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땅끝 우수아이아, 마침내 왔다

3월28일(화) 바다사자와 고래가 낯선 이를 맞이하는 비글해협

by 이철현

남미 대륙의 남위 38°선 이남 지역, 파타고니아에 들어왔다. 남미 여행의 하이라이트다. 남북으로 길게 뻗은 안데스 산맥을 경계로 서부는 칠레, 동부는 아르헨티나다. 안데스 산지와 파타고니아 고원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한반도 다섯 배 면적이지만 인구는 희박하다. 마젤란이 거인들이 사는 곳이라 생각해 파타고니아로 불렀다고 한다. 첫 기착지는 땅끝마을 우수아이아다. 찰스 다윈이 비글호를 타고 태평양에서 대서양으로 지난 좁은 해협이 있는 마을이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면 녹음에 덮인 산의 정상마다 하얀색 페인트로 칠한 듯 눈과 빙하를 얹고 있다. 공항에서 나오자마자 정면으로 우뚝 솟아 오른 설봉이 병풍처럼 퍼져 여행객을 맞이한다. 보자마자 반했다. 일본 후지산이 100개 이상이 마을을 에워싸고 솟은 듯하다.

KakaoTalk_Photo_2023-03-29-08-08-14.jpeg 비글해협 섬에서 일광욕 즐기고 있는 바다사자 무리와 가마우지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오후 3시 30분 출발 비글해협 투어에 나섰다. 눈부신 햇살을 정면에 앉고 보트를 올랐다. 바다는 잔잔했다. 배가 좌우로 조금씩 흔들렸다. 해협 너머로는 거인이 사는 설산들이 사방으로 펼쳐지고 그 앞으로는 키 작은 남극 식물이 자라는 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느 섬에는 바다사자들이 배 깔고 늘어져 낯선 방문객들에게 몸매를 뽐냈다. 그 옆으로는 얼핏 펭귄으로 여기저기 모여있다. 섬 가까이 접근해 자세히 보니 펭귄 닮은 가마우지 새였다. 지가 펭귄인 척 연기하는 새가 있다고 하더니 진짜였다. 펭귄을 출현을 기대하는 여행 동행자가 “재들 펭귄 아니야. 막 날아다녀. 이제 안 속는다"라고 말해 빵 터졌다.

KakaoTalk_Photo_2023-03-29-08-08-01.jpeg 비글해협

접안 시설이 있는 섬에 내렸다. 섬 남쪽 끝에 다다르자 Fin del Mundo(세상의 끝)에 닿았다. 남극 방향으로 펼쳐진 고산 준봉들이 여전히 눈앞에 있지만 인간은 그곳을 세상의 끝이라는 이정표를 만들고 싶었나 보다. 아무튼 세상의 끝에서 남극 방향을 한참 쳐다본 뒤 다시 보트에 올랐다. 비글해협 투어의 종착지 등대섬을 돌며 가마우지와 바다사자가 만드는 생태계를 지켜본 뒤 출발지로 방향을 선회했다. 하이라이트는 그때부터였다. 배 주위로 고래 한쌍이 보트 주위를 오가며 멋진 등과 꼬리를 드러냈다. 대놓고 다 드러내지 않고 여행객이 간절할 때쯤 잠깐 물 위를 날 듯이 헤엄쳐 떠올랐다. 나는 땅끝마을 우수아이아에서 야생의 고래를 본 것이다. 눈물 찔끔.

KakaoTalk_Photo_2023-03-29-08-07-47.jpeg 땅끝마을 우수아이아는 거인의 사는 설산과 바다가 신비로운 관경을 만드는 곳이다.

치안 걱정하지 않고 우수아이아 마을을 산책하듯 걸어 다녔다. 키 낮은 집들이 작은 언덕을 따라 아기자기에서 잇대어 있어 걷기 좋았다. 내일을 티에고 델 푸에라 국립공원을 걷는다. 그곳에는 땅끝 마을 끝자락에 우체국이 있다. 여행객들은 그곳에서 그리운 이들이나 자기 자신에게 엽서를 보낸다. 나는 누구에게 무엇을 보내야 하나. 자신에게마저 보내고 싶은 메시지가 없다. 자기가 그토록 가고 싶었던 곳에서 얻은 벅찬 감동을 전하고 싶은 대상이 없다니 실패한 인생이다. 엽서에 쓰기 창피해서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내게 엽서를 보냈다. 다음 생에는 그리 살지 말라고.

KakaoTalk_Photo_2023-03-29-08-07-03 004.jpeg 펭귄인 척 연기하는 가마우지 무리. 날아다니는 모습 들키기 전에는 영락없이 펭귄 같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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