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계 미국인이 어설프게 기록한 재일조선인의 신산한 삶

소설 <파친코>, 책으로 보지 말고 드라마 나오면 봐라

by 이철현

한국계 미국인 작가 이민진 씨가 쓴 소설 <파친코> 1, 2권을 읽었다. 제2의 제인 오스틴이라는 찬사를 받는 작가가 재일 조선인을 주인공으로 썼다고 해서 책을 구입했다. 제인 오스틴은 개뿔. 제인 오스틴의 소설이라고는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밖에 읽지 않았지만 이 허접한 소설을 쓴 작가를 18세기 사실주의 영국 소설의 전형을 창시한 대표 작가와 비교하다니 출판사 마케팅 직원이 심하게 무리했다 싶다. 소설 <파친코>는 소설로서 가치보다 드라마 각본 정도에 불과한 졸작이라고 본다.

이민진1.jpeg 소설 파친코의 작가 이민진

소설 <파친코>는 일제 식민지 시절 자의반 타의반으로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인 가족이 3대에 걸쳐 일본에서 겪는 차별과 소외를 다뤘다. 인물 20여명이 줄지어 나오지만 누구하나 신선하지 않다. 파친코 사업으로 먹고 살 수밖에 없는 재일 조선인들의 처지를 사실적으로 그렸다고 하나 소설 속 인물 설정치고는 뭐 하나 새로울게 없다. 재일 한상들 대표로 한국에 온 한창우 마루한 회장을 장시간 인터뷰하며 그의 인생 역정을 소상히 들은 적 있다. 그와 그 가족의 삶에 대해 충분히 알아서일까 소설 <파친코>의 스토리는 흥미롭지 않다. 미국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이가 어설프게 재일조선인의 삶을 엿들은걸 엮은 것에 불과하다고 폄훼하면 부당할까.


스토리 라인은 대충 이렇다. 일본인 야쿠자 보스의 눈에 들어 그 딸과 결혼한 조선인 야쿠자가 어린 조선 여자를 건드려 애까지 갖게 했고 그 여자를 불쌍히 여긴 잘 생긴 목사가 그 여자와 결혼해 일본 오사카에 있는 형에게 가서 아들과 손자 낳고 산다. 그 과정에서 일본인이 아니라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굴욕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 삶의 행태가 모자이크처럼 나열된다. 이민 1세는 행상, 2세는 ‘범죄나 비리의 온상' 쯤으로 여겨지는 파친코 사업으로 먹고 산다. 이야기를 주도하는 조연급 인물 중에는 파친코 산업의 신화적 인물 한창우 회장이나 일본 최대 야쿠자 조직 야마구치구미(山口組)의 양원석(야나가와 지로) 같은 이가 나온다.

파친코7.jpeg 소설 파친코는 영어 원문을 번역해 문학사상이 출판했다.

이민 1세의 헌신과 지원으로 성장한 조선인 2세는 파친코 사업으로 큰 돈을 벌거나 일본 명문대에 입학해 일본 주류 세계로 편입하려고 애쓰나 쪽발이들의 배타성 탓에 번번이 좌절한다. 이탓에 파친코 조명 아래 어둠 속에서 조선인도 아니고 일본인도 아닌 삶을 산다. 3세는 미국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영국 투자은행 일본법인에서 일하지만 역시 쫓겨나 다시 2세의 파친코 사업에 뛰어든다.


그 와중에 일본인으로 살기 위해 일본 명문대 와세다 대학에 입학한 2세는 출생의 비밀에 괴로워하다 자살한다. 한국 드라마에서 나오는 지긋지긋한 설정도 식상하지만 어머니가 결혼 전 로맨스로 자기를 사생아로 낳았다는게 자실까지 할 일인지 모르겠다. 소설적 개연성은 차치하고 미국과 일본에서 정착한 한국인 수십명을 취재하면서까지 끌어올리려 했던 리얼리티는 무너진다. 구성도 평범하다. 등장인물이 연관성 없이 시간 순으로 나열됐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러니 극적 긴장감이 떨어지고 후반부에 갈수록 지루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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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정은 주인공 선자의 노년 역에, 이민호는 선자의 손자 솔로몬에 캐스팅된 듯하다.

재일 조선인이 겪는 차별과 애환의 스토리를 알고 싶다면 텔레비전 드라마로 볼 것을 권한다. 윤여정, 이민호 같은 배우들을 캐스팅해 지금 한창 촬영하고 있다고 하니 조만간 드라마로 나올 듯하다. 그냥 텔레비전에서 보라. 3만원을 들여 책 2권을 살 필요가 있을 지는 의문이다. 제2의 제인 오스틴이라니. 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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