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철현 Dec 07. 2017

성과 요새의 나라, 마침내 평화가 깃들다

전략지 요충지마다 세워진 성과 요새, 박물관 갖춘 관광지로 변신 

스칸디나비아 3개국을 돌아다니다 보면 전략적 요충지마다 성과 요새를 볼 수 있다. 북유럽 국가들을 성과 요새의 나라라 불러도 지나치지 않을게다. 성은 최상위 지배계급의 거주지였고 요새는 도시 방어를 위한 최후의 기지였다. 왕은 성에서 거주했고 성을 둘러싼 요새를 중심으로 주거지, 시장, 항구 등 주요 시설이 자리 잡았다. 


그러다 보니 북유럽 국가는 공성전과 수성전에 유난히 강하다. 성을 전략적 요충지로 삼아 공격과 수비를 겸하는 전략은 십자군 원정에서 빛을 발했다. 십자군은 예루살렘 주변 전략적 요충지마다 성을 쌓고 숫적으로 압도적인 이슬람을 맞아 선전했다. 십자군은 말 타고 느닷없이 나타다 이슬람 군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고 다시 성으로 달아나다. 이슬람 군은 십자군을 쫓다가도 성 앞에서 분을 삭이고 돌아서기 일쑤였다. 


북유럽 신화에서도 축성 관련 에피소드가 나온다. 에시르와 바니르 신족 사이에 벌어진 오랜 싸움 탓에 신의 세계 아스가르드의 성벽이 파괴됐다. 두 신족이 평화협정을 맺고 아스가르드에게 함께 살기로 합의한 뒤 가장 먼저 서두른 일은 성벽 쌓기였다. 신들은 어느 서리 거인도 넘지 못하고 힘센 트롤도 뚫을 수 없는 높고 튼튼한 성채를 쌓고 싶었다. 

오슬로 항구 앞에 버티고 있는 천혜의 요새 아케르후스 성

어느 달 종마 스바딜파리를 탄 석공이 아스가르드에 나타나 세 계절 안에 성채를 지을 테니 태양과 달, 그리고 미의 여신 프레야를 달라고 요구했다. 신들은 한 계절 안에 완성하고 다른 사람 도움을 받지 않는 조건으로 석공의 요구를 수락했다. 여기엔 신들의 잔꾀가 숨어 있었다. 한 계절 안에 성채를 완성하기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석공이 짓다 말면 그를 내쫓고 나머지를 완성할 요량이었다. 


석공은 스바딜파리와 함께 빠르게 공사를 진척시켰다. 스노리 스튀르를뤼손은  <에다(Edda)>에서 축성 과정을 세밀히 묘사했다. 석공은 땅을 빠르고 깊게 파고 도랑과 배수로를 능숙하게 만들었다. 산에 올라가 화강암을 캐서 스바딜파리에 싣고 와 성채를 쌓아갔다. 석공은 엄청난 속도로 성을 쌓아 갔다. 신들은 불안했다. 약정 기간 안에 성채가 완성되면 꼼짝없이 해와 달, 그리고 프레야를 석공에게 내줘야 할 형편이었다. 


잔꾀로 둘째 가라면 서운해할 로키가 나섰다. 그는 암말로 변신해 종마 스바딜파리를 숲으로 끌고 들어가 공사 진행을 막았다. 석공은 분노했다. 그는 산의 거인이라 신분을 밝히고 약속을 어긴 신들에게 덤벼들었다. 마침 북쪽 지방 원정을 마치고 돌아온 토르가 망치 묠니르를 날려 거인을 죽였다. 신들은 산속 채석장에서 화강암을 잘라 아스가르드까지 끌고 와 간신히 성채를 완성했다. 


한편 로키는 스바딜파리 사이에서 낳은 다리 여덟 개 달린 회색 종마 스레이프니르를 데리고 1년 만에 귀환했다. 스레이프니르는 빠르고 튼튼해 바람보다 빨리 달릴 수 있었다. 로키는 최고 신 오딘에게 바쳤고 스레이프니르는 오딘의 애마가 됐다.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에는 산의 거인이 쌓은 듯한 아케르스후스 요새가 있다. 아케르스후스는 오슬로 항으로 진군하는 적 전함들에게 포탄 세례를 쏟아부을 수 있는 천혜의 요새다. 오슬로 항을 굽어보며 12인치 포가 성벽을 따라 줄지어 서 있다. 12인치 포에 2kg 화약을 넣고 쏘면 6kg 포탄을 870m가량 날릴 수 있다. 18세기에는 형무소로 사용했다. 입구 초입에 있는 안내소에는 신출귀몰하게 이곳을 탈출한 죄수들에 대한 기록이 전시돼 있다. 


호콘 5세가 1299년 도시 방어를 위해 이 요새를 쌓고 왕궁으로 사용했다. 크리스타인 4세가 17세기 르네상스 양식으로 개조했다. 당시 아케르스후스 성을 지배하는 자가 노르웨이를 지배했다. 이곳은 난공불락의 성이었다. 어떤 외국군도 요새를 정복하지 못했다. 제2세계대전 당시 노르웨이 정부가 수도를 비운 뒤에야 독일군은 요새를 점령할 수 있었다. 


전쟁이 끝난 뒤 연회장으로 개조됐다. 지금은 박물관을 갖춘 관광명소로 변신했다. 일부 군사시설이 남아 있어 노르웨이 의장대가 소총을 들고 군사시설로 들어가는 길목을 지킨다. 서쪽 성벽에 서면 해질녘 파스텔 톤으로 반투명하게 낮게 깔린 구름을 배경 삼아 오슬라 피오르와 항구가 펼쳐진 비경을 볼 수 있다. 디즈니는 아케르스후스에 반해 이 성을 모델로 삼아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에 나오는 아른델 왕국을 그렸다. 


