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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철현 Aug 10. 2023

남미 여행의 하이라이트, 아~ 파타고니아

평생 잊지 못할 인연 연거푸 만나 행복에 절여지다

지구 최대 폭포 악마의 목구멍, 압도적인 아름다움 


이과수는 원주민 과라니 족 언어로 큰 물이라는 뜻이다. 아르헨티나 쪽에 있는 악마의 목구멍은 수량, 기세, 외양 등 모든 측면에서 지구상 모든 폭포를 압도한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일거다. 초당 수억 톤의 물이 하얀 포말로 부서지며 무너져 내리는 힘이 가슴 꽉 차게 들어온다. 큰 물이 주는 공포는 포말로 부서져 내리다 이내 증발해 버린다. 보트를 타고 하류 폭포로 들어가 거품으로 폭발해 쏟아져 내리는 폭포 물을 온몸으로 받을 때는 폐 속 깊은 곳에서 비명이 입 밖으로 비어져 나온다. 옆자리에 앉은 소담과 나래는 흥분에 겨워 비명을 지른다.

이과수 폭포 브라질 사이드에서 본 무지개

이번 여행을 함께 하는 이들과 만나기 전에 홀로 브라질 쪽에서 이과수 폭포를 둘러보았다. 깔끔하게 정비된 트레킹 코스를 따라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너른 평지 곳곳에서 개별적으로 또 삼삼오오 잇대어 내리는 하얀 포말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큰 물이 평지를 넓게 흐르다 천리 낭떠러지를 만나 여기저기서 대책 없이 쏟아져 내리는 광경을 보며 걷다 보니 1시간 트레킹 코스가 끝났다. 트레킹 끝에 이르자 낭떠러지에서 거대한 물 커튼을 만들며 쏟아지는 큰 물을 바로 앞에서 볼 수 있다. 폭포가 일으키는 물보라는 폭포에서 50m 이상 떨어진 곳까지 날아와 여행객의 몸을 흠뻑 적신다.


브라질 트레킹 코스를 한 바퀴 돌고 나자 여행 동행자들이 도착했다. 준수는 웹소설가다. 조선이 개혁에 성공해 세계 강국이 된다는 얼토당토한 소설을 써서 인기를 얻고 있나 보다. 소담은 의사다. 인턴 마치고 레지던트에 들어가기 전 1년 쉰다. 쉬는 동안 혼자 남미 여행에 나선 거다. 소원은 의사답게 참 똘똘하다. 머리 회전이 비상하다. 그러면서도 차분하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은 기품도 갖추고 있다. 어리지만 만만히 보이지 않는 친구다. 나래는 병리사로 야무지다. 투어 도중 짜릿한 경험을 맞이할 때는 얼굴 가득 환한 미소가 터지며 비명을 지르며 흥분하다. 나래는 자기 아버지 사진도 보여주며 내가 자기 아버지랑 닮았다고 한다. 

이과수 폭포를 직관하면 지구 최대 규모의 폭포라는 말이 새삼 실감난다

가이드로 역할을 자청해 셋을 데리고 이과수 폭포 트레킹 코스를 다시 걸었다. 다시 봐도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웠다 즐거워하는 동행과 함께 이과수 폭포를 경험하는 것도 또 다른 기쁨을 주었다. 이래서 여행은 누구와 함께 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말이 나오나 보다. 소담과 나래에게 트레킹 코스를 안내하고 사진을 찍어주는 게 재미있었다. 잠시 맥주 한잔 하면서 셋과 짧은 대화를 나누는 것도 브라질 여행에서 얻지 못한 또 다른 색깔의 매력이었다. 모처럼 즐거웠다. 

이과수 최대 폭포 악마의 목구멍

이과수 폭포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삼국 국경이 접한 곳에 있다. 아르헨티나나 브라질 쪽 트레킹 코스를 따라 걷거나 공원 내 보트나 기차를 타고 이과수 폭포를 구경한다. 브라질 쪽 이과수를 구경하고 아르헨티나 쪽으로 건너와 미리 예약해 둔 한인민박에 묵었다. 70대 교포가 운영하는 민박집 그란티오는 멋지다. 너른 마당에 오렌지, 바나나 같은 열대 과일을 주렁주렁 달린 나무들이 심어져 있고 사람을 너무 좋아하는 개가 뛰어다니고 있다. 2층 야외 부엌에서는 아사도를 비롯해 아르헨티나 쇠고기를 그릴에 넣고 구워 먹었다. 말벡 와인 2병도 곁들였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2층 옥상 야외에서 지구 반대편에서 만난 한국인 4명이 여행의 추억을 공유했다.

한인민박에서 직접 해 먹은 아사도

그란티오 사장님이 별도로 불러 이것저것 물어보셨다. 그리고 한달살이를 권유하셨다. 사장님 가족이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사시는데 가끔 가족과 함께 지내고 싶을 때 내게 그란티오를 맡기고 싶다는 거다. 이로 인해 나는 언제든지 이과수 폭포 한인민박에서 살 수 있게 됐다. 사장님 집에 없을 때 집만 지키는 일로 무료로 먹고 자고 할 수 있다는 거다. 그것도 내가 희망하는 시간에. 이제 지구 반대편에 머물 곳이 생긴거다.

악마의 목구멍을 본 뒤로 웬만한 폭포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음날 아르헨티나 브라질 파라과이 국경이 맞닿은 곳에서 이과수 강을 본 뒤 아르헨티나 쪽 이과수 폭포를 보러 갔다. 이과수 폭포 하이라이트는 악마의 목구멍과 스피드보트 체험이다. 주체할 없을 규모를 쏟아져 내리는 폭포를 보고 그 이상은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보트를 타고 폭포물을 몸으로 받아낼 때는 흥분과 쾌감은 그 이전에 체험이 주는 역치를 넘어섰다.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감각이 머릿속에 깊이 새겨졌다. 결코 잊지 못할 순간일 게다. 볼리비아 우유니에서 하늘의 별을 보고 더 이상의 별은 없다고 말한 이가 있다. 이과수 폭포의 악마의 목구멍을 봤으니 내게 더 이상의 폭포는 없다. 폭포를 이걸로 일단락 지었다.


이과수 폭포를 뒤로 하고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들어왔다. 한인민박에 들어서자 미리 온 숙박객들이 아사도 잔치 벌이고 있었다. 잔치는 노래방으로 이어졌고 새벽 1시가 넘을 때까지 고성방가가 숙소를 가득 채웠다. 토요일이다 보니 밤늦은 시간까지 미쳐 날뛰는 걸 용인하는 듯하다. 여기서 토레스델파이네 W코스를 걷겠다는 20대 중반 청년들도 만나고 내가 갔던 리우 데자이네루에 간다는 항해사 친구도 만났다. 여흥에 아직 셀렘을 감추지 못하는 청춘들이다. 

이과수 폭포를 사이에 두고 아르헨티나 브라질 파라과이가 국경을 맞대고 있는 곳에서 


탱고 선율과 함께 질주한 부에노스 아이레스

부에노스 아이레스 이튿날. 일요일 맞아 부에노스 아이레스 중심가에 연다는 산텔모 주말시장에 나왔다. 가죽 제품부터 여성용 액세서리, 갖가지 수공예품을 파는 시장이다. 동행자 중 소담과 나래는 귀걸이, 팔찌, 목걸이를 샀고 나는 체 게바라가 그려진 티셔츠를 구입했다. 체가 평생 입었던 군복의 올리브색 바탕에 검은색으로 칠해진 체의 초상이 그럴듯하다. 2시간에 걸친 길거리 쇼핑이 끝나고 시장 끝에 있는 베트남 쌀국숫집에서 지금까지 먹은 쌀국수 중에서 가장 양이 많은 쌀국수를 먹었다. 곱빼기를 주문했더니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고 오히려 불어나는 쌀국수라니. 국수 위에 얹은 소고기만 먹어도 배가 부를 정도였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5월 광장은 핑크 궁전을 배경으로 사진 촬영하는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식사 끝난 뒤 우버를 타고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유럽인 이주가 시작된 곳인 항구 주변 라 보카로 이동했다. 어렸을 때 눈물 펑펑 쏟으며 봤던 일본 애니메이션 <엄마 찾아 삼만리>에서 이탈리아 소년 마르코가 엄마를 찾기 위해 아르헨티나에 첫발을 디딘 곳이 라 보카 항구다. 이곳에 정착한 유럽 이민자들이 삶의 애환을 달래고자 만든 유혹의 춤이 탱고다. 라 보카가 탱고의 발상지로 꼽히는 이유다. 

스페인 식민시절 총독부 관저

라 보카는 총천연색이다. 낡고 오래된 건물이 곳곳에 섰고 그 사이에 좁은 골목을 따라 댄서들이 탱고를 추며 호객하는 식당부터 갖가지 상점들이 즐비하다. 건물 외벽과 무너져 가는 골목 이면을 숨기려 세운 가벽이나 함석판은 직업 화가들이 총천연색으로 색칠해 동네가 알록달록하다. 오래된 항구 도시의 낭만이 탱고 선율을 따라 흐르는 곳이 라 보카다. 그러다 보니 여행객 다수가 가장 부에노스 아이레스 다운 곳으로 라 보카를 꼽는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여성들을 숙소로 돌려보내고 준수와 맥주 한잔 마시며 라 보카에서 한적함을 즐겼다. 

