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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철현 May 13. 2023

멕시코 칸쿤, 따뜻한 휴양도시에 세운 '그들만의 천국'

5월 11~12일 회원제 해변에 침입해 해안 일주

11일 정오 와카치나 데저트나잇 숙소를 체크아웃하고 택시운전자 루디를 불러 이카로 나갔다. 이카 버스터미널에서 리마로 올라가는 직행버스를 탔다. 4시간 30분가량 걸리는 길이지만 다른 구간보다 훨씬 힘들었다. 난폭운전에 짜증이 났고 줄곧 졸면서 왔지만 개운하지 않았다. 체력적으로 힘드나 보다. 지난 2개월 강행군을 거듭했다. 몸이 지쳤다고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럴만하다. 페루 노면은 최악이다. 울퉁불퉁하고 곳곳에 과속방지턱을 만들어놓아 자다가 깜짝 놀라며 깨기 일쑤다. 페루 운전사들은 그 엉망인 노면을 난폭하게 달린다. 뒤에 앉은 게 사람이 아니라 짐짝이라 생각하나 보다.  

칸쿤 해안으로 가는 길은 도로 옆으로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리마 버스터미널에서 도착해 우버를 부르려 했다. 오후 6시 30분 리마 번화가 미라플로레스 부근서 우버를 부르려 하니 잡히지 않았다. 버스터미널 앞에 줄 서있는 택시는 공항까지 50 솔을 불렀다. 수중에 가진 현금은 45 솔이었다. 택시에 카드 계산기가 없었다. 우버는 잡히지 않고 페루 솔은 부족하니 이러 지도 저러 지도 못하고 있었다. 페루 화폐를 찾자니 현금인출기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고 몇 시간 뒤면 떠나는 나라의 통화를 찾고 싶지 않았다. 늘 하던 대로 걷자고 마음먹었다. 

해안 가는 길에 도마뱀이 유독 눈에 많이 띄었다. 

일단 버스터미널에서 벗어나야 했다. 비행기 출발시간이 새벽 1시다 보니 시간의 여유가 있다. 공항 쪽으로 방향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이참에 리마 번화가 미라플로레스의 밤거리도 구경하자는 심정으로 리마의 도심을 정처 없이 걸었다. 한참 걷다 보니 택시가 섰다. 얼마나 물었더니 50 솔 부르길래 내 수중에 45 솔밖에 없다고 했더니 택시 운전사가 흔쾌히 탈라고 했다. 그래서 1시간 동안 공항까지 가면서 내장과 피는 울퉁불퉁 노면과 난폭운전으로 칵테일 셰이커 안에서 흔들려 섞인 칵테일 잡탕처럼 너덜너덜해진 상태에서 공항에 도착했다. 지쳐서 공항 바닥에 한참 앉아 있다가 출발 3시간 전 체크인하기 위해 줄을 섰다. 우리나라 공항직원이 3명 처리하는 시간에 페루 공항직원은 1명 처리했다. 지루하기 그지없는 기다림 끝에 체크인하고 출국 게이트로 이동하자 맥이 풀렸다. 바닥에 앉아서 칸쿤 숙소를 예약했다. 

카쿤 해변은 해안으로 몰려온 나뭇잎 썩는 냄새가 진동한다. 

비행기 좌석에 앉자마자 곯아떨어졌다. 비행기가 어떻게 이륙했는지 생각나지 않았다. 비몽사몽 간에 깨어보니 멕시코 칸쿤이었다. 5시간 넘는 비행이었다. 새벽 1시에 출발해 오후 6시 30분가량 칸쿤에 도착했다. 칸쿤 공항에서는 멕시코 출입국심사 직원 하나가 밤새 비행에 시달린 여행객들을 녹초로 만들었다. 머저리처럼 생긴 멕시코 남성 하나가 200여 명이 넘는 여행객 출입국 심사를 처리했다. 이 직원은 일하다 갑자기 사라졌다 한참 뒤에 나타났다. 그동안 여행객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기다려야 했다. 일부 여행객은 자리에 삼삼오오 앉았다. 어이가 없었다. 우리나라 공항 출입국 직원들이 얼마나 빠르게 그리고 탁월하게 업무를 처리하는지 새삼 깨달았다. 점점 여행객들의 짜증이 극에 달하자 공항 측은 골통 직원을 빼고 여직원 3명을 배치해 수속 업무를 서둘렀다. 그리고 나오니 오전 8시가 훌쩍 넘었다. 2시간가량을 출입국 수속 업무로 소진한 것이다. 

