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9일] 유럽 땅끝 마을 피니스테레에 닿다

레이비와 함께 카미노 끝내고 11일 포르투로 이동

by 이철현

산티아고 버스정류장까지는 걸어서 25분 걸렸다. 아침 9시 피니스테레 행 버스를 타려고 서둘러 걸어 간신히 출발 8분전 도착했다. 코로나 탓에 2미터 뒤로 서있는 줄을 보지 못했다가 바로 버스표 판매 창구로 직진했다가 몰지각한 동양인으로 몰릴 뻔했다. 얼른 줄 뒤에 가서 섰다. 5분 만에 표를 사서 출발 3분전 간신히 버스에 올랐다. 타자마자 졸렸다. 어제 밤 늦게까지 산티아고 대성당을 비롯해 구시가지를 혼자 걸어다니며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다가 숙소에 늦게 들어왔다. 마침 자지 않고 깨어있는 우루과이 중년 남자, 하비에르가 말을 걸었다. 그는 영어를 전혀 하지 못해 내가 얼마 되지 않은 스페인어 실력을 짜내듯이 띄엄띄엄 말하며 간신히 의사소통했다. 예기치 못하게 오밤중에 스페인어 실전 연습을 하게 됐다. 하비에르는 스페인 국민배우 하비에르 바르뎀과 닮았다. 살찐 하비에르 바르뎀이라고나 할까. 카미노 걷는 이유와 끝마친 소감 등을 간신히 주고 받고 잠자리에 들었다.

KakaoTalk_Photo_2021-10-10-08-00-57 003.jpeg 유럽 끝에 닿았다. 여기는 피니스테레라.

피니스테레 행 버스에 타자마자 졸았다. 2시간이나 달리더니 읍내 버스정류장 같은 곳에 내렸다. 다시 노란색 화살표가 등장했다. 그 화살표를 따라 걸었다. 바로 나올거라 생각해 슬러퍼를 신고 있었는데 오판이었다. 버스정류장에서 3km나 걸어야 했다. 등산화는 빨아서 아직 마르지 않고 가방에 묶어놓았으니 슬러피 신고 3km를 걸어야할 판이다. 마지막 사흘간 110km 이상 주파한 후유증으로 고관절 통증이 심해졌다. 힘겹게 도착해 본 유럽 서쪽 끝은 파랬다. 끝간데 없이 파란색으로 바다와 하늘이 만났다. 구름은 성격 고약한 화가가 남은 하얀색 물감을 짜서 멋대로 붓질한 것처럼 파란색 하늘 위에 제멋대로 흩어져 있다.


바다와 땅이 만나는 곳까지 내려갔다. 그곳에서 한참 멍때렸다. 등산화를 바위에 걸어놓고 유럽 서쪽 끝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맥주 한잔과 초콜릿 빵을 먹었다. 7유로나 냈다. 제길 엄청 비싸네. 그곳에서 친구 성희와 후배 동주에게 전화했다. 둘다 바쁜가보다. 받지 않는다. 그래서 메시지를 남겼다. “세상 끝에 닿았다. 정확히 유럽 서쪽 끝에 왔다. 더 갈데가 없다. 이제 남하를 시작한다.” 내일 레이비 일행을 마중 나간다. 레이비, 퍼닐라, 다비드와 나의 카미노를 끝내고 싶다. 함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 앞 광장에서 마무리하려 한다. 레이비와 퍼닐라는 모른다. 다비드와 연락하며 중간에 만나는 것을 조율하고 있다.

KakaoTalk_Photo_2021-10-10-08-00-55 002.jpeg 나보다 이틀 늦게 도착한 도미니카와 에버 일행

피니스테라에서 돌아왔더니 도미니카와 에바 일행이 도착했다. 에바와 만나 그녀가 DSLR과 드론으로 찍은 사진을 확보했다. 메인으로 쓸만한 10MB 이상 파일을 골라 여행지 편집장에 보내야 했다. 시사저널 기자 재직시 1MB 이상이면 인쇄하는데 별탈이 없어 사진 용량은 4~5MB로 설정했다. 여행지는 다른가보다. 서브컷은 상관없는데 2페이지에 걸쳐 크게 쓰는 사진의 용량은 10MB는 되어야 한단다. 이번에 배웠다. 에바가 찍은 사진 중 10MB 이상을 골라 편집장에게 보냈다. 그런데 장비만 좋지 촬영 솜씨는 형편없어 고르는데 애를 먹었다. 다음에는 내 DSLR 카메라를 가져와야겠다. 내가 아는 최고의 사진 기자는 김봉규 선배다. 시사저널 선배였다가 한겨례신문 기자로 가신 분이다. 그는 지금 학살의 현장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전 세계를 돌아다니고 있다. 여행이나 하며 돌아다니는 나를 참 부끄럽게 하는 분이다. 현역 기자일 때도 탁월한 실력을 발휘했던 분이다. 아무튼 사진을 더 배워야 겠다. 사진 구도 잡는 법을 책으로 배웠다. 책 한권을 2번 읽으며 열심히 연습했는데 카미노 순례객들에게 사진 좋다고 칭찬 많이 받았다.

KakaoTalk_Photo_2021-10-10-08-00-27.jpeg 산티아고 대성당 앞 광장에서 술판을 벌이다니. 헐~ 가운데가 나다. 할말 없다.

사진 보내고 나니 할일이 없었다. 어제 멍때렸으니 오늘은 도미니카 일행과 어울렸다. 대성당 앞 광장에서 포도주와 치즈를 벌여놓고 마시고 있길래 독일인 친구와 함께 슈퍼마켓에 가서 포도주 3병을 더 샀다. 히오하 포도주로 최상급인데 모두 합쳐 10유로도 안된다. 한국에서 이 포도주 3병 사려면 20만원은 내야하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독일인 친구와 반씩 내고 자리로 돌아왔다. 오토바이로 40여개국 이상을 돌아다닌 사이프러스인, 독일인 작가 다르코, 벨기에 여성(이름 까먹었다), 슬로베니아 커플 그리고 에바와 함께 대성당 앞 광장에서 술판을 벌였다. 스페인 사람들은 토요일 밤에 잠을 자지 않는다. 밤새 떠들고 논다.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광장 주변은 여전히 들썩였다. 내일 아침 레이비 일행을 마중나가기 위해 일찍 들어왔다. 너무 힘들어 씻지도 않고 침대로 기어 들어갔다.

KakaoTalk_Photo_2021-10-10-08-00-52 001.jpeg 포두주에 취해 산티아고 대성당을 감사하며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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