산뗄모 시장에 쇼핑 나온 소담과 나래

어두워지면 위험한 곳이라 해가 지기 전까지 맥주와 함께 남녀 댄서가 추는 탱고를 감상하다 석양이 물들기 시작하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숙박객 중에서 광고회사 사장이 있는데 그 친구가 칠레산 생연어 한 마리 구입해서 해체한다고 해서 저녁식사 시간에 맞춰 숙소로 돌아왔다. 한인민박에서 여행자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한 나머지 자기 돈으로 생연어를 구입해 회를 뜨고 마끼를 만들었다. 생전 처음으로 냉동 연어가 아닌 생연어를 다시마로 숙성한 연어를 맛보며 연어의 신세계를 맞이했다. 연어 회와 마끼, 비빔국수까지 먹으며 아르헨티나 산 말벡 와인을 밤늦게까지 마셨다. 파타고니아 W코스 트레킹을 막 끝내고 온 20대 중반 청년부터 우수아이아로 떠나는 50대 중반 광고회사 사장까지 남녀노소 10여 명이 여행담을 공유했다. 세계에서 가장 비용이 적은 스카이다이빙을 앞둔 여성 여행객 3명은 비교적 일찍 자리를 떴지만 새로 체크인하거나 뒤늦게 방에서 나온 여행객이 들어오면서 술자리 여흥은 고조되어 갔다. 

탱고의 발상지 라보카는 천연색으로 칠해져 있다

새벽 2시 넘어서까지 이어진 술자리 후유증 탓에 늦게 일어났다. 소담과 나래는 또래 청년 윤성, 종민과 스카이다이빙을 체험하기 위해 새벽까지 나갔다. 위에서 떨어지는 어떤 놀이도 싫어하는 터라 나는 스카이다이빙에 참여하지 않았다. 역시 가지 않은 준수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이라 불리는 엘아테네오에 갔다. 과거 극장이었던 건물을 서점으로 개조한 터라 내부 구조와 장식이 고풍스럽고 화려하다. 과거 무대였던 곳에 있는 커피숍에서 카페 솔로를 마시며 서점과 카페를 오가는 이들을 구경했다. 

라보카에서는 식당에서도 탱코를 공연한다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짐을 챙겨 다른 숙소로 옮겼다. 급속도로 친해진 종민과 윤성이 묵는 곳이다. 한인민박이 하루 35달러(4만 원 이상)이지만 근처 아르헨티나 호스텔은 하루 2300페소(7천 원가량)다. 시설은 아르헨티나 호스텔이 나았다. 윤성, 종민과 3인실을 함께 썼다. 종민은 32세 부산 청년이다. 여자친구가 인천에 사는 터라 자주 서울에 올라온다고 한다. 7월 중 서울에서 만나 술 한잔하기로 했다. 윤성은 잘생긴 여수 청년이다. 배우 박서준을 닮았다. 아프리카 여행을 구상이라고 해서 내년 아프리카 여행을 함께 가는 걸 계획하기로 했다. 이래서 여행이 좋다. 낯선 곳에서 만난 이들이 새 인연을 만든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일정의 하이라이트는 미켈란젤로 탱고 공연이었다. 오랜 연륜을 느낄 수 있는 할아버지가 탱고를 노래하고 피아노, 칠레, 바이올린, 손풍금 연주자들이 탱고 선율을 만들어내면 남녀 댄서들이 화려하면서도 관능적인 탱고를 선보였다. 탱고에 문외한마저 이민자들이 겪은 애환과 그들의 애달픈 사랑이 진하게 전해져 왔다. 1시간 넘게 진행된 공연이 끝난 뒤 종민과 나는 자정 무렵 5월 광장, 볼리비아 거리, 연방의회 건물을 잇따라 통과하며 부에노스 아이레스 중심가를 가로질렀다. 건장한 남자 둘이라 거칠 것 없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중심가를 자정에 활보하는 동양인이라니. 간이 배밖으로 나왔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가장 대중적인 공연 미켈란젤로 탱고


남미 땅끝 우수아이아, 마침내 왔다


남미 대륙의 남위 38°선 이남 지역, 파타고니아에 들어왔다. 남미 여행의 하이라이트다. 남북으로 길게 뻗은 안데스 산맥을 경계로 서부는 칠레, 동부는 아르헨티나다. 안데스 산지와 파타고니아 고원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한반도 다섯 배 면적이지만 인구는 희박하다. 마젤란이 거인들이 사는 곳이라 생각해 파타고니아로 불렀다고 한다. 첫 기착지는 땅끝마을 우수아이아다. 찰스 다윈이 비글호를 타고 태평양에서 대서양으로 지난 좁은 해협이 있는 마을이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면 녹음에 덮인 산의 정상마다 하얀색 페인트로 칠한 듯 눈과 빙하를 얹고 있다. 공항에서 나오자마자 정면으로 우뚝 솟아 오른 설봉이 병풍처럼 퍼져 여행객을 맞이한다. 보자마자 반했다. 일본 후지산이 100개 이상이 마을을 에워싸고 솟은 듯하다. 

우수아이아 앞으로 비글해협이 흐른다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오후 3시 30분 출발 비글해협 투어에 나섰다. 눈부신 햇살을 정면에 앉고 보트를 올랐다. 바다는 잔잔했다. 배가 좌우로 조금씩 흔들렸다. 해협 너머로는 거인이 사는 설산들이 사방으로 펼쳐지고 그 앞으로는 키 작은 남극 식물이 자라는 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느 섬에는 바다사자들이 배 깔고 늘어져 낯선 방문객들에게 몸매를 뽐냈다. 그 옆으로는 얼핏 펭귄으로 여기저기 모여있다. 섬 가까이 접근해 자세히 보니 펭귄 닮은 가마우지 새였다. 지가 펭귄인 척 연기하는 새가 있다고 하더니 진짜였다. 펭귄을 출현을 기대하던 나래가 “재들 펭귄 아니야. 막 날아다녀. 이제 안 속는다"라고 말해 빵 터졌다.  

뒤쪽에는 설산, 앞으로는 비글해협을 사이에 두고 길게 우수아이아 마을이 자리한다

접안 시설이 있는 섬에 내렸다. 섬 남쪽 끝에 다다르자 Fin del Mundo(세상의 끝)이라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 이른바 세상의 끝에 닿은 것이다. 남극 방향으로 펼쳐진 고산 준봉들이 여전히 눈앞에 있지만 인간은 그곳을 세상의 끝이라는 이정표를 만들고 싶었나 보다. 아무튼 세상의 끝에서 남극 방향을 한참 쳐다본 뒤 다시 보트에 올랐다. 비글해협 투어의 종착지 등대섬을 돌며 가마우지와 바다사자가 만드는 생태계를 지켜본 뒤 출발지로 방향을 선회했다. 하이라이트는 그때부터였다. 배 주위로 고래 한쌍이 보트 주위를 오가며 멋진 등과 꼬리를 드러냈다. 대놓고 다 드러내지 않고 여행객이 간절할 때쯤 잠깐 물 위를 날 듯이 헤엄쳐 떠올랐다. 나는 땅끝마을 우수아이아에서 야생의 고래를 본 것이다. 

비글해협을 따라 바다로 나가면 바다사자와 가마우지 떼를 쉽게 볼 수 있다

치안 걱정하지 않고 우수아이아 마을을 산책하듯 걸어 다녔다. 키 낮은 집들이 작은 언덕을 따라 아기자기에서 잇대어 있어 걷기 좋았다. 내일을 티에고 델 푸에라 국립공원을 걷는다. 그곳에는 땅끝 마을 끝자락에 우체국이 있다. 여행객들은 그곳에서 그리운 이들이나 자기 자신에게 엽서를 보낸다. 나는 누구에게 무엇을 보내야 하나. 자신에게마저 보내고 싶은 메시지가 없다. 자기가 그토록 가고 싶었던 곳에서 얻은 벅찬 감동을 전하고 싶은 대상이 없다니 실패한 인생이다. 엽서에 쓰기 창피해서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내게 엽서를 보냈다. 다음 생에는 그리 살지 말라고. 

우수아이아 설산을 드론 촬영했다


들이키는 숨마저 달콤한 티에라델푸에고, 그곳을 걷다


티에라델푸에라 공원은 꿈 속에 그리던 파타고니아가 다 있었다. 옅은색 하늘이 흰 구름 뒤로 펼쳐지고 하늘 빛을 담은 바다가 잔잔하게 물결치고 해안 너머로 하얀 빙하를 이고 있는 설산들이 병풍처럼 늘어섰다. 그 위로 매, 청둥오리, 갈매기들이 수면 위로 스치듯 나는 둘레길을 넋놓고 걸었다. 검은 진흙이 전날 내린 눈과 비에 섞여 질척였지만 트레킹 코스를 뒤덮은 나무 아래를 한발 내디는 걸음마다 음미했다. 들이키는 숨에 들어오는 공기는 달콤했다. 공기는 폐를 통해 전신에 퍼져 온 몸을 소생시키는 듯했다.  

