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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철현 May 27. 2023

체게바라가 사랑한 호수, 아티틀란에 오다

5월29일(금) 파나하첼 카페 로코서 과테말라 커피의 진수 맛보다

안티과에서 콜렉티보를 타고 3시간가량 달려 아티틀란 호수에 왔다. 체게바라가 혁명을 포기하고 눌러 앉고 싶다고 할 정도로 아름다운 호수라고 하니 보고 싶었다. 아티틀란는 해발 1562m에 있다. 화산 폭발로 형성된 칼데라 호수다. 중심지라할 파나하텔에서 호수 너머로 수호신처럼 버티고 선 2개 산을 볼 수 있는데 왼쪽이 아티틀란 화산이고 오른쪽이 톨리만 화산이다. 그 화산을 포함해 호수 주위를 병풍으로 둘러싼 산과 봉우리 아래로 최대 수심 340m, 평균 수심 220m 호수가 자리한다. 총면적은 130 평방km로 여의도 면적의 44배나 된다.


호수 주위에는 11개의 크고 작은 마을이 있다. 파나하첼이 중심지고 산페드로 산티아고 등 예수 그리스도 12제자 이름을 딴 마을이 호숫가를 따라 자리한다. 산페드로는 가성비 좋은 숙소가 많아 전 세계 배낭족의 사랑을 받는 곳이다. 호수 전체를 바라보는 전망대가 있는 산후앙은 최근 떠오르는 명소다. 파나하첼에서 보트를 타고 호숫가 마을로 건너간다.

기대가 너무 컸나. 얼마나 아름답길래 체게바라가 혁명까지 접고 눌러 앉고 싶나 기대했으나 실제로 보니 우리나라 산정호수보다 못했다. 구름이 잔뜩 껴 시야가 나쁜 탓인가. 호수 너무 화산들이 안개 속에 잠긴 것처럼 뿌옇게 보였고 호숫가는 쓰레기로 넘실거려 산중 호수치고는 맑지 않았다. 호숫가를 따라 마구잡이로 늘어선 식당들이 관광객 상대로 호객하느라 시끄러웠고 기념품 파는 간이 상점이나 좌판들이 어지럽게 들어섰다. 나룻터에는 모터를 단 보트들이 호수를 건너는 관광객을 태우고 잇달아 호수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체게바라가 이런 혼란스러운 광경을 본다면 이곳에서 여전히 살고 싶을지 의심스럽다.

파나하첼에서 발견한 보물 같은 곳은 로코 카페였다. 한국인 청년 여섯명이 중미 지역 커피를 연구하기 위해 과테말라 파나하첼에 왔다가 눌러 앉아 연 카페가 로코다. 카페 영업은 부업이라 할 정도로 과테말라 커피 농장과 협업해 원두 재배, 프로세싱, 건조, 수출까지 커피 관련 사업을 벌이고 있다. 대표 격인 배상준씨는 스무살에 과테말라에 왔다가 눌러 앉아 11년째 커피 사업을 벌이고 있다. 배낭 여행 왔다가 주저 앉은 청년부터 원두 수입업을 하다가 합류한 사업가까지 다양한 종류의 사람이 모여 일하고 있다.

카페 로코에서 맛본 커피는 중남미에서 마신 커피 중 최고였다. 화산재 속에서 짙은 향을 품고 자란 원두로 내려 맛은 깊었고 향은 짙었다. 따뜻한 커피와 아이스 커피 2잔을 마셨다. 둘 다 맛과 향이 기가 막혔다. 한국에 수입해 커피숍을 열고 싶을 정도였다. 카페 로코가 현지 커피 농장과 협업해 만든 원두를 대량으로 수입하는 한국인이 있다고 해서 그냥 커피를 즐기는 여행객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아티틀란 호수를 중심으로 관광객 상대로 영업하는 과테말라의 작은 마을에 불과한 파나하첼에서는 하루만 머물기로 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숙소 셀리나 아티틀란에서 전 세계 배낭족과 어울리며 수영이나 즐기다 안티과로 돌아가려 한다. 호수 너머 산후안을 다녀올까 잠깐 고민했다.  하지만 그냥 숙소에서 쉬다가 내일 일찍 안티과에서 가서 쿠스코 다음으로 마음에 든 도시를 산책하며 과테말라의 여행을 정리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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