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중남미 7개국 75일, 미국 횡단 30일 간 꿈같은 여정
105일간 남북 아메리카 대륙을 일주했다. 75일간 중남미 7개국을 돌았고 30일간 미국을 횡단했다. 3월 15일 인천공항에서 아시아나항공편으로 뉴욕 JFK공항까지 가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브라질 상파울루에 들어갔다. 잠 한숨 자지 못했고 서른 시간 동안 비행기를 탔다. 평소 비행기 타면 곯아떨어지기 일쑤였으나 이번만은 잠들지 않고 뉴욕에 도착했다. 뉴욕 JFK공항에서 여섯 시간 이상 머물렀으나 잠을 들지 못했다. 짐을 부치지 않고 필요한 물품을 20리터 배낭에 넣어 가져갔다. 20리터 배낭 안에 맥북 노트북까지 들었으니 배낭 안에는 필수품만 담았다. 여권, 휴대전화, 노트북, 카메라 외 나머지는 옷가지뿐이다.
브라질 상파울루 공항에서 빠져나와 상파울루 센트로로 이동해 하승을 만났다. 하승은 9년간 상파울루에 살고 있는 한국어 강사다. 그가 상파울루 도심 곳곳을 안내했다. 덕분에 치안이 불안해 관광객이 접근하기 꺼려하는 센트로를 샅샅이 볼 수 있었다. 퇴근 시간이 지나면 상파울루 센트로는 홈리스 해방구다. 밤에는 경찰까지 들어가기 꺼려하는 우범 지역으로 돌변했다. 관광객 티 내며 혼자 걷는 이라면 낮에도 위험하다. 하승은 능수능란하게 위험 지역을 피해 가며 상파울루 센트로 곳곳을 안내했다. 하루는 삼성전자 디자이너를 데리고 와서 셋이 함께 상파울루 외곽 해변에 들러 해수욕까지 즐겼다.
리우데자이네루에서는 코파카바나 해변 뒤쪽 언덕에 자리한 빈민촌 파벨라에서 묵었다. 전 세계에서 온 배낭족과 함께 코파카바나와 이파네마 해변을 오가며 느리게 닷새를 보냈다. 햇볕이 지글거리는 해변에서 온몸을 태우다 지치면 센트로를 다녀왔다. 브라질인 가이드 안내로 브라질 옛 수도 라이데자이네루의 영광과 비극이 담긴 센트로 유적지를 돌아다녔다. 이파네마 해변에 인접한 카페 <이파네마 소녀>에서 보사노바 <이파네마 소녀>를 들었다. 이파네마 카페에서 보사노바 보컬로 9년 넘게 일하고 있는 한국인 2세도 만날 수 있었다.
리아데자이네루에서 이과수로 이동했다. 브라질 쪽에서 이과수 폭포를 구경했다. 이곳에서 나래와 소담을 만났다. 나래는 병리사, 소담은 의사다. 둘 다 20대 중반 청년들로 한국에서 동행을 찾다 알게 됐다. 사랑스러운 이들이다. 이들과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국경을 넘었다. 한인이 운영하는 숙소에 함께 묵었다. 주인 배려로 아르헨티나 소고기 아사도를 요리해 먹었다. 나래, 소담과 함께 아르헨티나 사이드에서 악마의 목구멍을 봤다. 거칠 것 없이 쏟아지는 폭포물에 압도되었다. 나래, 소담과 함께 보트를 타고 폭포 아래로 들어가 물을 맞았다. 이과수에서 참 행복했다.
이과수를 떠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갔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연어 회의 진미를 맛볼 수 있었다. 한민 민박에 묵었는데 한국인 투숙객이 칠레산 연어를 해체해 여행객들에게 제공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명물이라고 하는 미켈라젤로 탱고를 보다 졸았다. 공연 끝난 뒤 자정 무렵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를 미친 듯이 질주했다. 숙소까지 가는 버스가 정류장에서 서지 않고 지나가자 동행 하나와 숙소까지 미친 듯이 뛰어다녔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이틀 묵고 파타고니아로 향했다. 남미 여행의 하이라이트로 가장 기대하는 곳이었다. 첫 행선지는 남미 땅끝마을 우수아이아였다. 티에라델푸에고(불의 땅) 국립공원에서 파타고니아 여정을 시작했다. 호숫가 따라 숲 속을 걸었다. 발 딛는 곳마다 원시 자연의 흔적이 묻었다. 코와 입으로 들어오는 공기는 달았다. 바다로 나와 찰스 다윈이 200여 년 전 비글호를 타고 지나간 해협을 지났다. 세상의 끝이라는 섬에 발을 디뎠다. 그곳에는 바다사자가 요염하게 누워있고 등대가 외로이 서 있다. 항구로 돌아오는 길 고래 커플이 보트 주변에서 헤엄 치며 우리를 배웅했다.
