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지켜! 우리의 밤 <오늘아, 안녕>
“응 꿈이야 괜찮아, 엄마 여기 있어.”
반사적으로 중얼거리고 돌아눕기도 전에 아이가 파고든다.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아직 한밤중인지 새벽인지 눈꺼풀을 움직여 보려다 그만 힘을 뺀다. 둘째까지 깨우지 않으려면 일단 울음이 커지기 전에 재워야지… 토닥이는 내 손목의 움직임이 점점 어둠에 흡수되며 사라진다. 몇 년을 반복했는지 모를, 깊은 우물 같은 시간이었다.
야무진 눈매를 반짝이며 세상을 탐구하던 에너지는 한낮의 차지였던 것일까.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 새로운 감각이 깨어난 듯 다른 아이가 되어, 오롯이 육아에 쏟으려던 열정을 희석시켰다. 주말부부를 끝낸 것도 다시 시작했던 일을 그만둔 것도 모두 내 선택이었지만, 밤새 얕은 잠을 자는 첫째 덕분에 매일 깨어있던 새벽은 문득 공허했고 자주 화도 났다.
둘째가 태어나자마자 부산으로 이사 오면서 아이의 밤은 더 길어졌다. 낯선 환경과 동생이 차지한 엄마 품을 한꺼번에 맞닥뜨린 탓일까. 세 살 아가의 힘든 마음이 터져 나오는 곳은 꿈결이었는지, 긴 시간 공들여 잠든 보람 없이 울면서 깨기를 반복하는 밤이 이어졌다. 원하는 만큼 애정 어린 손길을 듬뿍 줄 수 있다면 꿈속 불안까지 껴안아 주었겠지만, 아직 시간마다 먹이고 재워야 할 신생아가 있으니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더구나 당장 입소 가능한 어린이집이 없어서 다 함께 집에 있으니, 온종일 엄마와 동생 곁을 맴돌아야 했다. 아니, 첫째와 둘째 사이를 내가 끝없이 오가며 채운 날들이었다.
동생 기저귀를 갈거나 목욕시키느라 자리를 비울 때면 첫째도 인형을 들고 따라왔다. 수유하는 내 근처에 앉아 그림을 그리다가, 왼손으로 아기 침대를 흔들며 재우기 시작하면 달려와 내 오른팔과 다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손에는 어김없이 좋아하는 그림책이 들려있었다. 둘째에게는 자장가가, 첫째에게는 더없이 달콤한 엄마의 사랑 노래가 되었을 그림책들이 우리 마음 사이에 길을 놓아주었다. 짧은 시간을 살뜰히 모아서 조물조물 요리 놀이도 하고, 욕실 유리 벽에 물감을 문지르던 손을 들고 깔깔 웃기도 했다. 마음을 안정시켜준다는 이런저런 촉각 놀이를 찾아보고, 함께 하려고 애쓰며 아이를 다독였다. 불러도 바로 달려가지 못할 때가 더 많은 엄마가 해 줄 수 있는 건, 사이사이 만들어 낸 작은 틈을 아이 손에 쥐여주며 진심을 보여주는 일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일을 ‘잘 해내고 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오늘아, 안녕』 김유진 작가의 그림책을 읽다가 잊었던 그날들이 떠올랐다. 잠들기 싫어하는 아이와 노란 손바닥 머리를 한 ‘토닥이’가 나누는 이야기들이 귀여워서 웃다가, 마지막 장면에서 얼굴이 확 달아오르고 말았다. ‘토닥이’가 아이의 상상 속 친구가 아니었다니. 함께 누워 가만히 아이 가슴을 토닥여주는 아빠의 손을 보여주는 순간, 모든 게 이해되었다. 아이가 늘어놓는 이야기들을 가만히 들어준 아빠가 있으니, 잠들기 싫은 밤에도 행복하게 재잘거릴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밤은 행복하지 않았다. 해가 지면서 그날의 행복도 저물어버렸다. 분명하게 떠오른 기억은 누군가 손가락을 들어 나를 지목하는 듯, 부끄럽게 만들었다. 온종일 두 아이와 씨름하면서도 최선을 다해 사랑을 채워주려 애썼지만 밤이 되면 무너졌던 엄마의 모습을 아이도 기억할까.
“똑바로 누워야지!” “얼른 눈 감아!”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야 말았던, 무수히 많은 밤이 있었다. 잠들지 못하고 무언가 불편감을 호소하는 아이를 받아주다 결국은 시작할 때 다정했던 서로의 밤인사는 잊히고 눈물로 끝나고는 했다.
여름이면 특히 홑겹의 이불이 구겨진 것을 참지 못하고, 몇 번이고 일어나 이불을 다시 활짝 펼쳐 덮으며 괴로워하던 아이. 이불이란 원래 몸을 부드럽게 감싸며 덮고 흐르는 것인데, 구겨진 이불자락을 잡고 짜증 어린 마음을 견디지 못해 결국 울음이 터지고야 마는 것이다. 그러면 나 역시 어두운 방과 함께 깊은 땅속으로 푹 꺼져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겨우 달래고 일어서서 벽을 따라 서성였다. 흔들흔들 내 품에는 아직 잠들지 못한 더 작은 아가가 있었으니까. 세상과 단절된 듯한 이 밤이 또 시작되는구나, 벽에다 한숨을 쉬고 나면 마음까지 닳아서 나 또한 어둠이 되는 듯했다.
