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9일] 레이비와 30km 걷다(Villadangos de Cam
레이비 발목의 부기가 가라앉지 않았다. 통증 유무를 체크했다. 다행스레 통증은 거의 없었다. 항생제 먹고 발목에 통증 완화제를 바른 뒤 보호대를 착용했다. 30km 걷기를 시도해도 괜찮을 듯했다. 목표는 29km 떨어진 아스토르가다. 한 시간 걷고 10분 쉬기를 반복하며 천천히 걸었다. 비야당고스 숙소에서 미국 캘리포니아와 벨기에 자원봉사자의 환송을 받으며 기분 좋게 출발했다. 레이비는 차분이 걸었다. 걷는 모습은 불안했다. 퍼닐라와 나는 걷기 속도를 레이비에 맞추었다.
퍼널리는 더없이 안정적이다. 새끼발가락에 난 작은 물집 외 불편한 곳이 없는 듯했다. 이 친구는 항상 차분하다. 친구들과 어울릴 때는 활기찬 모습을 보인다. 퍼닐라가 부모님과 통화하다가 휴대폰 카메라로 나를 비추며 부모님에게 인사시켰다. 생전 처음 보는 분들이지만 덴마크 중년의 커플을 마주하고 인사드렸다. “따님 친구입니다. 따님을 아주 좋아하는 친구입니다.” 의사가 전달됐는지 모르겠다. 다만 환하게 웃는 모습이 멋진 분들이었다.
고속도로를 따라가는 지루한 길을 한참 걸었다. 어제와 별반 차이가 없는 길이다 보니 우리 일행은 모두 지루해했다. 레이비는 하품을 연발했다. 키만 컸지 영락없는 아기다. 갈림길이 나왔다. 고속도로를 따라가는 지름길로 가든지 조금 우회하지만 시골길을 따라 갈지 결정해야 했다. 우리는 주저하지 않고 시골길을 걸었다. 잠시 뒤 중세 다리가 나오고 그 멋진 다리를 건너 아침 식사했다. 든든히 먹고 다시 출발했다. 그 뒤 펼쳐진 풍경에 감동했다. 스페인 하늘은 다시 푸르고 빛났고 햇빛은 쏟아졌다. 밀밭보다 옥수수밭이 우리를 반겼다. 너른 평원에 옥수수밭이 넓게 펼쳐졌다. 오랜만에 만난 풍경에 벤치가 없더라도 우리는 길가에 앉거나 돌밭에 앉아 앉아 쉬었다. 나는 아예 돌밭에 누워 하늘을 보다 잠들었다.
다행스레 레이미가의 걸음속도가 정상에 가까워지고 있다. 스틱 쓰기가 아직 어색해 휘청거리며 걸었지만 꼿꼿이 걸었다. 그러다 보니 출발한 지 8시간 만에 아스토르가에 도착했다. 29 km를 완주한 것이다. 레이비와 하이파이브하며 “레이비, 네가 해냈다. 네가 자랑스럽다.”라고 격려했다. 특유의 환한 웃음을 지으며 기뻐하더니 “당신은 나의 천사다. 감사하다.”라며 답했다. 살다 보니 이런 행복도 있구나 싶다. 곧바로 숙소에 들어가 발목을 체크했다. 다행히 붓기는 커지지 않았다. 약을 바르고 침대에 누워 바로 쉬게 했다. 한숨 돌렸다. 네이비와 퍼닐리가 쉬는 모습을 보고 방에서 나왔다.
아스토리가는 중세 성벽을 중심으로 빨간색 지붕이 잇대어 아늑한 느낌을 주는 예쁜 도시다. 높은 솟은 성벽 안쪽으로 형성된 공원 벤치에서 성벽 아래를 내려보면 아스트로가 성벽 바깥 마을과 하늘까지 펼쳐진 너른 평원이 밀밭과 옥수수밭을 품고 있는 게 보인다. 오랜 걷기에 지쳐 누워있는 친구들을 두고 혼자 나와 햇빛을 쬐며 스페인 도시 전형의 아름다움을 즐겼다. 오늘 처음 나만의 시간이었다. 잠깐 졸았다. 성벽 위에 이리 멋진 공원을 가진 아스토르가 주민들이 부러웠다. 한참 망중한을 즐기다 저녁식사 시간에 맞춰 속소로 돌아왔다.
같은 방을 쓰는 프랑스 여인 룩과 다른 알베르게에 묵는 다비드가 저녁식사에 합류했다. 룩은 새침데기다. 프랑스인들과 친해지기는 쉽지 않다. 특유의 시니컬함과 건방짐이 몸에 배어 있다. 다비드는 레이비를 좋아하는 티를 너무 냈다. 참 보기 좋은 청춘들이다. 그러나 어쩌냐. 레이비는 네덜란드에 멋진 남자 친구가 있다. 그것도 레이비가 아주 사랑하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