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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철현 Apr 19. 2023

안데스를 넘다 죽을 뻔하다… 고산병으로 실신 일보 직전

4월18일(화) 두통, 어지럼증, 메스꺼움, 무기력증, 졸음 한꺼번에

사흘간 살타 여행을 마치고 칠레 아타카마 사막에 들러 볼리비아 우유니로 들어가기로 작정했다. 당초 살타에서 우유니로 바로 넘어가는 코스를 잡았으나 원주민이나 가는 코스라 무지하게 어려울 듯해 포기했다. 남들 다 가는 아타카마 거쳐 우유니로 들어가는 방식이 잘 알려진 터라 별생각 없이 여정을 바꿨다. 그 순간까지는 스스로 지옥으로 들어가는 길을 선택했다는 사실을 몰랐다. 독일 여성 2명과 친해져 함께 아타카마에서 1박 2일 투어까지 염두에 두고 움직였다. 문제는 칠레 국경에서 발생했다. 아르헨티나에서 칠레로 넘어가려면 안데스 산맥을 넘어야 한다. 양국 국경은 안데스 산 정상에 있다. 

고산병으로 실신직전인 나를 챙겨준 독일인 시시. 한국에서 보기로 했다. 

정상 높이가 해발 4천600m였다. 4천m를 넘어서면 여지없이 고산병 증세를 보였던 탓에 잔뜩 긴장했다. 아니나 다를까 머리 앞부분이 욱신 거리기 시작하더니 머리 전체로 통증이 퍼졌다. 머리가 쪼개지는 듯한 통증이 찾아왔다. 칠레 국경에서 입국 심사하는 인간은 달랑 하나였다. 관광버스가 잇달아 들어오면서 입국 심사를 받으려는 관광객 수는 200명 가량이나 되었다. 인간 하나가 그 많은 사람에 대해 신원확인하고 옆 사람과 잡담하고 잠깐 어디 다녀오면서 거의 2시간 이상을 허비했다. 산 정상이다 보니 몸이 오슬오슬 떨려왔다. 속이 메슥거리기 시작했다. 아침 일찍 비스킷 한 조각 먹은 것 말고는 없는데 토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전신 무기력증이 빠지면서 주저앉았다. 아르헨티나 버스회사 직원 하나가 산소마스크를 하자고 왔으나 거절했다. 그냥 괜찮다며 일어나 벽에 기댔다. 그때부터 졸음이 쏟아졌다. 그때 독일 여성 시시가 찾아와 먹을 걸 건네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잠시 뒤 시시는 다시 찾아와 음료수라도 줄까를 물어봤다. 참 기특하다. 살타 투어에서 한번 본 인연인데 상태가 좋지 않은 이방인을 챙기려는 게 기특했다. 바로 뒤에 한국 여행객 일행이 삼삼오오 모여있었으나 모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중에는 일행으로 여행 일정을 함께 한 친구들도 있었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세상에서 가장 긴 입국심사를 마치고 버스로 돌아와 쓰러져 죽은 사람처럼 누워있었다. 버스 안 공기는 훨씬 좋지 않았다. 산소결핍이 고산병 주원인인데 버스 안에서 공기는 더 희박했다. 버스가 도착하자마자 짐 챙겨 부리나케 뛰쳐나갔다. 그곳에서 시시와 베키를 기다렸다. 오늘 같은 숙소에 묵기로 했다. 너무 고마워 저녁식사라도 대접하고 싶었다.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도착한 산페드로 데 아타카마는 좁은 시골도시라 은행이라곤 ATM 3대밖에 없었다. 그중 2대는 고장 났고 나머지 한대는 고유번호를 입력할 수 있는 현지인이나 사용할 수 있었다. 현금을 찾을 수 없었다. 그다음 날 우유니로 넘어가는 버스표라도 예약하려고 버스터미널에 갔으나 현금만 받는다고 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갇혀 버린 것이다. 남미사랑 칠레 단톡방에 버스표값 3만 페소를 환전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 물었으나 아무 대답이 없었다. 내가 살타에서 버스표를 끊어준 한국인 여행객에게 톡 했으나 그와 그의 한국 일행도 현금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남미 여행 최대의 위기였다. 


일단 독일 여성 2인에게 1박 2일 투어는 불가능하고 바로 우유니 넘어가야 하는 사정을 밝히고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그리고 저녁식사를 예약한 식당에 먼저 가서 음식 값에도 3만 페소를 더 지불할 테니 현금 3만 페소를 줄 수 있느냐고 안 되는 스페인어로 협상을 시작했다.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뭐든 한다고 그리 안되던 스페인어가 궁지에 몰리니 술술 나오기 시작했다. 결국 노련한 식당 주인이 3만 3천 페소를 더 지불하면 3만 페소를 주겠다는 제안을 수용하고 버스표를 끊었다. 