회원만 즐길 수 있는 해안 방갈로

공항에서 나오자 택시 삐끼들이 한여름 날파리처럼 달려들었다. 나는 공항 셔틀버스 ADO를 탄다고 거듭 말했지만 지겹게 쫓아왔다. 결국 버스로 들어가서야 날파리들이 물러갔다. 20분가량 달리니 칸쿤 센트로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숙소까지는 도보로 10분 거리. 체크인 시간까지 시간이 남아서 여기저기 정처 없이 돌아다녔다. 길거리에서 만들어 파는 타코를 사 먹었다. 닭고기와 양파를 얇은 빵에 넣어 만든 음식이었다. 우리나라 돈으로 1300원밖에 되지 않았지만 엄청 맛있고 먹고 나니 듬직했다. 자기네 음식을 맛있게 먹는 동양인이 보기 좋았나 보다. 음식을 가져다주는 여인네가 따뜻한 미소를 게걸스럽게 먹고 있는 나를 보고 있었다. 하나 더 시키니 웃으면서 하나 더 가져다주는데 닭고기 속이 훨씬 많이 들었다. 

따뜻한 휴양 도시, 칸쿤은 여유가 넘치는 도시다. 이곳이 마음에 들었다. 숙소로 가서 짐을 맡기고 비치웨어로 갈아입은 뒤 해변으로 나갔다. 숙소에서 해변까지 30분 걸어야 한다. 따스한 햇볕을 받으며 느리게 해변으로 걸었다. 도로 옆으로 한참 걸었더니 호텔과 콘도미니엄이 줄지어 해변을 따라 줄지어 늘어서 외부인의 해변 접근을 막고 있었다. 호텔 사이로 비집고 들어갔더니 하얀 모래사장 위에 침대들이 늘어서 있는 해변 휴양지가 펼쳐졌다. 호텔마다 해변을 구획을 나누어 투숙객이나 회원 대상으로만 음식과 음료 서비스를 실시하고 외부인은 돈 주고 음식이나 음료를 사 먹을 수조차 없었다. 칸쿤 해변은 가진 자들의 천국이었다. 얼핏 보아도 서유럽 국가 백인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해변을 따라 걸었다. 해안가로 밀려든 전나무 잎 모양의 나뭇잎들이 썩어가고 있어 해안은 썩은 내와 비린내가 진동했다. 해안 모래는 하얀 분말처럼 고왔으나 해변으로 밀려든 나뭇잎의 잔해들로 지저분했다. 해변 따라 7km 이상 걸었을게다. 서핑 클럽에서 도로로 빠져나와 시내버스 R-1을 타고 도심으로 돌아왔다. 공항에서 도심으로 들어올 때는 ADO버스, 해안가에서 도심으로 들어올 때는 시내버스 R-1을 탔다. 관광객이 비싼 택시를 이용하는 것과 달리 나는 현지인처럼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할 때 뿌듯해진다. 뭔가 여행지 속으로 조금 더 깊게 들어가 체험한 느낌이랄까. 시내버스 안에는 라틴 음악이 떠나갈 듯 울리고 현지인들이 하나둘씩 어울려 버스를 타고 있는 모습이 현실적이었다. 칸쿤의 시내버스는 운전기사 옆으로 난 앞문으로 맨 뒷좌석에 붙은 뒷문으로 내린다. 버스비는 12페소로 대략 한국 원화로 920원가량이다. 

내일은 칸쿤을 떠나 버스로 한 시간 떨어져 있는 플라야델카르멘으로 옮긴다. 칸쿤과 비슷하지만 물가는 칸쿤보다 싼 곳이란다. 그곳에서 미국 횡단팀 멤버들과 함께 멕시코 여행 전문가를 만날 예정이다. 열흘간 멕시코 여행 일정을 함께 짜기 위해서다. 마야와 아즈텍 유적지 위주로 동선을 짜겠다고 한다. 멕시코 여행은 중부 아메리카 고대 문명을 공부하며 채워질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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