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자리에서 세상을 배웠다
지팡이 끝이 젖은 낙엽을 긁었다. 선뜻 발을 뗄 수가 없어, 지팡이가 엇박자를 내는 모습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아빠가 아주 조금씩 멀어진다. 루게릭병 진행 속도가 갑자기 빨라져, 목과 다리의 신경까지 마비되기 시작했다. 힘없이 흔들리는 한쪽 팔처럼, 지팡이에 의지해 얕은 걸음을 딛는 다리마저 조금씩 기운이 빠져간다.
무심과 초연을 가장해도, 아침 숲길을 걷는 단 5분의 운동이 아빠가 ‘지금에 존재하는’ 방법이다. 곶자왈 숲이 우거진 틈으로 어지러운 햇빛이 파고든다. 아빠의 뒷모습이 옅어진다.
천근을 눌러 놓은 발등을 털고, 아빠 곁으로 향했다. 낙엽을 헤치며 다가오는 소리가 지팡이의 느린 움직임을 앞서지 않게, 저벅저벅 너른 보폭으로. “아빠, 저 표지판까지 같이 가요.” 조용히 한 걸음 뒤에서 발끝을 맞췄다.
몇 걸음 옮기지 않아 아빠는 연신 땀을 흘리셨다. 자꾸만 떨어지는 고개를 받친 목 보호대의 손수건이 벌써 젖어 있다. 호흡을 고르며 잠시 서서 몇 마디를 나누고, 다시 지팡이를 쥔 손에 힘을 주셨다. 바람이 낙엽 한 장을 들어 올리다가 제 자리에 내려놓고 간다. 이슬에 젖은 낙엽들이 한데 뭉쳐 지팡이를 붙드는지, 한 걸음 떼는 속도가 점점 더디게 느껴졌다.
짧지만 힘겨운 5분. 이제 돌아가 숲 그늘 벤치에서 땀을 식히며 쉬고 계실 동안, ‘너는 한 바퀴 다 쌩쌩 돌고 오너라.’ 등을 떠미시는 통에 결국 숲 안쪽으로 혼자 들어섰다.
벌써 가을이라는 듯 단단히 여문 빨간 열매들, 넓은 잎사귀에 맺힌 이슬, 곶자왈 오랜 바위를 폭닥하게 덮은 초록 이끼들을 사진에 담으며 느릿느릿 숲을 돌아 나왔다. 그늘진 아침 숲길에서 촉촉한 나무 냄새가 났다. 어릴 적 앉은뱅이책상에 엎드려 맡던 오래된 갈색 냄새였다.
아빠가 손수 만들어주셨던 낮은 나무 책상. 사 남매 중 첫째인 언니가 의자가 있는 학생용 책상으로 바꾸며 물려받았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받아쓰기 숙제를 하고 구구단을 썼다. 나무 틈새로 연필심이 툭 들어가 종이가 찢어지는 일도 많았지. 휙 일어설 때마다 허벅지나 무릎을 부딪쳤지만, 닳을수록 맨들맨들 윤이 나는 그 느낌이 좋았다.
정말로 그 책상을 만드셨는지, 아니면 어디선가 구하셨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러면서도 시골에서는 그런 책상도 보기 힘들었으니, 아마도 만들었을 거라며 웃으셨다. 뭐든 척척 만들어 쓰던 시절이었다.
아빠의 손길이 닿은 낮은 자리에서 세상을 배웠다. 이제껏 그렇게 믿고, 그 추억을 소중히 안고 있었기에 나의 앉은뱅이책상은 아빠의 작품이어야 했다. 옛 추억을 이야기하다 보면 함께 웃음 짓게 된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더 재잘거렸던 걸까. 아빠가 조용히 되물으셨다.
“그래서, 쓴다는 글은 잘 되고?”
“열심히는 하고 있지. 잘 되면 얘기할게요.”
“잘 안되어도, 고르라.”
생각지도 못한 말 한마디에 와르르 마음이 허물어졌다. 잘 안되어도 말하라니. 누가 내게 이런 응원을 해 준단 말인가. 잘 되든 잘되지 않든, 매일 노트북 앞에 앉아 애쓰는 내 곁으로 몸을 숙여 감싸준 말이었다.
친정에 자주 내려올 수 없기에, 지내는 동안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래도 서로의 마음을 어루만진 시간이었다. 감각만 남은 아빠의 손을 감싸 쥐고, 굳은 손톱을 원하시는 만큼 짧게 다듬었다. 낮은 책상에 엎드리던 어린아이처럼 고개를 숙여, 온 마음을 손톱 끝에 발라두었다.
노을을 좋아하는 딸을 불러 "지금이다." 얼른 옥상으로 가 보라며 재촉한다. 그러면 나는 조로록 달려가 건너편 지붕 뒤로 붉게 조각난 노을빛과 귀뚜라미 소리를 영상으로 담는다. 다시 아빠 곁에 풀썩 앉아 서로의 감탄을 주거니 받거니. 그것이 우리에게는 사랑을 말하는 방식이었다. 낮게 기울인 몸으로 전하는 마음. 이 나란한 순간이, 아직은 조금 더 계속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