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훈과의 악연, 그리고 존경

소설 남한산성 계기로 되새김질하는 김훈 선배

by 이철현

영화 <남한산성>을 보고 소설 <남한산성>을 읽었다. 조선의 성리학자이자 정치가 김상헌과 최명길은 역사책 속 등장인물로 박제화되지 않고 영상 속에서 숨 쉬고 말해 좋았다. 김윤석과 이병헌이라는 걸출한 배우의 연기에 의존한 바가 없지 않지만 상상력의 표현을 텍스트에 의존하는 소설과 달리 시각적 이미지에 기초해 관객에게 감각적으로 호소하는 영화라는 장르의 미학일게다.


그럼에도 영화는 소설, 아니 역사 속 김상헌을 어이 없이 왜곡했다. 왕에 대한 충성에 바탕을 둔 봉건주의자 김상헌을 느닷없이 동반 자살을 통한 봉건체제의 과격한 붕괴를 꾀한 아나키스트로 둔갑시켰다. 더 자세한 내용은 스포일링을 피할 수 없으니 이 정도에서 영화 얘기는 접고 소설로 넘어가자.

김훈 전 시사저널 편집국장

소설 <남한산성>은 작가 김훈의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은 아니다.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해 병자호란 당시 양반내기들의 말과 행동을 다룬 역사서와 번역서가 많다보니 인물의 캐릭터를 부여하는 방식이나 내용에서 작가로서 창의성을 발휘할 여지가 별로 없다. 그럼에도 소설 <남한산성>에서 작가 김훈이 선보인 글쓰기의 엄정함과 문체의 힘은 번접하기 힘든 경지에 이르렀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훈은 소설 <남한산성>에서 청 황제 홍타이지의 입을 빌어 자기가 추구하는 문장론을 밝혔다. “칸은 문체를 꾸며서 부화한 문장과 뜻이 수줍어서 은비한 문장과 말을 멀리 돌려서 우원한 문장을 먹으로 뭉개고 말을 구부려서 잔망스러운 문장과 말을 늘려서 게으른 문장을 꾸짖었다.” 워낙 한자어가 많다보니 어려울 수 있어 풀어본다. 작가 김훈은 실속은 없고 겉만 화려한 문장과 뜻이 강건하지 못해 글 속에 숨는 문장과 말을 멀리 돌려서 실체와 동떨어진 문장과 말을 꼬아서 자질구레하고 가벼운 문장과 말을 늘려서 게으른 문장을 싫어한다.


이 해석이 맞을게다. 난 작가 김훈이 한 언론사 편집국장으로 재직할 때 그 밑에서 수습기자와 평기자로 한참 동안 그와 일했다. 그의 말본새는 소설 <칼의 노래>나 <남한산성> 속 인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와 대화하면 조선시대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21세기로 넘어온 사람이 아닌가 싶을 때도 있었다. 예를 들어 김훈 국장은 기자들을 불러 취재 지시를 내리거나 기사 수정을 지시한 뒤 “물러가라”라고 말했다. 그럼 기자들은 목례를 드리고 물러났다.

김훈은 최명길에서 자기 모습을 발견했을 듯하다.

한번은 제법 굵직한 특집기사를 선배 기자와 공동 취재하고 기사를 작성한 터라 바이라인에 선배 이름과 내 이름을 병기해야 했다. 당시 바이라인은 이름을 한자로 기재해야 했는데 선배 이름이 독특해서 그에 맞는 한자 폰트를 찾을 수 없다보니 한글로 적을 수밖에 없었다. 한글과 한자를 병기하면 폰트 차이 탓인지 한자가 두드러져 보였다. 게다가 선배 이름은 외자였다. 제법 굵직한 특집기사인데 이제 갓 들어온 수습기자가 돋보이니 적잖이 부담스러웠나보다. 김훈 국장은 나를 불러 “네 이름을 꼭 진자(眞字)로 표기해야겠냐?”라고 물었다. 그에게 한자가 진짜 문자고 한글은 가자(假字)였다. 이거 조선시대도 아니고. 난 진자로 이름을 표기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김훈 국장을 비롯해 여러 선배들과 어울려 술자리를 가졌다. 공교롭게도 술상 앞에 김훈 국장이 앉았다. 술이 거나해지면서 당시 내가 쏙 빠져있던 마이클 클라이튼이니 로빈 쿡이니 미국 소설가들 이름과 작품에 대해 한참 떠들어대니 김훈 국장이 느닷없이 “어디 되지도 않은 서책을 읽고 함부로 떠드냐”고 혼을 냈다. 하긴 그에게 마이클 클라이튼이나 로빈 쿡은 들어본 적도 없는 작가들일게다. 그는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논어, 춘추, 대학, 중용 등 고전을 중히 읽었다.


