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니 소금사막에서 만난 이들과 3개월 뒤 제주도서 재회
안데스를 넘다 죽을 뻔하다… 고산병으로 실신할뻔
사흘간 살타 여행을 마치고 칠레 아타카마 사막에 들러 볼리비아 우유니로 들어가기로 작정했다. 당초 살타에서 우유니로 바로 넘어가는 코스를 잡았으나 원주민이나 가는 코스라 무지하게 어려울 듯해 포기했다. 남들 다 가는 아타카마 거쳐 우유니로 들어가는 방식이 잘 알려진 터라 별생각 없이 여정을 바꿨다. 그 순간까지는 스스로 지옥으로 들어가는 길을 선택했다는 사실을 몰랐다. 독일 여성 2명과 친해져 함께 아타카마에서 1박 2일 투어까지 염두에 두고 움직였다. 문제는 칠레 국경에서 발생했다. 아르헨티나에서 칠레로 넘어가려면 안데스 산맥을 넘어야 한다. 양국 국경은 안데스 산 정상에 있다.
정상 높이가 해발 4천600m였다. 4천m를 넘어서면 여지없이 고산병 증세를 보였던 탓에 잔뜩 긴장했다. 아니나 다를까 머리 앞부분이 욱신 거리기 시작하더니 머리 전체로 통증이 퍼졌다. 머리가 쪼개지는 듯한 통증이 찾아왔다. 칠레 국경에서 입국 심사하는 인간은 달랑 하나였다. 관광버스가 잇달아 들어오면서 입국 심사를 받으려는 관광객 수는 200명 가량이나 되었다. 인간 하나가 그 많은 사람에 대해 신원확인하고 옆 사람과 잡담하고 잠깐 어디 다녀오면서 거의 2시간 이상을 허비했다. 산 정상이다 보니 몸이 오슬오슬 떨려왔다. 속이 메슥거리기 시작했다. 아침 일찍 비스킷 한 조각 먹은 것 말고는 없는데 토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전신 무기력증이 빠지면서 주저앉았다. 아르헨티나 버스회사 직원 하나가 산소마스크를 하자고 왔으나 거절했다. 그냥 괜찮다며 일어나 벽에 기댔다. 그때부터 졸음이 쏟아졌다. 그때 독일 여성 시시가 찾아와 먹을 걸 건네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잠시 뒤 시시는 다시 찾아와 음료수라도 줄까를 물어봤다. 살타 투어에서 한번 본 인연인데 상태가 좋지 않은 이방인을 챙기려는 게 기특했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세상에서 가장 긴 입국심사를 마치고 버스로 돌아와 쓰러져 죽은 사람처럼 누워있었다. 버스 안 공기는 훨씬 좋지 않았다. 산소결핍이 고산병 주원인인데 버스 안에서 공기는 더 희박했다. 버스가 도착하자마자 짐 챙겨 부리나케 뛰쳐나갔다. 그곳에서 시시와 베키를 기다렸다. 오늘 같은 숙소에 묵기로 했다. 너무 고마워 저녁식사라도 대접하고 싶었다.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도착한 산페드로 데 아타카마는 좁은 시골도시라 은행이라곤 ATM 3대밖에 없었다. 그중 2대는 고장 났고 나머지 한대는 고유번호를 입력할 수 있는 현지인이나 사용할 수 있었다. 현금을 찾을 수 없었다. 그다음 날 우유니로 넘어가는 버스표라도 예약하려고 버스터미널에 갔으나 현금만 받는다고 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갇혀 버린 것이다. 남미사랑 칠레 단톡방에 버스표값 3만 페소를 환전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 물었으나 아무 대답이 없었다. 내가 살타에서 버스표를 끊어준 한국인 여행객에게 톡 했으나 그와 그의 한국 일행도 현금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남미 여행 최대의 위기였다.
일단 독일 여성 2인에게 1박 2일 투어는 불가능하고 바로 우유니 넘어가야 하는 사정을 밝히고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그리고 저녁식사를 예약한 식당에 먼저 가서 음식 값에도 3만 페소를 더 지불할 테니 현금 3만 페소를 줄 수 있느냐고 안 되는 스페인어로 협상을 시작했다.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뭐든 한다고 그리 안되던 스페인어가 궁지에 몰리니 술술 나오기 시작했다. 결국 노련한 식당 주인이 3만 3천 페소를 더 지불하면 3만 페소를 주겠다는 제안을 수용하고 버스표를 끊었다.
