결정이 틀어지기도 했다고 한다. 학교 지원금에 맞춰 계획을 고민하느라 애쓰고 있을 때는 옆에서 해결 방향을 슬쩍 얹어주고 싶었지만 말을 아꼈다. 객관적 사실은 아이들도 충분히 알고 있으니 괜한 오지랖이 될까, 좋아하는 간식으로 응원할 뿐이었다.




아직 얇고 말랑한 동그라미.
그 안에서 자기 세계를 이리저리 굴리는 아이는 알 속에서 막 눈을 뜬 ‘에르고’와 다름없었다.


알렉시스 디컨의 그림책 『에르고』에는 좁고 동그란 세상, 에르고의 알이 등장한다. 알 속을 꽉 채울 만큼 샛노란 몸, 눈을 땡그랗게 뜬 채 당황하던 녀석은 자신을 감싼 세상에서 ‘나’를 발견하게 된다. 꼼지락 움직이는 손과 다리, 파닥일 수 있는 날개, 뾰족한 부리를 알아채고는 ‘시작부터 굉장한걸!’ 감탄하는 녀석.
좁고 동그란 공간에 가득한 자신을 보며, '세상이 곧 나'라고 외치던 에르고가 벽을 발견했다. 혹시 이것도 나의 일부분일까 궁금해 벽을 밀었더니 세상이, 나 자신이, 어지럽게 이쪽저쪽으로 데구루루 움직인다.


알 속에서 어지럽게 움직일수록 노란 얼굴이 일그러지고 푸르스름 창백해지는 에르고를 보니, 마음이 울컥 치솟아 나 역시 함께 기우뚱거렸다. 이제 막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첫째의 복잡한 얼굴, 세상과 부딪혀 흔들리면서도 중심을 잡으려 애쓰는 딸아이의 눈빛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온전히 나를 품어주던 세상 밖으로 나가려는 아이. 단단한 껍데기 안에서 평온할 수 있지만 그것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깨치며 힘껏 성장하려는 몸부림 이야말로 외로운 과정이다. 부모가 만들어준 세계 안의 내 몸짓 외에 '진짜 나'의 모습을 찾고 싶지만, 친구들과의 세계에서 바라는 내 모습 또한 중요한 시기이니 쉬운 일이 아니다. 힘들게 벽을 깨고 나왔지만 친구들과 다르다면 특별함이 아닌 고립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 또한 혼자 짊어질 무게일 테니까.


바깥세상의 자극은 성장을 부르기도 한다. 자신이 세상을 움직일 수 있다는 어마어마한 사실을 깨달은 에르고에게 들려온 '쿵!' 소리처럼 말이다. 이번에도 힘껏 발길질하며 콕콕 부리로 쪼아 벽을 깨기 시작했다. 과연 에르고는, 다른 세상을 만났을까? 벽을 깨고 마주한 세상은 어떠했을까?


호기심이 일자 거침없이 내달리는 에르고를 보며, 나는 여태껏 아이가 기를 쓰며 굴리고 있는 작은 세계를 그저 '알' 껍데기 밖에서 내려다보고 있지는 않았나 움찔했다. '대체 왜 이렇게 흔들리나' 쩔쩔맬 필요가 없다는 걸 다시 깨달았다. 단단한 껍데기 안 세상의 양분을 담뿍 먹고 잘 자란 아이를 믿는다. 이 외로운 흔들림 앞에서 알을 감싸주고 싶은 마음을 참으며 기다려주는 것이 나의 일이겠다.

흔들리고 흔들어야 내 공간이 가늠이 되고, 그래야 바깥으로 나올 수도 있다. 경험으로 배운 진리를 자꾸 잊는다. 아이 덕분에 나도 되돌아보며 진심의 응원을 남겨본다.



'딸! 원하는 만큼 뚫고 나와, 네 세상을 넓혀봐.

내가 서 있는 동그라미에 안주하지 않고 한 발짝 더 딛는다는 건, 누군가의 세계로 가까이로 다가간다는 거야. 서로 부딪혀 네 세상이 조금 찌그러질 수도 있고 혹은 상대의 동그라미와 살짝 겹쳐서 새 빛을 내기도 하겠지. 불안보다 설렘의 한 발짝이길 바라는 마음. 알지?


세상은 무한히 넓겠지만, '너'라는 세상의 크기를 정하는 건 주인공인 너 자신이라는 걸 잊지 말았으면 해. 엄마도 안전한 '알' 안에 담아 소중하고 예쁘게 크는 것에 욕심내지 않을게. 깨고 나와 마음껏 돌아다닐 에르고든, 알 안에 있는 에르고든 똑같은 '너'니까.


엄마가 해 줄 수 있는 건 내 시선으로 흔들고 정돈하는 해결이 아니라, 너 스스로를 진득하게 들여다볼 수 있도록 기다려 주는 것일 테니.
마음껏 흔들어 보자, 네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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