푸에고 델 푸에이라 공원은 오감으로 산책하는 곳이다

3시간 남짓 걷기를 끝내고 도로에 나서자 지나는 셔틀버스가 우리를 픽업해 시내까지 데려다 주었다. 숙소에서 1시간 푹 자고 일어나 여행 동행자와 함께 시내로 나와 웨스턴유니온에서 돈을 찾으려다 실패하고 내일 아침 먹을거리만 샀다. 다른 여행자 2명이 먼저 가서 기다리는 100년 역사의 카페에서 진한 커피를 마셨다. 아주 오래된 소품으로 꾸며진 인테리어가 너무 좋았다. 동네 뒷산이 설산이고 앞으로는 비글해협이 흐르고 동네 커피숍은 100년 내력을 가진 곳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이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식사는 비글해협이 내려다 보이는 식당에서 현지 음식을 맥주에 곁들여 먹고 마셨다. 

숨까지 달콤한 티에라 델 푸에고

이번 여행은 운이 좋다. 다니는 곳마다 날이 좋아 리우 데자이네루 코파카바나 해변의 강렬한 햇볕을 즐길 수 있었고 이과수폭포에는 여기저기 무지개가 떴고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산뜻하게 단장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파타고니아 비글해협에서는 햇살, 소슬비, 눈까지 단 두시간 동안 자기 진면목을 돌아가며 보였다. 티에라델푸에고는 그냥 미쳤다. 걷기 딱 좋은 날씨가 완벽한 수채화를 만들어냈다. 독일인 안드레안은 걷다가 반바지로 갈아입고 바다에 입수하기도 했다. 참 좋은 날씨와 동행자들과 땅끝마을 저녁 비글해협이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잊지못할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 중남미는 내내 행운을 선사했다. 


운명의 장소 엘칼라파테, 난 이곳에 살거다


엘칼라파테는 내게 운명적인 장소가 될 듯싶다. 곧 한국을 떠나 여기서 살 것이라는 예감이 강하게 든다. 습도 높은 곳을 싫어하는데 엘칼라파테는 연강수량 100mm 이하 사막지대다. 모기나 파리 같은 잡벌레를 싫어하는데 이곳에는 잡벌레가 아예 없다. 한여름에 날파리가 간간히 날아다닐 뿐이다. 설산이 마을을 에워싸고 호수가 마을 끼고 자리 잡고 있다. 마을은 높낮이 크지 않은 분지에 키 낮은 관목이 자란다. 일출은 빨갛게 불타 오르고 일몰은 오렌지와 빨간 물감을 섞은 듯 하늘 위에 펼쳐진다. 차 타고 2~3시간 가면 남미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 피츠로이가 있다. 

엘칼라파테에서 엘찰톤 가는 길 루타 40은 한적해서 좋다

지금 묵고 있는 에코비스타의 사장은 땅부자다. 축구 경기장 2배 면적을 소유하고 있다. 그곳에 전 세계 여행객을 대상으로 한 호텔을 신축하고 계신다. 나보고 호텔 매니저를 하라고 하신다. 정이 넘치는 분이시다. 아르헨티나에 이민와서 40년 넘게 사셨다. 아르헨티나 전역을 돌아다녀봤는데 엘칼라파테가 사시기 가장 좋아 이곳에 정착했다고 한다. 

엘 칼라파테 하늘은 아침마다 붉게 타오른다

엘칼라파테는 천국으로 이어지는 오솔길 자락에 위치한 오아시스 같다는 느낌이 든다. 여러모로 내게 맞다. 마이크 타이슨이란 이름을 가진 맹견이 나를 무척 좋아한다. 어디 가도 따라붙고 내가 서 있으면 가만히 와서 자기 몸을 내 다리에 붙이고 서있다. 다른 개들이 접근하면 늑대로 돌변한다. 이 녀석을 사랑하게 되었다. 고기를 얻어먹을 수 있는 곳에 있다가도 내가 그 장소를 떠나면 나를 따라온다. 

붉게 타오르는 피츠로이 배경으로 앉은 소담

이곳에서는 뭘 하겠다는 욕심이 들지 않는다. 그냥 여유롭게 쉬고 싶다. 동행자들도 마찬가지나 보다. 오늘 하루 소담 나래 규진은 각자 개인 시간을 갖기로 했다. 소담은 헤드폰을 끼고 에코백을 들고 혼자 시내로 들어갔다. 카페에서 혼자 엘칼라파테의 오후를 즐기고 싶나 보다. 오후 늦게 나래가 도착했다. 이 친구를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나이 차가 많이 나지만 개의치 않고 여행 동행자로 쿨하게 받아줘서 고맙다. 우수아이아 티에라델푸에고 트레킹 코스를 걸을 때 나래는 “아빠랑 등산하는 것 같다"라고 말해 감동을 주기도 했다. 

청담색 에스메랄다 호수 위에 구름이 머문다 

규진이라는 친구가 동행으로 합류했다. 전 세계를 여행하고 있는 친구다. 나래와 동갑이다. 남미 여행을 끝으로 세계 여행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성격이 좋고 밝아 함께 여행하기 좋은 친구인 듯하다. 저 나이에 나는 별 대단치 않은 일에 몰두해 젊음을 소진시켰는데 아르바이트로 여행비를 마련해 세계 여행을 하다니. 멋지다. 그 나이 특유의 거침과 서툼이 보이지만 대체적으로 매력적이다. 


중남미 여행 첫 번째이자 최고의 행운과 헤어질 결심


헤어질 결심을 했다. 곧 닥칠 일이라 예상했지만 외면하고 차일피일 미뤘다. 소담과 나래는 중남미 여행의 첫 번째 행운이다. 함께 하는 내내 즐거웠고 유쾌했다. 여행 일정을 결정하고 숙소, 투어 예약 같은 일을 분담할 수 있어 스트레스도 줄었다. 카페나 레스토랑에서 함께 커피나 맥주를 마시는 시간이 소중했고 같은 투어에 참여하면서 멋진 곳에서 멋진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 이과수폭포 숙소에서는 그릴로 아사도를 요리했고 엘칼라파테에서는 소고기를 구워 먹었다. 천국으로 가는 길 같은 곳을 이들과 함께 걷고 있다니 행복했다. 따라서 이들과 헤어지는 건 힘겨운 결심을 요했다. 

남미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피츠로이 산 정상은 날이 좋은 아침이면 불타오른다

낯설고 멋진 곳을 보는 것 못지않게 전 세계에서 온 여행자들과 만나고 사귀는 것이 여행의 묘미다. 소담, 나래와 동행을 이어가면 제2의 소담이나 나래를 만날 수 없을게다. 소담과 나래도 나이 많은 아저씨보다 또래 여행자들과 만나는 게 좋을 듯했다. 엘찰텐에서 마지막날 또래 친구들과 밤늦게 술 마시며 즐겁게 대화하는 둘을 보니 헤어질 결심한 게 잘한 짓임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그 자리에 끼워 들어가 작별 인사했다. 

생전 처음 접하는 모레노 빙하

정 떼기에 들어갔다. 말을 줄였다. 만나는 시간을 크게 줄였다. 단톡방에서도 나왔다. 갑자기 저 아저씨가 왜 저러나 싶을 거다. 마침 토레스델파이네 W트레킹에 참여할 기회가 생겼다. 수개월 전 예약하지 않으면 참여하기 힘든 트레킹 프로그램이지만 윤성의 동행자가 예약을 양도해줬다. 소담과 나래는 토레스델파이네 등반을 포기했다. 피츠로이 등반에 질려서 당분간 산은 보기 싫은가 보다. 혼자 푸에르토 나탈레스로 떠나야 했다. 바릴로체, 살타, 우유니, 마추픽추 등지에서 만날 수 있겠지만 가능한 피하려 한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하루 숙소를 함께 썼던 윤성을 따라 움직이기로 했다. 

피츠로이의 일출을 드론 촬영하니 천국의 오아시스 같다

소담은 범접하기 쉽지 않은 기품을 갖춘 미인이다. 특유의 밝은 기운이 사람을 끌지만 마냥 친해지기 쉽지 않다. 판단이 정확하고 문제 해결 방법도 깔끔하다. 한마디로 똘똘하다. 버티는 힘도 만만치 않다. 새벽에 차 타고 3시간을 달려 잠도 자지 못한 채 피츠로이 정상에 올랐다. 피츠로이 구간은, 특히 정상까지 1km 구간은 등산 초보자에게는 오르기 힘든 난코스다. 소담은 폴 하나에 의존해 제시간에 올랐다. 놀라운 건 그전에 단 한 번도 등산 경험이 없었다. 힘들어했지만 끝내 지친 몸을 이끌어 피츠로이 정상이 일출에 불타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시간에 닿은 것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빙하를 밟았다

나래는 중남미에서 입양한 딸이다. 하루 세 번 이상 빵 터지게 한다. 피츠로이 등반 중 길을 잃었을 때 혜성처럼 나타난 잘생긴 중국인 궈에게 한눈에 반해 선두에 선 궈를 졸졸 따라다니며 한국어와 브로큰 영어로 소통하는 모습이 귀엽기 그지없었다. 등반 준비에 서툰 이에게 발목보호대를 채워주면서 “아 참 손이 많이 가는 사람이네"라고 말해 배꼽을 잡았다. 버스표를 사기 위해 터미널에 가서도 여기저기 매표소로 나를 이끌며 단어 위주의 영어로 표를 사주기도 했다. 나래는 감정 표현이 명확하고 거침이 없다. 내가 MZ의 전형을 좋아할 줄이야. 

