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이 황홀한 세비야 대성당, 히랄다탑, 알카사르에게 마지막 인사
괴물 3명 탓에 밤새 시달렸다. 2층 침대 위에서 자는 여성 투숙객은 새벽 2시 넘어서부터 자지 않고 2층 침대를 오르락내리락했다. 그가 오를내릴 때마다 허술한 2층 침대는 “삐거덕"거리며 비명을 질러댔다. 또 다른 괴물은 어느 나라 말인지 모르겠지만 잠꼬대인지 혼잣말인지 지속적으로 떠들어댔다. 새벽녘까지. 마지막 한명은 귀신인 듯하다. 새벽녘에 들어와 한참 넘게 샤워한 뒤 머리를 풀어헤치고 반라로 방을 돌아다녔다. 견디지 못하고 짐을 부리나케 챙겨 1층 거실로 나왔다. 잠은 다 잤다고 판단해 외고 청탁 받은 거 초안 작성하고 관련 자료를 모으며 해가 밝기 기다렸다.
커피를 내려 마시고 사과를 먹으면서 나갈 채비를 하려는데 오스트리아 쌍둥이 한나 자매가 아는 척했다.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첫 학기를 맞기 전 자매가 오스트리아부터 이베리아반도 끝까지 여행하고 다닌다. 씩씩하고 건강했다. 상냥했고 밝았다. 그 친구들과 한참 떠들며 아침 식사를 마쳤다. 나가려니깐 쌍둥이 언니가 연락처 적어달라며 핸드폰을 내밀었다. 그래서 이름과 이메일 주소, 전화번호까지 입력하고 사진도 찍었다. 며칠전 지나친 라고스로 가서 난생 처음 서핑을 배운다고 한다. 그들에게는 포르투갈이 상냥하길 기원한다.
밤새 자지 못한 탓에 비몽사몽 헤매다 이틀전 예약한 세비야에서 얼마 없는 한인민박집으로 갔다. 오후 2시부터 체크인이라고 해서 아베니다드 데 콘스튜시온에 있는 카페에서 한낮의 세비야 대성당을 지켜보았다. 그래도 시간이 남아서 과달키비르 강변을 따라 한참을 걸어다녔다. 역시 한강시민공원만한 강변은 없다. 비좁고 남루했다. 과달키비르도 강이라하기엔 폭이 좁았다. 우리네 개천 정도라고 할까. 강변 근처 버거킹에서 치즈와퍼 먹고 2시 맞춰 한인민박집에 도착했다.
체크인하자마자 골아떨어졌다. 얼마나 잤는지 모른다. 떡실신 상태에서 헤매다 배가 고파 일어났다. 눈을 감았다떴는데 저녁이 됐다. 세비야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자 밖으로 나왔다. 배도 고프고. 멕시코 타코 집에서 타코 4개를 먹고 세비야 대성당, 히랄다탑, 알카사르로 향했다. 세비야의 해는 지기 전 황금빛 가루를 건물 위에 뿌린다. 빛이 닿는 곳은 황금빛으로 빛난다. 건물 그림자에 가려 빛이 닿지 않는 곳은 어둡지만 해가 비추는 곳은 눈부시게 빛났다. 신비로웠다. 그런 일상을 세비야 시민들은 거리에 쏟아져 나와 웃고 먹고 떠들며 즐겼다. 세비야 시민들은 스페인 다른 도시나 마을의 주민들처럼 길거리에 나와서 식사를 한다. 식당들도 문밖에 테이블을 늘어놓고 자기 가게 공간인양 차지하고 음식을 서빙한다. 서울에서 이랬다가는 시청 직원이나 교통 경찰이 당장 철거했을거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히랄다탑과 세비야 대성당, 그 뒤에 수줍게 숨어 있는 알카사르를 손으로 더듬으며 인사를 건넸다. “아디오스! 세비야. 지난 나흘간 꿈같은 지내다 좋은 추억만 잔뜩 간직하고 떠난다. 죽기 전에 또 볼 수 있기를." 내일은 우마이야 왕조 첫 수도 코르도바로 간다. 그곳에서 사흘간 지낸다. 다소 길지만 여유있게 소일하며 돌아다니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