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 15A코스: 한림항~고내포구
제주 올레 15A코스를 걸었다. 한림항에서 고내포구까지 16.5km 거리를 5시간 만에 완주하는 코스다. 코스의 하이라이트는 납읍 난대림 지대다. 후박나무부터 종가시 나무까지 높이 치솟은 나무들이 만든 그늘 아래로 걷는 길이 호젓해 좋다. 코스에 고내봉이 솟아 있지만 오르기 어렵지 않아 쉽게 오르고 내려올 수 있다. 현무암 덩어리로 구획 지어진 밭마다 양파와 대파가 다 자라 올라와 있고 브로콜리는 수확기를 놓쳐 꽃을 틔웠다. 양배추는 속이 꽉 차 수확을 기다리고 있고 일부 적양배추는 봉오리가 갈라져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번 걷기에는 동행이 있었다. 그린피스에서 캠페이너로 함께 일했던 친구다. 36세 여성 캠페이너로 2년여간 그린피스에서 일하다가 그만두고 제주 한달살기하러 내려왔다.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이 고민에 대한 해답을 찾으며 제주에서 삶을 만끽하고 있다. 평소 승마를 즐기던 터라 일주일에 두세 번 말을 타고 제주 해안과 중산간을 돌아다닌다. 골프도 배우고 있다. 함께 말을 타던 이들과 친분을 쌓으며 함께 맛있는 거 먹고 다니고 골프도 배우고 있다.
이 친구는 조경학을 전공한 터라 나무, 작물, 꽃에 해박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양파를 대파로 알던 내 무지를 바로 잡아주는가 하면 앵두나무, 산벚나무, 백목련 등 숲과 길가에 피고 자라는 식물의 이름과 특성을 바로 알려줬다. 올레 걷기의 외로움을 잊게 해 준 것보다 그냥 지나치던 꽃과 나무, 작물에 대해 올바른 지식을 가르쳐준 게 더 고마웠다.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이 친구로 살고 싶다. 35세 되기 전에 전 세계 35개국 이상을 돌아다니며 1천 번 이상 수중 다이빙을 했다. 인도네시아를 비롯해 동남아시아 포인트를 샅샅이 돌고 멀리 멕시코까지 가서 두세 달 머물며 다이빙 샾을 운영하기도 했다. 아프리카 대륙을 종단했고 유럽 곳곳을 돌아다녔다. 승마를 즐기고 골프를 즐긴다. 환경, 공유 등 사회사업에 관심을 갖고 비영리단체 활동을 몰두하기도 하고 자기 사업을 벌이다 시쳇말로 말아먹은 적도 있다. 내가 평소 꿈꾸던 모든 것을 이 친구는 35세 전에 경험한 셈이다. 그래서 난 이 친구의 앞으로 행보에 관심을 갖고 있다. 이 친구가 무엇을 하든 멋질 게다. 돕고 싶다.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응원이라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