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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철현 Aug 18. 2023

페루 2편 - 잉카의 비밀 루트 살칸타이 고원길 2편

6000m 고봉 사이 4천m 고지 넘어 마추픽추까지 걸어 가다

살칸타이 트레킹 4박5일 첫날... 은하수 보며 잠들다


마추픽추 1박 2일과 비니쿤카 여독이 채 풀리기 전에 살칸타이 4박 5일 트레킹에 나섰다. 6천 m 고봉 우만타이와 살칸타이 사이 4천 m 고지를 넘어 마추픽추까지 걷는 고강도 트레킹이다. 옛날 잉카인이 침략자 스페인을 피해 다니던 산길로 오얀따이땀보에서 마추픽추까지 이어진다. 이번에는 마추픽추 뒤로 병풍처럼 우뚝 솟은 와이나픽추까지 오른다. 다소 무리다 싶었으나 상원, 민경이라는 트레킹 멤버가 마음에 들어 강행했다.

모든 게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진행됐다. 비니쿤카에서 쿠스코로 돌아오자마자 마추픽추 1박 2일 투어를 알아보던 상원과 민경이 살칸타이 트레킹 쪽으로 급선회했다. 마추픽추 투어를 알아본다고 하길래 여행사 문도를 소개해주었을 뿐인데 그 옆에 있다 얼떨결에 살칸타이 트레킹에 동참하게 됐다. 저녁 7시쯤 예약이 끝났고 다음날 새벽 4시 30분 트레킹 출발지로 향하는 밴을 타야 했다. 숙소에 돌아와 일찍 잠자리에 들려했으나 마추픽추 동행 N과 엉킨 실타래를 푸느라 밤늦게까지 대화하다 2~3시간 자다가 일어났다.

첫날 우만타이 산으로 가는 트레킹 코스를 따라가다 우만타이 호수에 들른 뒤 베이스캠프로 내려와 잤다. 전날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한 채 해발 4천 m 이상 오르막길을 걷다 보니 다시 고산병 증세가 나타났다. 다리 피로도 금세 찾아왔고 호흡은 가빴다. 이상하리만큼 4천 m 넘어서면 신체능력이 절반 이하로 떨어진다. 처음부터 뒤쳐졌다. 가이드 윌리가 나를 신경 쓰기 시작했다. 자주 옆으로 와서 내 상태를 체크하고 돌아갔다. 늘 하던 대로 고산병 증세가 나타나면 열 발자국 걷고 5초 쉬는 방식으로 천천히 올랐다. 브라질 커플과 혼자 여행 온 브라질 청년 하나가 내 뒤에서 쫓아왔다. 트레킹 참여자가 총 11명이므로 대열 중간에서 움직일 수 있었다. 

베이스캠프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가방을 숙소에 둔 채 맨몸으로 우만타이 호수까지 가파른 길을 올랐다. 일행보다 뒤처질까 봐 5분 먼저 출발했다. 역시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고 고통이 심해졌다. 끙끙거리며 올라가자 민경과 상원이 따라붙었다. 뒤늦게 이스라엘 청년 아밋과 스티븐이 토끼 한 마리를 들고 다가왔다. 쿠스코 산페드로 시장에서 20 솔 주고 샀다는 새끼 토끼였다. 우리는 치코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치코는 우리 일행의 마스코트가 되어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악전고투 끝에 우만타이 호수에 올랐다. 파타고니아 피츠로이에 비할바는 못되지만 우만타이 설산 앞에 청담색 빙하호가 있어 나름 멋이 있었다. 아밋이 파라과이에서 700달러 주고 샀다는 드론을 날려 우만타이 호수를 공중 촬영했다. 찍은 사진을 보고 우와~라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다. 비색으로 빛나는 우만타이 호수를 바라보며 그 옆 고지에 오르니 산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을 걷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고산병 증세가 여전한 상태에서는 욕심일 뿐이었다. 서둘러 내려와 우만타이 호수의 비취색에 빠져들었다.

