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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철현 Dec 14. 2017

북유럽 신들, 최후의 전쟁서 과학에 패퇴

이성의 신이 지배하는 시대, 쫓겨난 신과 신화는 살아남을까

북유럽 신화 최후의 전쟁 라그나로크 상상도

훈족 왕 아틸라는 5세기 루마니아 트란실바니아 지방에서 불꽃처럼 일어나 동유럽에 퍼져 사는 게르만족을 압박했다. 게르만족은 아틸라의 훈족을 피해 서유럽으로 대거 밀렸다. 그중 북방 게르만족, 즉 노르만족이 훈족 기마부대에 밀려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들어왔다. 


노르만족은 황량하고 춥고 낯선 곳에서 기괴한 풍경을 맞이했다. 해가 한밤 중에도 지지 않고 하루 종일 빛나는가 하면 하늘에는 거대한 빛의 융단(오로라)이 기기묘묘하게 휘돌며 아른거렸다. U자 형으로 파인 절벽은 아득했고 북해에서는 거대한 파도가 해안 절벽에 부딪쳐 왔다. 


노르만족은 이해할 수 없는 자연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초인적 존재, 즉 신과 여신을 만들어냈다.  천체, 파도, 화산, 질병, 사랑 등 인간이 닿지 못하거나 어찌할 도리가 없는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상상력을 발휘해 신들의 이야기를 지었다.   


북유럽인들은 스킨팍시(빛나는 갈기)와 흐림팍시(서리에 덮인 갈기)라는 2마리 말이 수레에 해와 달을 싣고 하늘 길을 달린다고 믿었다. 그 뒤에 거대 늑대 펜니르가 잡아먹기 위해 해와 달을 뒤쫓고 있다. 하늘은 오딘과 그 형제들이 죽인 초거대 거인 이미르의 두개골이고 남쪽 불의 나라 무스펠에서 날아온 불꽃이 그 안에서 별이 되어 반짝이는 거다. 바다의 신 에기르와 그 일가가 심술을 부린 탓에 바다에 파도가 생긴다고 생각해 배 앞에 에기르 부인의 조각상을 달고 항해했다.  


소설가 댄 브라운은 얼마 전 출판한 소설 오리진에서 이 같은 인간의 습성을 틈새의 신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소설 주인공 로버트 랭던 교수는 작품에서 “난 ‘틈새의 신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고대인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을 겪을 때 그 틈새를 신의 존재로 메운다는 뜻이다. 수 없이 많은 신들이 셀 수 없이 많은 틈새를 메웠다”라고 갈파했다. 


과학과 기술이 발달하면서 그 틈새가 메워지고 있다. 과학이 불가사의했던 자연현상들을 합리적으로 설명했다.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사라지면서 신들이 설 자리가 줄었다. 달의 인력이나 심해 지진이 파도를 일으킨다고 밝혀지자 에기르와 그 일가는 졸지에 실직자로 전락했다. 지구 자전이라는 천체 활동으로 인해 해와 달이 뜨고 진다고 알려지면서 스킨팍시와 흐림팍시, 그 뒤를 쫓는 펜니르는 할 일이 없어졌다. 북유럽인들은 더 이상 오딘이 옥좌 흘리드스칼프에 앉아 9개 세상을 지켜보고 있다고 믿지 않는다. 


신화는 무지의 시대에나 나돌던 이야기로 전락했다. 우리가 진화하고 과학이 발달하면서 신화의 효용은 사라지고 있다. 신들은 최후의 전쟁 라그나로크에서 로키나 거인, 지옥의 군단과 싸워 죽은 게 아니라 과학에 패퇴하고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북유럽 신화 속 최후의 전쟁 라그나로크에서 오딘, 토르, 로키 등 북유럽 신들은 떼죽음을 당한다. 그들이 살 공간은 21세기 미드가르드에는 남아 있지 않다. 


