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13일 새벽 아잔에 깨서 하루종일 이스탄불 곳곳을 누비다
새벽 5시 어김없이 아잔(이슬람 신도에게 예배 시간 알리는 소리)이 애달프게 울린다. 아잔이 멈추자 갈매기 울음소리가 이스탄불의 새벽하늘을 채운다. 터키는 국민 98%가 이슬람 신자다. 성지 메카를 향해 기도할 시간을 알리는 소리가 자미(이슬람 사원) 미나레(첨탑)에 설치된 확성기를 통해 하루 다섯 번 나온다. 낮에 본 이슬람 신자들은 예배당에 들기 전에 자리 외곽에 설치된 수도에서 손과 발, 그리고 얼굴을 씻는다. 미흐렙(메카 방향 표시)을 따라 나란히 선 뒤 반복해서 절하며 소리 내지 않고 코란을 암송했다.
이스탄불 여행 첫날, 이스탄불 구시가지에 산재한 유적을 둘러보기로 했다. 동로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틴노플이자 비잔틴이었던 곳이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도읍을 정하고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그리스정교의 수도로서 화려하게 꾸몄다. 삼면이 바다고 유럽 쪽으로 진군하는 적을 막아주는 난공불락의 3중 성벽으로 보호받은 이곳에서 1천여년간 비잔틴 문명이 꽃피웠다. 오스탄투르크 제국의 ‘정복왕’ 메흐메드 2세가 1453년 특별 제작한 대포로 성벽을 무너뜨리고 오스만투르크 수도로 삼았다. 비잔틴은 동서양을 구분하지 않고 나라가 강성해지면 차지하려드는 트로피 같은 곳이었다.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아야소피아박물관. 이스탄불이 서로 차지하려고 하는 왕관이었다면 아야소피아는 왕관 가운데 박힌 보석이다. 콘스탄티누스 아들 콘스탄티누스 2세가 세우고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재건한 그리스정교 최대 교회였다. 이곳을 점령한 오스만투르크는 이교도의 예배당을 부수지 않고 이슬람 예배당, 즉 자미로 바꾸었다. 곳곳에 이슬람 문양을 나무에 새겨 걸었고 예수나 성모마리아, 그리고 성서 속 인물을 새긴 모자이크는 석회로 덮었다.
아야소피아는 높이 54m,지름 33m 돔이 천정 한가운데 차지하고 주위에 크고 작은 돔이 받치는 구조였다. 마침 천정 돔을 수리하고 있어 일부밖에 보지 못해 아쉬웠다. 이슬람 문양과 예배소가 곳곳에 자리한 곳에 아기예수를 든 성모마리아 등 성화들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기기묘묘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이슬람 사원이라 히잡이나 부르카(이슬람 여성 복장으로 머리부터 발까지 덮어쓰는 검은색 통옷)를 입은 여성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미흐렙이 자리한 곳 계단참에는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신성한 곳을 침범해 들어와 자고 있는 들고양이를 내쫓지 않고 두었다.
2층에 올라가는 길은 계단이 없었다. 비탈진 길을 굽이굽이 걸어 올라야 했다. 2년 난간에서 내려다보니 아야소피아 1층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과 촛불 모양의 인공조명이 어울러져 은은했다. 천정과 가깝다보니 천정 문양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2층 천정을 지지하는 대리석 석주 윗부분에는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2층을 따라 걷다가 그 끝자락에 대리석에 쌔기 모양 구멍을 내 만든 창이 눈에 띄었다. 대리석을 조각해 공기를 드나드는 창을 만들어내기 쉽지 않았겠지만 그 대리석 창이 깨지지 않고 1천년가까이 버텼다는 게 신기했다.
아야소피아 맞은편 술탄아스멧1세 자미(이름바 블루모스크)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이슬람 최대 규모 사원이라는 명성이 기대를 부풀게 했다. 이곳은 이슬람 사원이라 관광객도 히잡이나 바지를 입어야 했다. 사원 밖에 자리한 옷 대여소에서 바지를 빌려 입고 사원에 들어섰다. 벽과 천정에 화려한 이슬람 문양이 수놓고 있었다. 바닥은 양탄자가 깔려 있었다. 그게 다였다. 이곳도 역시 수리 중이라 천정 돔은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 양탄자 바닥에 옆두려 기도하는 이슬람 신자를 ‘방문객 출입금지’라고 적힌 표지판 앞에서 보다가 나왔다.
술탄 마흐메드2세가 이스탄불을 점령한 뒤 세운 톱카프 궁전은 달랐다. 제1정원부터 제4정원까지 이어지는 궁전 곳곳은 작정하고 아름답게 꾸몄다. 술탄의 여자들이 거주하던 하렘의 아름다움은 은밀했고 술탄의 정원이자 거주지였던 제4정원은 화려했다. 특히 제4정원 오른쪽으로는 보스포러스해협이 마르마라해로 이어지고 있었고 그 너머에는 아시아 지역이 한눈에 들어왔다. 정원 왼쪽에는 골든혼과 그 너머 신시가지가 펼쳐졌다. 톱카프에서 술탄은 먹고 자고 일하고 읽었다. 부엌, 침실, 도서관, 접견실, 할례 시설까지 모든 것을 갖췄다. 오스만투르크 제국이 가진 건축 기술이 유감없이 발휘된 곳이었다.
개인적으로 아야소피아나 블루모스크보다 톱카프가 더 멋있고 더 훌륭하고 더 풍부해서 좋았다. 보스포러스 해협 너무 아시아 지역이 내려다보이는 식당에서 닭고기 케밥과 레몬 샤베트를 먹었다. 이 식당은 제4정원 오른쪽 계단 아래 자리했다. 가격이 조금 비쌌지만 보스포러스 해협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먹는 케밥이라. 잠시 술탄이 부럽지 않았다.