우만타이 호수에서 내려와 베이스캠프로 돌아오자 브라질 청년 하나가 트레킹 중단을 선언하고 쿠스코로 돌아갔다. 만만치 않은 여정임에 틀림없다. 혼자 뒤처져 힘겹게 따라오더니 더 이상은 못 가게 된 듯하다. 가이드 윌리가 말 타고 가는 방안 등 여러 가지 대안을 제시했지만 그 청년은 단호하게 거절하고 트레킹 중단을 통고했다. 우리 일행은 이제 10명으로 줄었다. 아니 우리 일행은 치코까지 포함해 11명이었다.  

첫날밤 베이스캠프 허름한 숙소에서 두터운 침낭 속에 들어가 추위를 견뎌야 했다. 지붕이 유리로 되어 있어 누워서도 밤하늘이 보였다. 낯선 곳에서 은하수가 쏟아지는 하늘을 보며 침낭 속에서 자는 낭만이 나쁘지 않았다. 또 언제 은하수 보며 침낭 속에서 잠들겠는가.

우리 일행은 소개한다. 가이드 윌리는 트레킹 베테랑이다. 쿠스코 인근 피사크 출신으로 케추어를 쓰는 어머니 영향을 받아 케추어를 말할 줄 안다. 윌리는 케추어, 스페인어, 영어를 구사한다. 15년 이상 쿠스코와 마추픽추 사이 트레킹을 오간 등산 베테랑이다. 그는 트레킹 내내 잉카의 역사와 전통을 일행에게 꼼꼼히 알려줬다. 살칸타이 설산 앞에서는 코카잎 3장을 겹쳐 잉카의 신 파차야마에게 소원을 비는 의식을 거행하기도 했다. 짐 운반하는 말을 부리는 마부, 매 끼니 식사를 차리는 세프, 일상의 지원 업무를 맡은 인력 등 지원팀을 이끌고 트레킹 멤버 상태를 세밀히 살폈다. 일처리가 능숙하고 유연했다.

이스라엘 청년 아밋은 친구 스티븐과 함께 다닌다. 느긋하고 선하다. 이스라엘 청년들은 군복무를 마치고 해외여행을 다닌다. 군복무 기간 상당히 많은 돈을 저축할 수 있다 보니 그 돈으로 전 세계 여행을 나서는 이스라엘 젊은 남녀를 여행 내내 많이 볼 수 있었다. 스티븐은 영어에 어눌하지만 적극적으로 의사소통에 적극적이다. 쉴 새 없이 질문한다. 한 번은 한국어에 꽂히더니 갖가지 한국어 회화를 연습했다. 둘 다 군복무 마치고 바로 세계 여행에 나섰다. 아밋과는 금세 친구가 되었다. 친절하고 호기심이 많은 친구들이라 친해지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이 둘이 한국에 오면 내가 가이드되고 내가 텔아비브에 가면 자기네들이 안내하겠다고 한다.

이스라엘 청년 중 또 하나의 아밋이 있었다. 아밋 샤하프라는 23세 청년이다. 잘 생겼고 과묵해 우리 일행 민경이가 반한 친구다. 수줍어하길래 내가 노골적으로 친하려 하자 바로 마음을 열고 친해졌다. 아밋 샤하프는 나와 달리 3박 4일 일정 트레킹을 신청한지라 트레킹 사흘째 되는 날 헤어져야 했다. 둘은 함께 사진을 찍고 연락처를 교환했다. 나는 이스라엘에, 아밋 샤하프는 한국에 새 친구가 생긴 것이다.


오스트리아 커플 루카스와 엘리자베스는 슈퍼커플이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맨 선두에 서서 걸었고 목적지에 가장 먼저 도착했다. 천천히 꾸준히 걸었지만 가장 빨랐다. 이 커플은 서로에 완전히 빠져 있었다. 사랑하는 이들을 보며 함께 걷는 건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반면 브라질 커플 아드리아노와 앨리스는 겉으로는 그리 친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세심히 서로를 챙기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무엇보다 고산지대에서 나보다 뒤처져 올라와 너무 고마웠던 친구들이다.

상원이는 스스로 내성적이라고 하지만 낯선 이에게도 스스럼없이 다가가는 친구다. 모기에 많이 물려 고생했지만 묵묵히 걷고 느끼고 촬영하며 트레킹을 즐겼다. 민경이는 지금까지 본 여성 중에서 가장 산을 잘 탄다. 피로감을 느끼는 모습을 보지 못했고 고산이든 저지대든 가볍게 날아다녔다. 참 건강한 모습이 멋진 친구다. 내가 산양(mountain goat)이라는 별명을 붙일 정도였다. 내성적인 성격이라 수줍어하는 경우가 많지만 자기 몫은 잘 챙긴다.