라그나로크의 서막은 핌불빈테르다. 하늘에 해와 달과 별이 사라지고 세상은 암흑 천지다. 사람은 서로 잡아먹고 인간계 미드가르드는 불타 재로 뒤덮인다. 혹독한 추위가 세상을 얼어붙게 하고 지진이 남은 생명을 말살한다. 최후의 일전을 치르기 위해 신, 거인, 괴수, 죽은 영혼들이 길이 500km 벌판 비그리드에 모인다.  


로키와 그의 자식 3남매, 거인 흐림, 불 뿜는 괴물 수르트가 한 편을 이룬다. 로키는 자기 자식 창자로 자신을 묶어 지하에 가둔 신들에 복수하기 위해 죽은 자들의 손톱으로 만든 배 니글파르를 이끌고 지옥에서 나온다. 초거대 늑대 펜리르는 위턱은 하늘에 아래턱은 땅에 닿을 정도로 커졌다. 


미드가르드의 뱀 요르문간드는 독액으로 바닷속 생명을 죽인 뒤 바다에서 나온다. 헬은 지옥의 사냥개 가름을 앞세우고 불명예스럽게 죽은 이들을 이끌고 비그리드로 향한다. 거인 흐림은 거인 군단을 이끌고 로키 쪽에 합류한다. 불의 거인 수르트도 무스펠의 부하들을 데리고 나왔다. 

최고 신 오딘은 악의 어벤저스 군단에 맞서기 위해 아스가르드 신들과 전쟁터에서 영예롭게 죽은 영혼, 에인헤랴르들을 이끌고 출정한다. 천둥의 신 토르, 풍요의 신 프레이, 전쟁의 신 티르, 여전사 발퀴레 등이 오딘을 뒤따랐다. 양쪽 전략이 막강하다 보니 전쟁은 죽고 죽이는 난전이 이어진다. 


오딘은 펜디르에 덤비다 잡아 먹힌다. 오딘의 아들 비다르가 펜리르 입을 찢어 복수한다. 토르는 요르문가드를 죽이지만 그가 내뱉은 독을 뒤집어쓰고 죽는다. 프레이는 수르트의 불에 타 죽는다. 티르는 지옥의 개 가름을 죽이지만 가름에 목을 물려 숨진다. 


에인헤랴르는 헬의 군단과 맞서 싸우다 죽고 죽인다. 발퀴레는 헬과 맞서 싸운다. 흐림의 거인 군단도 신들과 난전을 벌이다 비그리드에 쓰러져 최후를 맞이한다. 로키는 최후까지 버티다 신들의 파수꾼 헤임달과 일대일 전투를 벌인다. 이 싸움에서 헤임달이 죽지만 로키도 치명상을 입고 그 옆에 누워 죽는다. 


이성의 신이 지배하는 시대, 신들의 시체가 쌓이고 있다. 오딘이 비운 옥좌 흘리드스칼프는 인간이 차지하겠다고 나섰다. 인간은 신성과 영생을 획득해 스스로 신이 되려 한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최신 저서 ‘호모 데우스’에서 “인간은 과학과 기술의 힘을 빌어 신성과 영생을 얻고 신에 등극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인간에게는 아직 풀지 못한 수수께끼가 있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21세기 과학도 두 질문에 대해 명쾌하게 답하지 못한다. 댄 브라운은 이를 오리진(근원)과 데스티니(운명)이라고 칭했다. 도대체 인간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해서 인지 라그나로크에서 신과 인간의 씨앗은 살아남는다.  


오딘의 아들 비다르와 발리, 토르의 아들 마그니와 모디는 전쟁의 폐허 속에서 목숨을 보존한다. 이미 죽었던 발디르와 호드는 지하에서 살아 돌아온다. 하늘에는 태양의 딸이 빛나고 세계수 이그드라실 안에 숨겨 둔 여자 ‘생명’과 남자 ‘생명에 대한 갈망’이 다시 태어난다. 이들이 신화의 끝에서 다시 신화를 이어갈 게다. 


신은 죽었다. 여전히 죽어 있다. 우리가 죽였다. 

살인자 중의 살인자인 우리는 어떻게 스스로를 위로할 것인가?

                                                                    -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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