금빛으로 반짝이는 피츠로이에서 만난 한국인 동행들

나중에 피츠로이를 되새길 때마다 소담과 나래를 떠오를 게다. 잇대어 솟은 삼각형 산봉우리 세 개에 스크린에 빛을 영사하듯 햇빛이 닿으면서 산이 빨갛게 불타오른다. 시각이 지나면서 빨강이 주홍, 주황, 금색으로 바뀌면서 경탄을 자아내는 광경을 연출한다. 내 생애 가장 멋진 일출이다. 아니 가장 멋진 햇빛의 작품이었다. 그 산을 배경으로 함께 등반한 여행자들이 줄줄이 섰다. 하나하나 경탄의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곳에서 우리는 각자의 경탄을 공유하면서 따로 또 같이 피츠로이 등반의 추억을 음미하고 공유했다. 

모레노 빙하 트레킹 끝나고 빙하를 탄 위스키 한잔

엘찰텐에서 엘칼라파테로 돌아가는 루타 40은 숨이 멎을 정도로 아름다운 길이다. 돌아가는 길에서 뒤돌아보면 구름을 머리에 이은 피츠로이가 멀리 보이고 그쪽으로 항해 단 하나의 도로가 뻗어나가는 모습은 생경할 만큼 비현실적이다. 차를 달리다 과나코와 타조 같은 동물이 달려 나가고 멀리 에멜라드 빛을 가득 담은 호수가 설산과 대조를 이루며 친상의 세계를 만들어낸다. 지구가 이리 아름다움 행성이라는 걸 새삼스레 깨닫는다. 


정 떼기가 마무리되어 쉽게 떠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 자만했다. 경비 정산하느라 나래와 대화하다 “그러면 나 서운해요"라는 말이 결심의 벽에 타격을 줬다. 소담이 보낸 장문의 메시지에 결심의 벽은 반파당했다. 버스를 기다리며 숙소 식당에 앉아있는 사이 규진과 소담이 찾아왔다. 내 눈치 보느라 조심하던 기색은 없어졌다. 결국 완전히 허물어졌다. 그럼에도 짐을 들고 터미널 향해 걸었다. 규진과 준수가 함께 터미널까지 동행했다. 이렇게 중남미 여행의 1장이 막을 내렸다.


파타고니아의 하이라이트, 토델파 W트레킹 


칠레 푸에르토 나탈레스에 들어왔다. 아르헨티나 엘칼라파테에서 푸에르토 나탈레스까지는 버스로 6시간가량 걸린다. 거리는 멀지 않지만 국경을 넘기까지 비포장 구간도 있고 양국 검문소에서 출입국 절차를 밟아야 하는 탓에 거리에 비해 시간이 걸렸다. 여행자들은 차 안에서 먹을 음식과 물을 챙겼다. 윤성과 나는 아무 준비 없이 버스에 오른 탓에 저녁식사를 하지 못한 채 6시간 내내 굶어야 했다.


통로 너머 옆자리에 앉은 독일인 니키아와 친해졌다. 전후 독일 산업 부흥부터 명장 롬멜까지 여러 주제로 대화를 나누다 니키아의 아르헨티나 여자친구부터 여행 일정까지 정보를 나누웠다. 버스라는 막힌 공간에서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다 보니 10년 지기처럼 가까워졌다. 니키아는 자기 이메일과 연락처를 줬다. 배고프다고 하니 자기 저녁 식량 일부까지 내게 건넸다. 그 모습을 본 칠레 여성이 수줍은 웃음을 숨기지 못하고 샌드위치를 주웠다. 졸지에 나와 윤성은 국제 원조의 대상이 되었다.

몸을 날려버릴만한 바람을 맞으며 파타고니아 평원을 걷다

탑승자 중 입국 절차에 하자가 있는지 아르헨티나 출입국 관리소 직원이 검문 절차를 질질 끌었다. 니키아가 답답해했다. 업무 처리가 늦는 남미 국가에 대한 불만까지 나왔다. 독일과 한국은 비슷한 점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후 경제성장이나 근면한 국민성, 업무처리 능력부터 성급함까지. 한국에 들어오면 연락하겠다는 니키아와 버스 터미널에서 헤어지고 숙박지 수르53(Sur53)에 도착했다. 4인 도미토리룸에 들어가니 영국인 아담이 반갑게 인사했다.

토레스 델 파이네 삼봉은 햇빛의 양에 따라 여러 비경을 연출한다

아담은 영국 런던 출신으로 중국 청두에서 영어 강사를 하고 있다. 얼핏 봐도 깔끔하게 잘생겼다. 성격도 참 좋다. 처음 만난 이에게도 선뜻 먼저 아는 척하고 단숨에 호감을 얻는다. 친절이 과하지 않았고 낯선 이에 대한 경계심이 없었다. 우리와 비슷한 일정으로 토레스델파이네 3박 4일 W트레킹에 나섰다. 트레킹 곳곳에서 이 친구를 만났다. 만나자마자 아담과 깊이 친해지겠구나라는 느낌이 들었다. 여행에서 아담과 같은 친구와 친해지는 게 여행의 즐거움이다.

설산을 옆에 두고 하염없이 걷는 W트레킹

W트레킹 동행자 재민과 니니를 만났다. 재민은 26세 청년으로 5년 만난 여자친구를 두고 남미 여행을 왔다. 밤마다 여자친구와 통화하고 좋은 곳에 가거나 맛있는 거를 먹다 보면 여자친구와 나중에 함께 하겠다는 다짐 하곤 한다. 몸무게 100kg에 육박하는 거구라 태산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늘 유쾌한 농담을 잘해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담당했다. 재민은 검도 선수 출신이라 작대기 하나만 잡으면 누구와 붙어도 제압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친구가 동행이라고 하니 듬직하기 그지없다. 남미 불량배들이 “치노(중국인)”라며 시비를 걸면 그냥 두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재민을 믿고. 

토레스 델 파이네가 가장 붉게 타올랐을 때 벅찬 감격에 온 몸으로 받으며 

니니는 면세점 업계에서 일하는 30대 중반 여성이다. 유통업에서 오래 일해서인지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능숙하다. 항상 상대방과 웃으며 대화하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태도가 몸에 배었다. 평소 등산을 다니지 않아 장기 산행이 힘들겠지만 자기 몫 배낭을 지고 “끙끙" 신음 소리를 내며 뒤처지지 않고 20대 중반 청년들의 산행 스피드를 따라온다. 짐 일부를 들어주겠다는 동행자들의 제안을 밝은 얼굴로 거절하고 묵묵히 지고 간다. 

W트레킹 중 가장 힘들었을 때 동행자 윤성이 촬영

평소 등산과 운동을 자주 다닌 이도 쉽지 않은 게 토델파 W트레킹 코스다. 잠자리나 먹는 게 시원치 않고 비와 바람이 심해 편히 걸을 수 있는 길이 아니다. 산장에 묵으며 비싼 식사를 사 먹으며 걷는다면 어렵지 않다. 우리 일행은 경비를 최대한 아끼려고 3박 4일 식량을 짊어졌고 텐트에서 야영했다. 니니만 체력 손실을 우려해 산장에서 묵었다. 그럼에도 니니는 산장에서 나눠준 런치박스를 우리 일행과 나눠 먹으며 우리와 함께 움직였다. 

W트레킹 동행 윤성과 함께 토레스 델 파이네 앞에서

트레킹 도중 자주 만난 아담과 애틋해졌다. 밝은 미소가 참 아름다운 청년이다. 서로 이메일과 전화번호를 주고받았다. 아담은 지금 중국에 머물고 있으므로 조만간 서울에 들어온다고 한다. 서울에 오면 만나 저녁식사라도 함께 하기로 했다. 시간 나면 내가 서울 가이드해 주고. 낯선 이국땅에서 만난 외국인에게는 쉽게 마음의 문이 열렸다. 


일행과 3박 4일 식량과 맥주를 사들고 숙소로 와서 짐을 챙기고 잤다. 파타고니아에서 가장 힘든 일정을 시작해야 한다. 가장 아름다운 일정이기도 하고. 다만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신경 쓰였다. 토델파 기후가 조변석개하므로 일기예보가 틀리길 바랐다. 


W트레킹 앞서 살토그란데에 흠뻑.. 천국 앞마당서 오수


토레스델파이네행 버스를 타고 3시간가량 달렸다. 우리는 서쪽에서 동으로 이동하며 트레킹 한다. 페리를 타고 파이네 그란데 산장으로 이동한다. 도착하자마자 그레이빙하까지 왕복 23km를 다녀온 뒤 산장에서 하루 묵는다. 다음날 파이네 그란데 산장을 떠나 프랑세스 전망대와 브리타이노 전망대를 오른 뒤 프랑세스 산장에 묵는다. 셋째 날은 칠레노까지 가장 먼 길을 이동하고 칠레노 산장에서 묵는다. 마지막날 새벽에 산장을 출발해 토레스델파이네 일출을 본다. 비만 오지 않으면 무난히 소화할 수 있는 일정이었다.  