온천욕하다 흡혈 파리에 온몸 난사...3개월 고생


살칸타이 트레킹 둘째 날. 살칸타이와 우만타이 사이 고갯길 4600m를 넘었다. 4600m까지 오를 때는 열 발자국 걷고 5초 쉬는 행위를 반복했다. 다리가 쉽게 피로해졌다. 북한산에서 6시간 쉬지 않고 올라도 허벅지에 오는 고통을 견뎌낼 수 있었지만 4000m 이상 고지에서는 너무 아파 일정 간격으로 쉬지 않으면 다리가 앞으로 나아가려 하지 않았다. 호흡은 더욱더 거칠어졌다. 묵묵히 땅만 내려보고 오르다 보니 어느새 정상에 닿았다. 

가이드 윌리는 살칸타이 산 앞 전망대에서 일행을 모았다. 거기서 잉카인의 신화와 전설을 설명했다. 그리고 성스러운 산 살칸타이 앞에서 각자의 소원을 비는 의식을 거행했다. 나름 진지하게 의식을 진행했지만 나는 졸렸다. 나중에 들었는데 민경과 상원도 졸다시피 했다. 쏟아지는 잠을 견디느라 걷는 것보다 힘들었다고 한다. 나름 엄숙했지만 지루한 의식이 끝나고 내려가야 했다. 이제부터는 내리막이다. 윌리에게 자신했다. 오를 때는 거북이처럼 느리지만 내리막에서 큰 콘돌처럼 날아갈 거라고. 

내리막에서 거칠 것 없이 내려갔다. 선두에 서서 달리 듯 내려갔다. 숨도 막히지 않았다. 4600m에서 단숨에 2800m까지 내려왔다. 고도가 낮아질수록 내 하강 속도는 더 빨라졌다. 윌리를 비롯해 일행 모두가 놀랐다. 고도가 낮아지면 내 신체능력이 놀랄 만큼 빠르게 회복된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고도 3000m 아래로 내려가서는 선두에서 일행을 이끌었다. 늘 선두에 섰던 루카스와 엘리자베스 커플까지 젖혔다. 베이스캠프에 도착해서도 기분이 산뜻했다. 

베이스캠프는 2800m에 있는 작은 마을에 있었다. 이곳에서는 온수로 샤워하려면 돈을 내야 했다. 가솔린을 태워야 하는 터라 비용이 든다. 한국인 동행자 상원과 민경은 하루라도 샤워하지 않으면 견디기 힘들어한다. 나는 일주일간 샤워하지 않아도 불편한 줄 모른다. 샤워하기 줄 서는 동안 나는 찬물로 얼굴과 목, 발을 씻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어제도 일찍 자서 오늘 몸 상태가 최고였다. 

살칸타이 트레킹 셋째 날. 아침부터 토끼 치코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눈에 생기가 사라졌고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치코는 죽어가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아밋은 치코를 들고 조심스레 걸었다. 갑자기 대열에서 아밋과 스티븐이 사라졌다. 힘든 코스가 아닌 데다 아밋과 스티븐의 체력은 좋아 뒤쳐질 사람이 아니다. 양지바른 곳을 찾아 치코를 묻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15분가량 지나자 아밋과 스티븐이 나타났다. 손에는 치코가 없었다. 치코가 죽었다. 그리고 트레킹 멤버는 5명으로 줄었다. 루카스와 엘리자베스 커플, 아밋 샤햐프, 브라질 커플 아드리아노와 엘리스 커플은 3박 4일 일정으로 트레킹에 참여한 터라 셋째 날 일정을 건너뛰고 바로 나흘째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먼저 떠났다. 이제 한국인 3명과 이스라엘 청년 2명만 남았다. 

이날 일정은 여유가 있었다. 해발 2800m에서 2000m까지 내리막길을 걷다가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점심식사하고 쉬다가 인근 온천에 갔다. 따뜻한 노천탕은 수영복을 입은 관광객과 페루인이 삼삼오오 모여 온천욕을 즐겼다. 수영장만큼 넓은 터라 나는 오랜만에 수영을 맘껏 즐겼다. 하루 1시간 꾸준히 수영하던 루틴을 중남미 여행을 떠나면서 중단했다. 오래간만에 수영할 수 있어 기분이 상쾌해졌다. 문제는 흡혈 파리였다. 