다음 날 끔찍한 아타카마를 떠나 우유니로 가는 새벽 4시 버스에 탔다. 그 버스 안에는 쿠스코에서 마추픽추로 가는 잉카트레일 함께 하기로 한 재현씨를 만났다. 그것도 내 뒷좌석에 앉은 것이다. 세상에 이런 우연이. 그 친구에게 100달러를 받고 카톡으로 13만 3천 원을 입금했다. 버스는 10시간을 달렸다. 대부분은 비포장 도로였다. 소음 소리만 보아서는 내가 버스를 탄 건지 기차를 탄 건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버스가 해발 4200m를 달리기 시작했다. 다시 고산병 증세가 나타났다. 게다가 만석이라 버스 안 산소는 더 희박했다. 최악이었다. 게다가 비포장 도로를 10시간 달리니 차멀미 증상까지 나타났다.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이러다 죽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아무것도 입에 들어가지 않았다. 10시간 고통이 끝나 우유니에 내리자마자 숙소에 가서 일행을 만났다. 황성욱 씨가 반갑게 맞이했다. 자기가 갖고 있는 물 2리터를 건넸다. 그리고 얼른 올라가서 쉬라고 권유했다. 몰골을 다 봐도 오늘내일하게 생겼나 보다. 올라와 물만 마시고 쓰러져 2시간 잤다. 아니 2시간을 누워 있었다. 머리가 지속적으로 아파서 잠을 깊게 잘 수 없었다. 버스 안에서 만난 재즈피아니스트 현지가 건네 고산병 약을 먹었는데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은 상태에서 독한 약을 먹었으니 속도 뒤집어졌다.
일단 나가서 뭔가를 먹을 것을 찾아야 했다. 100달러를 환전해 소로치필이라는 고산병 약을 샀다. 숙소에 돌아오니 성욱과 순혁이 숙소 근처에 유명한 중국집에서 우유탕을 먹자고 제안했다. 흔쾌히 승낙했다. 난 지금 뭔가를 먹어야만 했다. 순혁이 휴대용 산소통을 가지고 나왔다. 효능이 있을 거라며 자기가 2통 갖고 있다며 하나를 건넸다. 부탄가스통처럼 생긴 산소통에 입마개를 대고 산소를 흡입하자 바로 두통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중국집에 가서 볶음밥을 시켰는데 한국에서 먹은 것과 같은 맛이었다. 얼른 반을 해치웠다. 밥 먹기 전에 뜨거운 물에 코카 잎이 담긴 마테 차를 한통 마셨다. 이것도 효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밥을 먹은 뒤 소로치필 한 알을 먹었다. 두통이 거의 사라졌다. 칠레 국경에서 두통이 100이라면 이제 10만 남은 것 같다. 두통이 사라지고 밥이 들어가니 숙소에서 일행과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중간에 합류한 친구까지 4명이 숙소 로비에서 모여 와인을 마시고 여행 경험과 정보를 나누었다. 물론 나는 와인에 손도 대지 않았다. 술은 고산병에 쥐약이라설랑.
내일 오전 10시 30분 우유니 소금사막 투어에 나선다. 일찍 자기 위해 자리를 파할 때 두통은 거의 사라졌다. 착하게 살아야겠다. 나의 지옥은 고산병이다. 신이 나의 삶을 괘씸하게 생각하신다면 나를 4천m 이상 고원에 올려놓을 거다. 그런 벌은 다시 받고 싶지 않았다. ㅋㅋㅋ 너무 착한 사람들을 만났다. 진짜 사나이 성욱이 살아온 파란만장한 삶을 듣는 게 좋았다. 대학 졸업반이 순혁이 고산병 약과 산소통까지 떠날 때 다 주겠다고 한다. 이 둘이 아니었다면 난 숙소 침대에 홀로 누워 죽었을지도 모른다. 남미가 내게 또 하나의 은인을 보내주었다.
그래도 남미에서는 대책 없이 움직이지는 말아야 한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여기는 한국이 아니다. 금융시스템은 낙후됐고 도움을 청할 곳은 거의 없다. 버스비, 식비, 투어비를 비롯해 갖가지 비용을 세심히 계산해 치밀하게 움직여야 하는 거다. 여러 나라를 여행하고 다녔지만 남미의 여행 난이도가 가장 높은 쪽에 속한다. 남미 여행을 계획하는 분들은 치밀해질수록 나 같은 위험과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있다.
