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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철현 May 26. 2023

최악의 트레킹 끝에 아카테낭고 올라 활화산 마주하다

5월 24~25일 수줍은 푸에고 화산… 구름 위로 솟은 아구아 화산 근사

오전 9시쯤 안티구아 숙소에서 투어사 밴을 탔지만 투어 동행자들을 일일이 픽업하느라 10시 지나서 아카테낭고로 향했다. 이탈리아인 루카스가 옆자리에 앉자마자 폭풍 질문을 쏟아냈다. 국적이야 이탈리아인이지만 독일어를 먼저 배웠다. 고향이 오스트리아 국경지대라서 어려서부터 독일어 쓰는 가정에서 자라 독일어를 제1언어로 배운 것이다. 독일 국적 알렉세이와 죽이 맞아 둘이서 움직일 때는 독일어를 사용했다. 알렉세이는 8살까지 러시아에 살다가 부모 따라 독일로 넘어와 독일에서 자랐다. 독일어를 더 잘 구사하는 이탈리아인, 러시아에서 태어난 독일인 알렉세이, 토종 한국인 이상한 조합이지만 셋은 바로 친해졌다. 

아카테낭고 정상에 오르는 길에서 내려다본 아쿠아 화산

루카스는 독일어, 이탈리아어, 영어, 스페인어를 구사한다. 알렉세이는 독일어, 러시아어, 영어를 말한다. 나야 한국어, 영어를 구사하고 스페인어와 일본어를 읽고 쓸 줄 안다. 루카스는 마흔이다. 자기가 제일 연장자라서 생각했는지 내 나이를 알고 크게 놀라는 표정이란. ㅋㅋ 알렉세이는 더 없어 착하다. 셋은 체력도 비슷하고 등산 역량도 탁월해 등산 초기 분위기를 주도하며 앞장서서 올랐다. 3000m까지는 그리 분위기가 좋았다. 고도가 3400m를 넘어가자 호흡이 가빠지고 다리 근육의 피로도가 급상승했다. 두통과 함께 어지럼증이 나타났다. 고산병이 재발한 거다. 

푸에고 활화산 앞에서. 3주 전에 터져서 그런지 용암 분출의 장관을 보여주지 않아 서운

앞장서 가다 뒤로 처지기 시작했다. 영국인 이단이 앞서가고 네덜란드인 단이 추월했다. 음식을 잘못 먹어 아픈 미국인 제리와 등산 경험이 적은 여성들만 뒤에서 쫓아왔다. 다시 속도를 냈다. 그랬더니 처음 겪는 일이 발생했다. 왼쪽 허벅지에 경련이 생겼다. 스틱을 한쪽만 쥐고 오르다 보니 비정상적으로 허벅지에 힘을 가했나 보다. 스틱을 바꿔 쥐니 이번에는 오른쪽 허벅지에 쥐가 났다. 등산하다 처음 겪는 일이었다. 결국 뒤로 처져 내 페이스로 등산 속도를 최대한 늦췄다. 결국 고도 3600m 베이스캠프에 가장 늦게 도착했다. 

베이스캠프에서 아카테낭고 정상에 오르는 길

두통과 어지럼증이 갈수록 심해졌다. 저녁식사 마치고 자리에 누웠다. 다른 친구들은 마시멜로 구워 먹으며 시끌벅적했다. 귀마개까지 박고 한숨 자고 일어났더니 다른 친구들도 침낭 속으로 들어가 있었다. 다음날 새벽 3시 45분 아카테낭고 화산 정상에 있는 푸에고 활화산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까지 올라야 한다. 당초 예상보다 일찍 잠자리를 마련하느라 부산대는 통에 잠에서 깼다. 그런데 갑자기 속이 뒤집히기 시작했다. 숙소 근처 화장실은 죽을 지경에 처해도 가고 싶지 않을 모양새다. 대자연을 바라보고 대변을 해결해야 했다. 