온천에서 나오자마자 흡혈 파리들이 몰려들어 등과 다리에 집중 난사를 당했다. 윗도리를 입고 다리에 모기 퇴치제를 발랐으나 이미 늦었다. 숙소에 들어가자 여기저기 빨갛게 부어오르며 간지럽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모기가 물리자마자 간지럽다면 여기 흡혈 파리는 물리고 나서는 괜찮다가 반나절 지나면서 간지럽기 시작해 하루 지나면 물린 곳이 부풀어 오르면서 참지 못할 만큼 간지럽다. 심지어 잠을 설치기도 한다. 마추픽추를 트레킹으로 가려는 여행객이라면 긴팔과 긴바지가 필수다. 심지어 바지와 신발 사이로 들어가 양말 윗부분을 집중적으로 물기도 한다. 

아밋과 스티븐, 그리고 가이드 윌리와 마지막 만찬을 했다. 윌리는 와이나픽추에 함께 오르지 않는다. 아밋과 스티븐은 서킷 1 또는 2를 돈다. 한국인 3명과 마주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인 3명만 서킷 4와 와이나픽추에 오른다. 이때까지 이게 다음날 엉뚱한 상황을 연출할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다. 지난번 마추픽추에 오를 때 와이나픽추 입구에서 입맛만 다시고 돌아서야 했다. 드디어 와이나픽추에 올라 마추픽추 전경을 반대편에서 볼 수 있게 된다. 한국인 일행 3인은 설레는 마음을 안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와이나픽추에 올라 마추픽추 다시 마주하다


살칸타이 트레킹 넷째 날. 아침식사를 마치자마자 베이스캠프 뒷산을 넘었다. 산 정상까지 굽이굽이 오르막길이 이어졌다. 앞서 걷던 러시아 트레킹팀을 앞질렀다. 오르막이라 해도 해발 2000m에 불과하다 보니 어려움 없이 오를 수 있었다. 앞서 걷던 모든 트레킹 팀들을 추월해 정상에 올랐다. 정상에는 잉카인이 돌로 세운 마추픽추 전망대가 있었다. 마추픽추에서 6월 21일 뜬 해가 이곳 전망대 수로와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곳에 제단을 세운 것이다. 그곳에서 서면 멀리 마추픽추 아래 조성된 계단식 밭이 보인다. 그곳에서 쉬다가 이드로일렉트리카까지 곧바로 내려갔다. 가파른 내리막길이라 무릎에 무리가 오기 시작했으나 모이기로 한 다리까지 한숨에 달려 내려갔다. 

수력발전이 가능할 정도로 수량이 풍부한 곳에 세워진 마을이라 이드로일렉트리카(수력발전)라는 지명이 붙었다. 이곳부터 아구아칼리엔테스까지 기찻길이 이어진다. 그 길을 따라 두 번째 걷기를 시작했다. 일행과 떨어져 혼자 걷고 싶었다. 이 걷기가 쿠스코에서 마지막 일정이리라. 중남미 여행의 3분의 2 지점을 정리하고 혼자서 정리하고 싶었다. 3시간 걸리는 거리를 2시간에 걸으면서 혼자 지금까지 여행을 정리하고 다음 일정을 구상했다. 

일단 페루에서 다른 나라로 빠져나가려면 수도 리마로 나가야 한다. 리마에서 다른 나라로 가는 비행 편을 예약하기로 했다. 그러다 리마에서 버스로 4시간 거리에 이카라는 도시가 있고 그곳에서 10분 거리에 와카치나라는 오아시스 마을이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와카치나에서는 모래사막이 있고 그곳에서 샌드보딩을 즐길 수 있다고 한다. 이베리아 반도 여행에서 모로코를 건너 사하라사막의 모래언덕을 보지 못한 게 아쉬웠다. 이번에 모래사막에서 일몰을 보고 보드를 타고 모래언덕을 내려올 수 있다니 바로 와카치나행을 결정했다. 

