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2일(수) 혼자 여행에 빠진 여행자, 리우라는 천국을 엿보다
새벽 5시 30분 바다는 해무에 가려 있고 빛의 색깔은 막 기지개를 켠 듯 옅다. 숙소 루프톱에는 배낭족들이 밤새 피운 마리화나 향이 배어있다. 하도 피어대는 통에 간접흡연으로 한대는 피운 느낌이다. 아침 명상 마치고 쇠질을 시작하자 바다가 해무를 걷어내고 맑아졌다. 바람이 만든 물비늘을 따라 빛이 요란하게 산란하다. 멧새인지 바다새인지 가까이서 울고 멀리 개들이 짖는다. 숙소 뒤편에 있는 파벨라에도 불이 하나씩 들어왔다.
보사노바 청년 강건에게 톡이 왔다. 센트로에 있는 셀라론 계단을 가고 싶단다. 건은 한국에서부터 가고 싶은 곳을 정했다. 다른 곳은 쳐다보지 않는다. 점으로 이동하며 명소만 찍고 이동한다. 참 나와 많이 다르다. 나는 선 또는 면으로 움직인다. 명소만 보고 이내 철수하지 않고 명소 사이를 걷거나 그 일대를 정처 없이 헤매며 동네를 통째로 체험한다. 리우 데 자이네루에서는 위험한 행위지만 버릇은 어쩔 수 없나 보다. 겁이 나 치아트로 뮤니시파우만 보고 팡 드 아수카(속칭 빵산)를 보러 간다는 강건 탓에 어쩔 수 없이 셀라론 계단에서 기념 촬영하고 리우 데 자이네루 대성당 내부를 돌아보는 것을 끝으로 숙소로 돌아와야 했다.
겉에서는 보기에 리우 데 자이네루 성당은 흉측하게 생겼다. 시멘트를 피라미드처럼 쌓아 올려 성당이라기보다 미사일 발사기지 같다. 내부는 다르다. 4면에 바닥부터 천장까지 이어지는 스테인드 글라스를 통과한 빛이 가톨릭 성당 특유의 화려하면서도 은은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2만 명을 수용하기에 좁아 보이지만 제단을 중심으로 충분한 인원이 미사를 드릴 수 있을 듯하다. 천장 중앙에는 십자가 모양으로 채광창을 내서 자연광이 십자가 모양으로 빛을 내린다.
혼자 여행이 편해지고 있다. 동행과 함께 움직이는 건 비용 절감 면에서는 좋지만 제약이 많다. 상대 여행 스타일을 존중해야 하고 취향이나 걱정을 고려해야 동선을 짜야한다. 어느새 혼자 다니는 막 여행에 익숙해지고 있다. 상당히 외롭지만 자유로워 좋다. 빵산에 가는 강건에게 인사를 건네고 혼자 숙소로 돌아왔다. 그 비싼 케이블카 요금을 내고 빵산에 오르고 싶지 않았다. 남산 케이블카도 타지 않은 사람이 굳이 다른 나라 뒷산 케이블을 거액을 주고 타고 싶지 않았다. 예수상이 더 높은 곳에 있으므로 그곳에 올라 본 것으로 리우의 전망은 만족한다.
숙소에 돌아와 책도 읽고 밀린 보고서도 보면서 뒹굴었다. 아일랜드 미녀 이파는 늘 보던 소설책을 들고 우아하게 오가고 페인 소녀 아나는 샤워 마치고 티팬티 차림으로 오락가락하며 미소를 건넨다. 리우가 천국인 것 틀림없다. 마리화나 냄새가 진동하고 전 세계 미녀들은 헐벗고 다니고 운동으로 단련한 탄탄한 근육을 자랑하며 다니는 남성들 입에는 어김없이 맥주가 물려 있다. 나는 이상한 천국에 초대된 이방인 같다. 나이 차 탓인지 문화 탓인지 그들 사이로 깊숙이 들어가기를 주저한다. 개별적으로는 모두 친하게 지내는데 그들이 한데 모인 곳에는 미소만 보내고 지나친다. 이런 것도 용기가 필요한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