경이롭고 아름답고’ 어찌 형언할 수 없는 비경, 우유니
소금사막 투어로 유명한 우유니 첫날. 햇빛은 눈부시게 쏟아졌고 바람 하나 없어 따뜻했다. 비 오고 바람 불면 우유니 소금사막의 비경을 볼 수 없다. 심성이 선하고 흥이 넘치는 한국인 여행객 5명과 함께 했다. 한국인 관광객이 가장 선호하는 아리엘이 가이드로 나섰다. 무엇보다 사진을 잘 찍는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아리엘과 함께 투어를 나가는 건 행운이다. 업무를 꼼꼼하게 처리하고 인성이 훌륭해 한국인 여행객이 참 좋아한다. 우리 동행자 중 한 여성이 자기 이상형이라고 밝힐 정도다. 물론 잘생겼다. ㅎㅎ 나하고 금세 친구가 됐다. 보자마자 마음에 들어 친구 하자고 했더니 흔쾌히 수락했다. 아리엘은 수줍음 많고 과묵해 필요한 말만 한다. 나서야 할 때와 물러나 있을 때를 안다. 사진을 촬영할 때는 주도적으로 나서고 여행객들이 우유니 소금사막의 비경을 감상할 때는 물러나 침묵한다. 사진 촬영 능력이 탁월해 아리엘이 촬영한 사진과 다른 동료가 촬영한 사진의 질 차이가 뚜렷하다. 그러니 한국인 여행객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다.
아리엘이 소금사막에 가기 전에 우리를 먼저 데려간 곳은 기차 무덤이다. 버려진 기차를 모아 놓은 곳을 관광지로 만들어 소금사막 투어의 메뉴를 하나 더 추가하자는 의도가 엿보인다. 녹슬어 삭아가는 열차들이 소금사막 관광지라니 낯설었다. 그래도 우리 일행은 흥이 넘쳤다. 녹슨 열차를 오르내리며 신나게 촬영을 즐겼다. 투어 내내 우리 일행은 모두 너무 행복해했다. 선경, 성욱, 순혁, 은주, 희진 6명의 호흡이 좋았다.
대장은 선경이었다. 리더십이 탁월했다. 밝고 똘똘하고 아이디어가 풍부했다. 아리엘이 새벽하늘 배경으로 인물을 촬영하는 걸 옆에서 보더니 자기 휴대폰으로 비슷하게 촬영할 정도로 센스가 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공기업에 다니고 있다. 여행을 좋아해 여러 나라를 다녔다. 성욱은 진짜 멋진 사나이다. 남자로서 사려 깊은 행동 속에 살짝 비치는 거침이 매력적이다. 난 이 친구를 좋아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인연을 이어가리라 예상된다. 순혁은 연세대 화학과 졸업반이다. 우리 팀 막내라 귀염둥이로서 누나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여자친구밖에 모르는 순정파다. 스페인어와 영어를 잘한다. 은주와 희진은 투어 출발할 때 차량 안에서 처음 만났다. 아주 유쾌하고 사람들이라 금세 친해졌다. 상대방 말을 정성스레 들어주고 공감하고 호응해 준다. 함께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은주는 이번 여행에서 남자친구를 꼭 만들고 가겠다고 결심한다. 투어 다음날 톡으로 연락을 주고받은 남자와 데이트까지 하러 나갔다. 데이트 현장을 우리 멤버들에게 들켰지만. ㅋㅋㅋㅋ 희진은 직장에 복귀해야 하는 터라 일찍 헤어져야 했다. 아쉬웠다.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사람에 대한 호기심을 숨기지 못하는 모습이 귀엽다. 팀 멤버 6명은 7월 중순 제주도에서 만나기로 했다. 한국에서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다.
열차 무덤을 떠나 한참 달리니 눈부신 소금 바다가 펼쳐졌다. 그 소금사막 위로 사륜구형 차량들이 여행객들을 태우고 달렸다. 멀리서 달리는 차량을 보면 하얀 도화지 위를 달리는 미니카 같다. 소금사막에서 물이 솟는 곳에서 잠시 머문 뒤 촬영에 적합한 곳으로 이동했다. 아리엘의 지시에 따라 우리 일행은 소금사막에 누워 별을 만들기도 하고 의자 위에 서서 앉았다 섰다고 하고 공룡 인형 같은 소품을 이용해 온갖 익살스러운 사진을 촬영했다. 아리엘은 개별 독사진도 정성스레 찍었다. 촬영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선경은 자기 카메라로 일행을 따로 촬영했다. 누군가를 찍어주는 것을 즐기고 있는 게 틀림없다. 나머지 일행들도 자기 휴대전화를 꺼내 우유니 소금사막을 촬영했다. 나는 내 캐논 카메라를 아리엘에게 맡기고 우유니 비경을 머릿속에 각인하느라 풍경에 빠졌다. 선글라스를 벗고 보니 세상은 눈부시게 하얗다. 선글라스를 일주일간 벗고 지내면 눈이 멀 것 같은 강한 자외선을 담은 햇빛이 소금사막에 쏟아져 내렸고 소금사막은 그 빛을 고스란히 튕겨내고 있었다.