살칸타이 투어 마지막날. 서킷 4를 돈 뒤 와이나픽추에 올랐다. 좁고 가파른 계단을 힘겹게 올랐으나 구름에 가려 마추픽추는 보이지 않았다. 우리 일행은 구름이 걷히길 한참 기다렸다. 1시간 남짓 기다리자 구름이 하늘로 올라가면서 마추픽추가 제 모습을 보였다. 와이나픽추에서 마추픽추를 보는 건 남다른 경험이다. 다만 마추픽추의 가장 아름다운 전경은 아니다. 와이나픽추 반대편 전망대에서 보는 마추픽추가 훨씬 아름답다. 그러다 보니 와이나픽추 입장 티켓을 산 이들은 전면 전망대에서 마추픽추를 볼 수 있는 서킷 1 또는 2 티켓을 구매한다. 표를 2개 사는 것이다. 대신 와이나픽추 표를 산 사람에게는 전망대를 볼 수 있는 티켓은 반값에 판매한다. 우리 일행은 그 사실을 몰랐다. 나야 며칠 전 전망대에서 와이나픽추를 배경으로 멋지게 펼쳐진 마추픽추를 볼 수 있었지만 상현과 민경은 와이나픽추에서 보는 전경을 보는데 만족해야 했다. 

상현이 표를 또 끊고 전망대 쪽으로 입장하자고 제안했다. 그래서 출구 쪽 직원에게 표를 구매할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오후 2시에나 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어야 했다. 쿠스코행 기차 시간이 오후 2시 25분이라 오후 2시에 전망대 쪽 표를 사서 들어가는 건 불가능했다. 내가 입구 쪽 직원에게 사정했다. 오후 2시 25분 기차라 오후 2시 티켓을 살 수 없다. 우리 일행 2명만이라도 10분만 전망대를 볼 수 있게 해달라고 사정했다. 당연히 거절할 줄 알았다. 하도 사정하니깐 그 직원은 여권을 제출하라고 하면서 30분 줄 테니 빨리 다녀오라고 했다. 나는 이미 봤으니 상현과 민경만 들여보냈다. 둘은 달렸다. 나는 밖에서 콜라와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둘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20분 지나자 둘이 나왔다. 내게 너무 감사하다며 쿠스코 가서 저녁을 사겠다고 했다. 흔쾌히 수락했다. 하마터면 마추픽추 전경을 보지 못하고 돌아갈 판이었는데 그걸 가능하게 해 주었으니 저녁을 얻어먹을만했다. ㅎㅎ

쿠스코로 가는 기차와 밴에서 졸다 보니 쿠스코에 도착했다. 한인식당 K Food 레스토랑에서 김치찌개와 제육볶음을 먹으면서 간단하게 4박 5일 일정을 마무리했다. 다음날 하루 쉬며 다음 일정을 준비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 나는 사막의 오아시스 도시 와카치나로 향한다.


69호수 보러 와라즈 왔다 무지개에 반하다


비행편으로 쿠스코를 떠나 리마로 이동했다. 리마에서 버스로 갈아타고 10시간가량 달려 와라즈라는 마을로 갔다. 당초 와카치나라는 오아시스 마을에 가려 했으나 마음을 바꿔 69호수와 파론 호수를 볼 수 있는 고지대로 온 것이다. 리마에서 나가는 싼 항공편을 찾다가 12일 새벽 1시 멕시코 칸쿤행 비행기표를 찾았다. 일주일 간 리마에서 보내고 싶지는 않고 와카치나는 2박3일이면 충분한 도시라서 와라즈에서 69호수를 보고 와카치나로 이동해 사막에 떨어지는 해를 보고 남미에서 빠져나가기로 했다. 4600m 넘는 고산지대를 단숨에 올라야 하는 힘든 코스라 내게는 벅찬 도전이지만 이것이 고산에서 벌이는 마지막 트레킹이라 마음먹고 도전하기로 했다. 다행히 4500m까지 차로 올라 그곳에서 능선을 타고 69호수까지 가는 스페셜 코스가 있어 당초 우려보다 어렵지 않게 페루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수를 볼 수 있게 됐다. 

