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격 갖춘 멋진 도시...이슬람과 카톨릭 예술의 완벽한 합작품
세비야에 압도 당했다. 단 하루만에 포르투갈에서 일주일을 잊어버리게 했다. 스페인 어느 도시와 비교해도 세비야는 독보적으로 빛난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면서 로그로뇨, 부르고스, 레온, 사리아, 산티아고까지 북부 도시를 들렀다. 바르셀로나에서 나흘가량 체류했다. 세비야는 다른 도시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하면서면 세련된 아름다움을 지녔다. 스페인광장에서는 짚시 여인이 플라멩코를 추면서 바닥을 때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알카사르 궁전에서는 기하학적 문양으로 뒤덮힌 화려한 궁정 예술의 극치를 감상할 수 있다. 세비야 성당은 웅장하고 섬세한 고딕 건축양식의 끝판왕을 접할 수 있고 히랄다탑에 올라 내려다보는 도시 전경은 눈부셨고 메트로폴 전망대에서 본 야경을 보며 넋을 놓았다. 특히 붉게 사위어가는 노을 배경으로 빛나는 세비야대성당은 홀로 핀조명을 받는 프리마돈다 같았다.
세비야 사람은 친절했다. 낯선 이방인을 대하는 태도에서 배려심이 넘치지만 친절이 지나치지 않아 품격마저 느껴졌다. 알카사르 궁전 경비대는 겉으로는 위압적이었지만 궁전 내 진행 방향을 묻거나 휴대전화 충전(전화기를 바꾸든지 해야지 배터리가 너무 빨리 소모된다)을 요청하면 친절하게 알려줄 뿐만아니라 경비초소 옆 콘센트 위치까지 알려준다. 세비야대성당 옆 길가에 붙어있는 샌드위치 가게에서 일하는 남자 직원은 가게 콘센트에 꽂아놓은 휴대전화를 가리키며 도난 위험이 있으니 잘 지켜보라고 친절히 알려주고 급히 옆 테이블로 이동한다.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일하는 직원에게는 감동했다. 내 앞에 선 손님 2팀에게 아이스크림을 주문받는데 마스크 너머로 웃음이 새어나오고 여러 종류의 아이스크림 맛을 자세히 설명했다. 활기가 넘쳐 보였고 보고 있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졌다. 아이스크림 파는게 그리 행복할 일일까. 내 차례가 됐다. 초콜렛을 시키자 설탕 없는 블랙초코렛, 과감 씹히는 맛의 초콜렛, 밀크초콜렛 등 여러 종류의 초콜렛을 자세히 설명했다. 하나 추천해달라고 했더니 과자 맛이 씹히는 초콜렛을 권했다. 이와 별도로 ‘우리 할머니의 XX 아이스크림(이름이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도 추천했다.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맛이라나. 그 아이스크림 통이 가장 많이 줄어있었다. 아니나다를까 맛도 기가 막혔다.
아이스크림 가게 직원은 영어가 능숙하지 않은 친구인 듯했다. 그래서 내가 어색하기 그지 없는 스페인어로 인사를 건넸다. “스페인어를 3개월밖에 공부하지 못했다. 그래서 조금밖에 못한다. 그래도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당신 참 이쁘다.” 그 여직원은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너무 고맙다"라고 답했다. 그 다음에 뭐라고 막 말했는데 무슨 뜻인지 몰라 미소만 건네고 기분 좋게 아이스크림 가게를 나왔다. 아이스크림을 2인분이나 샀다.
세비야는 그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멋지고 품격을 갖춘 도시였다. 문화의 풍부함과 다양성 측면에서 포르투갈은 잽도 되지 않았다. 따라서 세비야만큼은 쓸게 너무 많다. 이에 다섯편에 나눠서 쓰고자 한다. 1편 스페인광장 2편 알카사르궁전 3편 세비야대성당과 히랄드탑 4편 세비야 야경, 그리고 마지막으로 5편 세비야 사람들을 다루고자 한다.
