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쓰는 걸음

이제는 우리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

치밀한 기록보다 느슨한, 사는 이야기

by 시루


올해도 정리의 계절이 돌아왔다. 우리 집의 ‘비움’ 시즌. 초록이 단단해지며 봄이 물러날 즈음이 되면, 다 버렸다고 생각했던 구석마다 또 한가득 쌓여있기 마련이다. 역시, 짧은 소매 옷들을 꺼내려 열어젖힌 옷장 선반에 계절 잃은 옷들이 수북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군. 작년에 유난히 길고 눅눅했던 장마를 떠올리며 좀 서두르기로 한다. 본격적인 여름을 나 기 위해 숨 쉴 공간 만들기, 이게 비움의 목표다.


주말 하루를 잡아 아이들과 함께 정리를 마무리하던 참이었다. 어느덧 둘째에게도 작아진 옷가지와 신발 등은 미련 없이 털어내는 편이라, 옷장에서 수납장, 신발장까지는 속전속결이다. 문제는 늘 책장 앞에서 일어난다. 아이들의 손길이 꾸준한 책들을 고심하며 정리하고 나면, 가장 힘든 코스가 남기 때문이다. 물건이 아니라, 기록이 거기 있다.


“와! 이게 언제 적 노트야?”

“엄마, 이 수첩 아직도 있었어요?”

조카에게 물려줄 책들을 빼서 옮기던 두 딸이 앞다투어 한 마디씩 보태는 곳은 책장 마지막 칸. 내가 가장 좋아하는 A5 크기의 작은 공책들이 빈틈없이 쌓아 올려져 있다. 그리고 올해도 그 앞에서 고개를 삐뚜름하게 기울이고 앉아 고민하는 것이다. 이 ‘기록’들을 과연, 버려도 괜찮을까.




첫째가 태어난 직후부터 기록은 내 방패였다. 조리원에 산모와 신생아로 단둘이 남겨져 모유 수유로 고군분투하던 날, 남편에게 수첩과 연필을 가져다 달라고 했던 게 시작이었다. 누구의 도움 없이 작은 생명을 책임지는 게 두려웠던 초보 엄마는 달리 선택할 길이 없기도 했다. 수유 시간과 방향, 중간의 작은 이벤트들 까지 모조리 적어야 마음이 놓였다. 이미 일어난 일의 기록이라 별 도움이 안 된다는 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아무도 안 읽을 무소용인 기록이지만, 하나라도 놓치면 엄마로서 실수라도 할까 봐 애썼던 시절이었다.


물론 그때의 수첩은 여기 없다. 지금 책장에 쌓인 공책들 안에는 그 이후 아이들의 성장이 담겨있다. 한번 시작된 무조건적인 기록은 아이들이 크면서 성장과 독서 기록까지 이어졌다. 유독 책 욕심 많던 첫째를 위해 중고 전집을 사고팔았던 기록, 아이들이 각자 읽은 그림책, 영어 원서들, 교육용 영상들을 적어두었다. 둘째가 자라면서 비슷한 독서 취향이라면 도움이 되리라 기대하는 마음이 반, 우리가 얼마나 열렬히 함께 읽었는지 남겨두고 싶은 마음이 반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조금은 강박적이었던 기록은 살기 위한 몸짓이었다. 오롯이 아이만을 바라보는 육아 터널 안에서 내 불안을 제어하려면 무엇보다 작은 성취의 기록들이 필요했으니, 엄마로서 잘하고 있음을 증명해 주는 도장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한번 엉키거나 흐트러지면 나부터 어쩔 줄 몰라 허둥댈 테니, 끈을 놓지 않으려 우리의 흔적을 남기며 지나왔던 듯하다.

이제 책장 마지막 칸을 비우기로 했다. 더 이상 ‘좋은 엄마’라는 걸 증명해 줄 도구가 필요 없어졌고, 사실 몇 년 전부터 새로운 방식으로 기록의 방향을 전환했기 때문이다. 기록에 집착하며 치밀하게 적어둔 하루였지만, 그 안에는 데이터 외에 ‘마음’이 없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빠짐없이 기록했지만, 빠짐없이 살아내진 못한 날들의 기록이었다. 수업시간에 선생님 말씀을 들으며 무의식으로 열심히 필기한 내용이 머릿속에서 금방 휘발되어 버리듯, 글자로만 남아있는 공책을 보며 허무해진 날 이후로 기록을 멈췄다. 아니, 방향을 틀었다.

지금은 단순 기록자가 아닌 관찰자에 가까운 글을 쓰고 있다. 순간들을 담은 사진을 무턱대고 저장하던 방식에서, 그 순간 사진에 담긴 에너지와 아이들의 언어로 만든 우스갯소리를 모아두는 것이다. 마음까지 선명한 기록이니, 그때의 내가 무엇을 남기려 했는지 좀 더 오래 기억할 수 있겠지.


여름 습기에도 바람 들 틈을 만드느라 애썼던 오늘처럼, 조금 느슨해지기로 한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살아있는’ 기록을 남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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