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수도 답게 생동감 넘쳐...철기문화 전성기 힛타이트문명의 유적지
앙카르 오토가르에서 시내 중심부인 울루스로 들어가는 버스 안에서 본 앙카라는 예상과 달리 상당히 세련됐다. 고층 건물들이 즐비했고 도심으로 들어가는 도로는 널찍하고 시원하게 뚫렸다. 다만 고층 건물 상당수가 건물 골격만 올라갔지 아직 인테리어 공사는 들어가지 않은 듯해 불이 꺼져 있었고 마치 유령도시 같았다. 터키 정부가 작정하고 대규모 개발에 착수했지만 아직 개발이 완료되지 않은 듯했다.
숙소에 들어가 일기를 완료한 뒤 바로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치즈, 야채를 곁들인 빵으로 아침식사를 마치고 앙카라성을 향했다. 숙소에서 나오자마자 멀리 터키 국기가 세워진 앙카라성이었다. 그 국가를 보고 오르막길을 걸었다. 20분가량 걸으니 남산에 오를 때 봄직한 계단들이 잇대어 있었다. 땀을 비질 흘리며 정상에 닿자 건너편에 터키 국가가 걸린 앙카라성이 보였다. 앙카라성이 이어지다가 중간에 허물어진 탓에 끊긴 곳에 오른 것이다. 덕분에 아무도 없는 조용한 앙카라성에서 앙카라를 내려다볼 수 있었다.
앙카라성에서 내려다본 앙카라는 비경이었다. 멀리 아나톨리아 산세를 배경으로 펼쳐진 평원에 빨간색 지붕들이 바위 위 따개비처럼 밀집했고 그 사이사이에 이슬람사원, 스타디움, 고층건물들이 박혀 있었다. 동서남북 전역을 막힘없이 앙카라 전역을 살폈다. 아나톨리아의 황량한 들판과 빨간색 지붕들, 그리고 어색하게 올라간 고층 건물들이 불협화음을 이루며 이국적인 느낌을 줬다.
앙카라성에서 걸어내려와 아나톨리아 문명 박물관에 갔다. 아나톨리아에서 발견된 신석기, 청동기, 힛타이트, 프리기아 유적들을 전시하고 있어 아나톨리아 기원전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스핑크스, 그리픈 등 상상 속 동물이 기원전 1000년 이상 히타이트 문명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새삼 알았다. 청동, 금, 은 세공품은 아주 정밀했고 토기와 자기는 아주 세련됐다. 외벽에 부조로 그려진 조각들은 신화적 상상을 세밀하게 담아내 3000년전 이전 문명의 화려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나톨리아 박물관을 나와 터키 건국의 아버지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영묘로 이동했다. 아타튀르크(터키어로 아버지)는 터키 군인이자 정치가다. 그 업적만 보면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을 합쳐놓은 듯한 인물이다. 오스만제국이 점령하고 있던 그리스 테살로키아에서 태어나 군인으로서 그리스와 전쟁에서 이기고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뒤 외세에 의해 불할 점령당한 터키를 무장투쟁으로 다시 독립을 쟁취한 걸출한 인물이다. 그는 술탄이 지배하던 터키에 공화정을 도입하고 종교와 세속을 분리하는 등 나라의 기초를 세웠다. 정치, 행정, 문화, 종교 등 터키의 모든 것을 결정하고 병사했다. 터키인에게 그는 신이다. 그의 시신이 안치된 영묘는 그리스 신전처럼 가꾸어져 있다.
지하철 아마돌루역에서 내려 10분가량 걸으니 아늑카비르(아타튀르크 영묘를 중심으로 조성된 추모 공원)이 나왔다. 정문에서 영묘까지 5분가량 언덕길을 올라가니 노란색 석재로 조성된 신전이 나왔다. 이 건축물들이 한 사람의 묘라니 아타튀르크가 터키인 마음에 차지하고 있는 무게를 새삼 느꼈다. 이 건물은 사방 곳곳에 아타튀르크 유물들이 전시돼 있었다. 또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승전, 독립운동 당시 아타튀르크의 활약 등을 회화와 조형물로 구현했다. 해방 이후 이승만이라는 형편없는 초대 대통령을 가진 한국인으로서 터키인에게 아타튀르크라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이 부러웠다.
다시 지하철을 타고 아시티(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샤프란 볼루로 가는 버스표를 끊었다. 샤프란 볼루로 가는 버스 옆에는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가 앉았다. 터키어로 호감을 표시하며 여러 가지를 물어보셨으나 내가 아무 답변도 못해 아쉬웠다. 간신히 알아들은 건 자기도 샤프란 볼루로 가니 함께 내리자는 거였다. 그리고 버스에서 나눠주는 과자나 파이를 챙겨주고 음료도 대신 시켜주었다. 지금까지 만난 터키인은 하나같이 착하고 친절했다. 생긴 건 조금 험악하지만 마음은 우리 시골 주민처럼 때 묻지 않은 순수를 지니고 있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