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쓰는 걸음

우리의 시간을 돌돌 말아 봉해 놓으면

목련의 겨울눈, 단단한 털옷 안에

by 시루


봄이 미리 준비해 둔, 비가 지나간 오후.

산에 올랐다는 친구가 보내온 푸릇한 기운에 떠밀려, 나도 긴 겨울에 안녕을 고하는 산책에 나섰다. 디스크 통증으로 한동안 운동을 멈추었다가 겨울을 맞는 바람에 길게 쉬었던 걷기 운동. 매일 다니던 산책로가 재정비된 것인지, 추위로 아직 풀이 돋지 못한 탓인지 허전할 만큼 말쑥해진 오솔길을 따라 들어섰다.


아직은 나무 사이로 파고드는 바람이 꽤 차다. 옷깃을 다시 세워 올리고도 볼을 빨갛게 스쳐가는 찬 기운을 막을 재간이 없어 당황스럽지만, 오랜만에 나선 발걸음에 흥이 붙었으니 좀 더 걸어보기로 했다. 걷는 열기가 데워지자 주변의 실루엣들이 서서히 눈에 들어온다. 집을 나설 때 이미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는 매화들을 보았는데, 오솔길 안쪽 숲에도 겨우내 매끈했을 빈 가지 끝마다 작은 그림자들이 매달려 있었다. 이제 늑장 부리지 말고 매일 걸으러 나오라는 플러팅인 듯, 작게 웅크린 봄의 기운들을 담뿍 받아보았다.

겨울과 봄을 이어주는 붉은 동백 앞에서 잠시 머물다 돌아서니, 목련이다. 모퉁이 커다란 나무에 이미 두툼한 겨울눈이 포엽을 벗어던지고 있었다. 작게 돋은 겨울눈들에 비해, 목련의 겨울눈은 덩치와 기세가 단연 압도적이다. 한눈에도 수북한 솜털 겉껍질이 말라 딱딱해지다 떨어지면 안에서 새로운 솜털 한 겹이 더 나오는데, 꽃 크기만큼 이 시기에 벗어던진 털옷(겨울눈 포엽) 흔적들도 큼직해서 쉽게 볼 수 있다.

무엇을 감싼 것일까. 그 안에 품은 게 목련임을 뻔히 알면서도 상상하게 된다. 자신이 가치 있다고 믿는 소중한 것을 감싼 듯 저렇게 당당히 흔들리며 솟아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아이를 열 달 품고 세상에 놓은 엄마라면 모두 비슷하려나.

생각해 보면 ‘품다’ ‘감싸다’라는 말에 유독 마음이 동한다. 특히 그 의미를 시간과 연결해 자주 생각하게 되는데, 아마도 아이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지워지지 않길 바라기 때문인 듯하다. 딸들과 함께 그림책을 읽을 때 우리 사이에 흘렀던 시간은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시간’이어서, 그저 세월로 스쳐가는 시간과는 그 향과 질감이 전혀 다르다. 함께 밥을 먹다 엉뚱한 한마디에 다 같이 터뜨린 폭소가 담긴 시간도 그러하다. 서로에게 얽힌 이 시간들을 빠짐없이 그러모아 담아두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러기엔 저 녀석이 딱이다.

털옷으로 겹겹이 봉한, 목련의 겨울눈.

(흠)(너를 가져야 겠...)




야, 저거 봐라, 참 예쁘다, 목련의 눈 말이야, 저거 시간을 말아서 봉封해둔 거 아니냐 했어요. 그래서 그날 술값은 제가 냈지요. 그 표현, 나 달라고 조르면서요. 여러분도 그러세요. 너무 예쁜 마음은 술값을 내고 한 번은 가져도 보셔요.

고명재 시인의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 중에서, 술값을 내고 자신이 샀다는 표현을 고백하는 일화가 더없이 반가웠다. 내 마음을 그대로 담아 놓은 말이 아닌가.


시간을 돌돌 말아서 봉하다니!

'이 단단한 털옷은 무엇도 건드릴 수 없음' 꼬리표를 달아 매달아 둘까. 겨울눈은 결국 겹겹이 입었던 포엽을 벗고 끝내 진주처럼 하얀 목련을 내보이겠지만, 나는 영영 담아두고 싶다. 아이들은 저만의 시간을 더 빛내며 살아가도록 훨훨 보내주고, 가끔 혼자(아니 남편도 함께) 열어보고 다시 품을 겨울눈 하나.

시간을 이기지 못해 겨울눈이 떨어지고, 중력이 가세해 꽃도 떨어뜨리겠지만 뭐 어떤가. 마음으로 봉해서 품은 한 가지쯤, 중력을 거슬러도 좋지.


이렇게 글로나마 지금을 기록하는 것 또한, 글자 안에 우리의 시간을 품어두는 일이 되겠구나! 문득 생각하니, 더욱 쓰기에 바지런을 떨고 싶어 지네.

여기, 너희를 향한 오늘의 내 마음을 ‘봉’하노라! :)




* 봉하다 封하다

· 문, 봉투, 그릇 따위를 열지 못하게 꼭 붙이거나 싸서 막다.

· 말을 하지 않다.

· 무덤 위에 흙을 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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