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고 선율과 함께한 부에노스 아이레스

3월27일(월) 탱고 발상지 라 보카부터 미캘란젤로 탱고 공연까지 만끽

by 이철현

부에노스 아이레스 이튿날. 일요일 맞아 부에노스 아이레스 중심가에 연다는 산텔모 주말시장에 나왔다. 가죽 제품부터 여성용 액세서리, 갖가지 수공예품을 파는 시장이다. 동행자 중 소담과 나래는 귀걸이, 팔찌, 목걸이를 샀고 나는 체 게바라가 그려진 티셔츠를 구입했다. 체가 평생 입었던 군복의 올리브색 바탕에 검은색으로 칠해진 체의 초상이 그럴듯하다. 2시간에 걸친 길거리 쇼핑이 끝나고 시장 끝에 있는 베트남 쌀국숫집에서 지금까지 먹은 쌀국수 중에서 가장 양이 많은 쌀국수를 먹었다. 곱빼기를 주문했더니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고 오히려 불어나는 쌀국수라니. ㅋㅋㅋ 국수 위에 얹은 소고기만 먹어도 배가 부를 정도였다.

KakaoTalk_Photo_2023-03-28-07-08-59 001.jpeg 부에노스 아이레스 대통령 궁 앞에서. 이곳은 5월광장

식사 끝난 뒤 우버를 타고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유럽인 이주가 시작된 곳인 항구 주변 라 보카로 이동했다. 어렸을 때 눈물 펑펑 쏟으며 봤던 일본 애니메이션 <엄마 찾아 삼만리>에서 이탈리아 소년 마르코가 엄마를 찾기 위해 아르헨티나에 첫발을 디딘 곳이 라 보카 항구다. 이곳에 정착한 유럽 이민자들이 삶의 애환을 달래고자 만든 유혹의 춤이 탱고다. 라 보카가 탱고의 발상지로 꼽히는 이유다. 라 보카는 총천연색이다. 낡고 오래된 건물이 곳곳에 섰고 그 사이에 좁은 골목을 따라 댄서들이 탱고를 추며 호객하는 식당부터 갖가지 상점들이 즐비하다. 건물 외벽과 무너져 가는 골목 이면을 숨기려 세운 가벽이나 함석판은 직업 화가들이 총천연색으로 색칠해 동네가 알록달록하다. 오래된 항구 도시의 낭만이 탱고 선율을 따라 흐르는 곳이 라 보카다. 그러다 보니 여행객 다수가 가장 부에노스 아이레스 다운 곳으로 라 보카를 꼽는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여성들을 숙소로 돌려보내고 준수와 맥주 한잔 마시며 라 보카에서 한적함을 즐겼다.

KakaoTalk_Photo_2023-03-28-07-09-02 002.jpeg 탱고의 발상지 라 보카에서

어두워지면 위험한 곳이라 해가 지기 전까지 맥주와 함께 남녀 댄서가 추는 탱고를 감상하다 석양이 물들기 시작하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숙박객 중에서 광고회사 사장이 있는데 그 친구가 칠레산 생연어 한 마리 구입해서 해체한다고 해서 저녁식사 시간에 맞춰 숙소로 돌아왔다. 한인민박에서 여행자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한 나머지 자기 돈으로 생연어를 구입해 회를 뜨고 마끼를 만들었다. 생전 처음으로 냉동 연어가 아닌 생연어를 다시마로 숙성한 연어를 맛보며 연어의 신세계를 맞이했다. 연어 회와 마끼, 비빔국수까지 먹으며 아르헨티나 산 말벡 와인을 밤늦게까지 마셨다. 입에서 행복하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파타고니아 W코스 트레킹을 막 끝내고 온 20대 중반 청년부터 우수아이아로 떠나는 50대 중반 광고회사 사장까지 남녀노소 10여 명이 여행담을 공유하며 놀았다. 세계에서 가장 비용이 적은 스카이다이빙을 앞둔 여성 여행객 3명은 비교적 일찍 자리를 떴지만 새로 체크인하거나 뒤늦게 방에서 나온 여행객이 들어오면서 술자리 여흥은 고조되어 갔다.

KakaoTalk_Photo_2023-03-28-07-09-07 005.jpeg 라 보카에서 보는 탱고

새벽 2시 넘어서까지 이어진 술자리 후유증 탓에 늦게 일어났다. 소담과 나래는 또래 청년 윤성, 종민과 스카이다이빙을 체험하기 위해 새벽까지 나갔다. 위에서 떨어지는 어떤 놀이도 싫어하는 터라 나는 스카이다이빙에 참여하지 않았다. 역시 가지 않은 준수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이라 불리는 엘아테네오에 갔다. 과거 극장이었던 건물을 서점으로 개조한 터라 내부 구조와 장식이 고풍스럽고 화려하다. 과거 무대였던 곳에 있는 커피숍에서 카페 솔로를 마시며 서점과 카페를 오가는 이들을 구경했다.

KakaoTalk_Photo_2023-03-28-07-09-04 004.jpeg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 엘 아테네오에서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짐을 챙겨 다른 숙소로 옮겼다. 급속도로 친해진 종민과 윤성이 묵는 곳이다. 한인민박이 하루 35달러(4만 원 이상)이지만 근처 아르헨티나 호스텔은 하루 2300페소(7천 원가량)다. 시설은 아르헨티나 호스텔이 나았다. 윤성, 종민과 3인실을 함께 썼다. 종민은 32세 부산 청년이다. 여자친구가 인천에 사는 터라 자주 서울에 올라온다고 한다. 7월 중 서울에서 만나 술 한잔하기로 했다. 윤성은 잘생긴 여수 청년이다. 배우 박서준을 닮았다. 아프리카 여행을 구상이라고 해서 내년 아프리카 여행을 함께 가는 걸 계획하기로 했다. 이래서 여행이 좋다. 낯선 곳에서 만난 이들이 새 인연을 만든다.

KakaoTalk_Photo_2023-03-28-07-09-10 006.jpeg 스페인 총독 건물

부에노스 아이레스 일정의 하이라이트는 미켈란젤로 탱고 공연이다. 오랜 연륜을 느낄 수 있는 할아버지가 탱고를 노래하고 피아노, 칠레, 바이올린, 손풍금 연주자들이 탱고 선율을 만들어내면 남녀 댄서들이 화려하면서도 관능적인 탱고를 선보였다. 탱고에 문외한마저 이민자들이 겪은 애환과 그들의 애달픈 사랑이 진하게 전해져 왔다. 1시간 넘게 진행된 공연이 끝난 뒤 종민과 나는 자정 무렵 5월 광장, 볼리비라 거리, 연방의회 건물을 잇따라 통과하며 부에노스 아이레스 중심가를 가로질렀다. 건장한 남자 둘이라 거칠 것 없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중심가를 자정에 활보하는 동양인이라니. ㅋㅋㅋ 간이 배밖으로 나왔든가 겁대가리 상실한 거다. ㅍ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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