웃고 떠들고 촬영하고 더없이 행복하게 보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러다 해가 지기 시작했다. 사위에 어둠이 차기 시작하면서 소금바다 지평선은 오렌지 빛으로 물들었다. 스러져가는 햇빛이 산 중턱에 닿자 오렌지 빛은 더 짙어져 갔다. 소금사막은 그 빛을 그대로 반사해 거대한 빛의 은하수를 옆에서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비경을 보고 있다 보면 저절로 눈물이 뺨을 타고 내려올 듯싶다. 빛의 은하수를 배경으로 와인잔을 들고 건배했다. 남은 생애 잊지 못할 추억이 생겼다. 그 추억은 어찌 형언할 수 없는 비경과 함께 한 사람들의 이미지로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은하수에 남십자 오리온 백조자리가 떠는 곳, 우유니
선셋 투어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 근처 중국집에서 늦은 저녁식사를 마치고 서둘러 침대로 들어갔다. 새벽 3시 스타라이트와 선라이즈 투어가 있다. 흥에 겨워 체력 소모가 심했나 보다. 코피까지 쏟으며 자다가 일어났다. 전날 스타라이트 투어를 마친 희진과 은주는 빠지고 선경 성욱 순혁 그리고 나 4명만 참여했다. 하늘에는 이미 별들이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달리는 차 정면으로 금성이 빛을 발하며 우리를 반겼다. 차량은 빛이 없는 소금사막 위를 질주했다. 아리엘이 별 보기 가장 좋은 곳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지평선부터 지평선까지 새벽하늘을 선명하게 갈라 흐르는 은하수 위로 남십자, 백조, 오리온 별자리가 선명하게 반짝이며 떠 다녔다. 금성은 이른 저녁 가장 먼저 빛을 내며 별들의 쇼를 열었다. 태어나서 그리 많은 별자리를 그리 선명하게 그리 아름답게 펼쳐진 하늘을 본 적이 없다. 잊을만하면 유성이 번쩍 하며 은하수를 가로지른다. 사진 한컷 찍으면 그 배경에 유성 3~4개는 찍힐 정도로 구경꾼이 인지하든 못하든 여기저기서 떨어진다.
소금 사막에 물이 차 찰랑거리는 수면 위에는 또 다른 은하수가 흐른다. 사람이 한참 움직이지 않으면 물결이 잠잠해지면 하늘의 별들이 물 위에 내린다. 이때부터는 하늘과 소금 사막 물 위에 별들이 서로를 비추며 함께 뜬다. 별 위에서 우리는 사진을 찍었다. 카메라를 8~10초 노출에 맞춰놓고 사람을 인공조명으로 1초가량 비추면 밤하늘 별들은 형형히 빛나고 촬영 대상은 핀 조명을 받은 것처럼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발아래 찰랑이는 소금 사막의 물을 딛고 하늘을 올려다보다 각자 시간에 맞춰 촬영하다 보면 검은 산 위가 서서히 오렌지 빛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오렌지 빛이 주황색으로 바뀌는 순간 해가 뜨는 반대편 지평선을 바라보면 입이 떡 벌어지는 색의 향연이 펼쳐진다. 지평선을 기준으로 소금사막의 바다는 이탈리아 앞바다에서 보이는 아줄(옅은 파랑)로 깔리고 그 선 위로 코발트블루, 보라, 오렌지, 주황, 빨강, 노랑 색이 포개지듯이 펼쳐진다. 우유니에서 투어업체를 운영하며 살아가는 볼리비아인 아리엘이 옆에 다가오더니 우유니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색의 향연이라고 말을 건넸다.
해 뜨는 반대편에는 아줄, 코발트불루, 보라, 주황, 빨강 온갖 천연색이 나란히 겹쳐 빛의 잔치를 만든다.
누군가 우유니를 보고 그랬다. “우유니를 봤으니 이제 죽어도 좋아.” 과장이려니 했다. 잠시 지금 죽어도 억울하지 않을 듯싶다. 나는 우유니가 선사하는 우주의 아름다움을 만끾했다. 더 무엇을 바라겠나.
4천m 봉우리에 둘러싸인 분지 속 기괴한 도시, 라파스
볼리비아 행정수도 라파스에 왔다. 6천 m 넘는 고봉 아래 4천 m 산봉우리들에 둘러싸인 분지에 벽돌집이 조개 따개비처럼 산을 따라 따닥따닥 붙어 산 끝까지 뻗어 올라가는 모습이 기괴해 보인다. 아름답다할 수 없지만 매우 독특한다. 세계 어느 나라에 가더라도 이런 모습의 도시를 본 적이 없다. 우리네 달동네 판자촌이 고스란히 보존된 곳이라고 할까.
