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땅끝마을에서 평생 간직할 추억을 만들다

3월29일(수) 들이키는 숨마저 달콤한 티에라델푸에고, 그곳을 걷다

by 이철현

티에라델푸에라 공원은 꿈 속에 그리던 파타고니아가 다 있었다. 옅은색 하늘이 흰 구름 뒤로 펼쳐지고 하늘 빛을 담은 바다가 잔잔하게 물결치고 해안 너머로 하얀 빙하를 이고 있는 설산들이 병풍처럼 늘어섰다. 그 위로 매, 천둥오리, 갈매기들이 수면 위로 스치듯 나는 둘레길을 넋놓고 걸었다. 검은 진흙이 전날 내린 눈과 비에 섞여 질척였지만 트레킹 코스를 뒤덮은 나무 아래를 한발 내디는 걸음마다 음미했다. 들이키는 숨에 들어오는 공기는 달콤했다. 공기는 폐를 통해 전신에 퍼져 온 몸을 소생시키는 듯했다.

IMG_4083.JPG 여행 동행자 다솜(가명)은 플라멩코처럼 우아하다

3시간 남짓 걷기를 끝내고 도로에 나서자 지나는 셔틀버스가 우리를 픽업해 시내까지 데려다 주었다. 숙소에서 1시간 푹 자고 일어나 여행 동행자와 함께 시내로 나와 웨스턴유니온에서 돈을 찾으려다 실패하고 내일 아침 먹을거리만 샀다. 다른 여행자 2명이 먼저 가서 기다리는 100년 역사의 카페에서 진한 커피를 마셨다. 아주 오래된 소품들로 꾸며진 인테리어가 너무 좋았다. 동네 뒷산이 설산이고 앞으로는 비글해협이 흐르고 동네 커피숍은 100년 내력을 가진 곳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이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식사는 비글해협이 내려다 보이는 식당에서 현지 음식을 맥주에 곁들여 먹고 마셨다.

IMG_4162.JPG 여행 동행자 준석(가명)만큼 박학다식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이번 여행은 운이 좋다. 다니는 곳마다 날이 좋아 리우 데자이네루 코파카바나 해변의 강렬한 햇볕을 즐길 수 있었고 이과수폭포에는 여기저기 무지개가 떴고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산뜻하게 단장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파타고니아 비글해협에서는 햇살, 소슬비, 눈까지 단 두시간 동안 자기 진면목을 돌아가며 보였다. 티에라델푸에고는 그냥 미쳤다. 걷기 딱 좋은 날씨가 완벽한 수채화를 만들어냈다. 독일인 안드레안은 걷다가 반바지로 갈아입고 바다에 입수하기도 했다. 참 좋은 날씨와 동행자들과 땅끝마을 저녁 비글해협이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잊지못할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 중남미는 내내 행운을 선사하고 있다. 그저 감사할 뿐이다. 신인지 우연인지.

IMG_4085.JPG 여행동행자 나현(가명)은 심리적 방어기제가 낮아지자 20대 특유의 생기발랄한 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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