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17일] 부르고스나 팜플로다 대성당보다 성무덤성당이 더 성스럽다
산타아고 가는 길에 들르는 마을의 중앙에는 어김없이 성당이 있다. 도시나 마을 규모에 따라 성당 크기도 다르다. 마을 규모가 크면 성당도 커진다. 산 후안 데 오르테가 마을에는 20여 가구밖에 없어서인지 성당이 작고 조촐하다. 반면 도시 규모가 큰 팜플로타나 부르고스에는 대성당과 부속 수도원 또는 박물관이 도심 한가운데에 우뚝 솟아있다. 성당 앞에는 광장(La Plaza)이 있고 성당에 잇대어진 중앙로(calle mayor)를 따라 집들이 밀집대형으로 줄지어 늘어선다.
순례객 중 가콜릭 신자 상당수가 산티아고로 가는 길에 지나치는 마을보다 성당을 빠지지 않고 들른다. 성당과 부속 건물이 마을에서 가장 오래됐거나 마을과 과련한 사연을 담고 있으니 가톨릭 신자가 아니더라도 구경할만하다. 성당들은 순례객을 맞이하기 위해 아침 일찍 문을 연다. 성당 교구가 운영하는 알베르게는 소속 성당에 순례객들을 축북하는 미사를 열기도 한다.
순례의 출발지 생장 피에드포르에도 어김없이 마을 중심에 성당이 있다. 유럽에서 피레네 산맥을 바로 보고 서쪽으로 이동해 생장에 이르면 생장크 문을 만난다. 마을의 동문인 생자크를 지나 언덕길을 따라 500m가량 내려오면 정면에 높이 치솟은 노틀담 문이 나온다. 성벽으로 둘러싼 생장 성채(citadel) 마을의 정문격으로 가장 높고 화려하다. 문을 통과하기 전 왼쪽에 노틀담 두보두퐁 성당이 자리한다.
이 성당은 프랑스령 바스크 지역에서 두번째로 큰 성당이다. 이슬람 세력이 지룰로터 해협을 넘어 파죽지세로 이베리아 반도로 치고 들어오다가 '라스 나바스 데 톨로사' 전투에 지면서 북진이 처음으로 저지당했다. 이 전투를 이끈 이가 나바라 지역 사령관 산초 수호왕(Sancho the Stronghold)이다. 이 성당은 그의 업적으로 기려 지었다. 고딕식 정문과 기둥, 벽면을 핑크빛 사암으로 꾸몄다. 내부에 들어가면 촛불 조명이 가톨릭 성물과 어울리면서 경건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5분 만에 둘러볼 수 있으니 생장에 일찍 들어온 이라면 들르는 것도 좋다.
순례객은 스페인 특유의 작고 이쁜 마을들을 지난다. 순례길은 어김없이 성당 앞으로 이어진다. 생장에서 출발한 순례객이 들르는 첫 도시는 팜플로나다. 팜플로나는 난공불락의 성벽이 감싸는 성채도시였다. 오르기 어려운 높의 성벽을 따라 언덕길을 걸어오르면 구시가지 가운데 산타마리아 팜플로나 성당이 있다. 공식 명칭은 성마리아 승천 대성당(La Catedral Metropolitana de Santa María de la Asunción) 이다.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 양식이 혼재되어 있다. 교회 회랑을 포함해 건물 일부는 14~16세기 고딕양식으로 지어졌다. 서쪽 파사드는 18세기말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꾸며졌다.
술집과 레스토랑으로 개조된 옛 건물들 사이로 우뚝 솟아 위용을 자랑하지만 구시가지가 워낙 시장바닥처럼 시끌벅적하다보니 뜬금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예수님과 성모마리아, 그 제자와 성직자들을 금박과 형형색색 요란하게 장식했다. 목수 아들로 태어나 가난한 이 가운데 낮은 자리에 있었던 예수님이 요란한 장식품들을 달가워했을지 의문이다. 종교라는게 인간의 염원을 담은 것이라 자기가 믿는 신적 존재를 최대한 아름답게 꾸미려는 소망을 모르는건 아니지만. 지금도 발굴하고 있는 듯한 교회 유적지도 실물로 전시하고 있다. 교회 회랑을 걷는 기분도 생경하다. 중정을 바라보고 줄지어 선 기둥들과 기둥 상단부에 투각으로 꾸며진 문양이 화려하고 기둥 사이로 보이는 잔디밭 중정이 호젓해서 좋다. 투가 문양 사이로 보이는 싯푸른 하늘은 명징하다.
로그로뇨에서 나헤라 가는 길에 토레스 델 리오라는 작은 마을에 규모는 성무덤교회(The Church of the Holy Sepulchre)라는 불리는 작지만 유서 깊은 성당이 있다. 마을을 지나다 느닷없이 나타는 작은 교회다. 1100년대 수도원과 교회가 세워져 베네딕스 수도원으로 이양되었고 지금도 건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팔각형 지붕 아래로 8면에서 들어오는 자연 채광이 경건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지붕 하나로 지어진 곳이라 좁고 소박하다.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님 성상도 소박하다. 팜플로나나 부르고스 대성당에서 볼 수 있는 온갖 채색과 금박으로 꾸며진 번쩍이는 성물들은 볼 수 없지만 지금까지 들른 어떤 성당보다도 성스러웠다.
부르고스 대성당은 화려함의 극치다. 화려한 고딕양식으로 본당과 수도원이 지어졌고 부속건물까지 거느리다보니 규모가 아주 크다. 줄서서 입장권을 사고 들어서니 바티칸 성베드로 성당을 둘러볼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방마다 금박과 요란한 채색으로 장식된 성물들이 벽면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고 양쪽으로는 채색화들이 걸려있다. 바닥이나 기둥, 벽난로 등은 대리석이나 화강함으로 견고하면서도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그 방마다 철창을 높이 세워 회랑을 걷다보면 성당에 온건지 감옥에 온건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성당 벽면 높이 자리한 채광창은 아주 멋진 스텐인드글라스로 꾸며져 성당 내부를 은은하게 밝히며 안정스런 느낌을 준다. 순레객들은 4.5유로를 입장료로 낸다. 일반 입장료의 절반 가격이다.
유럽 교회가 자랑하는 화려함의 끝판왕을 보려면 부르고스 성당에 들르기를 권한다. 혹시 예수님이 자리한 낮은 곳에서 조촐하지만 성스러운 성당에서 잠깐이라도 기도를 드릴 거라면 토레스 델 리오나 산 후안 데 오르테가 같은 작은 마을의 작은 성당에 가는게 낫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