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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철현 Nov 16. 2017

혼란에 빠진 아스크와 엠블라의 후예들

난민・이민 크게 증가… 인종・문화적 다양성 커져 정체성 찾느라 부심

북유럽인, 즉 아스크와 엠블라의 후예들이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다. 스칸디나비아 반도가 인종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더 풍성해지고 다양해지는 과정에서 으레 겪는 일시적 성장통인지 인종적 갈등과 내부 붕괴를 내재한 사회적 일탈의 서막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중앙아시아나 북아프리카 난민들이 전쟁과 가난을 피해 북유럽으로 대거 들어오고 있다. 4세기 중앙아시아에서 들불처럼 일어난 기마민족 훈족의 압제를 피해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들어온 노르만족처럼. 


노르만족은 1500년 이상 혈통의 순수성을 유지하며 나름의 역사와 문화를 지켜왔다. 석유화학, 제약, 해운 등 주요 산업이 융성하면서 경제적으로도 풍요롭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나 국민소득 수준은 최상위권에 속한다. 사회복지제도는 전 세계인의 부러움을 살 정도로 완벽하다. 그러다 보니 국가별 행복지수 면에서 북유럽인은 늘 1~3위를 독차지한다. 21세기 들어 그 철벽처럼 탄탄했던 북유럽 사회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더 크고 풍요로운 사회로 성장하기 위한 세포분열인지 사회 붕괴로 이어질 아노미적 징후인지는 두고 볼일이다.  


북유럽 신화에서 최고 신 오딘과 그 형제들은 땅과 바다, 하늘을 만든 뒤 강 위에 떠내려 오는 물푸레나무로 첫 남성 아스크를, 느릅나무로 첫 여성 엠블라를 빚었다. 오딘이 통나무에 숨을 불어넣었고 회니르가 영혼을, 로두르가 피를 주었다. <산문 에다(Prose Edda)> 길파이 편에서 스노리 스툴루손은 “맏(오딘)는 그들에게 숨과 생명, 둘째(회니르)는 지성과 움직임, 셋째( 로두르)는 얼굴과 듣고 말하고 보는 능력을 선사했다”라고 적었다.


아스크와 엠블라의 생김새는 크로마뇽인보다 네안데르탈인에 가깝다. 키가 크고 피부는 창백하고 코는 높고 콧구멍은 작았다. 머리는 금발이나 밝은 갈색이었다. 춥고 황량한 자연환경에서 생존하기 적합한 신체 구조다. 스칸디나비아의 노르만족은 고유의 신체 특성을 간직한 채 단일민족으로서 정체성을 오랫동안 지켜왔다. 


8세기쯤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인구가 늘자 식량증산이 절실해졌다. 하지만 춥고 척박한 기후 탓에 경작지와 목초지가 적다 보니 식량증산이나 가축 늘리기가 어렵다. 경제적 빈곤이 정치적 격변과 포개지면서  북유럽인 들은  해적으로 변신해 북해, 지중해, 흑해 등 유럽 전역의 바다를 휩쓸고 다녔다. 이들은 기질상 모험심이 넘쳤고 탁월한 항해술을 자랑했다. 


바이킹은 8세기 말부터 11세기 초 해상 정복과 약탈에 나섰다. 이들은 영국, 프랑스, 러시아를 정복했고 이베리아 반도와 북아프리카까지 손에 넣었다. 일부는 북대서양으로 진출해 아이슬란드를 넘어 그린란드까지 진출했다. 다른 나라와 민족을 약탈하거나 점령했지만 전쟁 노예를 데리고 귀국하지 않아 스칸디나비아는 오랫동안 노르만족 인종만 사는 섬으로 남았다. 


20세기 말부터 스캔디나비아에는 인종의 대격변이 일어났다. 1990년대부터 동유럽,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인도 등 외지에서 난민과 이민자가 대거 유입되기 시작했다. 피부색은 다채로워지고 문화는 다양해졌다. 반면 사회복지제도 울타리에서 벗어난 빈곤층이 생기고 크고 작은 범죄가 느는 등 사회적 불안정성이 커지고 있다.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에서는 걸인들이 자주 눈에 띈다. 최대 번화가 칼요한슨 거리가 시작되는 중앙역 주변에는 머리에 스카프를 두르고 치렁치렁한 치마를 걸친 집시들이 종이컵을 들고 노골적으로 동냥하며 돌아다닌다. 9월 중순 새벽녘 뮈르달 가는 열차를 타기 위해 숙소에서 중앙역까지 가는 길에 노숙하는 집시도 만났다. 북유럽 초가을은 상당히 추워 노숙하려면 동사를 각오해야 한다. 국립극장 주변 공원에는 연주 솜씨가 어설픈 이들이 관악기나 현악기를 연주했고 그 앞에는 어김없이 종이컵이 놓여 있었다.  


스웨덴 스톡홀름에서는 동냥하는 이들을 훨씬 더 많이 볼 수 있다. 관광지나 번화가 주변에는 종이컵을 들고 다니는 집시나 노골적으로 적선을 강요하는 젊은 흑인이 있다. 일부는 부양가족들 사진을 들고 다니며 관광객의 측은지심을 유발한다. 한 번은 한 젊은 흑인은 승강장에 있다가 지하철 열차 안으로 갑자기 뛰어 들어와 적선을 요구하다 여자 승객이 거절하자 욕설을 내뱉고 옆칸으로 이동했다. 