구름 속에 숨은 화산의 모습은 신비롭다

거의 40년 만에 앉아쏴 자세를 취하니 다리에 쥐가 났다. 4시간 동안 고도 1km를 높이다 보니 급경사길을 계속 걸은 상태라 근육이 뭉쳐있는데 안 하던 앉아쏴 자세는 상당한 고통을 안겼다. 아구아 화산 옆 하늘에 번개가 번쩍이는 걸 보며 앉아쏴 하는데 주인 없는 들개가 옆으로 다가왔다. 등산객 따라다니며 등산객이 주는 음식을 받아먹는 개들이라 겁먹지 않았지만 개라도 누군가가 그 어색한 모습을 지켜본다는 게 반갑지는 않았다. 그날 먹은 게 많은 탓에 엄청나게 많은 배설물을 자연에 남기고 얼른 침낭으로 돌아갔다. 온몸이 얼었다. 과테말라가 적도 부근이지만 해발 4000m 가까운 산지라 밤에는 기온이 영하로 떨어졌다. 그 추위에 엉덩이를 까고 불편한 자세로 한참 앉았다 일어난 탓에 체온이 크게 떨어졌다. 찬 공기 탓에 두통은 더 심해졌다. 미국인 제리가 잠을 자지 못하고 밤새 끙끙거리며 앓았다.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가이드 텐트에 가서 가이드를 깨워 도움을 청했다. 제리는 결국 가이드가 주는 약과 차를 마시고 가이드 텐트에서 자야 했다. 나는 자는 둥 마는 둥 하다 새벽 3시 45분 가이드 기상 소리에 깼다. 

베이스캠프 앞두고 푸에고 활화산 앞에서

고산병 증세는 심해지고 잠은 제대로 못 자고 일어나 정상에 오르려 하자 가이드가 등반 포기를 권했다. 정상까지 코스가 급경사인 데다 화산재가 가득해 발목이 잠겨 미끄러워 정상 컨디션에서도 힘들다고 경고했다. 게다가 정상은 아주 추워 고산병에게 치명적이었다. 속은 뒤집어졌고 잠은 못 잤고 두통과 어지럼증 증세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지만 그래도 정상에 가겠다고 고집부렸다. 미국인 제리는 속이 좋지 않아 정상 등반을 포기하고 베이스캠프에 남기로 했다. 가이드가 거듭 제리와 남으라고 권했다. 하지만 나는 가이드 말을 무시했고 앞장서 걸었다. 

아카테망고 화산 초입에 있는 300살 넘은 고목 앞에서

등산길 초입에 들어서자마자 후회했다. 핸드폰 조명에 의존해 내딛는 길은 화산재로 가득해 발목까지 묻히며 계속 미끄러졌다. 하이킹 베테랑 루카스마저도 계속 밀렸다. 경사도 아주 가팔랐다. 최악의 상황이었다. 어쩔 수 없이 뒤처졌다. 속이 뒤집어지고 어지러워 스틱을 기대어 한참 쉬다 가다 하니깐 뒤에서 따라오는 다른 등반팀원들이 괜찮냐고 물어보며 지나쳐 갔다. 

아케테망고 등반팀. 가장 오른쪽에 있는 이가 이탈리아인 루카스

내 호흡과 페이스를 찾아야 했다. 살칸타이 트레킹처럼 열 발 올라가고 5초 쉬었다가 다시 열 발 올라가고 5초 쉬는 등반법을 다시 꺼내 들었다. 등산길이 어둡다 보니 우리 일행은 여러 차례 쉬면서 내가 올라오는 걸 확인하고 다시 올랐다. 그들은 나를 기다리면서 충분히 쉬지만 내가 일행을 따라잡으면 다시 출발하니 정작 나는 쉴 틈이 없었다. 끝도 없이 하늘로 이어지는 행렬을 보고 있자니 주저앉고 싶어졌다. 위를 쳐다보지 않기로 했다. 흘러내리는 돌자갈만 바라보고 한 시간가량 오르니 갑자기 시꺼먼 흙이 펼쳐졌다. 고개를 드니 일행이 전망대 주위에 모여 사진 촬영에 여념이 없는 모습이 보였다. 루카스와 알렉세이는 벌써 정상 주위를 멀리 한 바퀴 돌고 있었다. 다들 고산병 없이 잘 오르는데 왜 나만 고산병에 걸리는지 속이 상했다. 

힘겹게 정상에 올라 맞은편 푸에고 화산을 바라봤지만 이놈의 활화산은 흰 연기만 모락모락 나올 뿐 용암을 분출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3주 전 크게 폭발한 다음 조용하다고 한다. 그 반대편에 구름 위로 우뚝 솟은 아구아 화산을 더 멋졌다. 해가 떠오르자 구름에 담긴 일출의 색을 배경으로 구름 위로 실루엣만 보이는 게 근사했다. 산 하나가 달랑 구름 위로 우뚝 솟은 모습을 국내에서 보기 힘들다 보니 낯설고 신기했다. 찬 바람을 맞으며 인증 샷을 촬영한 다음 다시 내려갔다. 베이스캠프에서 아침식사를 먹는데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아 아침식사도 거르고 하산을 시작했다. 고도 3000m 밑으로 내려가자 거짓말처럼 두통과 어지럼증이 사라졌다. 다리 근육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다음에는 뛰다시피 하며 지상으로 내려왔다. 참으로 기이하다. 고도가 높은 게 이리 치명적일 줄이야. 나는 앞으로 고도가 낮은 곳에 살 운명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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