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소소 떨어진 생각을 줍는다
투둑, 데구르르 굴러간다. 빗소리만큼이나 순간을 멈추게 하는 소리. 재빠르게 달려가 앉던 아이들의 작은 등을 떠올리며 마른 낙엽 사이를 툭툭 걷어낸다. 벌써 어느 구석으로 굴러간 걸까, 알맹이 없는 도토리 모자 하나를 주웠다. 이 작은 것들부터 하나씩 여물어 소식을 전하는 가을이구나.
도토리들이 투둑 떨어지듯 내게도 여물어 소리 내는 기쁜 소식이 생겼다. 그림책 심리학을 공부하던 선생님들과 함께 쓴 그림책 에세이 『그림책으로 마음을 건너다』가 출간되었다. 지난겨울, 깊은 감정과 기억을 꺼내며 울고 웃느라 더는 쓰기 힘들다며 두 손 들게 했던 이야기들이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렇게도 기다리던 첫 책이 나왔지만,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만큼도 크게 알릴 수가 없었다. 내밀한 이야기들 앞에 실명을 드러낸 부끄러움에, 아직 서툰 글이라는 불안이 얹어진 탓일까.
부끄럽던 내 등을 두드려 준 것은, 그림책으로 오래 만난 인연들이었다. 나보다 더 내 글을 지지하고 기다려준 분들이 “당연히 축하부터 해야지! 무슨 소리야!”라며, 정신이 번쩍 들 만큼 기쁜 마음을 보내주었다. 글의 부족함을 느낀다는 건 그 새 성장했다는 증거 아니겠냐며, 나를 웃게 한다. 오래 함께했기에 건넬 수 있는 온갖 응원. 그 마음들이 얼마나 다정하게 날 감싸고 있었는지, 새삼 느끼는 요즘이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열매 하나를 더 거뒀다. 두 번째 에세이 공저 소식이다. 브런치를 함께 쓰는 작가 모임에서 『나의 찬란한 계절에게』를 출간했다. 삶의 희로애락을 찾아 그 지랄맞음의 서사를 모아보자고 시작했는데, 오히려 그 부서진 조각들이 모여 빛을 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모두의 탄성을 받은 말, ‘찬란’을 제목으로 입고 한 권의 책으로 엮였다. 요즘 세상에 ‘찬란은 개뿔’이라 하지만, 이 지랄맞음도 찬란한 계절 삼아 걷고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다. 끈질기게 이야기를 찾고, 더 끈질기게 퇴고를 거듭하는 분들에게서 많은 걸 배웠다.
아직 큰 열매는 아니지만, 나도 작은 도토리 두 알쯤 거둔 듯하다. 봄에서 가을에 이르기까지 출근하듯 도서관에 앉아, 쓰는 시간을 지켜온 덕분이다.
가을에 자연히 떨어지는 것들은 스스로 여물고 익은 모습이다. 뜨거운 여름을 지나온 낙엽이 잘 구워진 향을 내며 바닥에 쌓이고, 묵직해진 열매들이 손 기다릴 새 없이 가지를 떠난다.
도서관에 와 노트북을 켜고 앉은 오늘, 나는 무엇으로 여물고 있을까. 생각의 낚싯바늘을 더 멀리 던지는 법을 익혀가며 마음을 짓고, 건져 올린 시선으로 밥을 짓듯 문장을 쌓는다.
뭉근하게 익고 여무는 일에는 시간을 겪어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 시간 속에서, 문장뿐만 아니라 나도 익어간다. 익는 동안 주위의 향이 배어든다.(아마도 커피향이 가장 진하게 스며들었겠지)
너무 집요해지지 않도록 가끔 한눈을 팔거나 불 앞을 떠나보기도 한다. 마음은 금세 불을 향해 달릴 테고 담대하지 못한 나는 또다시 불을 살피러 돌아올 게 뻔하지만, 그럼에도 자꾸만 새 공기를 입히고 싶어진다. 내 안의 이야기도 타지 않게 잘 익혀서, 따뜻하고 꽉 찬 한 그릇을 내면 좋겠다.
가끔은 도토리의 시간을 뛰어넘고 싶은 욕심이 불뚝 솟지만, 돌이켜보면 모두 ‘다 그럴만했지’ 수긍하게 되는 기다림의 시간이다. 글이 익는 속도처럼, 마음도 제 온도를 품어내길 바라며 천천히 저어본다.
저 앞쪽에서 또 투둑, 소리가 났다. 손에 쥐었던 도토리 모자를 숲길 안쪽으로 던졌다. 각자의 가을로 익어가는 시간, 바람 사이로 내 마음도 오소소 굴러간다. 떨어진 생각들을 줍는다.
쓸 거리를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