세계은행이 지난 7월 발표한 국가별 소득 통계에 따르면, 노르웨이와 스웨덴의 1인당 국민소득은 각각 8만 2330달러와 5만 4630달러다. 한국은 2만 7600달러이니 노르웨이는 우리보다 대략 3배 잘 산다. 스웨덴은 2배가량 잘살고. 그런데 거리에 이 정도로 걸인이 많은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노르웨이와 스웨덴 사람에게 어찌 된 연유인지 물었다. 집시들은 옆 나라 루마니아 등 동유럽 국가들에서 넘어온다고 한다. 유럽연합 회원국이다 보니 집시들이 들어오는 걸 막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지켜본단다. 얼마 전부턴 시리아 난민이 대거 넘어오고 있다. 노르웨이와 스웨덴은 인도적 차원에서 시리아 난민을 받고 있다. 


스웨덴은 벌써 시리아 난민 18만 명을 받아들였다. 100만 명가량을 받아들인 독일 다음으로 난민 수가 많다. 스웨덴은 소말리아 흑인 난민도 대거 받아들인 바 있다. 이에 기술 전문가로서 현지 기업에 취업하기보다 난민 자격을 얻는 게 이민에 유리하다는 말까지 나온다. 과거 인도 출신 정보기술(IT) 전문가만 예외적으로 받아들였으나 그나마도 몰려드는 난민 탓에 어려워졌다고. 스웨덴에 사는 한국 교민은 1000명 안팎에 불과하다. 파독 간호사나 광부나 그 후손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스톡홀름이나 오슬로 거리에선 다양한 인종을 볼 수 있다. 키 크고 하얀 피부, 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특유의 북유럽인 못지않게 검은 피부, 검은 곱슬머리, 갈색 눈을 가진 중동 사람이나 아프리카인들이 자주 눈에 띈다. 히잡을 쓴 이슬람인이나 미간에 점을 찍은 인도인도 심심치 않게 본다. 현장 실습에 나선 유치원생들을 봐도 열명 중 3~4명은 다른 인종이 섞여 있다. 

덴마크 코펜하겐도 비슷했다. 9월 중순 코펜하겐 시청사 투어를 기다리며 시청사 홀에서 가이드를 기다리다가 결혼사진 찍으러 들어오는 신랑 신부를 만났다. 신랑은 말쑥한 턱시도 차림이었고 신부는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었다. 신랑은 키 크고 하얀 피부에 금발 푸른 눈을 가진 전형적인 노르만족이었다. 신부는 중국인이었다. 국적은 덴마크인이겠지만 중국 출신임에 틀림없었다. 신부는 새 커플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는 중국인 관광객들과 중국어로 웃고 떠들었다. 레게 머리를 딴 흑인이 신랑 뒤를 따랐다. 신랑 친구였다. 사진 촬영을 돕는 웨딩플래너는 키 큰 백인 여성은 신부 챙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 커플의 웨딩 야외촬영은 스칸디나비아 반도 노르만족이 겪는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1990년대 초부터 인종간 결혼이 늘고 아프리카와 아시아 이민자가 유입되면서 스칸디나비아 반도는 여러 인종이 사는 곳으로 변화하고 있다. 인종이 다양해지면 문화는 다채로워지고 풍부해지지만 원주민들은 문화적 혼란과 함께 정체성의 위기를 겪는다.  


북유럽인 들은 이런 격변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1500년 이상 단일민족으로서 정체성을 지켜온 스캔디나 비아 반도의 노르만인들이 인종과 문화의 다양성을 무리 없이 수용할 수 있을까. 게르만족 대이동 이전부터 스칸디나비아 반도 북쪽에 살며 순록을 키우던 원주민 사미족을 사람 취급하지 않던 노르만 사람들이 그보다 더 이질적인 이방인들을 공동체 구성원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경험하지 못한 급변에 대한 노르만족의 대응은 아직 뚜렷한 방향성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냥 주어지는 대로 수긍하거나 버텨내는 듯하다. 불만의 목소리도 세를 갖춰가고 있다. 스웨덴에서 극우정당 지지율이 12%까지 올랐다고 한다. 노르웨이는 길거리 구걸을 막는 법률을 제정했다. 동시에 스웨덴과 노르웨이는 과거 사미족에 대한 탄압을 반성하고 사미족의 문화와 민족적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나섰다. 지켜내기엔 너무 늦었지만. 


북유럽인 들은 스칸디나비아 반도는 이제 노르만족만 사는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자발적이든 아니면 억지춘향 격이든 인종과 문화의 다양성을 수용해 다른 문화적 정체성을 찾아가야 한다. 아직까진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지둥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스웨덴 스톡홀름 외곽에서 한민 민박집 ‘초원의 집’을 운영하는 조일환(48)씨는 “혼란은 피할 수 없지만 갈수록 인종과 문화의 다양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지금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사는 북유럽인 들은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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