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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각, 보온병 뚜껑을 연다

진짜 온기가 흐르도록

by 시루

붕어빵이다! 찬바람을 비집으며 훅 밀려온 냄새에 콧구멍이 커진다. 옷깃을 세우고 잰걸음으로 길을 건너려던 사람들이 일제히 돌아본다. 고소한 온기의 발생지, 꽁꽁 닫혀있던 주황색 비닐 덮개가 열리고 붕어빵 기계가 연신 돌아가고 있었다. 드디어 왔다. 추위를 견디는 계절에만 받을 수 있는 보상.


“슈크림, 팥 붕어빵 세 개씩 주세요.”

휴대전화로 결제하려니 손에 든 가방과 텀블러 때문에 거추장스럽지만, 그래도 요즘은 노점에서도 계좌이체가 되니 얼마나 다행인가. 초등학교 앞에서 겨울마다 자리를 지키는 할머니 사장님과 요즘 꼬맹이들이 좋아하는 맛에 대해 몇 마디 나누는 사이, 뜨끈한 붕어빵 여섯 마리가 봉투 속으로 쏙쏙 들어갔다. 김이 피어오르는 하얀 봉투를 소중히 받아 들고 집으로 향했다. 꼬챙이로 막 꺼낸 붕어빵의 바삭함이 사라지기 전에 서둘러야 한다.

아이들에게 펼쳐 보이니, 역시 환호가 터졌다. 뜨거운 종이봉투 입구를 막지 않으려고 한 손에 세워서 들고 오느라 손바닥이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깜짝 선물에 뿌듯해하며 나도 와사삭, 붕어빵 꼬리를 베어 물었다. 몸통의 따뜻한 팥까지 흘러나오니 커피 생각이 나서, 들고나갔던 텀블러 뚜껑을 열고 한 모금 마셨다. ‘앗 뜨거워.’ 붕어빵보다 훨씬 뜨거운 커피에 입천장이 놀랐다.

걸어오는 동안 한 손은 봉투의 열기로 후끈했지만, 반대편 손에 쥔 텀블러는 오히려 차가워서 좋았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아니,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텀블러는 내부의 온도를 철저히 지킨다. 내가 무엇을 넣든, 그 순간의 뜨거움 혹은 차가움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으니 당연하다. 우리가 뜨거움마저 예측 가능한 온도로 유지하려 드는 건, 어쩌면 불안을 다스리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오롯이 제 온기를 드러내는 종이봉투나, 시간의 흐름을 따라 서서히 식는 머그잔의 자연스러움을 거스르려는 인간의 의지로.

완벽히 제어하려는 마음을 생각하니, ‘내부 비밀을 절대 발설하지 않는 무표정과 과묵함은 보온병의 미덕’이라는 안규철 작가의 말이 떠올랐다.(『사물의 뒷모습』, 현대문학, 2021) 이 책을 읽을 당시의 나는 보온병에 ‘육아’를 대입해 생각할 수밖에 없는 시기였다. 초보 엄마 시절엔 무엇이든 안전한 밀봉을 원했으니까.

아이를 키우는 많은 순간, 나는 마치 보온병처럼 아이를 안전하게 감싸기 위해 애썼다. 혹시나 작은 위험이 닿을까 봐, 절대로 열리지 않을 완벽한 보호가 최선이라 믿었다. 철저한 기능을 확인하고도, 만일의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다시 보냉백에 넣어 길을 나서던 시절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무엇이 달라졌기에 오히려 공기가 통하게 뚜껑을 활짝 열어두는 걸까. 무엇도 통하지 않아 변하지 않을 온도와 밀도. 그것을 온전히 지켜낼 수 있는 시기가 지났음을 알게 된 덕분일 수도 있다. 엄마가 모르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는 아이의 세계. 지키려는 마음으로 꽉 닫아 놓아도 아이의 의지로 딸각. 적당한 온도와 적당한 틈을 느끼고 움직이는 건 이제, 아이의 손이다.


어린 시절, 늘 꼼꼼하게 방학 숙제를 검사하던 아빠가 “이제 네가 알아서 잘하겠지.”라며 맡겨주었던 뜻밖의 날처럼. 그때는 무심하게 들렸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완벽한 보호보다 신중한 열림의 방식이었는지도 모른다. 완벽하게 닫아두는 일보다, 믿고 지켜보는 일이 훨씬 어렵다는 걸 이제야 조금은 이해하며 나도 같은 방식을 배우는 중이다.

아이도 자신의 선택에서 생기는 가뿐한 자유의 감각을 느끼겠지. 어릴 적엔 열고만 싶었고, 엄마가 되었을 땐 완벽한 밀봉을 원했고, 이젠 아이 손에 넘겨준 보온병. 이제 나는 밀봉을 걱정하기보다, 그 뚜껑을 힘주어 여는 아이의 순간과 용기를 응원한다.

그렇게 보온병을 아이에게 건네고 나니, 나 역시 조금은 가벼워졌다. 오늘의 붕어빵처럼, 이 뜨거움을 감싸 쥐고 온기를 느낄 것인지 텀블러로 뜨거움을 오래 간직할 것인지 그날의 기분을 따르면 된다. 오래 지킨 뜨거움보다 흘러가는 온기가 더 따뜻한 날도 있다는 걸 아니까. 아, 겨울이면 ‘머그잔 워머’라는 신기한 아이템을 곁들이며 그사이를 오갈 수도 있겠다.


오늘은 차가운 겉을 쥐어 뜨거움을 누렸으니, 내일은 스르르 온기를 전해주는 머그잔처럼 살아보기로 한다. 내 안의 열기를 가둬두지 않고, 향을 내고 김을 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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