해마다 9월에 오슬로 항구 앞에서 열리는 노르웨이 음식축제

9월 중순 오슬로에 있을 때 아케르후스와 토르 항구에서는 노르웨이 음식축제(Matstreif)가 열렸다. 1년에 한 번 열리는 행사다. 운이 좋았다. 오슬로 피오르 유람선을 탈까 해서 갔다가 덜컥 얻어걸린 행운이었다. 말 그대로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이곳에서 생전 먹어보지 못한 노르웨이 각지의 음식을 맛보았다. 엘크, 순록, 사슴, 염소 등 온갖 고기를 소금에 절이거나 스테이크로 굽거나 훈제로 만든 음식을 배 터지게 먹었다. 나중에 입에서 온갖 고기 냄새가 섞여 나는 바람에 인근 카페에서 독한 노르웨이 커피를 마시며 입을 진정시켜야 했다. 


행사장으로 돌아와 노르웨이 빵, 잼, 주스를 마시고 돌아다녔다. 3시간 돌아다니며 200 크로네(3만 원)를 썼다. 과다 지출했다. 서둘러 행사장을 빠져나와 아케르스후스 성으로 이동하려는데 노르웨이 북부 핀 마르트에서 온 시골처녀 미아가 한국에서 온 낯선 관광객을 불렀다. 핀마르크 지방 순록 고기를 맛보라는 거다. 다른 순록과 다르다며 웃으면서 이쑤시개에 꽂아서 고기를 건넸다. 아까 먹은 순록과 별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미아의 미소가 달랐다. 이 시골 처녀는 평생 노르웨이 북부 산간 지방에서 자랐다. 이번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오슬로에 왔단다. 한국 사람도 생전 처음 본다. 난 한국에 대해 미아는 핀마르크에 대해 한참 얘기했다. 

노르웨이 옛 수도 베르겐. 그 끝자락에 베르겐후스가 자리한다. 

송네 피오르 목적지이자 노르웨이 옛 수도 베르겐에도 베르겐후스라는 성채가 있다. 13세기 중반 베르겐 끝자락에 세워진 바닷가 요새다. 호콘홀과 로젠크란츠 타워가 눈에 띈다. 호콘 홀은 1261년 건립됐다. 호콘 7세가 이름을 딴 석조건물이다. 건립 당시 왕 거주 시설과 연회장을 갖췄다. 1400년대부터 창고로 쓰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다이너마이트 120톤을 쏟아붓는 바람에 전소됐다. 노르웨이 정부는 1967년 재건해 왕실의 연회장이자 공식 행사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로젠크란츠는 호콘 홀과 함께 왕궁 건물로 지어져 1299년까지 왕이 거주했다. 1560년쯤 베르겐 성주 에릭 로젠크란츠가 방위를 위한 요쇄로 바꾸었다. 천장과 바닥을 제외하고 모두 석조로 만들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 때 파괴됐다 나중에 복원됐다. 


스톡홀름 구시기지 감라스탄 초입에 스웨덴 의회의사당과 왕국이 요새처럼 서 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청 건물로 꼽히는 스웨덴 스톡홀름 시청사도 건립 당시 성채로 만들어졌다. 라구나르 오스토베리는 1923년 감라스탄 앞바다로 쳐들어오는 적 전함에 싸울 수 있는 군사시설로 설계했다. 해마다 12월 노벨상 시상식과 축하만찬이 열린다. 건물 안에는 광장을 품은 블루홀, 1800만 개 이상 금박 모자이크로 빛나는 골든 홀, 시의회 의사당 등이 자리한다. 106m 시청사 탑에 오르면 스톡홀름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는 시청사 탑을 모델 삼아 만화영화 마녀배달부 키키에 나오는 시계탑을 그렸다. 


시청사에서 호수 건너 보이는 구시가지 감라스탄에도 요새를 연상시키는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스톡홀름 중앙역에서 구시가지로 뻗은 대로를 걷다 보면 다리 너머 감라스탄 초입에 의사당 건물이 위압적으로 서서 감라스탄으로 들어오는 관광객을 맞는다. 역시 구시가지를 방어하기 위한 요새로 설계됐다. 의사당에 잇대어 있는 왕궁의 외벽도 금성철벽처럼 버티고 있다. 


새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청 건물인 스톡홀름 시청사도 요새로 설계됐다.

감라스탄 왕궁은 북유럽 왕실을 대표하는 궁전이다. 국왕 일가가 1961년 도심에서 벗어난 드로트밍홀름 궁전으로 옮기기 전까지 왕실의 공식 거주지였다. 지금은 왕 집무실과 영빈관을 겸한다. 스웨덴 왕실 소유의 온갖 보물이 608개 방 곳곳에 전시돼 있다.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깃들면서 북유럽 성과 요새는 관광지로 변신하고 있다. 전시용을 제외한 화포는 치우고 무기창고나 감옥은 박물관으로 바뀌었다.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이 산책 나온 시민들과 함께 이곳에서 어울렸다. 전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국가들에서 성과 요새는 본래의 기능을 상실했다. 이제 북유럽 성과 요새는 전쟁을 대비하는 곳이 아니라 평화를 전시하는 곳으로 변신하고 있다. 반가운 일이 틀림없다. 북유럽에 깃든 평화와 번영이 지금처럼 이어지길 바라며 총총총. 

이전 08화 피오르, 빙하가 할퀴고 간 자리에 만들어진 자연의 비경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