결과적으로 최선의 선택이었지만 예상치 않은 암초를 만났다. 함께 가는 젊은 친구들과 어울리는데 실패했다. 남미에 와서 가장 어울리기 힘든 상대들을 만났다. 나름 열심히 노력했지만 젊은 남녀 둘 사이에 어색하게 끼어있는 모양새다 보니 시간이 갈수록 불편했다. 나중에 함께 어울리는 게 힘들어 혼자 있는 시간을 늘렸다. 둘도 나와 함께 있는 게 불편해 보였다. 여행하면서 내가 괴팍하게 변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이번에 내가 유난히 어울리기 힘든 성격의 소지자들을 만난 건지 모르겠다. 우유니에서 소금사막을 누비던 성욱, 선경, 은주, 순혁, 희진 같은 동행과 파타고니아 여행 시 격의 없이 어울렸던 소담, 나래, 윤성 같은 친구가 너무 그립다. 

내일 파론 호수에 오른다. 아침 8시 클래식 코스에 올라 파론 호수를 본다. 하이라이트는 모레 오르는 4500m 능선길 따라 69호수까지 가는 코스다. 사진으로만 봐도 가슴이 벅찬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이다. 69호수를 보면 남미에서 내가 볼 수 있는 아름다움은 다 보는 거다. 과테말라 활화산 아카테낭고를 보지 못하는 게 유일한 아쉬움이다. 이곳은 5000m 넘는 고산지대를 1박2일간 가야 하는 곳이다. 4000m를 넘으면 고산병 증세가 심각하게 찾아오는 내게는 넘사벽의 지역이다. 나중에 고산병을 이겨낼 수 있는 체질로 개선할 수 있다면 도전하기로 미룬다. 

이번 여행에서 내가 넘어야 할 넘사벽이 있음을 확인했다. 나이가 먹을수록 나이차 나는 이들과 소통의 벽을 넘어가는 게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자연의 섭리이겠지만 내 마음이 늙어가는 걸 확인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는 않다. 어쩌겠냐. 넘기를 시도하다 보면 비니쿤카나 살칸타이처럼 죽을 고생하면서 넘기도 하고 아카테낭고처럼 엄두가 나지 않으면 피해 가는 게 삶 아니겠는가. 


페루 리마 새벽 6시, 에스프레소 보다 짙은 고독


파론 호수에 갔다. 아침 8시 출발해 6시간 산길을 타고 가니 구름을 잔뜩이고 있는 파라마운트 산 앞으로 청록색 호수가 펼쳐졌다. 미국 영화사 파라마운트 사의 로고에 쓰였다고 하는데 그런 산이 하도 많아서 진위여부는 논외로 하겠다. 설산은 가끔 흩어진 구름 사이로 고개를 내밀 뿐 구름 속에 숨어서 온전한 모습을 낯선 여행객들에게 보이지 않을 작정인 듯했다. 오른쪽 경사길을 따라 올랐다. 온통 돌길이라 오르기 만만치 않았다. 30분가량 오르니 담수라고 하기에 생경하기 이를 데 없는 짙은 청록색 물이 수로를 따라 길게 들어찬 호수가 한눈에 들어왔다. 

살칸타이 4박 5일 트레킹을 다녀온 지 얼마 지나지 않은 터라 파론 호수는 그리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설산의 가까움이나 무게가 살칸타이 산에 미치지 못했고 호수의 모양과 색은 우만타이 호수를 따라오지 못했다. 비가 간간이 흩날릴 만큼 날이 좋지 않은 탓일까. 다음날 갈 69호수의 예고편 정도로 생각하기로 했다. 남들보다 훨씬 높이 오르다 아만다를 만났다. 제법 높은 곳에 남미 원주민처럼 생긴 여성 혼자 앉아있었다. 사진 촬영을 요청하니 흔쾌히 웃으며 내 카메라를 받았다. 아만다와 첫 만남이었다. 아만다는 필리핀 어머니와 하와이인 아버지 사이에 태어나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자랐다. 외모에서는 동양의 아름다움을 느껴졌지만 말과 행동에서는 전형적인 미국인이었다. 금세 친해졌다. 그 뒤로 아만다는 자기 무리로 나를 이끌었다. 

