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10일] 안녕 레이비

22세 소녀에게 관계의 소중함을 배우다

by 이철현

8km를 거꾸로 걸어서 레이비와 그 일행을 만나러 갔다. 만나자마자 레이비, 퍼닐라, 라우라가 소리치며 반가워했다. 다비드는 내가 마중나온다는 걸 알고 있었다. 혹시나 길이 엇갈릴 수 있으니 한명과는 연락을 취해야 했다. 만나자마자 레이비가 나를 안았다. 이럴 때는 영락없이 어린애다. 그리 반갑게 일일이 인사한 뒤 점심 먹고 저녁에 다시 만나기를 약속하고 각자 숙소로 갔다.

KakaoTalk_Photo_2021-10-10-21-46-18 001.jpeg 나의 레이비 앞으로 좋은 일만 있기를

저녁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에서 열리는 미사를 참석하려 했으나 너무마 많은 순례객들이 모여드는 바람에 바로 저녁식사하러 식당을 찾았다. 레이비가 비건이다보니 식당 찾기가 만만치 않았다. 간신히 내 숙소 근처에서 식당을 찾았다. 독일인 커플 2명이 더 온다고 해서 총 9명이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한시간 지나자 더이상 있고 싶지 않았다. 얼른 들어가서 쉬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다. 지난 며칠간 너무 마신 듯하다. 맥주 3잔 마신 뒤 양해를 구하고 일어나려하자 레이비가 식사는 하고 가라고 요청했다. 마침 늦게 온 독일인 커플 중 여성분이 내가 시킨 치킨 커리를 먹고 싶어하길래 얼른 주고 자리를 떴다.

KakaoTalk_Photo_2021-10-10-21-46-27 004.jpeg 이 멤버들과 가장 오래 걸었다. 부디 모두 행복하길.

레이비가 글썽거렸다. 이게 마지막이라는 걸 서로 아는 것이다. 22세 소녀는 참 많은 걸 깨닫게 해주었다. 이성 관계가 아니더라도 길 위에서 만나도 서로 애틋할 수 있다는 걸 어린 네덜란드 친구에게 배웠다. 한국에서 남녀 관계가 아니더라도 동년배가 아니더라도 이리 깊이 친해진 적이 없는 듯하다. 눈물을 글썽이며 오랫동안 나를 안고 있는 어린 소녀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어린 친구에게도 인간관계를 배우는 곳이 카미노인 듯하다. 한국인보다 훨씬 정이 많은 소녀의 행복을 기원한다. 참 힘겨운 날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10월9일] 유럽 땅끝 마을 피니스테레에 닿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