라파스는 우유니에서 페루 쿠스코로 넘어가는 중간 기착지 정도로 생각했다. 우유니에서 밤 10시 30분 침대버스를 타고 아침 7시 30분 라파즈 터미널에서 내리자마자 숙소로 직행해 자다가 다음날 아침 6시 비행기 편으로 쿠스코로 갈 예정이었다. 터미널에서 빠져나오자 우유니 숙소에서 인사한 강문 씨가 보였다. 센트로로 가는 길이라면 함께 택시를 타려고 반가운 척을 했다. 그는 현지 유심을 장착한 핸드폰으로 구글맵을 보면서 자기 숙소를 찾아가고 있었다. 염치없이 내 숙소 위치도 물어봤다. 그런데 숙소가 터미널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였다. 체크인하기엔 이른 시간이다.
강문 씨는 숙소에 짐만 맡기고 나와 케이블카(뗄레뻬리꼬)를 타고 라파즈 전역을 한 바퀴 돌 예정이라 했다. 그를 따라다니기로 작정했다. 라파스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으므로 강문 씨만 따라다니면 하루 투어 정도는 가능할 듯했다. 뗄레빼리꼬는 상상이상이었다. 가운데가 움푹 파인 접시 같은 분지 위를 떠다니며 도시 곳곳을 잇고 있다. 뗄레빼리꼬 노선은 11개나 있다. 라파스 외곽에 형성된 엘알토까지 이어진다. 엘알토는 라파즈 집 값을 견디지 못하고 밀려나간 이들이 산 넘어 지은 외곽 도시다. 도시 모양새나 건축 양식이 라파즈와 비슷하다.
강문 씨는 철저하게 조사하고 온 게 틀림없었다. 거칠 것 없이 여기저기 샅샅이 돌아다니며 도시 곳곳을 내려다보면 도시 관광을 즐겼다. 엘알토 빈촌에서부터 우리네 청담동 또는 분당 같은 곳까지 케이블카를 타고 갔고 마음에 드는 곳에서 내려 걸어 다니기도 했다. 이 친구를 만난 게 행운이다. 강문 씨가 아니었다면 내게 라파즈라는 도시의 이미지는 없었을 거였다. 기괴하면서도 아주 독특한 도시의 여행을 놓칠 뻔했다. 중남미에서 내 행운은 계속되고 있다.
강문은 한복에 갓을 쓰고 세계 곳곳을 다닌다. 가는 곳마다 현지인이 관심을 보이며 아는 척하는 게 좋아서 입기 시작했다. 갓을 일일이 손에 들고 다니거나 써야 하는 탓에 번거롭긴 하지만 여행지마다 자기 존재를 명확히 알리는데 유용해 즐겨 입고 다닌다. 나름 원칙이 있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처럼 관람 목적이 명확한 곳에는 도포와 갓을 하지 않는다. 자기에서 시선을 쏠린 나머지 예술품이나 골동품에 대한 관람을 방해할 것으로 우려한 탓이다. 이제 서른하나다. 프로그래머로서 일하다 그만두고 여행을 다닌다. 여행 마치면 다시 프로그래머 일을 한다. 프로그래머가 워낙 수요 초과 상태라 언제든지 그만둬도 재취업이 용이하다. 이 친구와 밤늦게까지 거의 모든 노선을 2번 이상 돌고 나서야 저녁 먹기 위해 식당으로 향했다. 대단한 체력이다.
다음날 새벽 비행기를 타야 하는 터라 숙소 근처 햄버거 집에서 간단하게 저녁식사를 먹고 헤어졌다. 숙소에 들어가니 미인 3명이 내 방에 나란히 앉아있었다. 4인 도미토리룸를 함께 쓰는 이들이 모두 유럽 여자들이었다. 깨어있는 영국인 로티, 독일인 에밀리와 인사했다. 앳된 여성 3명과 한방에 잔다고 하니 강문 씨가 너무 부러워했다. 그럼 뭐 하나. 내일 새벽에 일어나 떠나야 할 처지인데. 그래도 다시 얕은 사귐을 시작했다. 15분간 수다로 친해진 뒤 샤워하고 누웠다. 옆에서 로티가 쌕쌕거리며 잔다. 세계 여행하다 보면 혼성 도미토리룸에서 자주 묵지만 참 적응하기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