우수아이아에서 비행기를 타고 엘칼라파테로 넘어왔다. 모레노빙하에 갔다. 차를 렌트했다. 가는 길이 아름다웠다. 도로에 차가 없어 절경이 나올 때마다 차를 세우고 촬영했다. 소담과 나래를 사진에 담는 게 즐거웠다. 빙하를 걷고 빙하를 위스키에 타서 마셨다. 엘칼라파테에서 엘찰텐으로 렌터카로 이동했다. 새벽 1시 숙소를 출발해 루타40 도로를 달렸다. 느닷없이 달려드는 야생동물을 피해야 하는 터라 가는 내내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새벽 3시 넘어 엘찰텐에 도착했다. 남미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평을 받는 피츠로이 산에 오르기 위해서다. 남미사랑 단톡방에서 만난 동행을 찾았다. 산행에 능한 동행 3명과 함께 했다. 등산 초보 3명을 데리고 올라가기 힘들 듯해 등산에 능한 이들과 함께 가기로 한 것이다. 기대와 달리 걸음이 늦은 나래와 소담을 버리고 자기들 끼리 먼저 올라갔다. 어쩔 수 없이 나래와 소담을 이끌고 올라야 했다. 비대한 준수는 등산 초반 낙오했다. 피츠로이 정상은 일출에 맞춰 빨갛게 달아오른다. 새벽에 떠오르는 햇빛이 산 정상에 솟은 3개 화강암 바위를 빨갛게 물들인다. 빛의 쇼가 시작하기 직전 정상에 닿았다. 산 정상에 있는 호수 위로 솟은 화강암 바위들이 빨갛게 타오르는가 싶더니 해가 떠오르며 빛의 양이 많아지자 화강암 바위는 주황, 금색, 노랑으로 색깔을 바뀌어갔다. 장관이었다.
엘찰텐에서 엘칼라파테로 낮에 돌아왔다. 피츠로이를 배경으로 뻗은 루타40은 아름다웠다. 드넓은 평원으로 뻗은 한 줄 도로는 생경했다. 도로 옆으로는 청담색 에스메랄다 호수가 이어졌다. 신은 이곳에 신들의 정원을 만들어 놓았다. 엘 칼라파테에서 나래, 소담과 헤어졌다. 나래와 소담은 바릴로체로 넘어가고 혼자 칠레 푸에르토나탈레스로 넘어갔다. 토레스델파이네 3박 4일 W트레킹을 하기 위해서다. 토레스델파이네에는 윤성을 비롯해 좋은 동행과 함께 했다. 운이 좋았다. 윤성과 함께 트레킹 하기로 한 친구가 포기하는 바람에 그 행운이 내게 온 거다. 트레킹은 생각보다 힘들었고 기대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남미 여행의 하이라이트가 파타고니아라면 파타고니아의 하이라이트는 토레스델파이네 W 트레킹이었다.
파타고니아 곳곳을 음미한 뒤 아르헨티나 북부 살타를 거쳐 칠레 아타카마 사막으로 넘어갔다. 전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사막에서 고산병에 시달리다 볼리비아 우유니 소금 사막으로 갔다. 낮에는 하늘은 담은 거울 위에서 춤추고 밤에는 은하수가 선명한 우윳빛으로 흐르며 별들이 천상의 교향악을 연주하는 하늘을 우러러봤다. 남미 여행에서 가장 소중한 인연들을 만났다. 우유니 소금 사막 투어를 함께 한 5명과 7월 중순 제주에서 다시 만났다.
페루에서는 잉카문명의 유적을 따라 걸었다. 해발 6000m 살칸타이와 우만타이 산 사이 4600m 고지를 넘어 잉카가 숨겨둔 산상 마을 마추픽추에 닿았다. 잉카인이 세계의 배꼽이라 부른 쿠스코에서 스페인 침략자 손에 파괴되지 않은, 볼리비아인이 고집스레 지켜낸 잉카문명 흔적을 살폈다. 쿠스코에서 빠져나와 페루 북서쪽에 치우친 와라즈로 넘어갔다. 페루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수로 알려진 69호수에 가기 위해서였다. 기대가 큰 탓일까. 69호수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호수까지 가는 트레킹 코스가 아름다웠다. 전 세계에서 온 동행자들과 함께 트레킹을 꾸민 무지개를 보며 하염없이 걸었다.
페루에서 멕시코로 넘어갔다. 멕시코 일정은 동행자들에게 맡겼다. 인기 웹소설가 2명과 멕시코 유카탄 반도를 한 바퀴 돌았다. 일행 중 하나는 서양사를 전공한 역사학도로서 멕시코 내 마야 유적지를 찾아다녔다. 남자 3명이 플라야델카르멘, 바깔라르, 메리다를 거쳐 다시 플라야델카르멘으로 유카탄 반도를 한 바퀴 돌았다. 유카탄 반도를 돈 뒤 혼자서 과테말라 안티과로 넘어갔다. 아카테낭고 활화산에 오르기 위해서였다. 중남미에서 가장 운치 있는 고대 도시 안티과에서 과테말라 화산 커피에 맛을 들였다. 체게바라가 사랑한 아티틀란 호수에서 중남미 커피를 연구하는 한국인 청년들을 만날 수 있었다.