다음날 69호수가는 새벽 밴에서 졸고 있는 나를 깨운 건 아만다였다. 아만다는 친구 오드리를 소개했다. 오드리는 남들 다 어렵다고 하는 69호수를 슬리퍼 신고 나들이 가듯 오를 정도로 강한 체력을 자랑한다. 아만다와 오드리 옆에는 독일 청년 줄리엔과 벨기에 청년 봉수앙이 붙어 있었다. 그리하여 한국 미국 독일 벨기에 4개국 연합체가 결성됐다. 다국적 연합체는 함께 69호수에 올랐다. 아침식사도 함께 했다. 오르다 무지개를 만나면 사진 찍고 내려오다 방목하는 소들을 만나면 함께 놀았다. 나와 달리 한국인 여행객 3명은 일부러 다른 나라 사람들과 친해지려 하지 않았다. 다가오는 외국인을 마다하지는 않지만 일부러 다가가지는 않았다. 한국인들과 함께 움직이면 여러모로 편리하다. 숙소 예약, 교통편, 투어 예약, 짐 챙기기, 정서적 안정 등 여러가지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보니 다른 외국인과 어울릴 필요가 없다. 그러다보니 한국인들끼리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나는 달랐다. 이번 한국인 동행들과는 함께 있는 것이 불편했다. 나이 차인지 성격 탓인지 모르겠으나 관계가 불편해지면서 시간이 갈수록 한국인 무리에서 벗어나려 했다. 

다국적연합체 멤버는 트레킹 베테랑들이라 아주 빨랐다. 내가 뒤쳐질 정도다. 조금 뒤처지니 한국에서 반년 간 경영학을 공부한 네덜란드 여성 요깅과 중국에서 태어나 네덜란드로 입양된 앤을 만날 수 있었다. 앤을 처음 봤을 때 한국인 아닌가 싶었다. 너무 예쁜 앤에 한눈에 반했다. 바로 친근하게 인사를 나눈 뒤 함께 걸었다. 내가 앤에게 빠진 걸 알고 아만다가 일부러 뒤로 처지는 나를 웃으면서 모른 척해주었다. 친구 요깅과 달리 한국에 온 적 없다는 앤을 한국에 초청했다. 한국에 오면 꼭 연락하라고 왓츠앱 계정과 이메일도 건넸다. 여행에서 이런 만남이 좋다. 앤이 오지 않을 수 있지만 혹시나 올 수도 있다는 헛된 기대감이 때로는 작은 셀렘으로 가슴 한 귀퉁이에 남는다. 

트레킹 코스가 해발 4000m를 넘다 보니 힘들 것이라는 소문과 달리 69호수에 너무 쉽게 올랐다. 전혀 힘들지 않았다. 4000m만 넘으면 괴롭히던 고산병 증세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제 몸이 고산에 적응하고 있는가 싶다. 과테말라 활화산의 아카테낭고 트레킹에 도전하고 싶어졌다. 활화산을 볼 수 있는 곳이지만 고도 5000m 넘는 산악지대를 하루종일 걸어야 한다니 포기한 곳이었다. 고산병 증세만 없으면 오르는 건 어렵지 않다. 한 달 사이에 북한산과 북악산 코스를 모두 오르내릴 정도로 산에서 기동력과 체력은 자신 있었다. 5월 중반 멕시코로 넘어갔다가 과테말라로 넘어오는 일정이 있으므로 시간 되면 도전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막상 69호수에 오르니 실망스러웠다. 우만타이 호수와 비슷하게 생겼으나 산세와 모양새는 한참 모자랐다. 해가 나지 않아 물 색이 별로라서 그런가. 산사태로 쏟아져 내린 호수 벽이 보기 흉했고 구름에 숨은 설산도 압도적이지 않았다. 남미에서 보았던 어느 설산보다도 초라했다. 이거 보려고 리마에서 10시간 이상 버스를 타고 온다는 여행객이 많다고 하니 어이가 없었다. 와라즈에서 3박 4일 이상 트레킹하기 위해 오는 것 아니라면 와라즈를 건너뛰어도 좋다. 대신 쿠스코에서 3박 4일 살칸타이 트레킹을 권하고 싶다. 트레킹 코스의 아름다움이나 설산, 호수, 평원 모든 면에서 69호수를 압도한다. 