톱카프를 나와 예레바탄 지하저수지로 들어갔다. 걸어서 5분 거리였다. 길이 140m, 폭 70m, 높이 9m 지하도시를 335개 기둥이 떠받치고 있었다. 식수 8만 톤을 저장했다고 하니 규모가 엄청났다. 어두운 지하에 석주가 줄맞춰 줄줄이 서 있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식수 저장고답게 습기가 가득했지만 서늘해 다닐만했다. 역시 길 따라 걷다보면 막다른 곳에 자리한 기둥 밑에 메두사 머리를 볼 수 있다. 하나는 거꾸로 다른 하나로 옆으로 누워 있었다. 336개 기둥을 로마 전역에 산재한 건축물에서 가져오다보니 석주 모양이 제각각이었다. 한 기둥은 늪 습기를 머금고 있어 얼핏 눈물을 흘리는 듯 보여 ‘우는 기둥(The Crying Column)’이라 불렸다. 죽은 노예들을 생각하며 우는 것이라는 믿거나 말거나 식 설명이 붙어있었다.
예레바탄을 나와 15분 걸어 그랜드바자에 갔다. 그랜드바자 옆 거대 사원 뒤쪽을 따라 걷다가 그랜드바자 입구를 발견했다. 바자에 들어서자 그 규모에 놀랐다. 베야즛 쪽에서 이집트 바자 방향으로 이어진 대로를 중심으로 양쪽에 수 없이 실핏줄 같은 골목을 따라 상점들이 끝도 없이 펼쳐졌다. 전통 공예품부터 가죽제품까지 품목이 엄청나게 많았다. 심지어 10만원짜리 짝퉁 롤렉스 시계도 팔았다. 우리나라 남대문시장에 지붕을 덮었다고나할까.
줄 서서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 악명 높은 아야소피아 박물관, 블루모스크, 톱카프 궁전, 예례바턴 지하 저수지 등이 15분 남짓 줄 서니깐 들어갈 수 있었다. 갈라라탑에서만 30분가량 기다려야했다. 월요일이라 그런가. 관광객 숫자도 그리 많지 않아 구경하기 불편하지 않았다. 그랜드바자에서 트램을 타고 에미뇌누 역으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보스포러스 크루즈를 타려다 마음을 바꿔 갈라타 다리를 도보로 건넜다. 갈라타 다리는 2개 층으로 되어 있다. 1층에는 식당들이 줄지어 영업하고 2층에는 차와 사람이 오갔다. 2층 곳곳에는 바다에 낚시줄을 던지는 강태공들이 자리했다. 갈라타 다리를 건너 오르막을 걸어 오르자 갈라타탑이 나왔다. 갈라타 다리에서 15분가량 걸었다.
갈라타탑에서는 연인들이 부둥켜안고 셀카 찍거나 뽀뽀하느라 좁은 통로를 막고 서 있었다. 연인들은 왜 지상 67m 상공에서 그것도 좁아터진 곳에서 물고 빨고 하는지 모르겠다. 인간이 높은 곳에 서면 로맨틱해진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는데. 상공에서 내려다본 이스탄불의 아름다움이 연애세표를 자극했으리라. 흑해에서 마르마라해 사이에 위치해 아시아와 유럽을 나누는 보스포러서 해협, 보스포러스의 물이 이스탄불 내륙으로 파고 들어가 이스탄불 유럽 지구를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나누는 골든혼(황금 뿔), 그리고 멀리 보이는 마르마라해 사이에 떠 있는 이스탄불을 보고 있자니 없던 사랑의 감정도 생길 판이다.
이스탄불의 명동, 이스티클랄 거리를 걸어 탁심광장에 연한 숙소로 돌아왔다. 이스티클랄은 우리나라 명동이나 종로로 보면 된다. 탁심과 튀넬 역을 오가는 작은 트램 선을 따라 가게들이 줄지어 서 있고 그곳을 인파가 오가는 곳이었다. 여기저기 케밥을 비롯해 터키 음식을 파는 식당이 가득했지만 서둘러 숙소를 향해 걸었다. 아침에 민박 청년들이 끓여준 닭볶음탕과 오이냉국이 너무 그리웠다.
36세 동갑내기 한국인 친구 2명이 합작해 한인민박집을 만들었다. 이 친구들은 세계 곳곳을 돌며 1년씩 살고 있었다. 그중 진혁은 탁월한 요리 솜씨를 자랑했다. 전 세계를 여행하면서 여러 민박에 묵었지만 이집만큼 맛있는 한식을 내놓는 곳은 없었다. 진혁은 지중해 몰타, 스페인 바르셀로나, 독일 드레스덴 등을 돌아다니다 친구 요청을 받고 이스탄불에 왔다. 이곳에 자리잡은 지는 4개월가량이다. 그는 14세 어린 터키 여대생과 연애 중이다. 여긴 여자들이 남자 나이 따지지 않는다나.
진혁이 민박 경영자이자 주방장이라면 다른 친구 덕희는 투자자다. 그는 이스탄불에 빠져있다. 다른 지역에 돌아다니기보다 이스탄불이 주는 여유를 즐기고 있다. 그는 이곳에서 부동산 투자에 관심을 갖고 있다. 터키 리라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유로화나 달러화로 환산한 터키 부동산 값이 폭락하고 있다. 불과 1년전 과 비교해 집값이 달러화로 환산하면 절반으로 떨어졌다. 이스탄불 신시가지 중심지에 위치한 60평 아파트가 3억원을 넘지 않는다. 이참에 이스탄불에 집 한 채 마련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