W트레킹 출발점으로 가는 배를 이곳에서 탄다

첫날부터 꼬였다. 페리 선착장으로 이동하던 버스가 고장이 나 가도 서버렸다. 국립공원 관리사무소 직원도 난감해했다. 급히 선착장에 있는 버스가 출발했지만 오전 10시 페리를 타기는 불가능했다. 오전 페리를 놓치면 오후 6시 페리를 타야 한다. 그러면 하루를 날리는 꼴이 된다. 첫날 그레이 빙하까지 오가는 일정을 다음날로 미루고 파이네 그란데 산장에 도착하자마자 밥 먹고 자야 했다.  

혼자 살토 그란데 지나 멀리까지 가서 만난 설산

일행이 선착장에서 7시간 기다리는 동안 나 혼자서 살토 그란데(그란데 폭포)까지 걸어 올라왔다. 왕복 4시간 코스를 감탄하며 걸었다. 담청색 빙하물이 만든 호수와 폭포, 그곳의 주인공인양 턱 버티고 있는 설산을 보며 산길을 걷다 남미에 서식하는 낙타과 동물인 과나코들을 만났다. 걷는내내 바람이 거셌다. 72kg 나가는 몸을 날려 버리는 강풍을 뚫고 나아갔다. 길이 끝나는 곳까지 가다 보니 설산 앞에 담청색 호수가 조용히 자리 잡고 있다. 비경이었다. 그 앞에 서니 강풍이 몸을 밀어 하마터면 호수 아래로 떨어질 뻔했다. 아찔했다. 

트레킹 중 과나코 가족을 만났다

설산을 보고 바닥에 누웠다. 청아한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누워 고개를 들면 설산이, 몸을 반만 일으키면 담청색 호수가 오롯이 나만을 위해 천상이 비경을 연출하며 내 눈앞에 펼쳐졌다. 눈을 감고 공기를 들이켰다. 폐 속 깊이 들어온 바람에 몸을 띄우는 듯한 느낌이 들더니 5분가량 눈을 붙였다. 선잠이 들었다. 강풍이 머리카락을 흩트리고 가는 바람에 잠에서 깨 선착장으로 돌아섰다. 내려가는 길에 담청색 폭풍 위에 무지개가 떠서 나를 반겼다. 이런 자연을 갖고 있다니 아르헨티나와 첼리가 새삼 부러웠다. 파타고니아는 안데스 산맥을 기점으로 서쪽에는 칠레, 동쪽으로는 아르헨티나 땅이다. 

무지개를 이고 있는 살토 그란데

선착장에 도착하니 술파티가 벌어졌다. 내가 산 보드카를 우리 일행과 또 다른 한국인 여행자 재흥과 비우며 친분을 쌓고 있었다. 재홍의 동행 성민은 나를 찾아 나갔다고 하는데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그레이빙하에서 빙하를 타서 먹으려고 산 것인데 벌써 병 바닥이 드러났다. 그래도 재흥과 친해질 수 있어 그걸로 만족했다. 오후 6시 30분가량 배를 타니 파이네그란데에 도착했다. 저녁식사를 먹으며 다음날 일정을 논의했다. 20대 중반 청년 윤성과 재민의 주도로 사흘 갈 거리를 이틀에 주파하는 무리한 일정을 짰다. 나야 따라간다고 하지만 니니가 걱정됐다. 게다가 비까지 내리고 강풍이 불거란다.

살토 그란데 넘어 버티고 있는 설산


W트레킹 첫날 35km 강행군... 그레이빙하 유빙 맛보다


여행 내내 내가 가는 곳마다 날씨가 좋아 ‘날요(날씨요정)’이라는 애칭까지 얻었으니 혹시나 하는 기대가 없지 않았다. 날요라는 징크스가 힘을 발휘했는지 날이 너무 맑았다. 비 오고 강풍이 분다는 예보가 헛소리가 되었다. 역시 날요라는 칭찬까지 들으며 그레이빙하에 오르기 시작했다. 빙하까지는 가지 말고 중간 전망대까지 오른 뒤돌아서 다음 숙박지로 출발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그것만 해도 25km가 넘는 거리다. 윤성이 빙하까지 갈 수 있다고 고집했다. 그레이빙하까지 닿으면 하루 총 35km가량 걸어야 한다. 마음이 급해졌다. 

W트레킹 첫날 하이라이트 그레이 빙하

가장 느린 니니를 선두에 세우고 재민 윤성이 뒤를 따랐다. 이스라엘 청년이 똥 닦은 휴지를 태우다 파타고니아 산림을 홀랑 태워먹은 적이 있었다. 그 탓인지 여기저기 불타 죽은 고사목들이 눈에 띄었다. 그 산길을 따라 걷다 보면 빙하물이 내려 만들어진 담청색 호수가 바람결에 출렁이고 그 너머로 눈으로 머리를 곱게 치장한 산들이 잇대어 따라온다. 담청색 호수 위에서 빙하에서 떨어져 흐르는 짙은 푸른색 빙하를 볼 수 있다. 하늘에는 햇빛이 쨍하고 호수 위에는 빙하라. 숲 속 길에는 키 낮은 관목이 키 낮은 숲을 이루고 그 사이를 흐르는 냇물은 바닥을 다 드러낼 정도로 맑다. 갈증이 날 때마다 손으로 떠 마시면 몸이 자연에 정화되는 느낌이다. 폐 속 깊이 파고 들어오는 공기는 신선하고 달았다. 신이 인적이 드문 파타고니아 어디에 천국의 입구를 숨겨 두고 그 앞을 멋지게 꾸며 놓은 것 같은 풍경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W트레킹 내내 마주할 설산

재민이 니니를 챙기며 뒤처지는 사이 윤성과 나는 달리다시피 치고 올라갔다. 윤성은 신발이 맞지 않아 아킬레스건 쪽 통증이 상당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걸었다. 윤성이 고통으로 처지면 내가 앞장서서 끌었다. 내리막에서는 달리듯 내려갔고 오래막에서는 미끄러지 않게 베이비스텝으로 딛고 올랐다. 앞서 가던 유럽인이나 중남미인들을 젖혔다. 쉬지 않고 4시가량 오르다 보니 니니와 재민은 이제 그만 가겠다며 먼저 돌아섰다. 윤성과 나는 빙하 앞 산장을 지나쳐 더 내달렸다. 니니 재민과 헤어지고 200m가량 갔더니 빙하에서 떨어져 나온 유빙들이 모여있는 곳에 닿았다. 아무도 없었다. 윤성과 나는 미쳐 날뛰었다. 하트 모양 빙하 조각을 들고 사진도 찍고 빙하 조각을 떼어 입에 넣었다. 한참 호숫가까지 떠내려온 빙하를 감상하다가 서둘러 하산하기 시작했다.  

호수 따라 내려오는 그레이 빙하

올라오는 동안 보지 못했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태어나 그날까지 본 자연경관 중 가장 아름다운 곳을 눈에 담고 입으로 경탄의 신음 소리를 내뱉으며 내 발로 밟고 내려왔다. 이걸 보지 못하고 죽었다면 억울했을 거라는 메시지를 여사친 성희에게 톡으로 보냈다. 바로 니니와 재민을 따라잡았다. 곧이어 페리 선착장에서 친해진 다른 한국인 여행자 성민과 민홍을 만났다. 이들은 빙하 앞 산장을 예약했다. 반갑게 인사하고 기념사진도 촬영하고 돌아섰다. 발걸음이 빨라졌다. 파이네 그란데에서 짐 챙겨 서둘러 다음 숙박지인 프란세스 캠핑장으로 이동해야 했다. 급히 늦은 점심을 해서 먹고 길을 나섰다. 극지방에 가까워서인지 다행히 늦게까지 밝았다. 3시간가량 사투를 벌이며 산장에 도착했다. 

그레이 빙하 끝자락까지 전진해 하트 모양 빙하를 발견했다

프랑세스 산장은 열악했다. 취사 공간도 비좁고 춥다 보니 씻기도 만만치 않았다. 로지와 캠핑장 사이도 많이 떨어졌다. 니니가 묵는 도모(돔 모양의 산장 숙소)까지 가서 샤워하고 돌아왔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강풍이 불면서 기온이 급하게 떨어졌다. 윤성이 개인 텐트를 치려 했다. 재민과 나는 기설치된 텐트를 예약해 잘만했다. 비가 많이 내리자 윤성이 개인 텐트 치는 걸 포기하고 우리 침대에서 함께 자기로 했다. 도모에서 혼자 불멍하다 텐트에 돌아왔더니 재민과 윤성이 자고 있었다. 가운데 자리에 침낭을 펴서 있으니 내 자리로 남겨 놓은 듯했다. 당초 2인용 텐트인 데다 재민의 덩치가 어마어마하고 윤성의 어깨도 장난이 아닌 터라 비좁은 곳에 파고 들어가 누우니 양쪽에서 압박했다. 밤새 비가 와 텐트 가에 물이 새 들어왔다. 재민과 윤성이 본능적으로 비를 피해 안쪽으로 움직이다 보니 내가 중간에 꽉 끼는 꼴이 되었다. 잠을 못 잤다. 큰일이었다. 잠을 못 잔 채 비가 오고 강풍이 부는 최장의 코스를 하루종일 걸어야 한다.


