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도적인 기억으로 새겨진 이과수 폭포

3월 25일(토) 악마의 목구멍과 폭포수 샤워, 이게 오르가슴인가 싶다

by 이철현

이과수는 원주민 과라니 족 언어로 큰 물이라는 뜻이다. 아르헨티나 쪽에 있는 악마의 목구멍은 수량, 기세, 외양 그 모든 면에서 압도적이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일게다. 초당 수억 톤의 물이 하얀 포말로 부서지며 무너지내리는 힘이 가슴 꽉 차 들어오고 큰 물이 주는 공포는 흥분으로 포말로 부서져 내리다 이내 증발해 버린다. 보트를 타고 하류 폭포로 들어가 거품으로 폭발해 쏟아져 내리는 폭포 물을 온몸으로 받을 때는 폐 속 깊은 곳에서 비명이 입 밖으로 비어져 나온다. 옆자리에 앉은 소원(가면)과 나현(가명)는 흥분에 겨워 비명을 지른다.

악마의 목구멍에서 쏟아져 내리는 폭포

이번 여행을 함께 하는 이들과 만나기 전에 홀로 브라질 쪽에서 이과수 폭포를 둘러보았다. 깔끔하게 정비된 트레킹 코스를 따라 걷는데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넓은 평지 곳곳에서 폭포를 만들며 하얀 포말을 개별적으로 또 삼삼오오 잇대어 내리는 하얀 포말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큰 물이 평지를 넓게 흐르다 천리 낭떠러지를 만나 여기저기서 대책 없이 쏟아져 내리는 광경을 보며 걷다 보면 1시간 트레킹 코스가 끝나고 만다. 트레킹 끝 부분에서는 낭떠러지에서 거대한 물 커튼을 만들며 쏟아지는 큰 물을 옆에서 볼 수 있다. 폭포에서 이는 물 수증기는 폭포에서 50m 이상 떨어진 곳까지 날아와 온몸을 흠뻑 적신다.

이번 여행을 함께 할 동료들

브라질 트레킹 코스를 한 바퀴 돌고 나자 여행 동행자들이 도착했다. 준영(가명)은 웹소설가다. 구한말 배경으로 대체 소설을 써 인기가 좋다. 소원(가명)은 의사다. 인턴 마치고 레지던트에 들어가기 전 1년 쉰다. 쉬는 동안 혼자 남미 여행에 나선 거다. 나현(가명)은 병리사다. 소원은 의사답게 참 똘똘하다. 머리 회전이 비상하다. 그러면서도 차분하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은 기품도 갖추고 있다. 어리지만 만만히 보이지 않는 친구다. 나현은 야무지다. 투어 도중 짜릿한 경험을 맞이할 때는 얼굴 가득 환한 미소가 터지며 비명을 지르며 흥분하다. 우리 젊은이들이 이리 멋지고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는 걸 옆에서 볼 수 있어 좋았다. 나현은 자기 아버지 사진도 보여주며 내가 자기 아버지랑 닮았다고 한다. 나이 차이에도 나를 동행으로 받아들이는 듯해 고맙다.

브라질 쪽에서 바라본 이과수 폭포

가이드로 분해 셋을 데리고 이과수 폭포 트레킹 코스를 다시 걸었다. 다시 봐도 숨이 막혔다. 즐거워하는 동행과 함께 이과수 폭포를 경험하는 것도 또 다른 기쁨을 주었다. 이래서 여행은 누구와 함께 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말이 나오나 보다. 소원과 나현에게 트레킹 코스를 안내하고 사진을 찍어주는 게 재미있었다. 잠시 맥주 한잔 하면서 셋과 짧은 대화를 나누는 것도 브라질 여행에서 얻지 못한 또 다른 색깔의 매력이었다. 모처럼 즐거웠다. 아들 우혁이가 소원이나 나현 같은 친구와 결혼하면 좋겠다. ㅎㅎㅎ

폭도에 뜬 무지개

이과수 폭포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삼국 국경이 접한 곳에 있다. 아르헨티나나 브라질 쪽 트레킹 코스를 따라 걷거나 공원 내 보트나 기차를 타고 이과수 폭포를 구경한다. 브라질 쪽 이과수를 구경하고 아르헨티나 쪽으로 건너와 미리 예약해 둔 한인민박에 묵었다. 70대 교포가 운영하는 민박집 그란티오는 멋지다. 너른 마당에 오렌지, 바나나 같은 열대 과일을 주렁주렁 달린 나무들이 심어져 있고 사람을 너무 좋아하는 개가 뛰어다니고 있다. 2층 야외 부엌에서는 아사도를 비롯해 아르헨티나 쇠고기를 그릴에 넣고 구워 먹었다. 말벡 와인 2병도 곁들였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2층 옥상 야외에서 지구 반대편에서 만난 한국인 4명이 여행의 추억을 공유했다.

그란티오 사장님이 별도로 불러 이것저것 물어보셨다. 그리고 한달살이를 권유하셨다. 사장님 가족이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사시는데 가끔 가족과 함께 지내고 싶을 때 내게 그란티오를 맡기고 싶다는 거다. 이로 인해 나는 언제든지 이과수 폭포 한인민박에서 살 수 있게 됐다. 사장님 집에 없을 때 집만 지키는 일로 무료로 먹고 자고 할 수 있디는 거다. 그것도 내가 희망하는 시간에. ㅍㅎㅎㅎ 이제 지구 반대편에 머물 곳이 생긴거다.

다음날 아르헨티나 브라질 파라과이 국경이 맞닿은 곳에서 이과수 강을 본 뒤 아르헨티나 쪽 이과수 폭포를 보러 갔다. 이과수 폭포 하이라이트는 악마의 목구멍과 스피드보트 체험이다. 주체할 없을 규모를 쏟아져 내리는 폭포를 보고 그 이상은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보트를 타고 폭포물을 몸으로 받아낼 때는 흥분과 쾌감은 그 이전에 체험이 주는 역치를 남어섰다.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감각이 머릿속에 깊이 새겨졌다. 결코 잊지 못할 순간일 게다. 볼리비아 우유니에서 하늘의 별을 보고 더 이상의 별은 없다고 말한 이가 있다. 이과수 폭포의 악마의 목구멍을 봤으니 내게 더 이상의 폭포는 없다. 폭포를 이걸로 일단락 지었다.

이과수 폭포를 뒤로 하고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들어왔다. 한인민박에 들어서자 미리 온 숙박객들이 아사도 잔치 벌이고 있었다. 잔치는 노래방으로 이어졌고 새벽 1시가 넘을 때까지 고성방가가 숙소를 가득 채웠다. 토요일이다 보니 밤늦은 시각까지 미쳐 날뛰는 걸 용인하는 듯하다. 여기서 토레스델파이네 W코스를 걷겠다는 20대 중반 청년들도 만나고 내가 갔던 리우 데자이네루에 간다는 항해사 친구도 만났다. 여흥에 아직 셀렘을 감추지 못하는 청춘들이다. 그중 26세 청년이 나이를 묻길래 47세라고 했더니 젊어 보인다고 하더라. ㅍㅎㅎㅎ 이쁜 녀석. ㅋㅋㅋㅋ

내일 부에노스 아이레스 산텔모 시장을 다녀온다. 모레 저녁에는 미켈란젤로 탱고를 보러 간다. 만 이틀만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있다. 그리고 우수아이아로 가서 남미 최남단 우체국에 갈 거고 빙하를 밟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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