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세스바에스부터 수비리까지 천사와 걷다

9월8일 덴마크 여인 페닐라와 맺은 소중한 인연

by 이철현

아침에 일어나자 맞은편 침대에서 일어나 떠날 채비를 갖추는 페닐라를 봤다. 서둘러 세면대로 가서 대충 씻고 짐을 챙기자 페닐라가 조용히 내 옆에 붙었다. 함께 걷자는 거였다. 그녀는 신학을 공부하는 대학생으로 사제가 되고 싶어한다. 카미노를 홀로 걸으면서 신을 가슴에 품고 길 위에서 많은 친구들을 만나고 싶다고 한다. 목적지 산티아고 콤포스텔라에는 세상에서 그녀를 가장 사랑하는 남자친구가 그녀를 기다린다. 그녀의 인생이 그녀의 아름다움만큼 행복하길 기원한다.

크누트 페닐레와 함께.jpeg 가운데가 페닐라고 오른쪽이 키누트다.

2~3시간을 걷자 라트비아인 아더를 다시 만났다. 10년 지기인양 보자마자 반가웠다. 그 뒤로 아더와 함께 걸었다. 늦게 합류한 노르웨이인 크누트에게 나의 페닐라는 맡기고 떠났다. 아더는 게임 회사에서 일하는 마케팅 직원이다. 그는 회사를 그만두고 시를 쓰고 음악을 만드는 예술가가 되고 싶어한다. 키는 2미터로 27살 청년이다. 이 친구가 기특한 건 나를 30세로 본다는 거다. 이 친구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 다만 아더는 내 걸음 속도를 따라오지 못했다. 언덕만 나오면 숨쉬기 힘들어하며 5분마다 멈춰서 가뿐 숨을 몰아쉰다. 그런데 갑자기 페닐라가 나타났다. 그리고 다시 페닐라와 함께 걸었다. 따라오지 못하는 아더는 버려두고 우리는 떠났다. 우리에게 의리가 없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ㅎㅎ

아더 피터 제임스.jpeg 제임스와 피터와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아더는 수비리를 지난 다음 도시에서 기착한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론세스바예스와 수비리까지 루트를 걸으면서 페닐라는 자기 가족, 남자친구, 그의 꿈에 대해 말했다. 듣는내내 행복했다. 행복의 요소를 모든 갖춘 이와 함께 카미노를 걷는다는 건 축복이다. 구김살 하나 없이 지나치거나 마주하는 이들에게 늘 반가운 인사를 건네는 모습이 뭉클하기까지 했다. 수비리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미리 예약한 알베르게를 찾아갔다. 그런데 페닐라는 나와 같은 알베르게에 묵겠다고 따라왔다. 헉~ 심쿵했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같은 알베르게에서 묵는다.

네이비와 함께.jpeg 네덜란드 여성 네이비는 눈부시게 이뻤다. 카메라가 그녀의 아름다움을 다 담지 못했다.

미국인 피터와 저녁식사를 함께 하기로 했다. 나는 페닐라를 초대했고 피터는 요크셔 가이 제임스를 초대했다. 페닐라는 네덜란드 인 피요레타를 초대해 6명이 알베르게를 나왔다. 길을 걷다 만나 독일인 헨드릭스와 네덜란드 미인 네이비가 조인했다. 네이비는 아주 아름다운 여인이다. 함께 대화하다보면 넋을 잃고 쳐다보게 된다. 쾌활하고 거침없다. 누구나와 행복하게 대화를 나눴다. 심지어 영어가 서투른 독일인 헨드릭스를 일일이 챙길 정도로 사려 깊었다. 맞은편에 앉은 네덜란드인 피요레타는 자주 섹스와 마약의 경험에 대해 말했다. 한국인 아저씨가 듣기에 민망했지만 테이블에 앉은 이들은 행복하게 대화를 나눴다. 이들에게는 금기가 없어 보였다. 주저함은 없고 쾌활함은 넘쳤다.


저녁식사 내내 웃음과 대화가 넘쳤다. 식사가 끝나자 미국인 피터가 음식값을 계산했다. 자그마치 104유로(한화로 14만원가량)였으나 피터를 기꺼이 계산했다. 그리고 피터는 “카미노에서 당신들과 같은 이들과 함께 저녁식사하며 대화를 나눌 수 있는게 행복하다. 그 효용을 감안하면 음식값은 비싸지 않다. 기꺼이 내가 내고 싶다"라고 말했다. 2차로 맥주집으로 옮기니 영연방으로부터 독립을 꿈꾸던 스코틀랜드부터 브렉시트까지 화제가 끊이지 않았다. 2차는 독일인 헨드릭스가 계산했다. 1차는 미국인 2차는 독일인이 계산하는 걸 보고 경제대국의 국민다운 여유를 느꼈다.

작가의 이전글한국계 미국인이 어설프게 기록한 재일조선인의 신산한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