살인적인 강풍 뚫고 칠레노 도착...목숨 건 트레킹 코스


20대 청년 둘 사이에 끼어서 칼잠을 자다 보니 컨디션이 최악이었다. 윤성은 하루 더 묵더라도 프란세스와 브리타니오 전망대까지 보고 가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전날에는 나도 함께 하려 했으나 아침 몸 상태를 보니 그럴 형편이 아니었다. 다른 일행이 전망대 포기하고 바로 칠레노로 이동하자고 제안했다. 나까지 칠레노 직행에 합류하니 윤성도 마지못해 W코스에서 가운데 튀어나온 부분 일부를 포기하고 칠레노로 이동하는 대열에 합류했다.

악천후 탓에 악전고투하며 W트레킹 중 

윤성의 컨디션이 갈수록 나빠졌다. 여행 초기 신발을 포함해 속옷까지 모두 도난당하는 바람에 싼 값에 트레킹화를 사야 했다. 이 트레킹화가 문제를 일으켰다. 발뒤축이 튀어나와 아킬레스건을 지속적으로 쓸다 보니 고통이 점점 심해졌다. 또 브라질 리우데자이네루에서 서핑을 배우다가 무릎을 다친 탓에 내리막에서 고생해야 했다. 이쯤이면 트레킹을 포기하기 마련이다. 윤성은 진통제까지 먹으며 일정대로 걸었다. 우리 일행 중 가장 앞서 걸었고 개인 텐트를 갖고 다니느라 짐이 가장 무거웠다. 감탄을 자아낼만한 근성이었다. 이 친구는 앞으로 무엇을 하든 성공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외모는 박서준과 주지훈을 섞어놓은 듯한 미남이다. 아프리카부터 중남미까지 장기 여행하며 극한의 여행 조건을 감내하며 자기 한계를 실험하고 있다. 


내 컨디션도 갈수록 나빠졌다. 일행과 떨어져 먼저 치고 나갔다. 일행과 보조를 맞추자니 가다 서다를 반복해야 했고 내 등산 리듬이 깨졌다. 일단 내 몸을 챙겨야 일행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을 수 있었다. 말도 최대한 아꼈다. 조금이라도 쉬려고 앉으면 졸음이 쏟아졌다. 이대로 잠들다가는 저체온증으로 죽을 수 있겠구나 생각마저 들었다. 다시 일어났다. 비상식량으로 에너지를 유지하며 묵묵히 걸었다. 왼쪽으로는 눈을 머리에 쓰고 있는 설산이 거인의 걸음으로 옆에서 쫓아왔고 오른쪽으로 담청색 호수가 끝도 없이 출렁거리며 이어졌다. 비가 오락가락했다. 침낭이 젖기 시작했다. 강풍이 돌발적으로 불면서 몸을 날렸다. 흩어진 균형을 잡으며 다시 걸었다.

W트레킹 코소는 숨가쁘게 아름다운 비경이 연이어 펄쳐진다

칠레노 산장에 가려면 바람의 평원을 지난다. 바람이 거세 몸을 가누기 쉽지 않았다. 오르막길로 접어들어 산허리를 감고 돌아나가야 하는데 그 정상에 올라서니 한발 내딛기도 힘든 바람이 정상 가까이에 오른 여행객들을 꼼짝 못 하게 있었다. 자칫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을 듯해 암벽에 붙어 몸을 낮췄다. 나와 비슷한 모양으로 여기저기서 여행객들이 누워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당일 예정되어 있던 토레스델파이네 1일 투어는 강풍 탓에 모두 취소되었다고 한다. 5분가량 바닥이 붙어있어도 바람이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때 바이킹이 나타났다. 덩치가 크고 뼈가 억센 북유럽인 하나가 내 몸을 붙잡고 강풍 구간을 정면 돌파했다. 정면으로 오는 바람을 허벅지 힘으로 버티고 머리를 45도 전망으로 기울여 나를 끌고 앞으로 나갔다. 나는 바이킹 몸을 밀착했다. 날마다 3시간 이상 근력과 유산소 운동으로 다져진 몸이라 힘이라면 자신 있었지만 토델파 강풍은 이겨내지 못했다. 

같은 산이라도 보는 각도에 따라 또 다른 아름다움을 뽐낸다

바람이 덜 부는 곳에 나를 내려놓은 뒤 바이킹은 다시 바람 속으로 치고 들어갔다. 초인이 따로 없었다. 이 녀석을 다음날 토델파 일출을 보고 내려오다가 다시 만났다. 먼저 나를 아는 척했다. 고맙고 반가운 나머지 이 녀석을 끌어 앉았다. 대화 하나 나눈 적 없는 생면부지의 사람 간에도 3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안에 이만큼 충실하고 간절한 감정을 만들 수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산 정상은 푸른 빙하를 이고 있다 

오후 5시쯤 칠레노 산장에 간신히 도착했다. 따뜻한 물에 커피를 타서 마셨다. 평소 설탕을 넣지 않았지만 이날만큼은 설탕을 듬뿍 타서 마셨다. 뒤에 올 일행을 위해 커피를 타서 보온병에 넣었다. 알고 하니 그 커피를 무료가 아니고 3천 페소나 내야 했다. 그냥 무시했다. 이곳에서는 화장실 쓰려면 1천 페소를 내라고 적혀있었다. 이 또한 무시했다. 한참 기다리니 윤성 재민 니니 순으로 칠레노 산장으로 들어왔다. 모두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윤성도 컨디션이 좋지 않은 탓에 니니를 재민에게 맡기고 혼자 움직였다고 한다. 재민이 니니를 내내 챙겼다. 우리 중 가장 컨디션이 좋았다.

비바람을 똟고 길을 가는 트레커들

전투식량으로 저녁을 때운 뒤 몸을 말리자마자 침낭에 들어갔다. 일단 잠을 자야 했다. 오후 8시부터 누웠다. 뜨거운 물을 담은 등산용 물병을 침낭 안에 넣고 잤다. 텐트를 함께 쓰는 재민이 워낙 잠버릇이 좋아 푹 잘 수 있었다. 다음날 새벽 5시에 일어나 토델파 삼봉에 올라야 한다. 삼봉 벽에 펼쳐질 일출의 장면을 보는 것이 W트레킹의 하이라이트였다. 이를 놓칠 수는 없다.


W트레킹 하이라이트 토델파 일출 직관... 천상의 미


새벽 5시 30분 칠레노 산장을 출발했다. 전날 충분히 잔 덕에 몸이 가벼웠다. 조명을 가진 일행 뒤에 붙어서 2시간가량 걸어 정상에 도착했다. 토레스델파이네 삼봉은 엘찰텐에 있는 피츠로이 삼봉과 비슷하게 생겼다. 얇고 넓고 평평한 화강암 스크린 3개가 나란히 서 있는 봉우리 밑에 호수가 자리했다. 피츠로이 삼봉이 곱게 꾸민 아름다운 여인의 성장이라면 토델파 삼봉은 거칠고 웅장한 남성의 야성이 돋보인다. 특히 삼봉 아래로 호수에 접한 벽면이 사선으로 긁혀 인상적이었다. 울버린이 갈퀴로 긁어놓은 듯한 선들이 강렬하게 눈에 들어왔다. 어둠 속에 잠들고 있던 삼봉이 해가 들면서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차츰 사위가 밝하지는가 싶더니 삼봉은 빨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추위와 바람을 피해 바위 위에 붙어있다가 삼봉 정면으로 자리를 옮겼다.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러댔다. 카메라에 담긴 색이 더 빨갛다. 일행과 만나 기념 촬영도 했다. 어느 순간 추위를 느끼지 못했다. 산비탈을 오르내리며 구경하다 촬영하다 정신없었다. 그러다 아담을 만났다. 다시 촬영을 부탁했다. 이 자식은 벌써 다섯 번째 우연히 만난다. 오래 볼 인연인 듯하다. 다시 비탈길을 서둘러 오르다 큰 돌덩이를 굴러 내리게 했다. 밑에 있던 영국인 무리들이 인상을 찌푸렸다. 고의는 아니었지만 미안해 어깨를 으쓱하고 다시 올랐다.

W트레킹의 하이라이트 토레스 델 파이네 삼봉의 불꽃쇼

피츠로이나 토델타 삼봉 중 하나라도 보면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하던데 나는 둘 다 봤다. 그것도 빨갛게 불타는 모습을. 시간이 지나면서 구름이 다가왔다. 구름의 그림자가 삼봉 정상 부분을 검게 잠식해 들어갔다. 빨갛게 불타던 삼봉도 점차 짙은 노랑으로 변한 빛을 반사했다. 그것도 구름이 가리지 않은 허리춤만 빛이 내리면서 섬광 같은 빛줄기가 잇대어 있는 삼봉을 가로질러 비췄다. 장관이었다. 넋을 놓고 볼 수밖에 없었다. 이걸 보지 않고 죽는다면 억울한 일이다. 언제 또 볼까 싶어 돌아서는 발길을 붙잡고 서서 다시 봤다. 눈에 새기고 싶었다. 내 뇌리 깊숙이 박아놓고 싶었다.