세비야 첫편 스페인광장 - 웅장함과 섬세함의 조화가 멋진 조형물, 그리고 플라맹코
10월19일 포르투갈 라고스 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5시간을 달려 세비야에 밤 늦게 도착했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잠들 채비했다. 같은 방을 쓰는 모로코인에게 팬데믹 속 북아프리카 출입국 형편을 묻고 바로 잠들었다. 세비야, 스페인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도시를 맞을 마음의 준비를 했다. 소개팅하기 전날 같은 기분이었다. 다음날 아침 8시 깼다. 식탁 앞에 놓인 사과 하나 들고 숙소를 나섰다. 좁은 길마다 아침을 준비하는 이들이 부산하게 움직였다. 걸어서 2.4km 떨어진 스페인광장으로 항했다. 천천히 걸으면 40분이면 도착한다. 거리도 구경할겸 산책하듯 걸었다. 원시림에서나 볼 수 있는 크게 멋진 나무들로 가득한 도심 공원에도 들렀다.
스페인광장에 들어섰다. 분수대를 중심으로 붉은 벽돌 건축물이 반원을 그리며 버티고 그 앞에 스페인에서 본 가장 큰 광장이 자리했다. 반원 끝점에는 이슬람과 카톨릭 건축 양식이 섞인 키 높은 종탑이 우뚝 서 있었다. 그 종탑을 반원의 호로 이은 벽돌 건물은 아치와 기둥으로 꾸며진 긴 회랑이 돌아나간다. 반원 중앙에는 이 광장의 주인공은 나라고 주장하는 듯한 중앙 건축물이 버티고 서있다. 건축 정가운데에 선을 긋고 접으면 정확히 반으로 접히는 데칼코마니 모양이었다. 건축물 앞으로는 인공 수로가 반원을 따라 흐르다 양쪽 끝 종탑을 잇는 직선의 수로로 연결된다. 건축물 앞에는 카스티야, 레온, 아라곤, 나바라 등 스페인 4대 왕국을 상징하는 다리가 인공 수로를 건넌다. 다리마다 왕국 문양이 타일에 그려져 난간에 붙어 있다. 물을 건너는 것 보다 아름다움을 뽐내는 것이 용도인 다리를 단숨에 건너면 건축물 1층 외벽을 따라 스페인 특유의 아줄레드 타일 양식으로 스페인의 주요 도시들을 지도와 함께 고장마다 스토리를 그림으로 그려 붙여 놓았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난 도시들이 자주 눈에 띄거 반가웠다.
회랑은 2바퀴 돌고 수로를 따라 다리를 넘나들고 타일에 그려진 유서 깊은 도시들의 스토리를 감상하다보니 3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광장 중앙 건물을 바라보고 오른쪽 종탑 앞 벤치에 신발을 벗고 누웠다. 양말까지 벗었다. 햇빛이 따스하게 내리자 졸렸다. 어느 곳에서나 등을 대면 조는 습관이 생겼다. 그러고 20분가량 잤다. 잠에서 깨어보니 중앙 분수대에서 물이 치솟고 있었다. 알카사르 궁전으로 가기 전 마지막 인사라도 할겸 반원형의 건축물을 돌고 있는데 중앙 건물 앞에 사람이 모여있는 모습이 보였다. 음악 소리도 들렸다. 플라멩코 공연이 열리는게 분명했다. 바닥을 때리는 구두 소리를 따라 부리나케 궁중 사이를 미꾸라지처럼 빠져 1열 계단 바닥에 앉았다. 남자 2명이 연주하고 여자 가수가 부르는 노래에 맞춰 짚시 무희 2명이 플라멩코를 추었다. 낯선 춤이지만 무희의 진지한 얼굴과 돌바닥을 뚫어버릴 기세의 발구름, 역동적으로 뒤틀고 풀어지고 뻗는 춤사위를 한참 구경했다. 15분 공연을 보고 광장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