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런 수식 없이 아름다운 것 = 진실
4월 4일 11시 22분
맞춤하여 정렬된 듯, 주문을 선고한 시간.
도서관 자리를 박차고 나와, 로비 소파에서 이어폰으로 온 정신을 기울이고 있었다. 선고문을 듣고 있으려니 조급해져 심장을 부여잡아야 했지만, 차차 선명해졌다. 탄핵이 인용되겠구나.
언론은 물론 내가 속한 모임들의 단톡방에서도, 선고문에 감탄하고 위안 받았다는 이야기가 폭발적으로 넘쳐났다. 고요한 헌법재판소에서 조목조목 짚어준 이야기를 들었다면 그 논리에 수긍했을 것이다. 사이사이 들어있던 작은 채찍과 감사, 위안의 말까지 전해져 감동했을 것이다. 라고.
어젯밤 다시 탄핵 심판 선고문을 반복해 들었다. 중 3인 첫째도 '요즘 나라가 우리 사회 공부를 도와준다'며 곁에 앉는다. 입법, 사법권 독립, 헌법재판소, 탄핵 등 영상 속 단어들이 사회 교과서에 나온 그대로여서 이해가 쏙쏙된다는 웃픈 이야기였다.
아휴. 우리도 글로 배웠던 계엄령인데!! 너희가 이 시국을 직접 겪은 세대가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정말 만에 하나라도 탄핵이 기각된다면, 이 나라에서 너희를 계속 키울 수 있을까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토로하며 마음을 부려놓았다. 아마 많은 분들이 한결 가볍게 잠을 청한 밤이었을 것이다.
아이에게 말했다.
영상에서 느낀 또 다른 한 가지를 알려줄게. 뭐였을 것 같아?
누구든, 글을 써야 하는구나!!
생각을 부여잡아 논리로 가다듬고 앞뒤를 정돈해서 쓸 줄 안다는 것이 이렇게도 큰 힘이 되는구나, 생각했다.
그러니 '글을 쓰자'라고.
비유나 화려한 수식 없이 사실과 근거에 힘주어 말하는 데, 오히려 정확하게 마음에 꽂혀서 무엇보다 아름다웠다고 말이다.
헌법재판소의 선고문이 왜 그렇게 마음을 울렸나, 속이 다 시원했나, 생방송 이후에 정리되어 올라온 원문을 보며 찬찬히 살펴보았다. 파면을 선고한 순간, '조목조목 짚어서 속이 뚫렸다'라고 짧게 외친 감탄으로는 차마 부족해서 공부하듯 문장들을 읽어내렸다.
많은 분들의 해석대로, 법 지식 얕은 우리가 듣더라도 이해하기 쉽도록 철저히 배려된 문장이었다. '어떤 근거로 판단했는지', '인식은 인정하나 행동은 위법한 이유가 무엇인지', '그 행동이 누구에게 어떤 의미가 되는지', '앞으로 우리가 어떤 지향점을 향해야 하는지' 토시 하나까지 고심을 거친 글이었다.
문형배 재판관이 양쪽 진영을 번갈아 바라보던 부분은 특히 인상적이라 닭살이 돋을 지경이었다. 꾹꾹 눌러 읽었던, '~했어야 합니다' 였는데 더 이상 분열을 일삼지 않고 존중과 관용의 자세를 가져야 함을 엄중하게 꾸짖는 목소리였다.
국회는 소수 의견을 존중하고 정부와의 관계에서 관용 그리고 자제를 전제로 대화와 타협을 통하여 결론을 도출하도록 노력하였어야 한다. 피청구인 역시 국회의 대표인 국회를 협치의 대상으로 존중하였어야 한다.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문 (전문) 中
전 국민이 지켜보는 판결이었으니, 우리에게도 다시 한번 '대한 국민'의 마음과 '민주주의'의 대원칙을 상기하라 전하는 듯했다. 오래 기다린 만큼, 너무나 선명하게 그려지는 글과 목소리로 하나하나 짚어주신 이 글을 배우고 싶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청구인은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여 이 사건 계엄을 선포함으로써 국가 긴급권 남용의 역사를 재현하여 국민을 충격에 빠뜨리고 사회 경제, 정치, 외교, 전반 전 분야의 혼란을 야기했다.
· 국민 모두의 대통령으로서 자신을 지지하는 국민을 초월하여 사회 공동체를 통합시켜야 할 책무를 위반했다.
· 군경을 동원하여 국회 등 헌법기관의 권한을 훼손하고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침해함으로써 헌법 수호의 책무를 저버리고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인 대한 국민의 신임을 중대하게 배반했다.
· 결국 피 청구인의 위헌 위법 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반 행위에 해당한다.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문 (전문) 中
물론 이런 글을 읽고도 부정하는 이들이 있다.
명백하게 드러난 진실에 눈 감는 양심이 놀랍지만, 그것은 나중 일이다. 앞으로 더 분열되어 혼란스러울 미래가 걱정된다 하여 진실을 가릴 수는 없으니까.
늦게나마 봄이 왔다.
올봄엔 더 명료하게 쓰고, 단정하게 읽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