오전 11시까지 산장에 가서 짐 챙겨 센트럴까지 이동해야 했다. 컨디션이 좋다 보니 한 시간 만에 내려왔다. 산장에 도착해 산장 직원들과 친해져 직원들 식사를 얻어먹었다. 능글맞게 친한 척하니까 함께 먹자고 하더라. 시리얼 3봉을 우유에 넣어 폭풍흡입하고 빵 4개를 연거푸 먹으니까 직원들이 버터까지 내줬다. 오렌지 주스도 2통 해치웠다. 걸신들린 줄 알았을게다. 전날 전투식량 조금만 먹고 일찍 누웠으니 배고플만했다. 배 터지게 먹고 나니 일행들이 내려왔다. 다른 친구들은 직원 식량에 손을 대지 못했다. 그들이 도착할 때쯤 아침상을 치워버린 탓이다. 나 혼자 포식해 미안한 나머지 샌드위치를 사서 건넸다. 숙소 직원들 몰래 담아놓은 오렌지 주스도 줬다.

불에 타 고사목 사이를 지나 설산을 에돌았다. 

아침식사 마치고 센트럴까지 걸었다. 오후 1시 버스를 타야 라구나 아르마라스에서 푸에르토 나탈레스행 오후 3시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센트럴에 정오 조금 넘어 도착했다. 다른 일행이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라구나 아르마라스까지 걸어가로 했다. 서둘러 걸으면 1시간 30분이면 도착한다고 했다. 무거운 짐은 일행에게 맡기고 백팩 하나 메고 뛰기 시작했다. 토레스델파이네 산을 뒤에 하고 파타고니아 평원을 뛰었다. 바람이 집요하게 쫓아왔다. 어쩔 때는 뒤에서 밀어 추진력을 더했고 어쩔 때는 옆에서 강타해 몸을 날렸다. 가끔 정면에서 치고 들어 들어와 바람 속을 걸어야 했다. 그 와중에 해는 눈부시게 빛났고 하늘은 명징하게 파랬다.


걷다 뛰다시피 하니 라구라 아르마라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시계를 보니 1시간 10분 만에 도착한 것이다. 5분 지나자 버스가 도착했다. 버스보다 빨리 온 셈이다. 버스가 20분 연착되는 바람에 버스보다 빨리 올 수 있었다. 정류장에서 또 아담을 만났다. 그리고 보니 이 친구와 찍은 사진이 없었다. 서둘러 불러 정류장 배경으로 촬영했다. 이 친구와 서울에서 만날 거다. 함께 버스 타고 푸에르토 나탈레스까지 돌아왔다. 재민의 제안으로 나탈레스에 있는 일식집에 가서 미소 라멘에 쌀밥 세공기 말아서 먹고 맥주 사들고 에어비앤비 숙소로 들어왔다.  

파타고니아 바람은 성인 남자의 몸을 날려버릴만큼 강했다
26시간 버스 타고 파타고니아 종단해 바릴로체에 닿다


일상의 여행으로 돌아왔다. 이제부터 혼자 여행한다. 헤어진 일행이 그리워지기도 하고 홀로 움직인다니 홀가분하기도 하다. 함께 있으면 신경 써야 하고 혼자 있으면 그리워지는 게 사람인가 보다. 푸에르토 나탈레스에서 윤성과 헤어진 뒤 엘칼라파테로 홀로 돌아왔다. 이곳에서 묵으며 다음 여행 일정을 구상했다. 걸어서 20분 떨어진 린다비스타에 들렀다. 아르헨티나 여행 정보에 빠삭한 린다비스타 주인장에게 다음 여행 일정을 짜는데 도움을 받기 위해서다. 

스위스 이민자들이 조성한 아르헨티나의 스위스 마을 바릴로체

린다비스타에서 뜻밖의 귀인을 만났다. 린다비스타 주인장의 따님이 귀중한 여행 정보를 주었다. 세 살에 아르헨티나에 와서 줄곧 현지인과 교육받으며 살아온 터라 한국어보다 스페인어를 훨씬 익숙한 친구다. 한국에 잠시 체류했다가 남자 친구도 생긴 터라 곧 다시 한국으로 간다고 한다. 이 친구 이름은 진이다. 진이는 25년간 아르헨티나에 살면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살타를 꼽았다. 사막이 보여줄 수 있는 온갖 신비로운 자연이 가득한 곳이란다. 당초 살타행 비행기표도 취소하고 아타카마로 가려했던 경로를 수정했다. 아타카마 사막보다 훨씬 아름다운 곳이 살타라고 한다. 

바릴로체는 크리스마스가 가장 아름다운 마을일 듯하다

진이 조언대로 살타 여행 정보를 찾아봤다. 외계 행성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 가득한 곳이다. 큰 마음먹고 16만 원 넘는 사흘간 투어를 예약했다. 그다음 밀린 잠을 잤다. 저 세상에 잠깐 다녀왔나 싶을 정도로 푹 잤다. 사모님이 손수 차려주신 닭곰탕에 멸치볶음, 된장에 상추쌈으로 포식하고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살타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바릴로체로 가야 한다. 엘칼라파테에서 바릴로체까지는 버스로 26시간을 달려야 한다. 내 생애 가장 오랫동안 버스를 탔다. 졸다 깨다 하면서 누워 가는 여행이 나쁘지 않았다. 창문 밖으로는 파타고니아의 사막, 설산, 호수, 야생 동물들이 잇달아 나타났다 사라졌다. 버스 타고 파타고니아의 모습을 구경하며 파타고니아를 종단하다니 이것도 멋진 여행이다. 체 게바라가 지금으로부터 90여 년 전에 모터사이클을 타고 지나간 길일게다.  

26시간 지나 바릴로체에 들어갔다. 버스터미널에서 숙소까지 걸어서 15분 거리. 숙소에 들어가니 브라질 히바우가 반갑게 맞이한다. 리우데자이네루 출신인 히바우는 아르헨티나 여인과 결혼해 아르헨티나에 살고 있다. 이 친구가 내게 저녁 준비하고 있으니 함께 먹자고 제안한다. 제안을 거절하지 못하고 식당에 내려갔으나 다른 동료들이 함께 앉아 있었다. 눈치 보니 돈을 갹출해 음식 재료를 장만해 요리하고 있는 듯했다. 한 푼 내지 않고 먹기가 눈치 보여 정중히 거절하고 방 안으로 들어와 뜨거운 물로 샤워했다. 


혼자 즐기는 낯선 여유가 좋다. 낯선 친구들과 깊지 않은 얕은 사귐도 편한다. 깊은 사귐은 상처를 남긴다. 내일 살타로 들어간다. 그곳에서도 깊지 않은 얕은 사귐을 기대한다. 전 세계에서 온 친구들과 얕게 사귀며 나흘을 보낸다. 살타에서 볼리비아 우유니로 넘어가는 버스 편이 있다. 영화 스타워즈에서 나오는 외계행성에서 나흘간 영화처럼 보내고 드디어 꿈에 그리는 우유니 소금사막으로 간다. 제발 고산병이 없길 기원한다. 천국에서 지옥을 맛보고 싶지 않다.


카파예테 투어 첫날, 졸다가 타투인 행성에 착륙하다


속이 좋지 않아 자는 둥 마는 둥 하다 일어났다. 새벽 4시 일어나 짐을 챙겼다. 4인실 체크아웃해야 하고  투어 다녀온 뒤 6인실로 옮긴다. 살타 북쪽 200km가량 떨어진 카파야테 투어에 나선다. 투어사 직원이 아침 7시 픽업한다고 해 아침을 서둘러 먹었다. 마음만큼 풍체가 넉넉한 직원이 정문을 열고 들어와 나를 찾았다. 밴을 타서 앞자리에 앉았다. 도시 곳곳에 흩어져 있는 투어 예약자를 일일이 픽업하느라 작은 도시를 한참 돌아다닌 뒤 밴은 북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아침 내내 부슬비가 내렸다.

카파야테 가는 길에 들른 후후이 마을

지난밤 잠을 설친 탓에 밴에 타자마자 잠이 들었다. 3시간가량 졸다 깨다 했다. 그러다 잠에서 깼는데 영화 스타워즈의 타투인 행성에 납치된 게 아닌가 싶은 풍경이 펼쳐졌다. 어느새 비는 그치고 뜨거운 태양이 화사한 빛을 내리고 있었다. 붉은 지층이 시루떡처럼 포개져 오른 산들이 잇대어 나타나더니 팽이버섯 같기도 하고 개구리 같기도 한 갖가지 모양의 돌조각들이 산 표면을 뒤덮고 있었다. 끌로 긁어놓은 지층은 휘어지고 굽어지며 요동치고 안쪽으로 파고들면서 신비로운 협곡을 만드는가 하면 하늘이 트인 동굴 같은 지형을 숨겨 놓고 있었다.