그다음 날 끔찍한 아타카마를 떠나 우유니로 가는 새벽 4시 버스에 탔다. 그 버스 안에는 쿠스코에서 마추픽추로 가는 잉카트레일 함께 하기로 한 재현씨를 만났다. 그것도 내 뒷좌석에 앉은 것이다. 세상에 이런 우연이. 그 친구에게 100달러를 받고 카톡으로 13만 3천 원을 입금했다. 버스는 10시간을 달렸다. 대부분은 비포장 도로였다. 소음 소리만 보아서는 내가 버스를 탄 건지 기차를 탄 건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버스가 해발 4200m를 달리기 시작했다. 다시 고산병 증세가 나타났다. 게다가 만석이라 버스 안 산소는 더 희박했다. 최악이었다. 게다가 비포장 도로를 10시간 달리니 차멀미 증세까지 나타났다.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이러다 죽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아무것도 입에 들어가지 않았다. 10시간 고통이 끝나 우유니에 내리자마자 숙소에 가서 일행을 만났다. 황성욱 씨가 반갑게 맞이했다. 자기가 갖고 있는 물 2리터를 건넸다. 그리고 얼른 올라가서 쉬라고 권유했다. 몰골을 다 봐도 오늘내일하게 생겼나 보다. 올라와 물만 마시고 쓰러져 2시간 잤다. 아니 2시간을 누워 있었다. 머리가 지속적으로 아파서 잠을 깊게 잘 수 없었다. 버스 안에서 만난 재즈피아니스트 현지가 건네 고산병 약을 먹었는데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은 상태에서 독한 약을 먹었으니 속도 뒤집어졌다. 


일단 나가서 뭔가를 먹을 것을 찾아야 했다. 100달러를 환전해 소로치필이라는 고산병 약을 샀다. 숙소에 돌아오니 성욱과 순혁이 숙소 근처에 유명한 중국집에서 우유탕을 먹자고 제안했다. 흔쾌히 승낙했다. 난 지금 뭔가를 먹어야만 했다. 순혁이 휴대용 산소통을 갖고 나왔다. 효능이 있을 거라며 자기가 2통 갖고 있다며 하나를 건넸다. 부탄가스통처럼 생긴 산소통에 입마개를 대고 산소를 흡입하자 바로 두통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중국집에 가서 볶음밥을 시켰는데 한국에서 먹은 것과 같은 맛이었다. 얼른 반을 해치웠다. 밥 먹기 전에 뜨거운 물에 코카 잎이 담긴 마테 차를 한통 마셨다. 이것도 효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밥을 먹은 뒤 소로치필 한 알을 먹었다. 두통이 거의 사라졌다. 칠레 국경에서 두통이 100이라면 이제 10만 남은 것 같다. 두통이 사라지고 밥이 들어가니 숙소에서 일행과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중간에 합류한 친구까지 4명이 숙소 로비에서 모여 와인을 마시고 여행 경험과 정보를 나누었다. 물론 나는 와인에 손도 대지 않았다. 술은 고산병에 쥐약이라설랑. 


내일 오전 10시 30분 우유니 소금사막 투어에 나선다. 일찍 자기 위해 자리를 파할 때 두통은 거의 사라졌다. 착하게 살아야겠다. 나의 지옥은 고산병이다. 신이 나의 삶을 괘씸하게 생각하신다면 나를 4천m 이상 고원에 올려놓을 거다. 그런 벌은 다시 받고 싶지 않았다. ㅋㅋㅋ 너무 착한 사람들을 만났다. 진짜 사나이 성욱이 살아온 파란만장한 삶을 듣는 게 좋았다. 대학 졸업반이 순혁이 고산병 약과 산소통까지 떠날 때 다 주겠다고 한다. 이 둘이 아니었다면 난 숙소 침대에 홀로 누워 죽었을지도 모른다. 남미가 내게 또 하나의 은인을 보내주었다. 


그래도 남미에서는 대책 없이 움직이지는 말아야 한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여기는 한국이 아니다. 금융시스템은 낙후됐고 도움을 청할 곳은 거의 없다. 버스비, 식비, 투어비를 비롯해 갖가지 비용을 세심히 계산해 치밀하게 움직여야 하는 거다. 여러 나라를 여행하고 다녔지만 남미의 여행 난이도가 가장 높은 쪽에 속한다. 남미 여행을 계획하는 분들은 치밀해질수록 나 같은 위험과 어리석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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