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 14번 코스: 저지마을~한림항, 올레 13번 코스: 용수~저지
제주 올레 13코스는 밋밋했다. 26개 코스 중 가장 재미없었다. 용수포구에서 뒷동산아리랑길까지 다소 지루한 풍경을 스치듯 지나갔다. 그나마 코스 마지막에 나온 저지오름이 멋졌다. 숲이 제법 우거져 정상까지 등산하는 느낌이 들었다. 정상은 화산 분화구로 움푹 파여 숲을 이루고 있고 분화구 주위를 한 바퀴 돌아 전망대에 올랐다. 산방산부터 한라산, 그리고 제주 서쪽 바다까지 한눈에 조망할 수 있을 듯했지만 황사 탓인지 가시거리가 짧아 풍경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올레 전 코스를 완주할 생각이 아니라면 올레 13번 코스 걷기는 추천하고 싶지 않다.
올레 14번 코스는 멋졌다. 저지오름에서 시작해 곶자왈과 숲길, 산책로를 걷는 맛이 있었다. 개 3마리가 단체로 짖으며 지나가는 똥개 한 마리를 공격하는 광경도 봤다. 좁은 농길이나 숲길에 울퉁불퉁한 오프로드를 10km가량 걷다 보면 해안을 만난다. 해안에는 국내 유일 선인장 자생지가 자리한다. 선인장 씨앗이 멕시코에서 태평양을 건너 제주에 닿아서 만들어진 군락지라 하니 그 생명력이 대단하다. 멕시코 사막에서 볼 수 있는 크고 멋진 선인장은 아니지만 아기자기한 게 마치 꽃이나 작물 같았다.
선인장 자생지부터 한림항까지 걷는 내내 좌측으로 비양도 따라왔다. 수영으로 건널 수 있을 것 같은 터무니없는 자신감이 들 정도로 지척에 있는 섬은 모양을 바꾸며 여행객을 졸졸 따라왔다. 그 비양도를 배경으로 금능해수욕장과 협재해수욕장이 잇대어 자리한다. 만조라 깊숙이 들어온 바닷물 사이로 난 모랫길과 돌길을 가로질러 비양도 가까이 접근했다. 이 코스의 하이라이트였다. 옆에 붙은 협재해수욕장은 모래의 유실을 막기 위해 깔아놓은 비닐막이 보기 흉해 옆집 해수욕장만큼 운치 있지는 않았다.
이 코스에는 기억에 남는 이가 있다. 월령포구 카페에서 만난 종업원이었다. 누가 봐도 미인이라고 볼만한 이 종업원은 파마해 멋지게 컬링한 머리에 컬러렌즈를 껴 회청색 눈으로 호기심을 숨기지 못하고 낯선 이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물었다.
“올레길 도시는 건가요?”
나는 얼굴을 미소를 담고 답했다.
“예. 이 코스가 마지막 코스예요. 이 코스 다 걸으면 올레 완주합니다. 백신 맞으면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자 합니다. 올레 코스는 훈련입니다.”
종업원은 눈을 크게 뜨고 환하게 웃었다.
“3년 전 혼자 산티아고 순례길 다녀왔어요. 너무 좋아서 또 가려고요.”
5분간 산티아고 여행에 대해 대화를 주고받고 난 자리에 앉아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유리창 너머로 제주의 서해가 펼쳐져 있었다. 유리창 안으로는 햇볕이 한가득 쏟아져 들어왔다. 졸다 깨다 하다 일어나 가려니까 그 종업원이 반갑게 다가와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라고 건네며 인사했다. 나는 멋쩍은 웃음을 숨기지 못하고 “그래요. 꼭 볼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과연 볼 수 있을까? 보지 못하면 어떤가. 그 짧은 인연이라도 인연이니 값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