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딩러우서 보이차 딤섬 먹고 타이완 맥주에 취해 중샨 산책로 돌아다니다
교육 둘째날 요령이 생겼다. 점심식사를 서둘러 마치고 호텔 방에 들어와 25분간 눈을 붙였다. 덕분에 오후 교육은 지난밤 선잠에도 불구하고 무난히 마칠 수 있었다. 오후 5시 교육이 끝나자마자 바로 중샨역으로 발길을 돌렸다. 호텔이 있는 타이페이처잔역에서 달랑 한 정거장이었다. 지리가 익숙해지면 돌아오는 길에는 걸어오겠다고 마음 먹었다.
중샨 역 4번 출구로 나가야 도보 산책로가 있다는 가이드북 안내를 따라 4번 출구를 찾았으나 공사 탓에 일반인 출입을 막았다. 어쩔 수 없이 4번 출구 옆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상으로 올라왔으나 산책로라 할만한 도로를 찾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찾아낸 산책로는 공사 중인 탓에 차가 오가는 비좁은 골목길을 제외하고는 차단막으로 공원을 둘러싸고 있어 중샨 역과 쐉렌 역을 잇는 산책로는 정취가 없었다.
타이페이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중샨 대로는 타이완 국부 쑨원의 일본 이름을 본땄다고 한다. 호텔 방을 함께 쓰는 그린피스 가오슝 사무소 소속 다니엘에 따르면 일본인 태평양전쟁에 패전할 때까지 50여년간 타이완을 식민지배했다고 한다. 일본은 조선과 달리 타이완에게는 식민통치를 가혹하게 하지 않아 상당수 대만인은 일본을 좋아한단다. 국부 쑨원의 일본 이름인 중샨을 따서 도로명을 지었다니 어이가 없다. 게다가 대만인들이 국부로 추앙하는 쑨원은 단 한반도 타이완을 방문한 적도 없단다. 이거야 원. 뭔 소리인지. 암튼 이걸 이해하기엔 내 사고의 유연성이 모자란 듯하다.
중샨 대로로 따라 스팟 타이페이 필름하우스를 찾아 들어갔다. 이곳은 예술영화 전용극장이다. 옛 미국 영사관 건물을 영화 <비정성시> 감독 허우샤오센이 문화공간으로 바꿨다고 한다. 느닷없이 나타난 유럽풍 하얀색 건물을 들어가 2층으로 올라갔다. 1층에는 기념품 판매점과 식당만 있었다. 2층 카페 루미에르에는 손님이 달랑 둘밖에 없어 한적했다. 1층 부속 건물에 있는 상영관은 늦은 시각인 탓에 문을 닫았다.
오후 7시 넘어서인지 배가 고팠다. 타이페이 시민과 일본인이 많이 찾는다는 딤섬 전문점 징딩러우를 찾았다. 한번 꽂히면 같은 것만 먹는 버릇 탓에 샤오롱바오를 또 시켰다. 징딩러우는 타이완 보이차를 섞은 딤섬을 선보였다. 만두피 색부터 짙은 초록색이었고 입에 넣고 씹으면 터지는 국물과 함께 차향이 입에 가득했다. 차의 떫은 맛이 고기의 느끼함을 죽여 어제 먹은 딘타이펑 샤오롱바오보다 담백했다.
허기를 채우고 나가려고 하니 예기치 않은 문제가 생겼다. 카드를 받지 않고 현금만 받는단다. 음식 값이 650NT$(新 타이완 달러)라고 하니 한국 돈으로 2만6천원가량이다. 타이완맥주까지 시켜먹었으니 제법 나왔다. 수중에 있는 현금이라곤 120NT$였다. 점원에게 근처에 현금인출기가 어디냐고 물었더니 근처 편의점에 있다고 했다. 편의점 가서 현금을 찾아오는동안 짐을 맡기겠다고 하자 점원은 짐 맡길 필요 없으니 천천히 갔다오라고 한다. 관광객을 어떻게 믿고 흔쾌히 다녀오란다. 의리를 저버리지 않고 현금을 찾아 가게로 돌아가 계산하고 나서 “고맙다”라고 하자 점원은 씩 웃었다. 용산역 식당에서 비슷한 상황에 처했을 때 가게 주인은 핸드폰 맡기고 가라고 했는데.
타이완 맥주 큰 병을 마셔 알딸딸한 기분으로 공사 중인 산책로로 다시 돌아왔다. 공정무역 상점 러블리 타이완에 들러 선물을 사기 위해서다. 이곳은 타이완 지방에서 만든 특산물과 수공예품을 파는 곳이다. 원주민이 손수 만든 액세서리와 다기(茶器)이 전시되어 있다. 이곳에서 나무 비주로 만든 팔찌를 하나 샀다. 지난 주말 BAT(기초 액션 트레이닝)을 함께 받은 같은 조원 승재에게 선물할 것이다. 승재는 대학 2학년생으로 미소가 아름다운 녀석이다. 나와 맞서 폭탄주 10잔을 마실 정도로 주량이 상당하다. 이 녀석과 친구가 됐다는 게 BAT 최고의 성과였다.
중샨 역에서 중샨 대로를 따라 1km 이상 걸어 타이페이처잔 역까지 왔다. 눈깜짝할 새 도착했다. 싱거웠다. 들어가자니 이르고 어디 돌아다니자니 늦었다. 다시 세븐일레븐에 들어갔다. 타이완 최고 인기맥주 18일을 샀다. 증류해 생산한 지 18일 만에 마시는 맥주라니 아주 신선하다고 한다. 지금 룸메이트 다니엘과 18일을 마시고 있다. 다니엘은 지금 여친과 통화중이다. 배 아프다. ㅋㅋ 이 친구는 기특하다. 나를 35세로 봤다. ㅎㅎ