술자리에서 취기가 오를 때마다 그는 그의 상처를 말했다. 김훈 국장이 한국일보 기자로 재직하던 시절 전두환 계엄사령관이 쿠테타를 일으켰고 한국일보 후배기자 다수를 계엄사령부에 끌고가 치도곤을 내고 있었다. 계엄사령부는 신군부에 대한 지지 성명을 작성하면 후배기자들을 풀어주겠다고 제안했고 김훈 기자는 유려한 문장으로 신군부의 봉기를 지지하는 용비어천가를 썼다. 그는 그에 대한 죄책감을 평생 안고 산다. 소설 <남한산성>에서 조선의 문장가들이 청 황제 홍타이지에게 보내는 항복문서를 작성하길 거부하자 어찌할 도리 없이 항복 문서를 작성한 이조판서 최명길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으리라.


그와 맺은 악연은 시간이 갈수록 깊어졌다. 당시 기자협회와 김훈 국장 사이에 계열사로 파견된 기자의 편집국 복귀 관련해 견해 차가 생기면서 갈등이 생기자 김훈 국장이 선배들에게 “기자 파견과 복귀는 국장 권한이므로 해당 기자 복귀를 고집하려면 나를 밟고 가라”라고 최후 통첩했다. 당시 선배들 다수가 김훈 국장을 존경하는 터라 자칫 그를 잃지 않을까 우려하며 주춤했다. 그때 난 눈치 없이 “밟고 갑시다”라고 말했다가 일부 선배들에게 “말 조심하라”는 핀잔을 들어야 했다. 아무튼 일개 수습기자가 편집국장을 밟고 가자고 했으니 파장이 작지 않았다.

김상헌의 기개는 범인은 닿지 못하는 곳, 아미산에 홀로 핀 매화 같았다.

그뒤 여러차례 그와 어울릴 수밖에 없는 인연이 이어졌지만 우리는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살다보니 서로의 존재는 없는 것과 다름 없었다. 그런 김훈을 달리 보게 된 계기는 작가와 독자로서 만남이었다. 나는 그가 쓴 작품들을 통해 그를 다시 만났다. 소설 <칼의 노래>과 <공터에서>, 수필집 <자전거여행>과 <라면을 끓이며> 등 작품을 보면서 문체가 가진 힘과 정연함에 탄복했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국장 시절 원고지에 갈겨 써 서무가 일일이 워드프로세서로 다시 쳐 입력한 시론은 지금처럼 짧고 간결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 문장이 한 문단을 이룰 정도로 만연체였고 주장은 온갖 현학으로 가득했다. 시론과 소설이 다르다고 하지만 이처럼 다를 수 있다는게 신기하다.


자연인 김훈이나 언론계 선배 김훈에 대한 존경심은 일도 없다. 하지만 작가 김훈은 존경한다. 난 지금 소설 <남한산성>을 필사하고 있다. 남한산성 안팎 풍경에 대한 묘사는 난잡하지 않아 강건하고 우원하지 않아 정확하고 에돌리지 않아 선명하다. 인물마다 쏟아내는 말들은 옛스러움을 간직하면서도 뜻은 분명해 가슴에 다트처럼 꽂힌다. 20년 이상 글을 쓰며 살아왔지만 나는 죽었다 깨나도 작가 김훈만큼 쓰지 못할 것이다. 술에 취해 신명이 나면 먹다 남은 김치찌개와 반찬으로 가득한 밥상 위에 올라 일찍이 본 적 없는 이상한 춤을 추는 그를 보고 싶을 지는 꿈에도 몰랐다. 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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