차라리 힘들다고 털어놓았다면 다른 방법이 생겼을까? 힘든 마음을 감추고 빠르게 해결하려고만 했으니 점점 더 화를 내어 상황을 덮는 데 급급했던 것 같다. 긴 씨름 끝에 겨우 재웠어도 밤새 얕은 잠에서 깨며 시간마다 나를 부를 첫째와, 아직 수유 중인 둘째. 너무나 훤하게 그려졌기에 잠들기를 기다리는 그 시간이 더욱 무의미하고 가혹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럴수록 마치 아이가 엄청나게 어긋난 행동을 하고 있다는 듯이, 반드시 제시간에 잠을 자야 옳다는 듯이 나를 설득하고 아이를 다그쳤다. 자신의 좌절감을 감추려 시작된 잘못된 정의감에 휩싸여 더 세게 매를 휘두른다는 폭력 아빠 이야기와 무엇이 다른가. 『마음의 여섯 얼굴』 김건종 작가의 글이 생각나 머리가 쭈뼛했다. 정의를 구현한다는 감정 자체가 우리 뇌의 ‘보상회로’를 건드려 도파민이 뿜어져 나오고 미묘한 쾌감으로 오롯이 내가 일어서는 기분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었다.
언어도 폭력이 아닌가. 나 역시 끝없는 악역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부끄러움이 날카롭게 내리쳤다. 밤마다 냉정하고 차가워지는 엄마의 다그침은 낮에 받은 사랑을 간데없이 지워버리고 말았을 텐데, 나는 무리한 노력으로 에너지를 소진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꾸만 화가 많아지던 그즈음, 이사 간 곳에서 잘 지내는지 안부 전화 주셨던 이모님이 해 주신 말씀이다. ‘엄마가 행복해야 해.’ ‘엄마가 행복한 만큼만 해.’ 내가 다 소진되어버리면 그 괴로움이 당연히 아이들을 향하고, 아이들의 괴로움은 다시 나를 향하게 될 테니 못 견딜 만큼 용쓰지 말라는 다독임이었다. 그 말을 듣고 무엇이 문제인지 바로 깨달았으니 진심으로 감사한 통화였다.
둘째를 재우며 나도 잠깐씩 다리를 펴고 눕는 것부터 시작해 보았다. 곁에 누운 첫째는 쉽게 잠들지 않았지만, 글자를 터치하면 음성으로 책을 읽어주는 ‘세이펜’으로 자신만의 시간을 즐기는 법을 터득했다. 영상물을 제한하려던 내 육아관을 느슨하게 풀었더니, TV 속 캐릭터들이 친구가 되어주었다. 가끔 <방귀대장 뿡뿡이>와 <뽀로로>가 육아를 대신해 주었다고 이야기하곤 하는데, 우스갯소리가 아닌 진담이다.
저녁 취침시간에 아이 둘을 동시에 재우던 루틴도 바꿨다. 조금 늦어지더라도 둘째를 먼저 재우고 그동안 첫째는 아빠와 거실에서 좀 더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며 즐거워했다. 둘째가 잠든 후 조심스레 안방 문을 열고 나와 보면, 어느 날은 ‘엄마와 읽고 싶은’ 그림책을 문 앞에 한가득 쌓아 놓고 배시시 웃으며 그 위에 앉아있기도 했다. 우리 셋이 동동거리는 평일에는 애써 시간을 내던 활동을 조금 줄이는 대신, 주말에 남편과 함께 첫째의 에너지를 발산하는 데 좀 더 시간을 들였더니 점점 평온이 찾아왔던 것 같다.
아무리 사랑하는 마음이 크더라도 체력과 정신이 모두 지쳐버렸으니 어둠이 찾아오기 쉬웠던 시절.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았던 불같은 차가움을 들켜버렸던 시간이 부끄럽지만, 다행히 빨리 깨달을 수 있어서 감사했다.
아이의 예민한 잠투정도 옅어지고 매일 밤 엄마와 단둘이 갖는 그림책 여행은 아이 마음을 키워주었다. 나란히 누워서 엄마의 목소리로 전해 듣는 이야기들이 아이에게도 각별했겠지만, 사실 그림책을 읽는 것은 내게도 육아를 잊고 에너지가 충전되는 일이었다. 그렇게 내 마음까지 함께 토닥여주던 밤들은, 마치 둥그렇게 만져질 듯한 공감각적 심상으로 특별한 ‘시간’이 되어 우리를 치유해주었다.
해가 바뀌어 첫째는 어린이집 생활을 시작했고, 둘째는 제법 유모차 나들이를 즐기는 아가로 자랐으니 늘어난 활동량 덕분인지 잠과의 싸움도 점점 느슨해졌다. 부끄러움으로 한 번 세게 뒤통수를 얻어맞았지만, 아이를 향한 폭발적인 화를 조심하는 마음을 갖게 된 의외의 소득도 있었으니 마냥 어두운 시절만은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다.
이젠 모두 중학생이 된 첫째와 둘째. 잠 못 들어 서로 괴롭던 시간이 있기는 했냐는 듯 잘 자라는 가벼운 인사로 각자의 잠을 청한다. 대신 『오늘아, 안녕』 그림책 속 아이처럼 오늘 있었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잠자리가 아닌 식탁에서 들려준다.
한창 사춘기인 두 딸이 엄마에게 이야기보따리를 풀어주는 것은, 욕심을 낮추고 서로가 행복할 만큼만 바라며 느슨하게 지내온 덕분일 것이다. 억지로 애쓰며 만든 행동보다, 무심한듯해도 다정한 말 한마디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취향이 닮아 다행이다.
서로의 하루를 묻고 들어주는 우리 마음의 길이 오래도록 막히지 않길 바란다. 언제든 살랑, 바람 한 줄기 스쳐갈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