산 언저리에서 아나킨 스카이워커나 타투인이 나타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풍경이었다. 땅 위에 물은 표면을 얕게 흐르며 퍼져가고 기묘한 산 너머로는 희뿌연 구름을 머리에 이고 있는 설산이 어깨를 맞대며 병풍을 이루고 있다. 파타고니아가 신이 일필휘지로 그린 채색화라면 살타 북부 카파예테는 정과 끌, 그리고 조각칼로 섬세하게 다듬은 조각이라고나 할까. 겸재 정선이 파타고니아를 그리면 최선일 듯하고 카파예테는 미켈란젤로 조각에 어울리는 곳이라 할까.  

습곡 활동으로 만들어진 지층의 병렬이 아름다운 고싱다

아르헨티나에는 악마의 목구멍이 2개 있다. 이과수폭포에서 가장 압도적인 광경을 연출하는 폭포수와 카파예테에 있는 협곡이다. 시루떡처럼 층층이 포개진 지층이 수직으로 작용한 힘으로 인해 뒤틀리고 말려들어가며 평행의 선들이 잇대어 굽어지며 이어져 말려 올라가고 밀려나간 공간은 공연장으로 쓰여도 될만한 암벽 속 공간을 만들었다. 조금 더 지나면 Anfiteatro(원형 경기장 또는 공연장)이라는 일컫는 협곡 속 동굴에는 기타 하나 든 이가 이곳에서 남미 특유의 구슬픈 곡조를 연주하고 있다. 이곳에서 노래를 부르면 암벽에 부딪혀 오는 소리가 반향을 일으키며 청아하게 울린다.

이날 여행에서는 귀한 친구를 만났다. 오스트리아인 티노다. 여행자 다수가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 같은 유럽인이고 동양인은 달랑 나 혼자였다. 티노는 줄곧 내게 말을 걸어왔다. 키 188cm로 잘 생긴 금발의 청년은 배려심까지 갖췄다. 독일어 영어 스페인어를 구사하고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엔지니어로 일한다. 정말 다 갖춘 친구가 있구만. 이 친구 소개로 독일인 쌍둥이 자매와 학생들과 어울리며 친해졌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아타카마로 가는 버스 티켓을 예매하려고 버스정류장에서 내리려 하자 티노는 내게 왓츠앱 번호를 물어봤다. 나중에 계속 연락하자는 거다. 

해발 3600m 소금사막을 정처 없이 걷다


살타 여행 둘째 날. 역시 아침 내내 내리던 부슬비가 산악 지방으로 넘어갔더니 그쳤다. 바람은 차지만 햇빛은 눈부시게 내렸다. 아르헨티나와 볼리비아 국경 근처 후후이는 기기묘묘한 산악 지형과 소금사막으로 유명한 곳이다. 살타에서 3시간을 달려 꼬불꼬불 산길을 끝도 없이 올랐다. 이러다 하늘에 닿을 듯싶었다. 형언하기 힘들 정도로 기괴하게 생긴 산악 지형을 눈 빠지게 보다가 갑자기 졸렸다. 경미한 고산병 증세다. 평소 낮은 곳에 살던 사람이 해발 3000미터 이상 높은 곳에 오르면 졸린다고 한다. 그러다 갑자기 깼다.

태어나서 가장 높은 곳을 디뎠다. 아르헨티나 북부 후후이 지역 고산 4170m에 밴을 타고 올랐다. 밴에서 내렸더니 어지럽고 호흡이 거칠어지고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두통, 호흡 곤란, 압박감 같은 심각한 증세는 없었다. 아르헨티나에서 멘도자 아쿤카와 산(6900m) 다음으로 높은 산에 올랐는데 증세가 경미해 다행이다. 그곳에서 조금 내려온 곳에 있는 소금사막 살리나스 그란데(해발 3600m)에서는 증세가 아예 사라졌다. 드넓은 소금 사막에 신기해 뛰었더니 바로 어지러움과 호흡곤란 증세가 나타났다. 여행 가이드 몬세라트가 뛰지 말고 호흡을 가다듬으라는 조언을 따랐더니 평정을 되찾았다.

태어나 가장 높은 4170m 고산에 발을 딛고 섰다


선글라스 없이는 눈 뜨기도 힘든 소금 사막을 정처 없이 걸었다. 먼 옛날 바다가 융기해 생긴 곳이 소금사막이다. 비가 오면 소금이 올라오고 마르면 갖가지 다각형이 거북이 등껍질처럼 이어진 하얀 세상이 펼쳐진다. 이곳에 다시 비가 내려 물이 잔잔하게 고이면 하늘을 반사하는 거대한 거울이 생긴다. 볼리비아 우유니에 가기 전 전지훈련 삼아 왔는데 이곳 자체로 생경해 넋을 잃고 걸어 다녔다. 가이드가 살리나스 그란데에서 그처럼 걸어 다니는 거 보면 우유니에서도 별 문제없을 거라고 단언했다. 다행이다. 지금 가장 무서운 건 고산병이다.

무지개산 앞에 자리한 마을 

아르헨티나와 볼리비아 국경 부근 푸르마마르카에서 또 귀인을 만났다. 투어 일행과 점심식사를 먹기 위해 식당에 앉자 맞은편에 독일 여성 시시와 패키가 앉았다. 자연스레 인사를 나눴고 여행 일정을 공유했다. 시시와 패키는 6주째 남미를 여행하고 있다. 다음 행선지는 아타카마다. 이곳에서 1박 2일 일정으로 우유니로 넘어간다. 그런데 17일 새벽 1시 버스 편으로 넘어간단다. 어제 혼자 투어 버스에서 내려 버스터미널까지 30분 걸어 예약한 버스 편과 같다. 그니깐 17일 새벽 1시에 살타에서 아타카마로 가는 버스 편을 예약한 사람과 우연히 점심식사를 함께 하는 거다. 우연이 만든 인연 덕인지 한국인 아저씨와 독일인 소녀 2명은 금세 친해졌다. 결국 아타카마에서 우유니로 넘어가는 1박 2일 코스도 함께 하기로 했다.

후후이 고지대에 자리한 소금사막

점심식사 마치고 푸르마마르카를 한 시간 산책하면서 마지막 남은 어색함마저 없앴다. 이들과 함께 아타카마 사막을 4륜구동 차량으로 건너 우유니로 들어간다니 기대가득이다. 중남미는 내게 행운의 땅이다. 꼭 필요할 때 필요한 인연을 보내준다. 


우마우아카에서 멕시코 노신사 에밀리오 덕에 무전취식 위기 모면


아르헨티나 최북단 마을 우마우아카까지 왔다. 최남단 마을 우수아이아 Fin del Mundo(세상의 끝)에 발을 내디딘 이래 엘칼라파테 모레노 빙하, 엘찰텐 피츠로이, 칠레 토레스델파이네, 바릴로체, 살타를 거쳐 볼리비아 국경 근처 우마우아카에 온 것이다. 안데스 산맥을 따라 아르헨티나를 남북으로 쭉 뻗은 루타 40을 따라온 것이다. 남쪽에는 유럽 이주민들이 조성한 마을이 많다 보니 이탈리아나 스페인 사람처럼 생긴 이가 많이 보인다면 북쪽에는 아메리카 원주민 후예로 보이는 아시아인처럼 생긴 이들이 많이 눈에 띈다. 최북단 우마우아카에는 아메리카 원주민 후예가 절대다수다. 

페루 비니쿤카에 있는 무지개 색깔 산이 우마우아카에는 14개나 있다는 정보에 솔깃해 비니쿤카를 포기하고 우마우아카행을 결심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망했다. 철, 소금 같은 광물의 원소가 산화작용하며 내는 색이 지층을 따라 무지개처럼 뻗어내는 모양이 신기하긴 했다. 하지만 비니쿤카에 다녀온 이들이 보내온 무지개산과 비교하면 색이 뚜렷하지 않았다. 무지개산 산을 제대로 구경하려면 우마우아카보다는 비니쿤카에 가길 권한다. 또 살타 3일 투어보다는 살리나스그란데와 카파야테 투어만 다녀오면 될 듯하다. 우마우아카 투어는 하루 종일 지루했다. 자다 깨다 주저앉아 있다 닭 한 마리 먹고 돌아왔다. 시간과 돈이 아깝다. 

지층마다 쌓인 광물들이 저마다 산화하면서 여러 색깔의 무지개 산을 만들어낸다 

그나마 얻은 건 멕시코 노신사 에밀리아 마르케스다. 우마우아카애서 점심 먹고 신용카드로 결제하려 하는데 식당 카드리더기에 문제가 있는지 결제가 되지 않았다. 아르헨티나 마지막날이라 페소를 다 썼는데 카드 결제가 되지 않으니 큰일 났다. 꼼짝없이 무전취식자가 될 위기에 처하자 멕시코 신사 에밀리오 마르케스가 보유 현금으로 내 밥값을 냈다. 생면부지의 동양인이 곤란한 상황에 처한 모습을 보고 선뜻 3000페소를 냈다. 한화로 1만 원이 넘는 금액으로 남미인에게는 제법 큰돈이었다. 너무 고마워 멕시코시티에 가면 연락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런 사람도 있다. 멕시코에는. 연락처 주고받다가 우리는 같은 캐논 카메라를 갖고 있다는 걸 확인했다. 남미에서 행운은 계속되고 있다. 

무전취식 위기에서 구해준 멕시코 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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