69호수를 보고 나니 더 이상 와라즈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냥 정이 가지 않은 마을이다. 밤 버스를 타고 바로 리마로 내려왔다. 10시간가량 롤러코스터를 타듯 비몽사몽간에 리마에 새벽 6시 도착했다. 바로 터미널에서 이카 가는 버스를 끊었다. 오전 10시 출발한다. 네 시간가량 남는다. 터미널 건너편 랩솔(편의점)에서 샌드위치와 주스로 아침을 때웠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낯선 곳에 앉아 혼자 여행기를 작성하고 있다. 페루 리마에서 새벽 6시 혼자서 맛없는 아메리카노 한잔 마시면서 글을 쓰고 있다니 크~ 그냥 좋다. 가끔 여행객의 외로움이 좋을 때도 있다. 지난 며칠 조금 깊어진 사귐 탓에 지쳐있을 때는 낯선 곳에서 홀로 있는 게 반갑다. 


오아시스 마을 와카치나서 모래사막를 거닐다


모래사막 속 오아시스 마을 와카치나에 들어왔다. 리마에서 오전 10시 버스를 타고 남쪽으로 달려 오후 2시 30분 이카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한국인 여행객 2명을 만났다. 네이버 프로그램 기획 담당자들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입사동기 둘이 휴가를 모아 모아서 28일간 남미여행에 나섰다고 한다. 이들에게는 남미 첫 여행지가 와카치나였다. 함께 택시를 타고 와카치나 숙소에 도착했다. 나는 건너편 호스텔에서 방을 구했다. 6인 도미토리룸이었다. 프랑스인과 네덜란드인이 옆 2층 침대를 사용하고 있었다. 창가 1층 침대를 배정받았다. 산뜻하고 깔끔하다. 창문 너머로 사막 풍의 천막이 자리한 중정이 내려다보였다. 마음에 드는 곳이다. 

택시 운전사 루디 소개로 버기투어를 예약했다. 오후 4시쯤 오아시스 옆에 자리한 숙소를 출발해 모래사막으로 들어갔다. 바람이 쌓아 올린 모래가 언덕과 산을 이루었다. 그곳을 버기는 질주했다. 10여 명을 태운 버기는 사막 곳곳을 헤집고 다녔다. 단숨에 언덕을 오르더니 반대편 골짜기로 내려 꽂혔다. 놀이공원에서 타는 롤러코스터를 사막에서 타는 것이다. 탑승자들이 희열에 찬 비명을 한참 지르도록 여기저기 곡예 운전을 하다 언덕 위에 올라갔다. 그곳에서 여행객들은 샌드보드를 타고 낭떠러지에 가까운 언덕을 내려갔다. 가이드가 알려준 대로 보드 위에 상체를 모아 올려놓은 뒤 다리를 조금 벌린 채로 보드에 몸을 맡겨 떨어지면 순간 짜릿했다. 몸에 모래가 닿는 느낌이 좋다. 세 번 오르락내리락하며 샌드보드를 타다가 모래사막 너머로 떨어지는 석양을 보았다. 사막에서 해는 빠르게 떨어졌다. 뭔가 붉게 타오르나 싶더니 이내 사그라졌다. 

한참 석양을 보고 있으니 베네수엘라 미녀 안드레아가 자기 보드를 타고 내려올 테니 동영상을 촬영해 달라고 부탁했다. 보드를 탄 지 얼마 되지 않은 초보자가 틀림없었다. 내려오는 폼이 엉성하고 엉덩방아도 자주 찧었다. 못 타면 어떠냐. 안드레아는 한눈에 봐도 눈에 띌 정도로 예쁘다. 그런 친구가 촬영해 달라고 하는데 그까짓 것 못해주겠나. 안드레아는 자기 이메일 주소와 연락처를 건네며 자기 동영상을 꼭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전날에는 설산 앞 빙하호수에서 찬 비를 맞으며 놀다가 다음날 모래사막에 떨어지는 석양을 볼 수 있는 곳이 남미다. 하루 만에 겨울과 여름을 체험한 것이다. 와카치나가 페루의 마지막 행선지다. 파타고니아 다음으로 가장 오래 머문 곳이 페루다. 다양한 색채의 다양한 모양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나라다. 하루 더 와카치나에 머문 뒤 내일 리마를 거쳐 멕시코 칸쿤으로 넘어간다. 이제부터 중미 여행이다. 멕시코와 과테말라에서 보름 남짓 보내다 미국 횡단의 출발지 LA로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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