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6일(월) 생장 둘째날 1편
팬데믹으로 잠시 끊어졌던 산티아고 순례 행렬이 다시 이어지고 있다. 전 세계에서 온 순레객들이 프랑스 국경마을 생장 피에드 포르에서 부르고스·카리온 데로 스콘데스·레온·아스토르가·폰페라다를 지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묻힌 성 야곱을 참배하는 길을 다시 걷고 있다. 스페인과 프랑스의 국경 피레네 산맥을 넘어야 하고 싯푸르게 펼쳐진 포도밭을 지나야 하고 나무 한그루 없이 지평선까지 뻗은 밀밭을 걸어야 하는 길이다. 순례객들은 자연의 아름다움에 취해 790km를 걷는다. 길 따라 역사적 종교적 의미를 지닌 1800여 개 건축물은 덤이다. 지금 자연과 인간의 역사가 합작한 순례길에는 저마다 사연을 지닌 순례객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노르웨이인 키누크는 영혼을 치유하기 위해 새벽 7시 동이 트자 길을 나섰다. 열번째 카미노를 걷는다고 한다. 그는 알레르기 탓에 아침마다 알약 한움큼 털어 먹었다. 3년전부터는 천식이 심해져 3kg 나가는 호흡기를 지고 다녀야한다. 그럼에도 12kg 배낭을 짊어지고 1000m 이상 피레네를 건너겠단다. 이번 카미노에는 여자친구 마리엥과 함께 한다.
폴란드계 캐나다인 에바 체피엘레브스키는 독실한 천주교도으로 신과 만나기 위해 길 위에 섰다. 5년전 우울증을 겪으며 삶의 포기하려 했던 그녀가 신을 만나고 카미노를 겪으면서 행복을 찾았다. 그녀는 14kg 배낭을 등에 메고 동영상 촬영장비를 손에 들고 어깨에 캐논 DSLR 카메라를 걸었다. 저 짐을 지고 피레네를 넘을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하루 2시간씩 운동을 거르지 않는 내가 메는 가방 무게는 고작 4.5kg이다. 그 무게마저도 오래 걸으면 버겁다. 신의 가호가 있기를 그녀가 믿는 신에게 기도했다. 그녀에게 신의 보살핌이 필요할 듯하다.
생장은 716년 팜플로나 영주였던 가르시아 헤네네스가 건설했다고 한다. 그 전까지 군사 전략의 거점지로 치부되었던 곳이다. 로마시대 야심에 찬 황제들이 이베리아 반도를 처들어가기 위해 피레네 산맥을 건너기 전 이곳에서 전열을 정비했다고 한다. 그만큼 군사전력 측면에서 중요한 곳이다. 그러다보니 스페인과 프랑스 간 쟁탈전이 치열했다. 프랑스는 수십년에 걸친 공사 끝에 1620년 이곳에 시타델(성채) 도시를 세웠다. 성채 4개 모서리에 방어탑을 설치하고 동쪽에는 노틀담(성모마리아) 문을 세워 스페인군의 침공에 대비했다. 언덕 위에 자리한 성은 군 사령부가 위치했다. 한때 스페인군은 21일간 포위 공격을 감행했지만 성을 탈취하지 못했다. 프랑스군은 이곳에서 산 세바스티인과 라 비다소아에 주둔한 스페인군의 후방을 노렸다.
루이14세 치하 군사령관이 1685년 성을 대대적으로 정비했다. 군대 숙소를 눌리고 유사시 동쪽으로 몰래 치침입할 지하 통로도 만들었다. 그 뒤에도 수차례 개축해 군사 요새로서 강력해졌다. 프랑스군은 18세기 이래로 군사 훈련과 기지로서 이 작은 마을을 활용했다. 1920년 군사기자로서 수명을 다하고 1963년 역사적 유물로 지정되었다. 지금은 스페인에서 피레네 산맥으로 건너오면 가장 먼저 만나는 마을이다. 반대로 프랑스에서 피레네를 건너 이베리아 반도로 넘어가려면 반드시 거야하는 곳이기도 하다.
생장은 12세기 전성기를 맞이했다. 유럽 각지에서 오는 순례객 수천명이 날마다 프랑스 툴루즈, 베즐레이, 푸이 엥 비례 등 프랑스 도시를 거쳐 바스크 족이 통치하던 갈리시아 지방으로 가기 위해 생장으로 모여들었다. 성 야곱이 묻혀 있다고 알려진 산티아고 콤포스텔라는 갈리사이 지방 북서쪽 끝에 위치한다. 중세시대 순례자들은 산티아고로 가려면 반드시 넘어야 하는 피레네에 오르기 전에 생장에서 묵었다. 생장 시민들은 순례자들에게 숙소와 음식을 제공했다. 병자와 빈자를 돌보던 성모 마리아 병원도 순례객을 지원하기 위해 나섰다. 이로 인해 순례객을 환대하고 지원하는 전통이 11세기부터 자리잡았다.
팜플로나의 영주 가르시아 히메네스가 716년 생장 피에드 포르는 건설했다. 로마 황제들이 이베리아 반도를 처들어가기 전에 이곳에서 전열을 정비한 뒤 피레네를 건넜다고 하니 군사 전략 측면에서 중요한 곳이었다. 그러다보니 스페인과 프랑스 간 쟁탈전이 치열했다. 이곳은 팜플로나와 바욘를 방어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프랑스는 수십년에 걸친 공사 끝에 1620년 이곳에 시타델(성채) 도시를 세웠다. 성채 4개 모서리에 방어 요새를 설치하고 서쪽으로 정문 격인 ‘로열 게이트’도 세웠다. 성채 한가운데는 프랑스 전략사령부가 자리잡았다. 스페인 군은 21일간 포위 공격을 감행해 이 성을 탈취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프랑스는 이곳에 주둔하며 산 세바스티인과 라 비다소아에 주둔한 스페인군의 후방을 노렸다.
루이14세 치하에서 프랑스 군사령관은 1685년 시타델을 개축해 군대 숙소와 지하 통로를 설치했다. 유사시 동쪽으로 가로질러 군사를 전개할 수 있는 비상 통로를 만든 것이다. 그 뒤 수차례 개축해 군사 요새로서 강력한 방어능력을 강화했다. 1920년 군사기자로서 수명을 다하고 1963년 역사 유물로 지정되었다. 지금은 해마다 순례객 수백만명이 거쳐가는 관광지로 변했다. 한국인 순례객들도 이곳을 많이 찾는다. 공립 알베르게 냉장고나 화장실에 붙은 안내문에 한글이 나올 정도다. 나는 내일 생장에서 나의 순례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