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 것도 없고 할 것도 없는 곳, 샤프란 볼루

유네스코가 세계유산로 지정하면서 호텔 식당 밀집한 특색 없는 마을로 전락

by 이철현

터키 수도 앙카라에서 북쪽 흑해 방면으로 버스로 3시간가량 달려 작은 마을 샤프란 볼루에 갔다. 터키 아나톨리아 지방 전통 가옥양식을 고스란히 보존해 유네스코가 1994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곳이다. 여행사 가이드에는 샤프란 꽃이 무성하게 자생하는 곳으로 오래된 전통 가옥들에 소박한 주민들이 어우러진 동화 속 마을이라고 적혀 있다. 이 가이드북은 무책임하기 그지없다. 그런 마을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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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프란 볼루에서 만난 주민들. 젊고 이쁜 여성은 가게 앞에서 호객하고 나이든 여성은 식당에서 팔 음식 재료를 만든다.

샤프란 볼루에서는 볼 것도 할 것도 없었다. 전통가옥 절반 이상은 코닥(Kodak)이라는 호텔이나 게스트하우스로 바뀌었다. 좁은 골목은 카페와 식당, 기념품 가게로 가득 찼다. 그나마 성벽 아래 작은 전통 시장이 있는 게 다행이었다. 흐드륵 언덕에 올라 내려다본 마을은 이슬람 사원을 중심으로 빨간색 지붕들이 옹기종기 모여 그럴 듯했지만 정작 가까이 가서보면 담이 무너지고 벽이 허물어진 폐가들이 즐비했다. 유네스코가 이 작은 시골마을 세계유산으로 지정하면서 마을이 완전히 망가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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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타이트 철기 유물로 만드는 아저씨와 재래 시장에서 직접 담근 장을 파는 아줌마

차르쉬 광장(메이단)을 중심으로 형성된 상가들은 터키인, 유럽인, 중국인 여행객 상대로 호객하느라 밤늦게까지 불야성을 이루었다. 그런 골목을 1시간가량 돌면 더 이상 불게 없다. 밥 먹는 것 말고는 할 것도 없다. 영어는 아예 통하지 않는다. 인터넷으로 예약한 숙소에 들어가니 영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히잡 쓴 아주머니가 터키어로 뭐라고 한참 설명하는데 아무 것도 알아듣지 못했다. 그나마 영어를 조금 한다는 아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전통가옥을 게스트하우스로 바꿨다고 하는데 시설이 우리나라 여인숙보다 못했다. 에어콘은 없었고 좁은 화장실에 샤워 꼭지가 벽에 붙어있는게 전부였다. 방에 바퀴벌레 가족들이 대규모로 서식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듯했다. 화장실 변기는 앉고 싶지도 않았다. 식당은 반지하인데다 빛이 들지 않아 어두컴컴했고 터키 특유의 냄새도 가득했다. 이곳에서 아침 식사하느니 밖에서 사먹기로 하고 가방을 메고 숙소를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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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드륵 언덕에서 내려다본 샤프란 볼루

동네 주민들도 영어를 전혀 못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식당에서도 뭔가를 시키기 힘들었다. 그냥 메뉴판을 보고 손으로 가리키면 음식을 가져왔다. 닭고기를 소스를 발라 구운 음식 타육시시를 먹고 반나절 만에 오토가르(시외버스 정류장)으로 나왔다. 전날 밤늦게 도착해 1시간가량 선책하고 아침에 일어나 2시간 산책과 식사를 마치고 그곳을 나왔으니 자는 시간 빼면 3시간 보려고 이스탄불에서 앙카라까지 8시간, 다시 앙카라에서 샤프란 볼루까지 3시간 총 11시간을 달려왔다고 생각하니 어이가 없었다.


샤프란 볼루를 떠나 앙카라를 거쳐 카파도키아로 들어간다. 카파도키아에서는 한인민박에 묵는다. 한국인 여인이 터키 남자와 결혼해 카파도키아 산다. 이곳은 이스탄불 못지않은 유명 관광지이니 영어가 통하겠지. 그린투어, 로즈벨리투어, 열기구투어 등 여러 가지 프로그램도 있다고 하니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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