안티과를 떠나 멕시코시티로 들어왔다. 이곳에서 웹소설가 2인을 다시 만났다. 그들과 함께 멕시코시티 돌아본 뒤 렌터카 타고 2시간가량 떨어진 똘랑똥꼬에 갔다. 중남미에서 가장 아름다운 폭포를 봤다. 밀림 속에 온천수가 알알이 떨어지는 모습은 진경이었다. 똘랑똥꼬에서 중남미 여행을 마쳤다. 5월 마지막날 웹소설가 2인과 미국 LA로 넘어갔다. LA에서 미국 횡단을 시작했다. 샌프란시스코 근처에서 미국에 연수온 보건복지부 공무원이 합류했다.
로스앤젤레스를 출발해 미국 서부 해안을 따라 말리부 넘어 요세미티로 넘어갔다. 요세미티 공원에서 사흘간 보낸 뒤 레드우드 국립공원으로 넘어갔다. 레이니어 국립공원 들르고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에 갔다. 그랑테톤으로 들어가 와이오밍 평원을 넘어 러시모어, 악마의 탑, 사막을 거쳐 시카고에 가는 루트였다. 시카고에서는 디트로이트 북쪽을 지나 필라델피아에 머문 뒤 뉴욕으로 들어갔다.
보통 보름 내 마치는 여행 코스이나 우리 일행은 한 달간 천천히 건넜다. 요세미티와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에서는 사흘 묵었다. 지나는 소도시마다 들러 작은 카페에서 커피 한잔하고 낡은 바에서 위스키 한잔 하면서 느리게 느리게 미국 대륙을 지나고 싶었으나 동행자들 취향이 제각각이라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그래도 끝이 보이지 않는 평원에 달랑 도로 하나 길게 뻗은 곳을 만나면 차를 세우고 드넓은 평원에 섰다. 아주 낯선 곳에서 맞는 해방감을 만끽했다.
시카고에서 일행과 헤어졌다. 일행 셋은 시카고에서 5박 이상 머물고 싶다고 했다. 시카고에 들른 적 있는 데다 도시보다 자연을 좋아하는 터라 나 혼자 시카고에서 일찍 떠났다. 목적지 뉴욕으로 가는 길에 반가운 이를 만났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난 친구 브라이언이 자기 집으로 초대했다. 브라이언은 소프트웨어 회사를 창업해 키운 뒤 은퇴하면서 매각해 수억 달러를 번 갑부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한 달간 걸으면서 쌓은 우정을 1년 6개월 넘게 유지하고 있다. 속 깊고 따뜻한 친구다. 브라이언은 포르투갈 카미노를 걷거나 멕시코 칸쿤을 여행할 때 내게 연락해 여행에 동행할 수 있는지 물었다. 번번이 일정이 맞지 않아 보지 못하다 드디어 그를 만났다. 브라이언 부부는 나를 따뜻하게 맞이했다. 배불리 먹고 다음날 디트로이트 북부 최고 부자 동네를 둘러볼 수 있었다. 브라이언은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얻은 최고의 선물이다.
여행 100일째 아침 일찍 펜실베이니아 숙소를 떠났다. 혼자 차를 몰아 호수 숲 초원이 이어지는 시골을 지났다. 고즈넉이 창밖 풍경을 즐기다 울컥했다. 뉴욕 맨해튼으로 들어왔다. 이곳에서 렌터카를 반납했다. 뉴욕에서 닷새를 묵었다. 15년 전 선아와 함께 걸어 다닌 5번가를 지나 센트럴파크에서 돌아다녔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도슨트 투어도 하고 허드슨강 연안 하이라인을 걸어 첼시까지 걸어내려 갔다. 허드슨 강 부두에서 크루즈를 타고 맨해튼 중남부 연안을 돌아본 뒤 자유의 여신상에 다녀왔다.
서울행 항공편은 7월 1일이었다. 꽃샘추위가 채 가시지 않은 계절에 한국을 떠나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는 한여름에 돌아왔다. 여행의 기록은 치열했다. 온갖 인연과 엮였고 갖가지 명소를 내 발로 딛고 오르거나 렌터카를 몰고 닿았다. 그 과정에서 좋아하는 사람에게 헌신적인 모습을 즐겼고 그렇지 않은 이에게 보이는 내 한심함과 졸렬함을 새삼 확인하기도 했다.
여행은 닿고 싶은 곳에 닿는 과정에서 맺어지는 인연의 연속이다. 인연이 여행을 즐겁게 하기도 하고 지옥으로 만들기도 한다. 여행이 풍부해지기도 하고 강퍅해지기도 한다. 그 인연을 만드는 건 내 태도와 인성이다. 노독에 거쳐 인간성의 바닥이 드러나기도 하고 다시 보지 못할 이에게 대가 없는 호의를 베풀기도 했다. 그 인성의 모든 스펙트럼이 내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음을 확인했다. 지킬과 하이디 같은 다중인격자가 내 속에 공존한다. 문제 해결은 문제의 인식부터 시작한다고 했나. 여행은 내 인성의 문제를 깨닫게 해 주었다.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 게 이 여행의 에필로그일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